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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epilogue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warning _ roman noir








백현은 가방끈을 들고 좀비처럼 누워있는 사람들을 조심히 돌아 현관 앞으로 걸음을 옮기다. 


“야야, 잠깐 잠깐. 백현아. 이거는?”

 

제 노트북을 챙겨 뒤를 따르는 종인과, 

 

“아니. 형님. 첫날인데 수업 하겠습니까? 그것보단 이거- 준영이가 전해 주라고 했다. 백현아!”

새학기 핵.인.싸 되는 법- 그림,글 이준영. 을 제 앞으로 흔들어 보이는 성철을 바라보며 백현이 한숨을 뱉어냈다. 좀비처럼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일어난 건지.. 오늘부터 수업 아니고 O.T만 다녀오는 거라고 어제부터 몇 번이나 말했지만 아마 제 말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백현은 얕은 한숨을 삼키며 -그 와중에- 준영이 그림과 글까지 직접 자필 작성한 핵.인.싸 되는 법의 표지를 살피던 백현이 결국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받아 들고 문을 열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백현이 가방을 고쳐 매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어제 저녁 찬열의 집에서 술판을 벌인 남자1-종인-과 남자2-성철-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형님? 어디 가십니까?”

“같이 갈 거 아니면 비켜라.”

“에?”

 

저들 옆을 지나 다시 현관을 열고 나서는 찬열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있었다. 방금 뭐지..

 

“야. 빨리 따라와. 형님 저러다 일 치르신다.”

“아니 그게 뭔 소린데-”

 

영호의 손에 뒷덜미가 잡힌 남자1과 남자2가 그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형님.. 이거 범죄 아닙니까.”

“..스토킹?”

“비슷.”

 

차 안에 몸을 수그린 세 사람이 중얼거렸다. 백현이가 알면 화낼걸요.. 종인의 말에 몸을 움찔한 찬열이 큼, 목을 가다듬었다. 물론 본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뭐가 위험하다고.. 학교 가는 거 아닙니까.”


우리 준영이 유치원 갈 때도 안 이럽니다..형님. 자신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성철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 찬열을 바라보며 종인은 맞습니다. 이거 과보호입니다- 과보호.. 성철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중얼거렸으나 백현이 그 학교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종인 이었다. 그러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불안한 눈으로 창문 밖을 살피고 있는 것이겠지만.. 


“니 생각도 그러냐..”

“뭐.. 백현이라면 ..”

형님한테 화를 내진 못하겠지만.. 실망은 하겠죠. 믿지 못했으니까.. 어깨를 으쓱이는 영호를 바라보며 찬열이 손가락으로 입술 위를 문질렀다. 그럴 거면 따라오지나 말지.. 왜 들 따라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네. 마음에 있는 말을 차마 뱉어내지 못한 것은 그래도 이렇게 옆에서 저를 말리는 사람이 하나..아니 셋이라도 있어야 제가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 같아서 였다.

“백현이가 지금까지 또 트레이닝을 하지 않았습니까. 형님.”


6살짜리 준영이에게.. 말입니다. 찬열의 시선에 뒷 말을 삼킨 성철이 제 목을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찬열은 낮은 한숨을 뱉으며 그래, 백현이 알고 화를 내기 전에 돌아가자 싶었다.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대학까지 와서 괴롭히고 그러는 건, 반 사회적인 애들이나 그러는 거에요- 오히려 그런 애들이 친구도 못 사귀고 그럴-”

“어, 누가 백현이 발 밟는..”

“어떤 새끼가.”

 

영호의 말에 눈을 빛낸 두 사람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아니, 그러니까 웅크리고 있던 몸을 최대한 폈다고 해야 하나.. 종인과 성철을 바라보며 영호가 쯧, 혀를 찼다. 저를 돌아보는 종인의 눈이 희번뜩 하다. 


“…. 칼은 왜 꺼내는데.. 반 사회적인 애는 여기 있었네..”

