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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13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warning _ roman noir







 

다음날 사무실로 출근을 한 백현은 동수가 정산해둔 봉투들을 옮겨 두고 자리에 앉았다 준면과 찬열이 같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 허리를 숙인 백현을 준면이 잠시 바라보다 손을 까딱이며 백현아, 불렀다. 

 

“잠깐 들어와 봐.”

 

찬열의 시선이 느리게 백현의 얼굴로 닿았다 떨어지는 동안 백현은 그의 걸음을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준면이 그를 향해 입술을 열었다. 


“백현이 너, 당분간 나오지 마라.”

 

그게 무슨 .. 백현은 제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인지 그에게 묻기 위해 메모장을 찾아 주머니 안을 뒤적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움직임을 멈췄다. 

 

“너 수능 얼마 안 남았다며, ..투자라고 생각할 테니까. 공부해.”




두 사람이 들어간 사무실 문을 바라보던 찬열이 소파 앞으로 다가서는 순간 종인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오셨습니까 형님. 동수야, 저번에 루프 갔던 거 정리 끝났냐?”


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동수의 앞으로 다가선 종인은 익숙한 동작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쿠키를 집어 들었다. 


“어. 왜,”

“루프는 왜.”

“그쪽에서 좀 소란이 생긴 모양입니다. 가는 김에 가져다 주려고요. 제가 지금 다녀..”

“내가.”

“아니 뭐 형님이 직접 가십니까.”

“저번에도 내가 갔어.”

 

결국 종인은 그를 따라 나서며 쿠키 봉투를 뜯었다. 같이 가요. 형님- 걸음 참, 빠르셔.  

 

“형님. 큰 집에서 또 회의 있습니까?”

“아무래도, 관리자가 둘이나 비었는데. 하겠지.”

“아.. 이번엔 영호 보낼까요.”

“..저거나 좀 치워.”

“..네.”

 

바로 옆 건물 두 개를 지나 4층 루프탑 바로 들어선 둘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남자의 등을 바라봤다. 찬열이 턱으로 그 쪽을 가리키자 종인이 이마를 긁적이며 몸을 움직였다. 

 

“아즈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돼요-”

“넌 뭐하는-”


그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종인의 팔에 나자빠졌다. 슬쩍 어깨만 쳤는데, 저 덩치가 근육이 아니라 다 살인 모양이지.. 그의 앞에 쭈그려 앉은 종인이 고통으로 잔뜩 구겨진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조용히 돈 내고 꺼지자.”

“너네 뭐야! 이런, ㅆ..”


테이블 위에 있던 병을 거꾸로 들며 종인과 찬열을 번갈아 보던 남자가 찬열 쪽으로 다가섰다. 저거 저거.. 죽고 싶어서 악을 쓰네. 종인이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찬열은 남자가 휘두르는 팔을 가볍게 피한 뒤 저절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남자의 뒷덜미를 낚아 채 누워있던 남자의 위로 던졌다. 

    

“일행은 맞나 보다. 둘이 비슷하네-”  

 

바닥 위에 겹쳐 누운 둘을 바라보며 바 안에 서있던 사장을 바라본 종인이 손을 흔들고 둘을 한 쪽 씩 옆구리에 끼고 돌아섰다. 찬열은 바 앞으로 다가서 독한 걸로, 한잔만. 짧게 말하고 제 앞으로 잔이 내려지자 마자 입 안으로 알코올을 털어 넣었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감각에 슬쩍 고개를 뒤로 젖힌 그가 잔을 내려두고 지갑을 꺼내는 것을 바라보던 사장이 손사래를 치며 뭘 이런 걸 계산을 하세요. 했으나 찬열은 지폐를 꺼내 잔 옆으로 내려두고 돌아섰다.  

