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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_ 19

 

 

 

 아침부터 저를 찾아온 종인과 준면은 평소와 같은 그림이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평소처럼 저에게 놀러 가자고 조르는 종인을 준면이 말리지 않은 정도?

 

 제가 늘러 붙어있는 침대 위로 올라와 제 팔을 끌어당기며 엉겨 붙은 종인을 잠시 바라보던 준면은 한숨을 뱉으며 소파 위로 착석했다.

“오늘 하루만-어? 응?”

“출근 해야되는데..?”

백현은 준면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고개를 들었다가 제 어깨 위로 비벼지는 머리칼을 느끼며 다시 종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참..

“놀러가아-”

 그렇게 조르고 졸라서 바람을 쐬고 온 것이 얼마 전의 일인데.. 요즘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모양인가 싶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익숙하게 제 손바닥 위로 몸을 구기듯 비벼왔다. 

“조금만 더 자고 나가자- 나 아직 졸려.”

“다 좋은데, 밥은 먹..”

“뭐야. 작은 형 아직도 있었어?”

“..”

 종인이 먼지 나게 맞는 장면을 관망하던 백현은 하품을 뱉어내며 욕실로 향했다. 잠이 달아난 탓이다.

 


“밥 먹고 영화볼까? 아니면, 드라이브나 할까. 드라이브 하고 쇼핑가자!”

 물론 종인의 말이 이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쇼핑이나 드라이브를 즐기는 타입도 아니라는 것을 제가 모르는 것이 아니니.

그래도 오늘은 그러고 싶은 날인가 보다. 생각하며 그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 다였다. 뭐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동생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한 것이니.

 


 멀어지는 준면의 차 뒤꽁무니에 나란히 손을 흔들고 돌아서서 그의 차에 올랐을때도, 영화관에서 팝콘을 한통씩 끌어안고 영화를 볼 때도,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진 못했다. 

 


종인의 차로 걸어가던 둘은 뜻밖에 인물을 마주했다. 

“민석이 형?” 

“어. 큰형.”

“백현이 너 나 좀 보자.”

“응?” 

자연스레 손을 들어 인사를 건내던 둘을 잠시 바라보던 민석이 다짜고짜 저를 끌어 차에 태웠다. 짧은 순간에 벌어진 상황에 제가 눈만 깜빡이고 있을 동안, 차창 밖에 붙어 소리를 지르던 종인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저를 차에 태운 민석이 액셀을 밟았다. 

 

“어디가? 무슨일있어?”

“종인이랑 아침부터 같이 있었지.”

“응. 왜?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백현은 평소보다 더 굳어진 민석의 얼굴을 살피며 답했다.

“일단, 가서 얘기하자.”

“응..”

백미러를 통해 뒷 차선을 확인하던 민석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백현은 그가 저와 종인을 어떻게 찾았는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언제 한국에 온 건지 쏟아지는 질문들을 삼키며 그의 옆모습을 힐끔 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민석은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비서실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평소보다 더 굳어진 그의 얼굴에 그의 명령을 전달 받은 사람들이 잠시 굳어졌다. 

 

“좀..앉아.”

“아. 응.”

자리에 앉은 민석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뱉어내자 백현의 얼굴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힘들어 보여서 마음이 좋지 못했다. 

“후..”

“무슨 일이야 형? 진짜 무슨 일 있는거야?”

“일단. 놀래켜서 미안.”

“아냐. 괜찮아..” 

제 형이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던 탓에 백현은 정말 괜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핸드폰은.”

“아, 아까 영화관에서 꺼둬서..”

“잘했어. 오늘은 될 수 있으면 키지마.”

“어?”

주섬주섬- 제 주머니를 뒤지던 백현이 민석의 말을 되물었다. 도통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오늘, 상견례 할거야. 아마 너 없이도 진행 하겠지만.”

“뭐? 누구 상견..”

“너랑 선 본 남자.. 최지석이라고 했던가. 그 사람이랑 혼담 진행하기로 한 모양이야.”

“그러니까 지금.”

 나 없이, 내 상견례를 한다는 말이야? 백현은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했다. 너무 놀란 탓이다. 제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가 저를 그대로 두고 보실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저 없이 상견례를 하실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그리고 하나 더. 박찬열.”

