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찬백| 호우주의보 05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warning _ roman noir








찬열은 저를 보던 시선이 잊혀지지 않았다. 

남자의 손에 힘없이 밀리며 마주친 축 처진 눈동자는 여전히 마른 듯 건조했으나, 아이의 표정을 바라보던 찬열의 기분은 전과 달랐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머리가 멍해지는 것도 같았다.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 누르는 것처럼 조여 오는 통증에 찬열은 저를 지나치는 등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제가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가를 스스로에게 되묻지 못했다. 제 기분이 나빠진 것이 단지 불쾌함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잊고 지내던 지금과 먼 과거의 제 모습이, 딱 그 나이 또래에 겪었던 일들이 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학교 폭력과 하준의 두 다리를 잃게 만든 사고까지 전부 짊어지고 들어갔던 소년원에서 남은 기억이라곤, 서늘한 시선과 제 몸을 툭툭 밀치던 손. 비가 올 때마다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던 습한 기억들 뿐이었다.

  

‘야. 이번에 들어온 애들 중에 비머거리 있다던데?’

남자의 말에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트렸다. 비머거리래, 그게 뭐냐. 큭큭. 비오면 귀거머리 되니까 맞지. 비머거리. 킥킥. 아, 미친 그게 뭐냐고- 허리를 접어 웃는 남자들 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찬열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교도소와 다를 바 없는, 아니 어쩌면 오히려 더 통제가 힘든 소년원 안에서는 빈번하게 싸움이 일어났다. 생존이라는 숲에 무방비 상태로 던져진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도 찬열은 주목 받기 쉬운 인물이었다. 최대한 조용히 지내다 나가고자 어느 무리에도 끼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와도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 찬열은 부단히도 노력을 했다. 

비가오면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핸디캡을 들키지 않기 위해, 동지 하나 없이 적과 적의 적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사히 빠져나오기 위해서. 찬열은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할 때 어떻게 입술을 움직이는지. 언제 열리고 언제 닫혀야 무슨 소리가 되어 나오는지, 혀가 어떻게 보이고, 치아가 얼마나 보여야 어떤 소리가 만들어지는지 사람마다 다른 입모양, 비슷한 입모양을 읽어내기 위해 여러 사람을 관찰했고 따라했다. 기척을 읽어내는 것에 비하면 입모양을 읽어내는 것은 쉬운 편에 속했다.

 제가 소리 없이 사람의 기척을 읽어내고 입모양을 읽어내려고 노력했던 것은 살기 위한 발버둥 이었으며 치기였다. 믿을 것은 오로지 저 하나인 세상에 떨어져 제 목숨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찬열은 비가 와도. 비가 오지 않아도 제 옆으로 다가서는 사람의 기척을 읽어내고 영양가 없는 욕지기를 뱉어내던 입모양도 전부 읽어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다. 


허나, 찬열은 이럴 때면 차라리 비가 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눈을 감고 모르는 척을 하면 된다. 보지 않으면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이의 등을 바라보지 못했던 찬열이, 아직도 욕지기를 뱉으며 불쾌한 티를 내는 남자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을 테다. 생각이 깊어졌지. 


“씨발, 진짜-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죄송합니다. 주의 시키도록 할게요-”

 

어깨를 털며 가게를 빠져나가는 남자의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던 찬열은 느리게 제 혀 끝을 움직였다. 뾰족한 어금니 위를 스치듯 훑고 마른 입술을 축인 그가 남자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이제 사무실로 가봐야겠다 싶어 룸을 빠져나왔던 찬열의 걸음이 사무실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틀어졌다. 앞서가는 실루엣이 바닥으로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비틀비틀 흔들렸다. 찬열의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밖은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툭툭- 찬열은 남자의 행동을 따라하듯 제 어깨를 털어내며 다시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에 있던 동수는 찬열의 등장에 자연스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며 시계를 흘끗 바라봤다. 어딜 갔다 오셨는지 나갈 때 옷과 똑같은 차림을 잠시 바라보다 익숙하게 소파 위로 몸을 뉘이는 그를 뒤로하고 다시 서류 위로 코를 박았다.

