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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_ 02

 



 준면의 설득반,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 반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백현은 제가 이런 식으로 어머니에게 반항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머니가 부회장, 형이 이사인 백화점 안에서 이미 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도 백현은 제 사무실 데스크에 앉아 업무를 보는 시간보다 매장을 돌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에 임원은 물론, 파트타임 직원까지 제 얼굴 도장을 찍을 심산으로 백화점 안을 활보했다. 


 당연히 사람들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는 없었다. 

사교계에서 제 과거와 난잡한 현재를 욕하는 것과 백화점 직원들 사이에서 부모 잘 만난 양아치로 욕먹는 것 중에 어느 것 하나 제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백현은 여전히 그 모든 것에 무신경했다. 

 오히려 제 평가가 깎이고 깎일수록 제 어머니에게 복수하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저를 보며 미소 짓는 얼굴들과 마주하며 백현은 그 미소를 거울처럼 따라했다. 그 말투와 표정까지 완벽하게. 눈치가 빠른 것도 상대방의 기분을 잘 읽어내는 것도 타고났다 싶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그에겐 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감정 없는 웃음을 알아보는 것은 그에게는 일도 아니었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또한 식은 죽 먹는 일보다 쉬운 일이었다. 


 남성복이나 여성복이나 구두, 가방에 이르기까지 종목과 성별의 분류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듯 이 매장 저 매장으로 나비처럼 날아 움직이는 제 걸음의 하나하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날카롭기 짝이 없었지만, 백현의 걸음은 가벼웠다. 

“이거, 다른 색도 있어요?”

“네? 네. 이쪽으로 라인이..”

갑자기 제게 말을 걸지 몰랐던 직원이 놀란 듯 하던 것도 잠시 친절히 웃으며 저를 안내했다.

“아아. 이게 제일 낫네.”

 그가 지나간 자리가 흡사 폭풍이 지나간 자리를 연상케 했다. 결국 그에 대한 보고가 고스란히 제 어머니에게 전달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백현은 다시 요란스럽게 울리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이번에는 받지 않을 작정을 하고 주머니 안으로 깊숙이 손을 넣던 그가 짧은 진동을 느끼고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발신자는 예상대로 제 어머니였다. 

[언제까지 그렇게 생각 없이 살 생각이니.]

 휴대폰 화면이 다시 까맣게 변할 때 까지 그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글쎄, 저도 잘 모르겠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지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제가 서있는 단단한 대리석 바닥 위가 마치 사막의 모래처럼 느껴졌다. 그 자리에 발이 묶인 듯 백현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오전 일정을 마친 찬열은 평소 제 이동 경로를 벗어나 차를 세웠다. 높은 빌딩 숲 사이로 익숙한 이름을 올려다본 그의 차가 미끄러지듯 주차장에 세워지고 목적 없이 차에서 내린 그가 백화점 안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찬열의 발걸음이 멈춰선 것은, 

 이렇게 빨리 그를 다시 마주치리라 생각하지는 못해서였다. 

생각해보면 그가 근무하는 건물 안에 들어선 것은 저였으므로 그 뒷모습을 발견한 것이 아주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것을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찬열은 이 매장 저 매장을 돌아다니는 백현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서는 그의 뒷모습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한가운데에 멈춰선 찬열은 고개를 숙인 백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마치 제 시선을 느낀 듯이 돌아선 백현과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그는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있던 제 모습을 깨닫고 스스로의 행동에 놀랄 따름이었으나 그것도 잠시, 종국에는 그런 자신을 전혀 모른채 지나치는 백현의 옆으로 저도 모르게 말을 뱉어낸 후였다. 

“낮에는 멀쩡하네.”

 백현은 제 옆에서 선명하게 들리는 낮은 음성에 잠시 그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는 사람이던가?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딱히 제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은 걸 보면 그건 아닐텐데. 그렇게 판단한 백현이 저를 마주보는 눈동자를 바라보다 눈을 깜빡였다. 

“저요?”

그의 목소리에 찬열의 미간이 찌푸러진 것을 보며 백현은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다시 의문에 쌓여 저보다 한참은 큰, 기다란 기럭지를 훑어보았다. 모르는 얼굴이 맞는데..

손끝으로 제 자신을 가리키며 묻는 백현의 행동과 저를 보는 눈빛에 찬열의 심기가 불편해 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를 마주한 것이 바로 어젯밤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억 속에 저는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술에 취해 기억도 못하는 상대에게 아무렇지 않게 제 호텔 룸 키를 건낼만큼 저렴한 사람을 도왔다는 것이 몹시 불쾌하게 느껴졌다.

약에 찌들어 산다더라. 알코올 중독자가 됬다더라. 하는 소문은 백현이 한국을 떠나고 반년도 지나지 않아 사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말들이었다. 

그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매일 다른 사람과 밤을 보낸다더라, 그와 잠자리를 하지 않은 중종이 없다 더라. 하물며, 제 형제들 까지 손을 댔다더라 하는 말도 안되는 소문들도 허다했다. 반류 사회에서는 형제끼리의 혼인, 하물며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의 혼인은 흠이 아니었지만, 그 주체가 백현이라면 무엇이든 헐뜯고 보는 것이 익숙해진 후였다.