 박찬열? 민석에게 들은 뜻밖의 이름에 백현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오늘 결혼 기사 났던데.” 

백현은 민석의 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백현아.”

 

  그가 주는 행복감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는데, 

그의 다정한 손길이나 눈빛, 

저를 마주 안는 온도에 망각하고 있던 현실.

생각해보면 그와 입을 맞추고 몸을 섞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긴 했으나, 

한번도 그에게 제 마음을 말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변백현.”

“어?..아. 미안. 형. 내가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백현아.”

“응..”

“박찬열이랑 어떤 사이인지 물어봐도 되니?”

“..”

“그게 안되면.. 박찬열이 누구랑 결혼하건. 너랑은 상관 없는 일인지는.. 물어봐도 되니?”

 민석의 질문에 백현은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질문을 들어도 제가 할 수 있는 답이 없어서 였다. 박찬열과 어떤 사이냐고? 단순히 몸을 섞는 사이라고 해야 하나? 

 

“백현아.”  

 

 그의 마음을 확실히 들은 적은 없었다. 

혹시 제 착각이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또다시 그를 잃게 된다면 그땐,..

 

“박찬열이 누구랑 결혼하건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냐고 묻잖아.”

박찬열이 누구랑 결혼을 하건 상관이 없냐고? ..그가 저와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제게 결혼을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제가 뭐라고..

복잡한 제 머릿속을 꿰뚫어보듯 민석의 눈이 저를 바라보는 것에 백현은 고개를 숙였다. 민석은 꼭 저에게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응”

 상관 없어.

 

“백현아.. 니 생각을 묻는 게 아니야. 

 상관.. 

니 감정을 묻는 거지.”

 없어. 

 


분명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제가 잘못 들은 거라고.

“혼담 얘기 중이라며, 소은아. 이제 축하 받을 일만 남았네?”

낯설지 않은 이름과 낯설지 않은 얼굴이 저를 스쳐 지나갈 때만 해도 백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소은이란 이름이 한둘이겠나. 싶었다. 그녀가 찬열과 대화를 하는 장면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끝까지 그렇게 믿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찬열씨. 유리에요. 김유리.”

“아. 네.”

“소은이랑 청첩장 돌리실 거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식이 영 없으신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약속이 있어서. 그 얘기는 이소은씨랑 하시는 게 좋겠네요.” 

“아. 제가 시간을 너무 뺏은 모양이네요. 그럼..”

 둘의 대화를 어렴풋이 들으면서도 부정하지 않는 찬열의 목소리는 제가 있는 곳 까지 닿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저, 제 헛된 바람이었음을 백현은 다시 깨달았다.  

 

 

 

 찬열은 아침에 터진 기사를 보고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곧바로 본가로 향한 찬열은 저를 들여보내 주지 않는 것이 분해 주차장 문이라도 박살을 낼까 고민을 하다 차를 돌렸다. 제가 그런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찬열은 차에 올라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저를 상대하실 분이 어머니 뿐이라는 것을 잘 알았으니까.

[..그래. 나다.]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세요?”

[찬열아. 그냥 할아버지 말씀대로..]

“할아버지한테 전해주세요. 저, 어머니 아버지 아들이라고.”

[너 그게!]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어머니가 모르시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를 가진 제 딸의 결혼조차 허락하지 않으신 분이니 이게 먹히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그런 각오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백현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반려로 맞이해야 한다면. 차라리 백현을 데리고 도망을 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장애물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저 만나러 오신거에요?”

“그렇게 됐다.”

그 장애물을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되리라 예상하진 못했지만.

 

찬열은 제 사무실 안을 차지한 두 명의 실루엣을 바라보다 자리에 앉았다. 김민석과 김준면.

두 사람의 표정이 잔뜩 굳어진 것을 보니 저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박찬열씨라고 했죠.”

“네.”

“본론부터 말할게요.”

“..말씀하세요.”

“오늘 백현이 상견례가 있습니다.”

“네?”

“아마 알 거에요. 최지석이라고. N그룹 셋 째라던가.. 뭐, 그건 중요하지 않고.”