 

 

가게를 나선 찬열은 바로 앞에서 남자들을 인도해 돌려 보내는 종인을 보내고 사무실과 반대편으로 걸음을 돌렸다. 은행 안으로 들어선 그가 ATM 기계 앞에 서서 화면을 눌렀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번호를 누르고 입금을 한 찬열은 계좌가 유효하지 않다는 안내문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개설 한지 두 달도 되지 않은 계좌였다. 이렇게 빨리 눈치챌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한숨을 삼키며 은행 안을 빠져나온 찬열은 사무실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의 검은 구두가 아스팔트 위를 일정한 속도로 즈려 밟았다. 익숙한 걸음은 다시 익숙한 길로 접어 들었다.



 

“아 부럽다.”


백현의 옆에 거의 눕듯 기대있던 종인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동수가 시끄럽다는 듯 쯧 혀를 찼다. 

 

“아아- 부럽다. 나도 쉬고 싶다.”

“영원히 쉬고 싶지?”

“..아니오.”

“그럼 너도 수능 보던가.”


준면은 제 말에 고개를 푹 수그린 종인을 바라보며 백현이 조금 난처해 하자 농담이야 농담. 중얼거렸지만 저게 진심이라는 걸 종인은 잘 알았다. 소란한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찬열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파 위로 자리하자 준면이 그를 흘끔 바라보며 툭 던지듯 말을 뱉었다.


“너도 쉬고 싶냐?”

“네?”

“내일부터 백현이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너도 같이 쉬고 싶냐고.”

“..제가, 왜.”

“뭐 그냥? 쉴 때 같이 쉬면 좋잖아.”


찬열의 시선이 잠시 백현에게로 닿았다. 주변에서 다들 고3이다 수험생이다 공부 힘들지 않냐 걱정을 하는 데도 정작 저는 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3, 수험생. 학창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면 찬열은 자꾸만 과거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평범했던 시간들이 일그러지던 순간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방금 전 그 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이름을 보고 와서 더 한 모양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찬열은 화제를 돌렸다.

 

“.. 회의 언제 가십니까.”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준면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적어도 찬열에겐 그랬다. 생각지도 못한 발언이었으니 말이다. 

  

“넌 언제 독립할 생각이냐.”

“..해야 됩니까.”

“뭐 언제까지 내 밑에 있으려고.”

“..”

“다른 구역 맡을 생각이 아예 없는 거냐?”

“없습니다.”

“그럼 뭐, 소울메이트라도 찾아서,”

“형님.”

“재미나 보고 살지, 새끼야.”

“.. 도착했습니다.”


준면의 말에 찬열이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혀를 차며 제가 문을 열기도 전에 내리는 준면을 따라 걸음을 움직이는 찬열의 얼굴이 잔뜩 굳어진 채였다. 


혹시 저를 시험하시는 것인가. 

요즘의 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신 것인가. 요 며칠 백현의 얘기를 할 때마다 저를 보던 준면의 시선을 다시 곱씹던 찬열은 눈을 감으며 한숨을 뱉어냈다. 

아마 준면은 알고 있을 것이다. 제가 그 아이를 마주하고 느낀 감정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저와 닮은 눈동자와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아이의 행동을 바라볼 때마다 제 기분이 어떤지도.. 저의 변화를 눈치챈 것이 비단 저뿐 만은 아닐테니까. 특히 저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그라면.. 

아니, 생각해보면 그는 처음부터 그랬다. 평소의 그라면 그런 말도 안되는 서류를 보고 아이를 데려오는 일도 없었을 테고, 단지 불쌍하다는 이유로 남을 도울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어쩌면 준면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저를 닮은 아이를 만나고 제가 자극을 받으면 이 일을 떠나 평범하게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마, 지금의 저처럼.. 그는 늘 저보다 앞서가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번 회의 안건은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강서와 성남 두 지역은,..”


찬열은 회의장 안을 울리는 목소리나 준면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달력이 11월로 넘어가자 백현은 어느새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학교와 집을 오가는 생활 패턴이 익숙해졌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면 혼자 제 방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찬열이 늦게 까지 일을 하고 들어오다 보니 집 안에 불이 켜진 곳은 제 방 뿐이었다. 새벽 1시나 2시쯤이 되어 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찬열의 피곤한 얼굴을 마주하면 백현은 그제서야 잠에 들었다. 