 

찬열이 잠들고 종인은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지 않고, 동수는 나 혼자만 일하지..나 혼자만. 궁시렁 거리며 서류를 거칠게 넘기다가 사무실을 울리는 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헙. 이러다 깨실라. 빠르게 수화기를 든 그가 소파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전화를 받았다.


“네.”

[아, 여기 라운진데요. 김종인씨 계세요?]

“아뇨, 지금 자리에 없는데. 무슨 일로..”

[아 여기 싸움이 나서, 그럼 휴대폰으로 걸게요. 정신이 없어서, 이만-]

 

동수는 정말 급한 듯 빠르게 끊어지는 수화음에 눈을 깜빡이다 수화기를 내려두었다.  


“어디야.”

“네? 아. 싸움이 났다는 데요. 그- 요 앞에 술집이요. 라운지라고.. 김종인 찾는 거 보니 그쪽으로 직접 연락 할 모양입니다.”


잠든 줄 알았던 찬열의 음성에 잠시 놀란 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제 말에 다시 답을 하지 않는 그를 잠시 바라보며 눈을 깜빡인 동수가 다시 서류로 코를 박듯 고개를 내렸을 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소파 위에 길게 누워있던 실루엣이 사라진 뒤였다.


“집 가시나..”






찬열은 제가 왜 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는지 알지 못했다. 싸움이 났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직접 갈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저를 찾는 전화도 아니었고, 그 곳이 제가 몇시간 전에 나왔던 곳이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제가 직접 가봐야 할 필요성을 느낄만큼 중요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제가 왜 이 곳에 서 있는 것일까. 찬열은 복도를 걸으며 제 머릿속을 스치는 잔상을 털어내듯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주머니 안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느리게 숨을 뱉으며 그 숨소리에 맞춰 걸음을 늦춘 것은 제 발걸음이 저도 모르는 새 빨리지던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의식을 잃은 채 종인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를 옮겨 받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던 것도 마찬가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제 스스로가 말이다. 제 품 안에 무기력하게 안겨 있는 아니, 제가 안아 들고 있는 아이의 지나치게 가벼운 무게, 제 품 안에 흩어지는 여린 숨을 느끼며 택시를 잡으려 도로 위를 바라봤던 때의 기분이 초조함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준면을 마주했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침대 위에 내려놓은 작은 몸이 이리저리 치이듯 만져지고 검사를 받을 때도 찬열은 아이의 옆에 서서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창고에서, 선반이 넘어져서 깔린 것 같은데.. 의식이 없습니다.”

“.. 우선,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머리랑 팔에 타박상을 보면 가벼운 뇌진탕도 예상할 수 있겠네요.”


제 말에 의아해 하던 준면의 시선을 느끼긴 했으나 찬열은 의사의 말에 집중하는 척 그를 모르는 척 했다.


“일단 보호자 분은 등록하고 오시구요. 바이탈 체크 하고 다시 불러 드리겠습니다.”


준면은 접수처로 향하며 찬열을 복도까지 끌어냈다. 어떻게 된거냐 다그치려던 그는 정신없는 응급실 안을 잠시 바라보며 등을 돌렸다.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습니다. 타박상이나 뇌진탕이 문제가 아니라 저체중에, 영양 결핍은 물론이고. 보호자분..이 신경을 많이 써주셔야 할 겁니다.”


의사의 얼굴이 잔뜩 굳어진 채 준면과 찬열을 살폈다. 준면은 일단 영양제랑 뭐든 맞춰달라 말을 하며 의사를 따라 나갔다. 찬열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있는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마른 얼굴과 마른 몸을 훑듯이 움직이며 시트 밖으로 빠져나온 마른 손을 발견한 찬열이 그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 시트를 들었다. 손을 들어 시트 안으로 넣어주려던 찬열은 제 손을 잡아오는 힘에 고개를 들어 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감긴 눈두덩이 위를 바라보던 찬열이 그 작은 손을 다시 내려다 보았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들이 남은 하얀 손. 제 손 만큼은 아니었으나 거칠한 손끝이 느껴진 탓에 그는 왠지 아까의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불쾌함이라 정의했던 답답한 감정이 제 안에서 씨앗을 틔었다.