“..”  

“내가 여기 온건, 그쪽도 오늘 결혼 기사가 터졌더라고.”

“그건.”

“그래서, 도대체. 우리 백현이를 데리고 뭘 할 생각인지. 물어보려고 온건데..”

 민석은 일정대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백현의 상견례에 대해 들었다. 어머니가 직접 전화로 말씀하신 거였다. 저에게 백현을 데리고 오라고, 

 찬열과 백현의 소문이 출장 중이던 저에게도 들릴 정도이니 서두르신 모양인데, 저에겐 먼저 백현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뭐 물론, 백현이 지금 종인과 함께 영화관에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하고 찬열의 마음을 먼저 확인하러 온 것이긴 했지만. 

“뭐, 그 쪽 표정 보니까 알겠네.”  

“..”

“딱 하나만 확실히 하자면. 지금 당신, 진지합니까?”

“진지합니다.”

“백현이.. 상처 주지 않을 자신. ..있어, 당신?” 

“적어도.. 상처로 남을 생각은 없습니다.”

 준면은 찬열의 기사에 혼자 그를 만날 생각을 하고 있다가 민석에게 끌려온 탓에 졸지에 제 대사를 전부 빼앗긴 후였으나, 찬열의 표정이나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 캐물을 마음도 들지 않았던 탓에 자리를 떠났다.

 

 

 

 민석이 백현을 호텔로 데려다 주었을 때는 이미 해가 떨어진 후였다. 민석은 어머니에게 들어온 부재 중 전화가 23통이 되었을 때, 핸드폰을 꺼둔 상태였고.

백현은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막 핸드폰 전원을 키는 중이었다. 

 

 쏟아지는 알림을 확인할 새도 없이 셔츠 단추를 푸르던 백현은 전화벨 소리에 발신인을 확인하고 잠시 굳어졌다. 

  박찬열

그의 이름을 확인한 백현의 시선에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들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기도, 듣고 싶지 않기도 했으며.. 

 그를 보고 싶기도,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던 백현이 손을 뻗는 순간에 벨소리가 멎었다. 

백현은 한숨을 뱉어내며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제 손바닥 위로 얼굴을 묻으며 마른 세수를 하던 백현은,

 

 띵동-

익숙하지 않은 초인종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초인종을 누를 사람은 몇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저를 집어 삼켰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문 까지의 거리가 지금처럼 멀게 느껴졌던 적이 있을까.. 

그의 손 끝이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느릿한 발걸음과 같은 속도였다. 

 기다란 실루엣이 그의 눈에 담겼다. 

 

 

“..들어가도 돼?”

 그에게 들어오라는 말을 생략한 백현이 몸을 틀어 안으로 들어섰다.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거실로 향하던 발걸음이 멈춘 것은 커다란 손이 제 손목을 잡아왔기 때문이었다. 

 

“백현아.”

“기사 봤어.”

 이번에 말을 잇지 못한 것은 찬열이었다. 

저를 붙잡은 손길도 제 목소리도 느껴지지 않는 다는 듯 서있던 백현과 시선이 마주 닿았을 때, 찬열은 답답함이 일었다.

“그 여자랑 결혼해?”

그의 목소리는 높고 낮음이 없었다. 

“아니.”

“나는, 그 남자랑 오늘 상견례 했어.”

뭐, 나 없는 상견례였지만. 이어지는 목소리에 그가 제 대답을 들은 것인지, 저와 눈을 마주한 것인지. 찬열은 조금 헷갈리기 시작했다. 

“..들었어.”

“아마 우리 아버지는 그 결혼, 진행하실 거야.”

 민석과 준면의 말을 듣고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 그토록 마음이 불안하던 것은 이런 걸 예상하고 난 후의 일이었던가.. 

찬열은 한숨을 삼켜내며 백현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을 풀어내며 그의 손 끝을 그러 잡았다. 

“백현아.”

“당신도 알거야.” 

 이번에도 그는 제 말을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제 이름을 부르는 찬열의 목소리에 백현은 고개를 비틀었다. 마주하던 시선이 끊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손 안에서 제 손을 천천히 빼내었다. 찬열의 시선이 제 손 끝에 닿는 것을 느꼈지만 모르는 척 시선을 돌렸다. 

