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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04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warning _ roman noir

 




 

 

 

“안 먹냐. 그러니까 그렇게 말랐지-”

 

준면은 아직도 저를 경계하듯 숟가락만 쥐고 움직이지 않는 백현을 보며 말했다. 물론 제 말에 반응을 하지 않을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묵묵히 숟가락을 쥐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켜냈다. 

 

종인이 조사해온 종이 위에 써져 있던 것들은 제 예상과 비슷했다. 보육원에서는 나이가 많아 독립해 나왔을 테고 살기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하며 돈을 모았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제 아버지의 빚을 떠안고 임금을 전부 빼앗겼을 테고 그 생활이 반복되니 저렇게 살이 붙을 새도 없이 삐쩍 마른 몰골을 유지했겠지.

 

“궁금한 게 있는데.”

 

백현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준면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내리 깔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부는 좀 하냐?”

 

그의 말의 저의가 무엇인지 가늠하려 그의 눈을 다시 바라보았으나 그의 속내는 알 수가 없었다. 가면 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웃고 있어도 웃고 있지 않은 얼굴. 백현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뜸을 들이다 메모장을 꺼내 들었다. 

종이를 넘기다 숫자들이 적힌 페이지에 멈춘 그가 메모장을 준면의 앞으로 밀어 두었다. 제 성적을 적어두었던 페이지였다. 단지 제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두었던 것인데 이걸 누군가에게 보여주게 될 줄은 몰랐던 탓에 조금 정신은 없었지만, 남자는 제가 내민 메모장을 잠시 바라보다 손을 내밀었다. 

 

“펜 있냐?”

 

백현은 그의 손을 잠시 바라보다 펜을 내밀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잡힌 펜 끝이 그의 동작을 따라 움직이며 종이 위로 흔적을 남겼다. 메모장과 펜을 내려두고 다시 백현의 앞으로 밀어준 준면은 제 밥 그릇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백현은 펜을 갈무리하고 메모장을 들었다. 그가 쓴 글자들을 읽으며 백현은 잠시 머뭇거리는 시선으로 제 메모장과 제 앞에서 밥을 먹는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잘했네. 」

  

종이 위로 적힌 간결한 글자를 읽어내며 백현은 메모장을 다시 접어 옆으로 밀어두었다.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찬열은 빗소리에 눈을 떴다. 눈 앞으로 바로 쏟아지는 조명에 눈도 뜨지 못하고 상체를 일으킨 그가 마른 입술 위를 적시며 이마 위를 문질렀다. 하- 한숨을 뱉어내며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돌리는 제 옆으로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뜨자 준면이 저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찬열은 다시 눈을 감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준면은 대답 대신 제 등을 걷어찼다. 밖으로 쫓겨난 찬열은 결국 못이기는 척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집으로 가서 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제 차 앞으로 다가서던 찬열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에 인상을 찡그리고 다시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영호는..지금 없고, 종인도 사무실에 안 보였던 거 같고. 제 집 주소를 아는 녀석들이 몇 안되는 통에 대리 운전을 시킬 사람이 없었다. 그는 결국 쯧, 혀를 차며 택시를 잡아 타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빵---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새끼야!!!”

 

바로 옆으로 스치듯 지나간 차가 창문을 내리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긴했다. 물론 듣지는 못했으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직 새로운 사무실이 익숙해지지 않았던 탓에 방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여기가 차도 인지 인도인지도 가늠하지 못하고 걷던 그가 비에 젖은 도로를 눈에 담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자 익숙한 간판이 번쩍였다. 찬열은 한숨을 뱉어내며 걸음을 옮겼다. 

 

비를 털어내며 계단을 내려오는 그의 앞으로 웨이터가 다가섰다. 허리를 숙이는 것을 보며 찬열은 룸으로. 한 마디를 뱉어냈다. 축축한 비내음이 코 끝을 스치는 것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린 찬열이 저를 안내하는 남자의 뒤를 따라 걸으며 복도를 살폈다. 

남자의 등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서며 시야가 바뀌었다. 이 구역을 맡게 된 뒤에 종인과 한번 온 적이 있어서 인지 혼자 술을 마시기엔 지나치게 좋은 방을 내어주는 웨이터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찬열은 소파로 몸을 묻었다. 대충 메뉴판을 가리켜 주문을 하자 저를 안내한 남자는 허리를 숙이고 방을 빠져나갔다. 