 

“너무 늦게 까지 하는 거 아니냐. 몸 생각도 해야지.”

 

여전히 마른 몸을 바라보며 찬열이 넌지시 던진 말에 백현은 고개를 끄덕일 뿐, 그 다음날도 그가 들어올 때 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형님. 백현이 요즘 학교에서 늦게 옵니까?”

“모르겠는데.”

“이상하네. 집에 없는 거 같던 데요.”

“집에 갔었냐?”

 

동수의 질문에 종인이 제 손에 들려있는 종이 백을 흔들어 보였다.

 

“어. 이거 가져다 주려고 했지. 준면이 형님 거랑, 니꺼랑 영호 것도 다 넣었는데.”

 

늘 제가 돌아갈 때는 늦은 새벽이다 보니 아이는 늘 집에서 제가 들어가는 시간에 거실로 마중을 나오곤 했다. 인사를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다 자는 모양이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10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평소라면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긴 했다. 


“걔 또 어디 쓰러져 있는 거 아니겠지.”

“설마.”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에 빠져있던 찬열은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다시 물어야했다. 쓰러졌다고? 누가.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종인이 눈을 깜빡이며 아.. 느리게 입을 열었다.


“예? 아, 아니 저번에도 걔 의식 없는 거 친구라는 놈이 데리고 왔거든요. 민재였나.. 은재였나. 아무튼, 학교에서 괴롭힘 같은 거 당하는 모양이던데요.”

 

찬열은 종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이미 처리는 했지만.. 하는 종인의 목소리는 묻힌 모양이었다. 사무실 안에 남은 동수와 종인이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뭐 실수했나. 괜찮겠지..? 누구에 대한 걱정인지 모를 걱정을 시작했다. 

차에 올라타기 무섭게 시동을 건 찬열이 거칠게 엑셀을 밟았다. 불이 꺼진 집으로 향했던 그는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한 집 안을 확인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학교부터 갔어야 했나,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10시가 넘어 있었다. 다시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던 찬열은 멀리 보이는 실루엣에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넌 이 시간까지 도대체, 어디 있다가 오는 거야.”

 

빠른 걸음으로 아이의 앞에 선 찬열이 아이의 머리부터 발 끝까지 살피듯 시선을 내렸다. 갑작스런 제 등장에 놀란 듯 눈이 커진 아이가 가방끈을 잡고 저를 올려다보는 것을 바라보던 찬열이 이마를 쓸어 넘겼다. 걸어오느라 흐트러진 머리칼이 이마 위를 간지럽히는 모양이다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 묻어났다. 다그치듯 화를 내며 다가선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거침없이 떨리는 것을 바라보며 찬열은 아이가 자신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디 있다가 이 시간에 들어 오냐고 묻잖아. 지금. 연락도 안되는데, 걱정할 거라는 생각은 못해?”


처음으로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저를 다그치는 목소리에 백현이 메모장을 꺼내 말을 적는 동안에도 찬열의 시선은 아이의 얼굴과 손을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저번처럼 생채기가 나있지 않은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바라보며 아이의 말을 기다렸다. 


「 야자.. 끝나고 왔어요. 」


아이가 내민 메모장 위를 바라보던 찬열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종인의 말에 놀란 마음이 아이를 보며 조금씩 진정되긴 했으나 누군가 저를 찾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듯 제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백현을 보니 찬열은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거칠게 차를 몰아 그를 찾으러 다녔던 것이 조금 어이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어떻게 차를 몰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제가 화를 내는 것도, 이렇게 따져 물을 자격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갑자기 제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 제가 무슨 자격으로 아이에게 화를 낸단 말인가. 연락이 안되는 건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준 적도 없었고, 연락을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 야자, 끝나면 이 시간이야?”