 찬열은 가만히 아이의 손등을 손 끝으로 어루만졌다. 그 부드럽고 느린 동작을 멈춘 것은 아이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시트 안으로 그 작은 손을 넣어주며 침대 앞에 놓여있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금 전 아이의 온기를 느꼈던 손을 말아쥔 그의 시선이 아이의 얼굴 위로 닿았다.






링겔을 다 맞을 동안 깨어났다 잠들길 반복하던 백현이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아침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는 깨어나자 마자 퇴원을 하겠다 고집을 부렸다. 병원비를 감당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응급실 진료에 영양제라니,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었다. 

무작정 몸을 일으키는 그를 보며 찬열은 답답했다. 그냥 누워있으라는데 조그만 게 말도 더럽게 안 듣는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도대체 뭐가 문제냐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던 터다. 물론 자격도 없었고, 결국 찬열은 아이를 내려다보던 고개를 틀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뱉어냈다. 

 

“기다려.”

 

저를 올려다보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고 등을 돌린 찬열이 접수처로 향하기 위해 응급실을 빠져나왔을 때, 복도에 있던 준면이 저를 올려다봤다. 찬열은 그를 마주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안 가셨나..

 

“어디가냐.”

“..퇴원 하겠답니다.”

“너는, 애 하나 눕혀 놓지도 못해?”


저를 지나쳐 응급실 안으로 들어서는 준면의 등을 바라보며 찬열은 복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도대체 왜 저 아이한테 이렇게 까지 신경을 쓰시는 걸까. 의아함은 물론 있었으나 제가 그에게 질문을 할 입장은 안된다고 생각해서 찬열은 조용히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던 그가 눈을 감고 제 눈두덩이 위를 누르듯 문질렀다. 담배가 말리는 기분 이었다. 





 

 

 

백현은 침대 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어서 여기서 나가야 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0시, 시간이 갈수록 병원비가 올라가는 기분도 저를 옥죄어 오는 것 중에 하나였으나 씻고 가게로 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점점 더 초조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링겔은 다 맞은 모양이네.”

 

백현은 제 머리 위로 쏟아지는 음성에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저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여느 때처럼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백현은 그가 조금 무서워 보였다. 그가 제 보호자라는 말을 들으며 움직이는 것을 바라봤을 때는 반쯤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으나 지금은 달랐다. 그가 아직도 병원에 있을 줄은 몰랐던 탓에 뒤늦게 불편함이 몰려왔다. 

 

“퇴원하면 갈 데는 있어서, 그렇게 빨리 나가려고?”

 

백현은 그의 말에 잠시 굳은 듯 서있다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갈 곳은 물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일을 하러 가야 했으니까.. 

 

“어디로 갈 건데? ..너 메모장은.” 

 

아무 대답이 없는 저를 바라보던 준면이 옅은 한숨을 뱉어내자 백현은 고개를 들었다. 

 

“뭐 됐다. 퇴원은 해. 어차피 병원에서 치료 할 건 끝났다니까.”


그의 말을 들으며 백현은 점점 더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이상하게 자꾸만 제 생각을 읽어냈다. 제 얼굴에 쉽게 드러나서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랬다면 지금까지 저를 마주했던 사람들이 전부 그와 비슷하게 행동을 했어야 할테니까.. 다른 이들이 제 행동을 보며 대충 자신들의 생각에 끼워 맞추는 것과도 달랐다. 무서운 사람이었다. 백현에게 준면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준면은 백현이 갈 곳, 할 말이 뻔히 예상되었다. 분명 돈 때문에 입원은 안 하겠다고 할 거고, 분명 이제 조금 있으면 일 할 시간이니 그 쪽으로 데려다 달라고 할테다. 안봐도 뻔한 그의 머릿속을 굳이 메모장에 적지 않아도 준면은 대충 짐작이 되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이상하게도 아이의 시선이나 얼굴 표정, 그의 몸짓 하나를 바라볼 때마다 그의 말이나 행동이 읽혔다.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지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닮아있으니 읽고 싶지 않아도 읽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몸을 틀어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아이의 고집을 꺾으려면 꺾을 수야 있겠지. 하지만 당장 입원을 해 치료를 받을 몸상태도 아니었고, 오히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이라는 의사의 말이 떠올랐던 참이다. 따라와. 그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저를 따라 움직이는 백현을 보며 준면은 미간을 찌푸렸다.