다시 혼자가 되자 찬열은 다시 툭툭, 제 어깨 위를 털어냈다. 어느새 옮겨붙은 비의 냄새가 제 자켓 위를 부유하는 감각에 기분이 다운 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축축해진 몸을 느끼며 그것이 의미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조용히 눈을 감는 방법을 택했다. 여기서 잠이라도 잘까, 생각하면서.  

 

 

 



비가 오니 손님이 많지 않았다. 백현은 술병이 빼곡이 담긴 플라스틱 바스켓을 들고 흔들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걸었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바닥에 운동화 바닥이 밀렸다. 

 

“민우야! 야, 어. 백현아.”

 

백현은 코너를 돌아 나오던 린지를 마주하고 바스켓을 고쳐 쥐었다. 그녀는 잠시 저를 바라보더니 너 이거 옮기고, 복도 좀 닦아. 복도가 물 천지야- 장마 끝났다더니, 왜 비는 계속 오고 난리야- 불만 가득한 표정을 바라보던 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그녀를 지나쳤다. 

 

바 안쪽으로 바스켓을 내려두고 몸을 돌린 그가 곧바로 청소 도구가 들어있는 캐비닛을 열어 대걸레를 꺼냈다. 그녀의 말대로 바닥은 온통 물 천지였다. 이러다 누구 하나 다쳐야 닦을 거냐고 궁시렁 거리는 것이 당연했다. 복도를 바삐 움직이는 저와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과 술 냄새가 진동하는 비틀거리는 사람들 틈에 섞여 백현의 발걸음이 덩달아 빨라졌다. 

물기를 닦아내고 돌아서던 백현은 누군가와 부딪히고 빠르게 허리를 숙였다. 얌전히 남자의 구두코를 바라봤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니 손님이 저를 지나쳐 갈 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있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은 몇 번의 경험 끝에 터득한 일이었다. 

 

“아, 뭐야. 짜증나게.”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런 저와 앞의 남자를 힐끔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대게 제가 저자세로 나오면 상대는 저를 무시하고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제 앞에 서있던 손님은 사과를 하지 않는 제 행동에 화가 난 것인지 제 어깨를 툭 밀쳤다. 

 

“야, 사과 안해?”

 

고개를 들어 그를 잠시 바라보던 백현은 사과 안 하냐고, 술에 취해 잔뜩 풀린 눈동자를 마주하고 다시 허리를 숙였다. 

 

“아니 이 새끼는, 말 할 줄 모르나. 야. 사과를 하라고!”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점점 커져갔다. 두터운 손이 제 머리통을 가격하는 느낌에 몸이 흔들렸으나 여기서 제가 화를 내면 안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백현은 메모장이라도 꺼내야 하나 생각했으나 이미 술에 취한 남자에게 제 메모가 눈에 들어오긴 할까 싶었다. 툭툭- 제 어깨를 내리치고 미는 손에 비틀거리며 백현은 한숨을 삼켰다.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아마 짜증을 내면서 저를 지나쳐 가겠지. 익숙한 일이었다. 

남자의 목소리와 행동에 복도에 나와있던 직원들도 잠깐씩 그 자리에 멈춰섰으나 섣불리 도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들이 뒤집어 쓰는 경우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복도의 소란에 린지가 룸 안에서 빠져나오며 백현의 앞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니?”

 

제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운 린지의 얼굴을 마주한 백현이 눈을 깜빡이는 동안 린지는 손님을 바라보며 웃는 낯을 했다. 제가 했어야 할 죄송하다는 인사를 대신하며 그녀는 저를 등 뒤로 밀어내듯 제 앞을 가로 막았다. 

 

“죄송해서 어쩌죠. 이 아이가 말을 못해서- 사과는 제가 대신 드릴게요.”

“뭐? 말을 못해? 누굴 병신으로 아나-”

“정말 죄송합니다.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그녀는 익숙하게 손님의 팔을 끌며 제 등 뒤로 직원들에게 손짓했다. 백현이 데리고 가고, 룸 하나 빨리 잡아라. 수신호를 어렵지 않게 읽어낸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백현도 하나가 되어 몸을 돌렸을 때, 그는 제 앞에 마주한 남자의 눈을 바라보고 그 자리에 다시 굳은 듯 멈춰섰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언제부터 있었을까.. 백현은 제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의문들을 애써 지우려 고개를 숙여 그의 시선을 털어냈다. 그의 옆을 지나쳐 걷는 걸음걸이가 점점 더 속도를 붙여 빨라졌다. 

