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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_ 01

 


 

 찬열은 매달 본가에 들어가 가족들과 하는 식사자리를 불편해했다. 

물론, 그 불편함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저를 어릴 적부터 지켜봐왔던 분들을 속이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앉아라.”

할아버지의 말씀에 숙였던 허리를 세우고 의자 위로 안착한 찬열은 제 앞에 차려진 정갈한 식사를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까지 차례로 식사를 시작하셨을 때야 그는 제 수저 위로 가지런히 손을 올렸다.조용하고 불편한 식사자리에도 묵묵히 그릇을 비워낸 찬열이 자리에서 일어선 것도 제 순서에 맞게 어머니의 뒤가 되었지만, 찬열은 숨 막히는 식사자리를 끝마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 만나봤다고?”  

“..네.”

 소파에 등이 닿기도 전에 떨어진 주어 없는 대화에도 찬열은 한결같은 표정으로 답했다. ‘결혼’을 전제로 제 자리를 논하셨으니 아마 제가 그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제게 그 대화 주제 이외의 것을 논하지 않으시리라 오랜 경험을 끝으로 짐작한 그의 덤덤한 표정 위로 어머니의 시선이 닿았다. 

“아버지. 찬열이 아직.”

“..”

 할아버지의 표정 변화에 아버지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자 어머니는 그 이상의 말을 꺼내지 못하고 못마땅한 표정을 해 보이셨다. 찬열은 그 일련의 과정이 지난 후에 찻잔을 그러쥐었다.

“결혼에 이른 것은 없다. 그 정도면 네 안사람 자리로 나쁘진 않지.”

“조만간 자리 한 번 마련해라.”

 두 분의 대화가 이어질 동안, 찬열은 미지근한 커피로 입술을 축일 뿐이었다. 결국 제 뜻을 물으려던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찬열은 알고 있었다. 

대화를 가장한 통보가 그들의 방식인 것을 알게 된 열일곱 이후로 찬열은 한 번도 제 집이 편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 말씀을 꼭 그렇게 하셔야해요?”

“당신은 왜 자꾸 끝난 얘기를..”

“이렇게까지 서두르실 필요 없잖아요. 게다가 저 아이 마음은,” 

“저 녀석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결혼 밖에 없다는 걸 왜 몰라.”

“떠밀리듯 하는 결혼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 에요. 도대체?”

“들어갑시다. 나랑 얘기해요.”

“잠깐만요, 난 지금 아버지랑.”

박회장은 제 딸을 다독여 자리를 피하는 사위의 뒷모습에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본인도 알고 있는 것을, 어미라는 것이 어찌 모르는 겐지.”



“아버님 말씀이 옳아요. 결혼해서 안정된 이미지를 가지는 게 지금 저 아이에겐 가장 중요해. 게다가 백호로 가주에 오르는 것이 나 같은 애비를 둔 그 아이에게는 힘든 일이라는 거 알잖소.”

“난 그 아이가 가주가 되는 건,”

“이미 끝난 얘기. 자꾸 꺼내지 맙시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소.”

 그들은 몇 번이나 같은 문제로 언쟁을 했었다. 끝없는 언쟁 끝에 찬열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그를 제 가문 밖에서 지켜낼 자신이 없었던 힘없는 부모의 선택이었다. 고아였던 남자와의 혼인을 허락받지 못하고 도망치듯 오른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아직 부르지 않은 배를 감싸고 속삭였던 다짐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너 하나만은 꼭 지켜주리라 마음먹었건만, 

“하지만 여보.”

“..나도 그 아이가, 내 아들 녀석이 힘들어 하는 걸 보는 게 힘들어.”

이번에도 제 아이를 지켜줄 수 없는 자신의 신세가 비통할 따름이었다. 

  



“..형,..백,..이형. 형!”

종인은 옷도 벗지 않고 시체처럼 누워있는 백현의 몸을 흔들었다. 이 형이 진짜.. 

“형!”

“으응, 5분만..”

“5분은 무슨, 빨리 일어나!”

“인아아..”

늘어지는 목소리에 맘이 약해진 종인은 한숨을 삼키며 백현의 옆으로 몸을 뉘였다.

“난 진짜..모르겠다. 형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

“내 동생. 벌써 늙으면 안 되는데-”

 잠이 가득한 목소리가 시트 사이로 파고들며 바로 옆에 붙어있는 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았으나 종인은 그 말에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입술 끝을 올렸다. 

“준면이형 와서 혼나도 모른다.”

“으응-”

 백현은 제 말을 흘려들으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제가 말하고도 어이없는 말이긴 했다. 어려서부터 아빠보다 더 엄하게 저와 준면을 혼내던 ‘그’ 김민석도 혼내기는커녕 무표정 한 번 보이질 않는 백현을 준면이 무슨 수로 혼낸단 말인가.  