검은 차 안으로 다시 올라탄 세 사람을 백미러로 흘끗-바라보던 사내의 시선을 모르는 척 하며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린 백현은 병원 문 앞을 오가는 사람들의 잔상을 쓸어 담았다. 의미 없는 동작을 반복하듯 제 손 끝을 입술 사이로 물었다가 제 손등 위에 붙어있는 반창고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머리는 물론이고 팔도 아프긴 했다. 대충 듣기로는 서랍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분명 그 창고 안에서 자고 있던 것도 들켰을 것이다.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뒤늦게 제 상황을 파악한 백현이 바쁘게 눈을 굴리다 한숨을 뱉어냈다. 네 사람이 타고 있는 차는 이동하는 내내 백현의 작은 한숨 소리를 빼면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 속에 잠겨있었다.  



 

당연히 사무실로 가는 줄 알았던 찬열은 점점 제 집의 방향과 가까워지는 창 밖의 풍경을 눈으로 담다 운전석을 바라봤다.

 

“왜 이쪽으로,”

“너네 집 가는 거니까.”

 

그의 질문을 툭 자르고 들어온 준면의 대답에 찬열이 뒤를 돌아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냐 물으려던 찬열이 입술을 열기도 전에 준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얘, 당분간 너네 집에 데리고 있어.”

“형님.”

 

준면의 말에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구겼던 찬열은 마주하는 시선에 표정을 풀어냈다. 감히 그에게 불만을 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사내는 다시 백미러를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백현의 얼굴은 비슷했다. 놀란 얼굴로 준면과 찬열을 번갈아 바라보며 서로의 시선을 피해 눈을 움직이기 바빴다. 

 

“집중해. 이 새끼야, 사고 낼 거야?”

“죄,죄송합니다. 형님!”

 

제 머리를 퍽 치는 거친 손길에 그는 어깨를 수그리며 핸들을 꽉 틀어 쥐었다. 정면에 고정 시킨 시선이 차선 위로 어지럽게 흔들렸다. 

 

“넌 어차피 집에 쳐-들어가지도 않고, 방도 많은데 그거 다 뭐하냐.”

 

요점은 그게 아닐 걸 알면서도 그런 말로 둘러대는 준면의 얼굴에 찬열은 결국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더 말을 해봐야 소용도 없을 양반이다.

 

 

 

준면은 아직도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무시하듯 제 핸드폰으로 시선을 박고 있다가 끈덕지게 따라붙는 시선에 못 이겨 고개를 들었다. 

 

“왜. 왜 그렇게 쳐다봐. 뭐 할 말 있어?”

 

백현은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할 말이야 많겠지.

 

“너 이런 꼴로 일 하겠다는 거, 그 쪽한테도 민폐인 거 알지? 나을 때까지 며칠 쉬고…. 야, 박찬열. 핸드폰 좀 줘봐.”

 

찬열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밖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준면의 손을 흘끔 바라보고 주머니 안에서 제 핸드폰을 꺼내 들어 그의 손 위로 올려두었다. 다년간의 습관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그가 하라면 일단 하고 보는 것, 그가 들으라면 일단 듣고 보는 것, 몸에 베인 습관들이 지금만큼은 짜증이 나던 찬열이었다. 

 

“자. 이거 써라 일단. 1번 내 번호. 그럴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저 새끼가 내쫓으면 연락해.”

 

어느새 아파트 단지 앞에 정차한 차를 확인한 찬열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더 이상 여기서 버텨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와 반대로 백현은 여전히 준면과 그가 내미는 핸드폰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려. 나도 피곤해 죽겠다.”