 

 

대걸레를 빨아 다시 캐비닛 안으로 밀어 넣은 백현이 창고로 향했다. 습관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은 그가 박스를 정리하며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먼지가 코 밑을 간질이는 통에 재채기가 나왔다. 백현은 먼지가 가득한 얼굴을 팔 위로 닦아내며 눈을 깜빡였다. 박스 안을 들여다보던 백현의 몸이 천천히아래로 내려앉았다. 제 무릎을 그러 안은 그의 마른 눈이 먼지가 굴러다니는 시멘트 바닥 위를 응시했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씨, 깜짝이야.”

 

민우는 창고 안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작은 그림자에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혼자 있는 줄 알았던 창고에 불이 켜지자 백현이 고개를 돌려 민우를 돌아봤다. 

 

“너 여기서 뭐하냐? 불도 안 켜고. 진짜 깜짝 놀랐네.”

 

느린 동작으로 몸을 일으킨 백현이 다시 박스 안을 뒤적였다. 민우는 그런 백현을 잠시 바라보다 술병을 들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익숙한 일이었다.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겪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축축 쳐지는 제 기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제 자신이 무뎌지진 않았던 모양이다. 백현은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몸이 힘들어지는 것 만큼 좋은 진정제가 없었다. 

 

룸 청소를 끝내고 빠져나오던 제 앞에 린지가 서있었다. 

 

“변백현. 이거 끝나면 들어가.”

 

그녀의 말에 멈칫한 백현이 멍하니 서있자 그녀의 붉은 입술이 못마땅하다는 듯 비틀어졌다. 왜, 일찍 들어가라는 데도 불만이야? 이어지는 말에 백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 비 와서 손님도 별로 없고. 그러니까..”

 

린지가 그의 어깨를 두 어번 토닥이며 돌아섰다. 일찍 들어가서 쉬어라. 얼굴 꼴이 말이 아니야.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백현이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마음은 고마웠으나 지금 제가 갈 곳이라고 해 봐야 이 건물의 창고였다. 그것도 매번 마감까지 버티다 몰래 자러 들어가던 터라 들키지 않고 숨어 지낼 수 있었는데 이렇게 일찍 끝내주면.. 룸은 커녕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는 창고에서도 잠을 잘 순 없지 않은가. 백현의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린지는 복도를 돌아 사라지는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뱉어냈다. 어린 게 딱해서 일을 시켜주긴 했으나 매번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꼭 제가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얼마나 약자가 되는지. 그녀는 백현을 보며 깨달았다. 

 

고아로 보육원에서 자라 겨우 작년에 독립해 나온 어린 소년에게 세상은 잔인한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그랬다. 얼마나 쉽게 그를 상처 입히는지 린지는 일부러 그에게 정을 붙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그렇게 상처 받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제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립스틱을 고쳐 바르며 발개진 눈가를 발견하고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 놈시끼.. 딱한 시끼.. 코를 훌쩍인 그녀가 고개를 젖히고 눈을 깜빡였다. 눈가에 물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린지는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의 과거를 바로 오늘, 그러니까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비가 오니 사람들이 미쳐 돌았나, 아니 사실 여기에 오는 사람들 중에 술에 취해서 깽판을 치는 사람들은 거의 1/3에 달했다. 그러니 오늘도 정신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싸움에 휘말렸다는 소리를 듣고 룸 안에 있던 그녀가 수습을 위해 나오던 때였다. 손님 두 명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다가 옆에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을 치고, 또 그들과 싸움이 붙고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결국 복도가 꽉 막히듯 뒤죽박죽 얽힌 남자들이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대고 주먹질을 하며 사람들이 지나다닐 틈조차 없었다. 하필 창고 앞이라 직원들도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린지는 서둘러 옆에 있던 혜은에게 어서 전화 드려. 한 마디를 뱉어내고 자리를 옮겼다. 혜은은 카운터로 달려가 익숙한 번호를 누르다 아차, 하며 새로운 번호를 눌렀다.

 

남자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데 직원들이 뜯어 말려봤자 휘말리기만 할 뿐이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이리저리 비틀 거리는 취객들을 하나둘 떼어낼 궁리를 하던 린지는 아까 돌아간 찬열을 떠올렸다. 이럴 때 있어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았으나 아마 금방 사람들이 도착할 것이다. 