 종인이 그를 따라 눈을 감고 있길 몇 분, 제 발끝에 치이는 술병에 한숨을 늘어놓으며 들어선 준면이 익숙한 얼굴로 그런 둘을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들을 도대체 어쩐다..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의 8할은 백현의 몫이리라. 

“백현아. 일어나야지-”

 세상 다정한 목소리에 종인이 우욱 하는 제스처를 하자 준면이 툭, 그의 팔을 쳤다. 

“넌 애를 안 깨우고 같이 자고 있어?”

“아, 아파! 그럼 형이 깨우던가.”

자기도 못할 거면서. 뒷말을 뱉어내지 않고 옆으로 돌아누운 종인이 

“혀엉-준면이 형이 나 때려.”

엄살을 피우자 잠결에도 꿈틀대며 제 팔을 들어 종인을 감싸는 백현을 보며 준면이 머리를 흔들며 방을 나섰다. 

“데리고 내려와. 아침은 먹여야 되니까.”

끝까지 걱정을 담은 말을 잊지 않는 그의 뒷모습에 혀를 내밀어보인 종인이 백현의 등을 토닥였다. 

“형. 일어나. 이러다 회사 늦으면 준면이 형이 또 야근시킬 걸?”

야근이란 말에 눈을 뜬 백현을 욕실로 밀어 넣은 종인은 익숙하게 그의 옷과 시계를 골랐다.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이면 늘 백현이 머무는 호텔을 들러 함께 아침을 먹곤 했다.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까지 끝마치고 신문을 훑어보던 준면에게 다가가 손 인사를 하는 백현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형. 어제는..”

 머뭇거리며 어제의 제 행동에 사과하려는 백현을 뻔히 안다는 듯 준면이 표정을 허물이며 웃어보이자 백현이 히히-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형 곧 들어오는 거 알지? 걸리지만 마.”

 민석은 3년 전, 제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나서부터 저의 감시를 톡톡히 하고 있다. 평소 저 자신을 포함해 모두에게 엄격한 준면도 백현에겐 한없이 약하고, 종인은 어릴 적부터 백현의 말이라면 부모님을 포함한 누구의 말보다 적극적으로 신뢰하던 아이였다. 그러니 자연스레 채찍이 되어줄 사람은 민석 뿐이었으나, 민석 또한 제 형제들 못지않은 심각한 브라콤으로 항상 백현의 편이 되어주곤 했다.

물론 그건 백현이 런던에서 돌아오던 3년 전 사건으로 민석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백현의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런던에서 혼자 지낼 때, 백현은 제 자신을 포기한 사람 같았다. 물론 본인은 잘 알지 못했겠지만 그를 곁에서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생각했다.

 쟤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모르겠다. 돈도 많은 애가.

 그 2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면 글쎄, 뭐가 있었더라. 고작 3년 전의 기억이었음 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억 속에서 런던은 흐릿한 안개 속에 묻힌 듯 선명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변백현, 이거 진짜 괜찮은 거야.  

 백현아- 나 이거 가져간다?

 변백현, 카드.

 제 돈을 보고 접근한 이들을 친구라고 부르며 그들이 제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고, 제 카드로 당연하다는 듯 계산하던 행동들을 관망하던 그는 그때의 자신이 어떤 상황에 쳐해 있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로 약과 술에 의존하며 하루 하루를 무감각 속에 살았다. 

 그들이 저를 이용하고 있음을 뻔히 알았지만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제 주변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에 묻혀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에, 제 곁의 사람들이 저를 이용하는 것은 제가 그들을 그런 용도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과 제 행동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혼자 지내고 싶다는 제 의견에 한마디의 이견도 보태지 않았던 민석과 준면에게 있어서 백현의 그런 행동은 충분히 자신들을 실망시키는 것이었고, 종인이 그토록 따르던 착한 형으로써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음을 백현은 한국으로 들어와 치료를 받으면서 비로써 깨달았다. 

 약과 술에 찌들어 살았던 과거를 말끔히 지우는데 얼마의 시간과 노력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물론, 돈도. 그것은 백현의 아버지가 한국그룹 대표, 어머니가 진 갤러리 부대표라는 것과 새아버지가 k건설 대표라는 어마무시한 배경을 떠나서 치료가 전부 민석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듯, 그 값을 아는 것도 민석 뿐이었기 때문이다.