 

좀 쉬자 나도, 준면은 궁시렁 거리며 백현의 손에 핸드폰을 던지듯 쥐어주고 그의 어깨를 밀었다. 밖에서 차 문을 열고 기다리던 남자를 지나쳐 찬열의 앞으로 떠밀리듯 움직인 백현이 제 등 뒤로 차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어깨를 움찔 했다. 

 

“박찬열. 넌 오늘 사무실 나오지 말고, 쟤 감시 잘 해라. 놓치면 알지? 쟤 앞으로 달린 빚 다 너한테 청구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창문에 달라붙어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대꾸를 해야 하는데 순식간에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던 찬열은 결국 혀를 차며 등을 돌렸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에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아파트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백현은 여전히 멀어지는 차의 뒤꽁무늬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이미 보이지도 않는 구만. 찬열은 그 작은 뒤통수를 바라보다 쯧, 다시 혀를 찼다. 

 

“따라와.”

 

그 낮은 음성에 백현은 어깨를 떨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찬열은 다시 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백현은 그의 걸음을 따라 땅에 붙은 듯 굳어졌던 발을 천천히 내딛었다. 





 

백현이 찬열을 따라 몸을 움직인 이유는 단순히 제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 때문이었다. 이걸 돌려주고 돌아가겠다고 하면 될텐데.. 백현은 차마 제 손안에 들려있는 핸드폰을 사용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제 앞에서 그 덩치 큰 남자들을 종이 인형처럼 때려눕히던 김종인 이라는 남자나, 제 생각을 마음대로 읽고 가면 같은 얼굴을 가진 형님이라는 남자보다 백현은 아직. 그가 더 무서웠다.


그의 등을 따라 걷던 백현은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선 그를 따라 걸음을 멈췄다. 잠시 그의 등을 바라보는 제 시선을 느낀 것인지 남자는 저를 바라봤다. 그리고 제가 그의 앞으로 내민 핸드폰을 바라봤다. 그러다 띵- 하는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는 저를 지나쳐 그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도 백현의 시선은 그가 조금 전 까지 서있던 허공을 향해 있었다.

백현이 그대로 멈춰있는 동안 두 사람의 사이로 다시 문이 닫혔다. 찬열은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열림 버튼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타.”


나도 피곤하니까.. 이어지는 목소리에 백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벽에 등을 기댄채 서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백현의 걸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완전히 올라탄 백현은 몸을 돌리고 앞을 바라봤다. 거울에 비친 그의 손이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것을 바라보며 백현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손 안에 찬열의 핸드폰이 쥐어져 있지 않았다면 아마 이번에도 그의 손바닥 위로 초승달 모양이 새겨졌을 테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찬열의 등을 바라보던 백현은 현관 앞에 멈춰서서 고개를 푹 숙인채 움직이지 못했다. 어쩔수 없이 여기까지 따라오긴 했으나 그 집이라는 곳이 찬열이 사는 집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따라 들어갈 뻔했던 발걸음이 현관 턱에 걸린듯 멈춰선 백현은 제 손 안에 꽉 쥐어져 있던 핸드폰을 두고 도망을 쳐야할까 생각했다. 



도어락을 풀고 문을 연 찬열은 여전히 제 등을 바라보며 서있는 백현을 바라보며 그의 손 안에 들려있는 제 핸드폰을 바라봤다. 설마 핸드폰 쓸 줄도 모르는 건가. 요즘 애들 중에 저런 스마트기기 사용법 모르는 애들은 없을텐데.. 안으로 들어선 그는 문을 열고 서서 백현을 내려다봤다. 그가 저를 따라 들어오긴커녕 미동 없이 문 밖에 서있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들어와. 거기서 그러고 있어봐야 달라질 것도 없어.”


찬열은 이미 준면에게 명령을 받았다. 그의 말대로 아이는 어차피 갈 곳이 없었고 이 집은 남는 방이 있었다. 게다가 저는 어차피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모든 핑계를 다 합쳐도 아이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마음까지 완벽하게 씻어내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준면의 선택을 의심하진 않는다. 


“언제까지 여기 서있을 건데.”