“나는 누구 정혼자, 반려. 그런 거 되고 싶지 않아.” 

 정혼자. 반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런 건 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조금 더 평범하게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 저에겐 그럴 자격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찬열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사랑 받을 자격도 충분한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찬열이 저에게 주었던 감정이 어떤 것인지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그 감정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 다는 것을.. 이미, 제가 알고 있을 뿐. 

그러니까 기대를 하는 것도 ,

그를 붙잡는 것도 ,

저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면, 안된다.


“나는, 그냥 아버지 말대로 그 남자랑 결혼하고 이혼하면 그만이야.”

“뭐?”

 찬열은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백현의 마음을 모르진 않았다. 그가 얼마나 제 스스로를 포기하며 살아왔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에 대한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제가 안간힘을 쓰고 매달려도 그가 저를 포기한다면, 

제 감정이. 무슨 소용 일까.

 

“그러니까 당신은 그냥, 그 여자랑 결혼해.”

찬열은 숨을 고르며 그의 말을 되뇄다. 

“이소은. 그 여자랑 결혼하면 되잖아.”

백현은 차가운 목소리를 내려 노력하면서 생각했다. 그를 밀어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제 마음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아파서 그랬다. 

이제, 

그가 저를 포기하면 좋겠다고,


“변백현.”

“..”

“당신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누구랑 결혼 하건, 당신은 상관 없어?”

“상관..없어.”


찬열은 어금니를 으득 물었다. 그의 발언에 몹시 화가 난 탓이었다. 

정말, 상관없는 걸까.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거야.”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찬열은 손을 내려 그의 얼굴 위를 쓸었다. 자신의 뺨 위로 닿는 온기에 눈앞이 뿌옇게 변하는 것을 느낀 백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뭘?”

그는 시선을 맞추려는 듯 제 얼굴을 그러 쥐고 제 쪽으로 돌렸다. 

재촉하듯 제 눈가를 손 끝으로 조심히 쓸어 내리는 그의 손길에 백현은 조심히 눈꺼풀을 들어 올려 그를 올려다봤다. 저를 내려다보는 눈동자를 마주한 백현의 눈가가 반짝였다. 그와 눈을 맞추는 순간 깨달았다. 

 그가 저보다 더 상처 받았다는 것을..

 

눈을 마주한 찬열은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열었다. 

“내가 당신 사랑하는 거.”

그에게 듣고 싶었지만, 듣지 않으려 노력했던 말이 화살처럼 쏟아졌다.   

“..박찬열. 나는 당신 사랑 안 해.” 

백현은 자신을 보호하듯 칼날 끝을 세워 그에게 찔러 넣었다. 마주한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것은 찬열의 몫이었으나 그걸 지켜보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변백현, 니가.. 잘 모르나 본데.”

“뭘?”

“당신 티 많이 나.”

“뭐?”

“당신 나 사랑하잖아.”

“박찬열..난.”

“정말 모르는 거면, 알려줄게. 잘 봐.”

 찬열은 한번 더 제 말을 부정하려는 듯 입술을 여는 백현의 얼굴을 두 손으로 그러 쥐고 그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저를 올려다보는 눈동자를 잠시 마주보던 그는 백현의 입술 위로 제 입술을 겹쳤다. 

“흣-”

거칠게 제 입술 사이를 파고드는 혀 끝을 느끼며 백현은 어깨를 움치렸지만, 찬열은 저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짙은 키스를 이어갔다.

 제 어깨를 밀어내는 손을 잡아 목 뒤로 두른 찬열이 별안간 그의 몸을 안아 들었다. 높아진 시선에 저를 내려다보는 백현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모르는 척 하며 욕실 안으로 들어선 찬열이 그를 욕실 카운터 위로 앉혔다. 


“박찬열, 지금-”

 제 몸을 밀어내는 그의 손을 한 손으로 잡은 찬열이 그의 턱을 그러 쥐고 돌려 거울 안의 자신과 마주하게 했다.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눈동자를 마주한 백현은 제 붉어진 얼굴과 젖은 입술, 제 얼굴을 그러 쥔 손끝을 바라보며 제 귓가로 입을 맞추는 찬열의 행동에 몸을 떨었다. 