 백현이 한국으로 잡혀오듯 들어와 치료를 거부하던 때부터 민석은 독해지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처럼, 처음으로 그에게 화를 냈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소리를 지르거나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은 민석의 조용한 화는 오히려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 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으나 백현은 여전히 제 자신을 챙기는 것에 소홀했다.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고 치료를 거부하며 술과 약만을 찾던 백현이 치료를 결정한 것은 무감각한 제 대신 그 통증을 고스란히 느끼는 냥 우는 새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였다. 

 저를 친아들처럼 아끼던 새아버지는 제 아픔에 저보다 더 괴로워하고 저를 친형제처럼 사랑해주던 형제들이 흘린 감정이 비로소 백현의 안에 움츠려든 채 잠든 감정들을 일깨웠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제 몸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백현의 아침을 자진해서 담당하기로 한 준면은 매일 아침 잠들어있는 저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회사까지 데려다주는 일정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아직 본가에서 함께 지내는 준면과 종인은 오늘처럼 시간이 맞으면 함께 저를 깨우러 오곤 했다. 


“형,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며.”

 과거 저의 발언에 민망해진 백현이 뒷목을 긁적이며 종인의 눈을 피하고 스트로를 입에 물었다. 아직도 먹는 것이 불편한 그는 주로 먹는 것보다 마시는 것을 편안해했다. 

그걸 알아챈 준면이 늘 부드러운 스프와 국을 아침으로 대령해도 그는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행선지가 다른 종인과 헤어지고 준면의 차에 올라탄 백현이 안전벨트를 맴과 동시에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킨 준면이 아까의 화제를 다시 끌어올렸다. 

“형 오면 한동안 아침은 형이랑 해야 할 텐데. 어쩌려고.”

“미안..”

“어머니가 저번부터 집에 한 번 오라고 연락하셨다는데, 그건.”

“..그것도.”

 백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 준면은 그를 다그치지도 못하였지만, 계속해서 백현을 찾는 어머니의 의사를 한번쯤은 전달한 것은 그가 제게 미안한 마음으로라도 한 번쯤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릴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백현이 계속해서 어머니를 피하며 그녀의 화를 사는 것보단 그편이 나았다. 

 백현은 제 사무실에 틀어박혀 책상 위를 점령한 데스크 위를 바라봤다. 

 제게 다정한 준면이 유일하게 제게 엄격한 업무전달에 한숨을 뱉어내며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니라를 시전하며 서류를 훑어본 백현은 오전 일정을 끝내기 무섭게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밝게 빛을 내는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준면이 제게 말한 것이 마지막 경고와도 같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니 더 이상 피하기는 것은 힘들었다. 


“네.”

[드디어 받는구나.]

“..어쩐 일이세요.” 

[드디어 내 용건을 들을 마음이 생겼니?]

“도대체 무슨 중요한 일 때문에 그렇게 형제들을 들들 볶으시는지 궁금하네요.”

[그러게, 그게 다 누구때문이겠니.]

“..”

[본론만 얘기하마. 길게 통화하기 싫어하는 거 모르지 않으니.]

“말씀하세요.”

[선 봐라. 더 이상 시간낭비 하지 말고. 너나 나나,]

“시간, 낭비요?”

 선이라니, 저를 두고 장사라도 하실 생각인가. 백현은 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던 순간부터 속을 어지럽히던 토기에 점점 일그러지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졌다. 

[너나 나나. 피차 시간낭비라는 거 모르지 않을 텐데?]

“그 말은, 포기 안 하시겠다는 건가요?”

[그래서 말했잖니. 시간낭비. 에너지낭비.]

“포기하시는 게 빠를 겁니다.” 

[넌, 도대체-]

백현은 핸드폰 화면을 툭툭 거칠게 내려치며 통화를 종료시키고 제 목을 조르는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누군가 제 목을 조르듯 답답한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감으며 숨을 고르는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제가 이렇게까지 제 어머니를 싫어할 날이 오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아니, 제게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라 여겼던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 그때도 그는 늘 그녀의 편에 섰었다. 제 생물학적 어머니이자 사랑하는 엄마로써 그녀를 편든 것이 아니라 그녀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며 존경했었다. 

 허나, 지금의 두 사람 사이에는 너무 깊은 균열이 생겨버렸다. 

백현이 제 사무실을 벗어난 것은 단순히 제 기분이 나빠서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이 기분을 환기시키지 않으면 또 스스로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싶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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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편에서 느끼셨는지 모르겠으나. 섹피 설정입니다. 그저 배경이고 설정이라 많이 다루지 않을 예정입니다만..혹 기피하시는 분이 계실까 하여 말씀드립니다. '섹피는 배경일뿐 오해하지말자(?)'

예전에 써둔 글 비축분 올릴 동안은 빨리 올 것 같아요. 음주,약에 대해서 간혹 언급되오나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별로 없어서 성인 글로 올리지는 않았습니다만..혹, 보기 불편하시면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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