 

“어. 안녕하세요! 이쪽이요-”

“어. 안녕-”

 

몇 분이나 지났을까, 지금 그럴 때냐 따져 묻고 싶을 만큼 밝은 표정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선 종인이 손을 흔들며 여기저기 인사를 건냈다. 린지는 속 터져 죽겠다는 표정으로 서둘러 손짓했으나 그는 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알았어. 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누가 누나를 귀찮게 해?” 

 

그보다 고작 한 살 많은 저를 꼬박꼬박 누나라 부르며 놀리는 것은 꼴보기 싫었으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으니 린지는 서둘러 종인을 데리고 복도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직원들 뒤로 물리고, 누나도 여기 넘지마.”

 

종인은 조금 떨어진 거리에 린지를 세우며 바닥을 가리켰다. 린지가 알았다는 듯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몸을 돌려 엉켜있는 무리로 향했다. 이미 서로 보기좋게 얼굴 꼴을 엉망으로 만들어둔 상태니 좋게 해결을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음.. 그럼.

 

“컥,”

 

종인은 바닥에 누워 뒹굴던 남자의 등을 그대로 밟았다. 두 사람이 엉켜있던 중이라 1타 2피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서로 주먹다짐을 하던 두 사람을 하나의 실루엣으로 꾹 눌러버린 종인이 그 위로 올라서며 시야를 높였다. 

 

“주목!!!” 

 

갑자기 저들의 위에 우뚝 솟은-원래도 키가 큰 편인데-종인의 목소리에 남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종인은 빙긋-웃으며 그들의 수를 셌다. 제가 밟고 있는 둘을 빼면 여섯, 술 쳐먹었으면 곱게 집에나 들어갈 것이지. 왜 여기서 지랄 들인지 모르겠네?

 

“지금 멈추면 그냥 보내주고, 아니면- 다, 죽어서 나간다? 선택 잘해-”   

“뭐래, 저 씨-”

 

욕지기를 뱉어내던 남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친 종인의 행동에 남자는 뒤로 나자빠지며 벙찐 얼굴을 해 보였다. 지금까지 저와 치고 박던 사람들이 주던 고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고통을 맛본 그는 순식간에 멍해진 눈으로 종인을 올려다봤다. 그를 지켜보던 남자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으나, 술 취하면 겁이 없어지는 모양인지. 종인의 앞으로 달려드는 남자, 그리고 그 사이에 도망을 치듯 걸음을 옮기는 남자들을 바라보며 종인은 한숨을 뱉어냈다. 아휴..귀찮아.

 

한 남자의 뒷덜미를 잡아 바닥으로 내리 꽂고 다른 남자의 다리를 걷어차며 날렵하게 움직이는 그의 행동에 종인의 발에 밟혀 누워있던 두 사람이 잠시 벙쪄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둘러 몸을 일으켜 자리를 벗어났다. 복도 옆으로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선 둘은 막다른 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몸을 돌렸다. 좁은 문을 사이에 두고 또 서로 몸싸움을 벌이던 두 사람의 몸이 밀리고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벽을 잡았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린 선반 아래로 깔린 남자가 으으- 고통 섞인 신음 소리를 뱉어내는 것을 들으며 종인이 그 안으로 들어섰다. 린지도 서둘러 그의 등 뒤로 서서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불을 켜고 보니 두 남자가 선반 아래로 깔려있었다.

 

종인은 한숨을 뱉으며 남자 직원들을 돌아봤다. 

 

“이거 들어봐. 꺼내게.”

 

일단은 깔려 죽게 놔둘 수는 없으니 선반을 들어 꺼낸 뒤에 제가 처리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물론 남자에게 의식이 있었더라면 선반에 깔려 죽는 것과 종인에게 맞아 죽는 것 중 전자를 선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둘러 서랍장을 들어 올리던 남자들이 놀란 듯 주춤하자 종인은 그 밑에 깔린 남자를 꺼내기 위해 움직였다. 두 사람이 분명할텐데 누워있는 사람은 세 사람이었다. 

 

“변백현..?”


“백현아!!”

 

서둘러 그의 몸을 빼낸 종인이 그를 안아 들고 복도로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얘가 왜 여기있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거든? 얘 왜 여기 있어.”

“너 백현이 알아? 얘 우리 집에서 일하는 애야. 아니, 그것보다 얘가 왜 여기있냐고. 분명 아까-”

 

아, 그렇지. 여기서 일하던 애였지. 생각해보니 조사를 할 때 일하던 곳 중에 하나가 이 곳이었다. 종인은 잠시 복도의 상황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백현을 돌아보며 저 혼자 온 것을 후회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야될텐데, 그 생각을 하며 복도에 서있던 종인은 제 앞으로 다가서는 구둣발을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형님??”