찬열은 마음을 가라앉혀야 겠다 생각하며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백현의 얼굴을 보니 아직도 제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사실. 저 자신도 몰랐다. 제가 이렇게 까지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인지. 왜, 이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화가 풀리는 지도, 몰랐다. 


“하. ..앞으로 매일. 이 시간에 오는 거냐”


아이의 시선을 피해 눈을 감았다 뜬 그가 한숨을 뱉어내며 물었다. 다시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백현을 보며 찬열은 알았다. 짧은 말을 끝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제 걸음을 느리게 따라 움직이는 백현의 기척이 느껴졌다. 찬열은 주머니 안으로 찔러넣은 손을 말아 쥐었다. 






차를 세우고 시간을 확인한 찬열이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입김이 나올 정도로 날씨가 쌀쌀해져 있었다. 조금 말려 올라간 소매 끝을 정리하듯 끌어 내리며 숨을 들이 마신 찬열이 고개를 들어 교문 쪽을 바라봤다. 하나 둘 씩 정문을 빠져나오는 아이들은 교복 위로 조금 두꺼운 옷을 껴입고 삼삼오오 모여 걸으며 장난을 치고 대화를 주고 받으며 웃었다. 해맑은 웃음 소리가 저를 스쳐 지나갔다. 

간혹 목도리를 두르고 얼굴을 파묻은 채 무거운 걸음을 내딛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그들과 똑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유난히 마른 몸이 선명하게 찬열의 시야에 들어찼다. 서늘한 바람이 저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는 조금 추워보였다. 아마 지금 찬열 자신이 느끼는 추위와는 조금 다를 거라 생각했다. 아이가 저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운전석 문을 열고 안으로 올라타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었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백현이 차 안으로 들어오자 찬 기운이 그를 따라 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비릿한 바람 냄새가 났다. 말 없이 저를 바라보던 백현이 안전벨트를 매는 것을 지켜보던 찬열이 차를 출발 시켰다.


“옷 좀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백현이 자신의 말에 저를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그와 비슷하게 얇은 양복 차림이 전부인 제 상태를 꾸짖는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으리라.. 찬열은 더이상 할 말이 없어졌으나 딱히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신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었다. 

찬열은 그 뒤로 몇 번이나 야자 시간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백현을 데리러 갔다. 그는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가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쉬는 날도, 다시 사무실로 나가는 날도 있었지만 며칠 동안 계속 교문 앞에 서서 아이를 기다렸다. 

 




 

 

 

“변백현!”

교문을 나서던 백현은 오랜만에 보는 얼굴을 마주하고 놀란 표정과 반가운 표정을 하며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제 앞으로 다가선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는 손길에 백현이 허리를 숙이는 것을 바라보며 종인은 오랜만이다. 공부 잘 되가냐? 넌지시 물었다. 백현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웃어보였다. 뭐, 못한다는 거야. 안 한다는 거야. 아, 됐고. 타라. 춥다. 그의 말에 조수석 문을 연 백현을 확인한 종인이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히터가 틀어져 있던 모양인지 차 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오늘 형님이 좀 바쁘셔서 내가 대신 왔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 안전벨트를 하는 동안 종인이 뒷 자석에 놓여있던 종이 백을 꺼내 백현의 품으로 던지듯 내려두었다.


“자, 이거.”


수능 얼마 안 남았지? 백현은 제 품으로 던지듯 쥐어 준 종이 백과 종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엿이랑 떡. 원래 이런 거 먹을 려고 수능 보는 거 아니겠냐.”

물론 아니지만, 아니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종인은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영호랑 동수도 오겠다는 거 내가 들고 튀었다. 혼자 생색내려고. 많이 먹고- 시험은 대충 찍어. 어차피 대충 봐도 우리 다 합친 거보다 잘 볼 거 같긴 한데.”


백현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시험 끝나고 형이 술 사줄게- 알았지?” 