 그럼에도 그의 소문들이 전혀 근거 없는 뜬구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이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그런 소문이 돌지.”

찬열은 그 말을 뱉으며 입술 끝을 올려 웃어 보였다. 백현은 호를 그리는 그의 입술을 바라보며 허, 숨을 뱉어내고 눈을 깜빡였다.  

“지금..”

 백현의 과거에 대한 소문은 그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나돌았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 사교계로 복귀하지 않고 그 소문에 대한 진상도 밝히지 않자,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며 점점 몸뚱이를 부풀렸다. 

물론, 제가 듣도 보도 못한 저급한 소문들도 백현에게 들려올 정도였으니 저를 모르는, 저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제 소문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이런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한국그룹, 진 그룹, k건설이라는 제 배경과 명석한 두뇌, 반듯한 성격에 모두가 사랑할 만한 성격을 지녔던 그의 추락은 그를 시기 질투하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의 배경이 여전히 건제하다는 것 하나로 아직까지 그에게 직접적으로 그렇게 떠들어댈 인물이 없을 뿐. 

 눈을 깜빡이며 손을 부르르 떠는 백현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느낀 찬열이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백현은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눈치 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니까..시비거는 건가? 아니면, ..낮술하자는 건가?”

백현의 말에 찬열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그의 말에 답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는 저를 보며 완전히 몸을 튼 백현이 한걸음 제 앞으로 다가섰다. 

“후자로 하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에게 접근한 건지 감이 안가는 찬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백현이 어차피 오늘 일은 다했다 싶어 뱉어낸 제 말을 덥석 낚아채는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너.. 성격 진짜 나쁘구나?”



 그 뒤로 4차까지 함께 달린 찬열이 제 예상보다 더 성격이 나쁘다는 것을 백현은 깨달았다.

 1차로 갔던 바에서 이미 취할 때까지 취한 백현의 수발을 들어주면서도 얼굴 위로 그대로 드러난 감정들이 그러했으며, 제가 고른 장소와 메뉴, 모든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며 2차의 행선지를 제가 고른 것부터, 3차로 갔던 당구장에서 이미 잔뜩 취해 제정신이 아닌 채로 소파 위에 늘어져있는 백현을 신경도 쓰지 않고 당구를 치던 일. 마지막 4차로 갔던 술집에서 정신이든 백현에게 다시 술을 먹이던 잔인함까지도.

백현의 축 늘어진 몸을 받쳐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선 찬열은 이 익숙한 상황에 헛웃음을 흘렸다. 

낮부터 달렸으니 저 또한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백현이 취하자 정신을 다잡은 찬열이 그를 호텔로 데려다 주기 위해 걷다가, 당구장에서 자고 일어나 조금 정신이 든 백현이  4차를 가야한다 우기는 바람에 기어이 목적지를 달리해 다시 술을 또 마시고 나니 취기가 가실 시간이 없었다. 

 낮술, 이렇게 제 정신을 놓을 때 까지 음주를 한 것이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던 찬열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축 늘어진 백현을 일으켜 세워 여기까지 온 자신이 신기할 뿐이었다. 

찬열은 침대 위로 흐트러진 백현의 몸을 내려다봤다. 

 데자뷰 같았다. 

익숙하게 냉장고로 향하는 그의 느릿한 걸음걸이가 하루사이 깨끗해진 바닥을 스쳤다. 

 이곳에 다시 오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냉장고 문을 열고 차가운 생수병이 꺼낸 찬열이 병의 입구를 비틀어 열다 문득, 방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넓은 침대 위로 푹 파묻힌 백현의 입술 사이로 흩어지는 숨소리만이 가득한 방 안으로 찬열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찬열은 침대 위로 앉으며 백현의 눈을 가린 머리카락들을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제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목. 안 말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제 숨통을 트이게 하는 일이었는지 알지 못했었다. 

“물 마실래?”

 느릿하고 조용한 그 목소리가 정적 속에 내려앉았다. 

잠에 취해 대답은커녕 점점 짙어지는 숨소리만 뱉어낸 백현을 잠시 바라보던 찬열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의 손길에도 백현은 미동조차 없이 잠들어 있었다. 

 찬열은 제 입술 위로 생수병을 대고 벌컥벌컥 시원하게 물을 들이켰다. 

불편한 듯 몸을 뒤척인 백현의 움직임에 찬열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 닿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뱉어내는 숨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찬열의 상체가 기울었다.

 백현의 입술 위로 찬열의 입술이 소리 없이 닿았다.  

 

그의 손에서 굴러 떨어진 생수병이 추락하며 바닥의 색이 점점 짙어졌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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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는, 좀 느리고 어두운 분위기의 글입니다..재미가 없어욧(2화만에 털어놓는 진심)..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수정하며 올리는 중인데, 저도 답답할 때가 많아요..(고구마시럿ㅠㅠ!!)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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