그의 목소리가 가깝다고 느낀 백현이 서둘러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제 앞에 문을 잡고 서있었다. 


“현관에서 밤 샐래?”


벌써 아침 해가 뜬 지가 언젠데 밤이라니. 되받아 칠 말은 곧바로 떠올랐으나 그에게는 아무말도 꺼내지 못했다. 표정 또한 그랬다. 어떤 표정으로 그를 대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들었다.


“위험한 곳 아니니까 들어가. 걱정 말고.”


제 등을 슬그머니 미는 힘에 백현의 걸음이 천천히 떨어졌다. 등 뒤로 그의 인기척이 가까워지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도어락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가 신호탄처럼 백현은 불안한 듯 손을 떨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선 백현이 거실을 살피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집 안은 평범했다. 평범한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사실 모르겠지만, tv에 나오는 집들과 비슷했기에 그렇겠거니 했다. 백현은 등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몸을 돌려 그를 마주했다. 현관 앞으로 서서 신발을 벗은 것도 집 안으로 들어선 것도 전부 찬열이 제 등 뒤에 서서 저를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백현은 거실 입구에 서서 입술을 깨물며 제 손을 만지작 거렸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선 남자가 저에게서 멀어지는 듯 했는데 제 앞으로 불쑥 손이 들어왔다.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본 백현은 그가 턱 끝으로 제 핸드폰을 가리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그의 손 위로 제가 들고 있던 것을 돌려주었다. 이제 이걸 돌려줬으니 돌아갈 수 있겠다 생각한 백현이 조금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그를 기다렸다. 저를 다시 바라보는 순간에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한 뒤 돌아서려고 마음먹으며.

그는 화면을 보고 잠시 손을 움직이다 다시 저를 바라보기는 했다. 그러나 백현은 제 계획과 달리 다시 시선을 떨어트릴 수 밖에 없었다. 제 앞으로 내밀어진 핸드폰 화면 위로 떠있는 메모장, 그 위로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백현은 눈을 깜빡였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여기다 써. 나는 형님처럼 니 생각까지 알지는 못하니까.”


백현은 여전히 그의 말에 답 없이 핸드폰 위로 시선을 고정한 채 서있었다. 찬열의 입술 사이로 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작은 한숨 소리에도 백현의 어깨가 굳었다


“.. 이리와.”


찬열은 거실을 지나며 백현을 불렀다. 그를 따라 방문 앞에 선 백현은 찬열이 방 문을 열고 안을 바라보며 하는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이 쪽 방 써. 안 쓰는 방이고, 어차피 난 집에 잘 오지도 않으니까.”

 

제 말에 답을 하지 않는 저를 포기한 듯 그는 더 이상 저를 기다리지 않고 집 안을 설명했다.주방과 욕실, 베란다와 현관 비밀번호까지 착실하게 알려주는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백현을 느끼던 찬열은 마지막으로 제가 설명하지 않은 문 앞에 서서 문 고리를 돌렸다.  

 

“..쉬어라.”

 

문 안으로 완벽하게 모습을 감춘 그의 잔상을 바라보던 백현은 그가 안내한 곳을 다시 한 번 돌아봤다. 깔끔한 거실과 주방, 욕실은 생활감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백현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제 손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만지작 거렸던지 검은 화면 위로 제 지문 자국이 이리저리 묻어나 있었다. 백현은 제 옷 위로 검은 화면을 문지르듯 닦아내고 그가 가리켰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제가 지냈던 단칸방보다 커 보이는 방 안은 한쪽 벽에 큰 창문과 맞은편에 붙박이장을 빼면 별다른 가구조차 없는 방이었지만 백현에겐 꿈도 꾸지 못했던 평범함이 가득한 방이었다. 백현은 하얀 벽지 위를 바라보며 걸었다. 발걸음이 바닥을 끌 듯 축축 늘어졌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벽 쪽으로 기대듯 천천히 바닥으로 주저 앉은 백현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뱉어냈다. 