“이래도, 아니라고.”

 짧은 입맞춤에도 티가 나는 얼굴은 숨겨지지 않았다. 애써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하려는 저를 찬열은 거울 너머로 바라보며 제 목을 어루만졌다. 그의 입술이 어깨에 내려앉는 순간까지도 마주한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백현이 눈을 감으며 몸을 비틀자 찬열은 아예 그를 바닥으로 내려 거울 앞으로 세웠다. 왼팔로 제 허리를 감싸듯 안은 그의 오른 손이 제 목과 턱을 쥐고 고정 시키듯 거울 안의 저를 마주 보게 했을 때, 백현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감추고 싶어도 감춰지지 않는 감정들이 그에게 고스란히 들키는 순간을 제 스스로 마주하는 것이 억울하고 분했다. 

 

“그만,”

“당신이 모르던, 모르는 척 하던. 상관없어.”

“..”

그의 뜨거운 숨이 제 머리칼을 스치고 귓가로 닿았다. 목 뒤로 내려 앉는 입맞춤에 백현은 몸을 떨었다.

 

“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야.”

그의 말에 눈을 뜬 백현의 눈가에서 기어코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가 결혼을 하고 싶은 것도 당신이고.”


몇 번이든, 다시 말해줄 생각이다. 

모른다면, 모르는 척을 하고 싶은 거라면.

 몇 번이든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도록.


“내 정혼자, 반려가 될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전부 다.

당신이야. 변백현.”


“..하.”


 옅은 한숨을 뱉어낸 백현의 입술이 벌어졌다. 

거울 너머로 자주 닿은 눈빛이 점점 짙어지는 것을 발견한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제 어깨 위로 입술을 내리는 찬열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몸을 돌린 백현의 행동에 찬열은 그를 잡고 있던 팔에 힘을 풀어냈다.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한지 알아?”

마주한 눈동자에 어른거리는 물기를 손 끝으로 닦아낸 찬열이 입술을 내려 그의 눈꺼풀 위로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찬열은 그의 눈이 저를 마주하기를 기다렸다. 

시선이 다시 마주 닿았을 때, 찬열은 그의 입술 위로 숨결 같은 말을 뱉어냈다.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찬열의 뒷말은 백현의 입술 위로 내려앉았다. 다정한 듯 거친 그의 입맞춤에 백현은 눈을 감았다. 제 얼굴을 감싼 온기에 그의 팔을 그러 쥔 손이 조금 떨리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한 지 아느냐고, 박찬열.

도망갈 기회를 줬을 때. 

그냥, 도망 갔어야지. 

정말.. 미련하기는..

 


 서로가 서로의 온기를 갈망하듯 두 사람의 손과 팔이 서로를 그러 안는 데만 집중하던 것은 조금 긴 시간이었다.

 마주 닿았던 입술이 떨어지고 다시 붙길 몇 번, 숨이 가빠진 백현의 입술 위로 짧은 입맞춤을 하던 찬열의 입술이 그의 턱과 목으로 내려갔다. 

얇은 셔츠 안으로 파고든 손길에 백현의 몸이 잘게 떨렸다. 지금까지 했던 어떤 입맞춤보다 진하고 달콤한 입맞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제 몸에 열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제 셔츠를 벗겨내고 마른 몸 위로 입을 맞추던 찬열이 저를 가뿐히 들어 다시 카운터에 앉힌 후에는 제가 먼저 그를 끌어당겼다. 

“박찬열..”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찬열은 숨을 몰아쉬며 마주한 눈가를 손 끝으로 쓸었다. 

“..당신. 언젠가 후회할 거야.”


“그럴 일은 없어.”


 백현은 눈을 감았다. 

따뜻한 숨이 서로의 입 속으로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가 주는 올곧은 마음이 제 온 몸을 짓눌렀다.

 

 




 

-

그대는 얼마나 올곧은 사랑을 주는가. 

주는 사랑도 받는 사랑도 쉬운 일이 아니죠.. 


하트와 덧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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