“형님.. 가시죠. 백현이 특훈도 받았잖습니까. 걱정하실 거 하나도..”


성철이 두 사람을 바라보다 어휴 ..한숨을 뱉으며 찬열을 돌아봤다. 


“..형님 어디 가셨..?”

“망했다..”


아니, 그러니까 정확히는 그가 앉아 있던.. 지금은 텅 비어있는 조수석, 활짝 열려있는 문을 허망하게 바라본 세 사람이 뒤늦게 찬열의 뒷모습을 쫓았다. 형님-!! 진짜 들키면 어쩌시려고 저러신데! 소리 없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백현은 저에게 사과를 하는 남자에게 밟힌 발등과 제 시야 앞으로 난데없이 끼어든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인파에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돌아선 백현의 등 뒤에서 남자는 다시 제 핸드폰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아,”

 

2차 사고. 남자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제 핸드폰을 보며 짜증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

 

제가 뱉은 단어와 똑 같은 한 마디를 뱉어낸 남자를 마주하며 파리하게 얼굴이 굳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깨 한 번 부딪혔을 뿐인데, 핸드폰을 떨어트린 것은 전데.. 한참은 시선을 올려야 겨우 마주할 정도로 올라간 높이, 그 위에서 저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남자는 저도 모르게 손을 달달 떨었다. 이런 것이 눈빛으로 사람 죽인다는 것인가를 처음으로 깨달은 탓이다. 

 

“앞 좀, 보고 다니지.”

“..죄,죄송합니다!!”

 

뿌엥- 소리를 낼듯한 얼굴로 도망치듯 후다닥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찬열이 제 어깨를 툭툭 털어냈다. 물론 그의 시선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점점 작아지는 등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앞으로 펼쳐진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찬열은 몸을 돌렸다. 그래, 제가 걱정할 것이 뭐 있을까 .. 괜찮겠지. 트레이닝..도 받았다고 했고, 누구 말대로 과보호라는 것도 모르진 않으니.. 


 

 

 

 

백현은 같은 과는커녕 같은 학교로 들어온 친구도 없었다.넓은 체육관 안,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은 저 뿐인지 벌써 다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충 자리를 찾아 앉으며 어색하게 주위를 둘러본 백현은 새로운 얼굴과 환경을 마주하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살아오던 그에게 새로운 환경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짧은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도 백현은 곧바로 집으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저와 함께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 내려온 인물을 바라봤다. 분명 같은 과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긴 했으나 그도 저와 비슷한 성향인지 말 한마디 없이 앉아있다 곧바로 나온 모양이다. 백현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 핸드폰을 꺼내며 정류장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버스가 도착하기 까지 조금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익숙하게 이어폰을 꽂은 백현이 다시 시선을 들었을 때, 그가 제 옆으로 다가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저와 비슷한 키, 동그랗고 커다란 눈. 짧게 자른 머리에서 아직 수험생 티가 나는 남자 아이가 참 잘생겼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즘, 

 

“너 법학과지.”


그는 제게 말을 걸어왔다. 


“신입생.”

“아..네.”

“나도 신입생.”

“..”

“도 경수다. 내 이름. 다음에 또 보자.”

 

그의 목소리에 눈을 깜빡이던 백현은 버스에 올라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그 짧은 대화를 되짚으며 이름과 얼굴이 잘 어울리는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와 조금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백현은 그의 이름과 의자에 앉는 옆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눈을 깜빡였다.

 

 

 

 

 



집으로 돌아온 백현은 아침의 흔적이 말끔하게 지워진 거실을 보며 신발을 벗었다. 제가 거실로 들어서기 무섭게 거실 불이 켜졌다. 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온 찬열의 얼굴을 보며 백현이 가볍게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잘 다녀왔어.”

 

저를 마주하며 답하는 목소리에 백현이 가방을 의자 위에 내려두고 겉옷을 벗었다. 