 

저를 집 안으로 들인 것도 이 방을 내어준 것도 전부 그가 형님이라 부르는 남자의 말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친절을 베푸는 제 형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가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백현도 물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백현은 그가 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것이 제가 열아홉 해를 살아오며 뼈저리게 느낀 것이 아니었나. 이 모든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분명 그는 대가를 받을 것이다. 그것이 제가 지금 그에게 갚아야 할 액수보다는 적겠지만, 어쨌든..  



  

찬열은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침대 끝에 걸터 앉았다. 피곤한 눈두덩이 위를 문지르며 셔츠 단추를 끌러 냈다. 숨을 쉬는 것도 답답할 만큼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를 바라보는 시선, 제 등 뒤를 따라 움직이는 기척. 제 핸드폰을 꼭 쥐고 있는 손이 그랬다. 

씻고 다시 사무실로 가야겠다 생각했다. 물론 준면의 당부가 있었으니 최대한 늦게 가긴 하겠지만, 그러다 아이를 안내했던 방 안에 가구는커녕 이부자리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하.. 찬열은 느리게 한숨을 뱉어내며 마른 세수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이불장을 열어 새 이불을 꺼내 들고 백현이 있는 방 문 앞으로 향했다. 그는 방 문을 두어번 두드리다 대답이 없자 기다리지 않고 방 문을 열었다. 말을 못하니 제 노크에 답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저를 마주할 눈동자를 떠올렸던 찬열은 제 생각과는 달리 바닥에 누워있는 작은 몸을 발견하며 표정을 굳혔다. 

 벽에 기대듯 붙어 웅크린 자세로 누워있는 작은 몸 앞으로 다가선 찬열이 그의 앞으로 이불을 내려두었다. 

그 짧은 시간에 벌써 깊은 잠에 빠진 듯 살짝 벌어진 얇은 입술 사이로 색색 대며 숨을 뱉어내는 것을 바라보던 찬열이 제 얼굴 앞으로 가까이 끌어당긴 손 안에 여전히 쥐어져 있는 제 핸드폰을 발견했다. 마치 그것이 동아줄 이라도 되는 양 꽉 그러 쥔 가는 손 끝을 바라보던 그가 그것을 천천히 빼내 그 옆으로 내려두었다. 

불연 듯 제 손을 잡아오던 아이의 손이 떠올랐다. 찬열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현이 다시 눈을 뜬 것은 창 밖에서 들어오던 빛이 완전히 어둑하게 변한 뒤였다.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깜빡이던 백현은 놀란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아르바이트를 가지 않았다는 걱정이 그제서야 그의 머릿속에 스쳤다. 습관처럼 매일 하던 일들을 건너뛴 것이 얼마만 일까.. 가끔 몸이 아파서 일을 나가지 못했던 적도 물론 있긴 했지만 1-2년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시간을 확인하려 손목을 내려다보던 백현은 어두운 실내에 시계바늘이 보이지 않아 불을 켜야겠다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땅을 짚었다. 백현은 제 손 끝에 닿는 푹신한 감촉에 눈을 내렸다. 이불이었다. 제 몸 위로 덮어져 있는 이불위를 멍하니 바라보던 백현이 눈을 깜빡였다. 

제가 잠들기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잠을 자다가 덮었을 리도 없었다. 이 집에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 사람 밖에는.. 마른 침을 삼킨 백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의 친절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하는 것이 저에 대한 동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동정 받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에게까지 불쌍한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











-  

준면이는 천사일까 악마일까 큐피드일까요~?

호우주의보에서는 글의 특성상 우울한 장면이나 어두운 연출, 욕설과 비하 발언들이 종종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몸의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보다, 마음에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타인을 존중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분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픽션은 픽션으로 받아들여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혹여 글을 읽고 마음 아파할 누군가를 위해 제 생각을 조금 적어보았습니다.. 아프지말아요..


저는 호우주의보 쓰면서 자꾸 눈물이 납니다 .. 백현이를 보면 너무 맴이 아파서..(니가그랬잖아!!) 따흙.. 하뚜,댓글 정말 감사드려요. 이번 글은 특히나 더더- 힘이 됩니다 !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우주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5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15
|찬백| 호우주의보 04
#17
|찬백| 호우주의보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