웃으며 윙크를 한 종인이 제 어깨를 두어번 툭툭 치고는 핸들을 잡는 것을 본 백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집 앞 주차장에 백현을 내려주고는 손을 휙휙 흔들며 멀어졌다. 차의 뒤꽁무니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잠시 도로 위를 바라보던 백현이 제법 묵직한 종이 백을 고쳐 들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들어선 백현은 제 것보다 큰 익숙한 신발을 발견하고 서둘러 거실로 들어섰다.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던 찬열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는 왔냐. 같은 인사말을 건내는 것을 들으며 백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차가운 바람 냄새가 찬열의 코 끝을 스쳤다. 

 

“그건 뭐냐.”

 

그의 시선이 제 품으로 닿자 백현은 그의 옆으로 앉으며 제가 안고 있던 종이 백을 내려두었다. 안을 열어보자 세 개의 상자가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종인의 말대로 그 혼자만 준비한 것이 아닌 모양이라 생각하며 손을 안으로 넣은 백현이 제일 위에 있던 상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엿과 떡인 모양이었다. 백현이 느리게 그의 앞으로 상자를 보여주자 찬열이 캔을 기울이며 아이의 손을 바라봤다. 


“떡? 김종인이 주고 갔어?”

 

찬열은 고개를 끄덕이는 백현을 잠시 바라보며 맥주 캔 위를 그리듯 느리게 매만졌다. 저 혼자 있던 공간 안으로 들어차는 아이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숙인채 상자를 뜯어내지 않고 포장지를 매만지며 머뭇거리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찬열이 안 뜯어 볼거야? 나지막이 묻자 아이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손을 움직였다.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자 하나 씩 포장 되어있는 작은 봉투가 보였다. 부드러운 표면을 매만지며 그것을 하나 꺼낸 백현이 찬열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가 시험 보냐.”


그의 눈에 잠시 눈을 깜빡거린 백현이 손을 거두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이는 것을 바라보던 찬열이 결국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그의 손에서 작은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를 뜯은 찬열이 다시 백현의 앞으로 그것을 내밀었다.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아이를 보며 웃은 찬열이 손을 다시 흔들자 백현이 그의 손에 들린 떡을 받아 들었다.

아이가 두 손으로 받아 든 떡을 잠시 내려다 보다 작고 말랑한 떡을 베어 무는 것을 바라보며 찬열은 다시 맥주 캔을 입술에 대고 목을 뒤로 젖혔다. 조용하던 거실 안은 어느새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소음으로 소란 해졌다. 

   


 



시험을 보기 전까지 백현은 조금 더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었다. 학교나 주변 사람들, 거리의 분위기마저도 온통 시험에 쏠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부담이 느껴진 탓이었다. 식당에서 일을 하던 날에도 백현은 뜻 밖의 말을 들었다.


“백현이 너 이제 시험 아니야?”

 

고개를 끄덕인 저를 바라보며 사장님은 시험이 언제냐, 물으시고는 시험 전에 나오지 말고 공부해라. 말씀하셨으나 백현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 괜찮아요. 」

 

“괜찮기는, 너 그러다 시험 못 보고 내 탓 하는 거 아니냐? 나오지 말어.”

 

괜스레 뒷 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숙여 알겠다는 답을 하고 다시 설거지 통 안으로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어머. 찬열이 오랜만에 보네!”

“안녕하셨어요.”


백현은 주방 안으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놀라 홀 안을 바라봤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백현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어쩐 일이야. 밥 먹으러 온 거야?”

“네. 뭐..”

“오늘은 혼자 온거야? 뭐 줄까?”

“.. 괜찮으시면, 저 아이랑 같이 먹어도 될까요.”

“누구? 백현이? 어. 그래 그래. 지금 손님도 없어서 괜찮아.”


찬열의 말에 관대한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시고는 주방으로 들어와 제 등을 떠미는 힘에 백현은 설거지를 하다 말고 홀로 밀려 나왔다.

 

“뭐 줄까?”


찬열이 앉아있던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빼내고 앉자 마자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현이 주방을 돌아보며 메뉴판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찬열을 바라보자 그는 백현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뭐 먹을래?”