 

 찬열이었다. 




찬열은 저를 올려다보는 종인과 의식이 없는 백현을 잠시 바라보다 작은 몸을 제 쪽으로 넘겨 받았다. 

 

“처리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넌.”


린지와 종인이 잠시 벙찐 표정으로 그의 등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형님 언제 오셨어? 몰라.. 아까 집에 간 거 같았는데. 형님 오늘 여기 오셨었어? 둘의 대화에 직원들이 소리쳤다. 이 자식들은 어떻게 해요?! 

 

“아, 씨발. 귀찮아 진짜.”

 

그냥 다 죽여버려야겠다. 욕지기를 뱉은 종인이 목을 우득- 꺾었다. 

 

 

 

찬열은 일단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가게를 빠져나와 택시를 잡으러 나온 것 까진 좋았는데, 준면과 마주칠 줄은 몰랐다. 

 

“뭐야. 얘. 니가 이랬냐?”

“..아닙니다. 병원,”

“일단 빨리 태워! 병원부터 데려가게.”

 

제 말을 듣지도 않고 일단 제 차에 태운 준면은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하는 내내 백현의 얼굴 위를 살피듯 눈을 움직였다. 

 

“얘 진짜 니가 안 그런 거 맞아? 왜 의식이 없어?”

 

찬열은 창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그러다 제가 앉은 의자를 발로 차는 느낌에 뒤를 돌아 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비 그쳤잖아 새끼야, 들리는 거 다 알거든!”

“..진짜 제가 안 그랬습니다. ..김종인한테 물어보십시오.”

“김종인은 또 왜?”

 

그 뒤로 입을 꾹 닫는 찬열의 뒤통수를 한번 째려본 준면이 운전석을 툭툭 치며 말했다. 빨리 밟아 새끼야. 너 나 뒤져도 이렇게 운전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오히려 백현이 깰 것 같았다. 찬열은 백미러를 통해 뒷자석에 길게 누워있는 마른 몸을 흘끗 바라봤다. 





 

 

 

백현은 밝은 시야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몇 번이나 느리게 꿈뻑이며 손을 들어 제 눈두덩이 위를 덮었다. 그러다 제 손등 위로 느껴지는 이질감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니 얇은 호수가 연결되어 있었다. 호스를 따라 주욱- 시선을 옮기자 철로 된 막대기 위로 링겔이 걸려있었다. 시야에 담기는 풍경이 병원이라는 것을 깨달은 백현은 서둘러 상체를 일으켰다. 

갑작스레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핑 도는 듯 해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아.. 머리야.


“누워있어.”

 

낮은 음성에 굳은 듯 멈춰선 백현의 시선이 조금씩 그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틀어졌다. 남자는 침대 옆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백현은 그가 눈을 뜰까 두려워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백현은 제 몸을 살폈다. 환자복은 아니었다. 제가 잠들기 전에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병원 침대에 누워 링겔을 맞고 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일까. 제가 왜 병원에 있는 걸까 생각하던 백현은 제 팔 위로 멍든 자국과 거즈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굳어졌다. 마지막 기억은 창고였다. 선반이 가득한 창고 안에 몸을 웅크리고 누운 것이 마지막이었다.

 

제가 창고에서 자고 있던 것이 들킨 것일까 백현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찬열을 다시 돌아봤다. 그는 어느새 눈을 뜨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마주한 뒤로 그를 다시 보는 것이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빨리는 더더욱.. 백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그런 저를 바라보던 찬열의 얼굴이 험악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를 마주하던 백현은 고개를 돌리며 떨리는 손을 뻗어 시트를 그러 쥐었다가 그것을 걷어내고 다리를 움직여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누워있으라니까, 말 참 안 듣네.”

 

어느새 제 앞으로 다가선 그가 다시 제 어깨를 잡아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백현은 고개를 숙인 채 그를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슨 일이냐 묻고 싶어 메모장을 떠올렸으나 잠들기 전 주머니에서 빼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에게 제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그와 대화를 할 방법이 없었다. 


백현은 제 아랫입술을 깨물며 마른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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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것은 아닌데 호우주의보 올릴 때면 비가 오네요..! 마음 언제나 감사합니다♥하뚜♥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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