두 사람 앞으로 상이 차려질 동안 백현은 물을 따르고 입술을 축이고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다시 그를 바라봤다. 말없이 저를 바라보는 찬열과 눈을 마주하고 있는 동안 제 앞으로 따끈한 밥 공기가 내려 앉았다. 뚜껑을 연 찬열이 먹어. 짧은 말을 끝으로 테이블 위로 시선을 내리자 백현이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험 당일 백현은 전날 일찍 자둔 덕에 늦지 않게 잠에서 깨어났다. 방문을 열고 나와 분주해 보이는 찬열의 등을 잠시 바라보던 백현이 제 시선을 느낀 찬열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일어났어? 아침. 먹어야지.”

 

백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욕실로 향했다. 그가 씻고 오라는 말을 하기 전에 습관처럼 움직인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던 찬열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자리에 앉은 백현은 찬열의 동작을 따라 수저를 들어 올렸다. 식탁 위로는 뜨거운 국과 밥, 계란찜과 생선 구이, 버섯과 감자 볶음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평소보다 가짓수가 많은 것도 평소보다 부담이 적은 음식들로 차려진 식단도 백현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침을 먹고 옷을 갈아입은 백현이 현관에 서서 신발을 신자 찬열이 아이의 앞으로 섰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던 백현은 제 앞으로 내밀어진 도시락 통을 잠시 바라보고 서 있었다. 

 

“중간에 챙겨 먹어야 한다 길래.”

 

백현이 머뭇거리는 동안 그의 손에 도시락을 들려준 찬열이 그의 목 위로 목도리를 둘렀다. 

 

“춥게 좀 다니지 마라.”

 

아이의 시선이 제 목에 둘러지는 베이지 색 목도리와 도시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던 찬열이 조심해서 다녀오고. 이따 보자. 인사를 하자 백현은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돌아섰다. 아이의 등 뒤로 문이 닫히자 찬열은 짧게 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시험 장으로 향하는 인파 속에 묻힌 백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안으로 걸어 제 자리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은 백현은 찬열이 직접 손에 쥐어준 도시락을 잠시 바라보다 그것을 잘 내려두고 목도리를 조심히 풀어냈다. 어느새 시험 시작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시험을 보는 내내 긴장을 했던 탓인지 쉬는 시간이 되어서는 눈이 조금 뻐근하고 손이 떨렸다. 백현은 손을 탈탈 털어내며 목을 두어 번 돌렸다.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고 식사 시간이 되자 백현은 다시 한번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생각을 했다. 

아는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 도시락을 열어 식사를 하는 무리들 틈에서 백현은 바라만 보던 도시락을 천천히 꺼내 열었다. 가방 안에는 보온통과 작은 초콜릿이 나란히 들어있었다. 보온통을 꺼내 뚜겅을 연 백현은 미소 국과 밥, 계란과 닭고기, 장조림과 견과류 멸치 볶음이 가지런히 담긴 통 안을 바라보며 그제서야 오늘 아침부터 도시락까지 그가 해준, 정갈하게 담아 준 음식들이 저를 위해서 만든 요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만들어준 음식들은 하나 같이 소화가 잘되고 부담이 되지 않을 음식들이었다. 그 커다란 손으로 작은 통 안으로 음식을 담았을 모습이 떠올랐다. 백현은 젓가락을 들고 조금 긴 시간을 도시락 통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현은 밥과 함께 울음을 삼키며 다짐했다. 울지 않을 거라고. 시험 잘 보고, 그를 다시 만나러 갈 거라고. 이따 보자는 그 말을 믿을 거라고. 그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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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본 지 .. 너무... 오래된 것.. 8ㅅ8 사실 도시락이라 던가..음식은.. 뇌피셜이라 진짜 소화가 잘 될런지 모릅니다... 함께 드셔 보시죠!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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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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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12
#17
|찬백| 호우주의보 - 외전 [백현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