 

“집에 계셨어요?”

“..응. 밥은?”

 

가볍게 고개를 젓는 저를 보며 찬열이 제 앞으로 다가섰다. 뭐 먹고 싶은 건? 그의 목소리에 다시 느리게 고개를 젓는 제 머리 위로 커다란 손이 내려 앉았다. 


“외식이라도 할까 했는데.”

“산책도 할 겸?”

“그래. 산책도 할 겸.”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웃는 찬열을 따라 웃은 백현이 그의 손을 잡았다. 

 

“좋아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백현은 그의 코트 단추를 하나 끼웠다. 아직 좀 쌀쌀하지.. 그런 제 행동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찬열을 올려다보자 등 뒤로 문이 열렸다. 그 작은 손을 잡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찬열이 백현의 걸음에 맞춰 걸었다. 그가 일부러 속도를 늦춰 걷는다는 것을 알았으나 딱히 내색을 하진 않았다. 


“학교는 어땠어?”

“음.. 그냥. 똑같았어요.”

“고등학교때랑?”

“네. 다를 게 없던 데요.. 크기랑, 교복이 아닌 거 빼면.”

 

여전히 담담한 성격의 백현을 보며 찬열은 때때로 놀라곤 했다. 관심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백현은 대부분의 일에 이런 태도를 보였다. 그냥.. 뭐.. 괜찮아요. 좋아요. 똑같아요. 찬열은 그럴 때마다 백현의 눈을 깊게 들여다 본다. 정말로 괜찮은 것인지 정말로 좋은 것인지 정말로 똑 같은 것 인지를 가늠하려는 듯.

 

“친구도.. 생길 것 같고.”

“친구?”

“저랑.. 비슷한 것 같은 애였어요.”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볼 때면 백현은 답한다. 정말 괜찮아요. 정말 좋아요. 다 똑같아요. 당신만 옆에 있다면. 찬열은 어렵지 않게 그의 생각을 읽어낸다. 그리고 늘 똑같이 답한다. 

 

“괜찮네.”

“..네.”

 

괜찮아요. 백현은 그가 제 눈빛을 읽어낼 때 마다 깨닫는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의 말이 곧 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회색빛 아스팔트 위를 물들였다. 마주 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백현이 버스 안에서 듣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잔잔한 멜로디에 찬열이 백현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제 손을 마주 잡은 작은 손을 바라보며 그의 손등을 느리게 쓰다듬었다. 

 

솜사탕 같은 분홍빛 구름이 떠오른 푸른 하늘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배경처럼 펼쳐져 있었다. 











찬열은 스스로 그 누구도 지킬 자신이 없었다. 

저 하나 지키며 살아가기 벅찬 인생, 과거에 얽매여 허덕이는 인생. 그것이 제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라고 생각했다. 찾아야 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나 그게 누구인지 따위는 상관없었다. 찾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으니까. 

그게 누구든, 제 곁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상처 받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저와 닮은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의 감정이 컨트롤 되지 않을 만큼 동조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가능하다면 조금 더 모르는 채로 살아가고 싶었다. 저에게 상처 받고 실망하며, 결국 제 곁에 있는 것조차 후회하게 될 날이 조금이라도 더 늦게 오길 바랬으니까. 

그런 제 어리석음을, 미련함을.. 어찌나 잘 알고 있었는지. 제가 또 다시 도망치지 못하도록 제 두 손을 잡고 있던 것은 아주 작은 손이었다. 찬열은 그 작은 손을 바라볼 때 마다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때로 백현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기도 하고 일곱 살의 어린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며.. 또, 지금처럼 제 옆자리에 온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에 간혹 놀라기도 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

제 품 안에서 얕은 숨을 뱉어내며 잠에 취해 있던 백현의 손바닥 위를, 그 가느다란 손가락을 매만지던 찬열이 잠든 이마 위로 소리 없는 입맞춤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지개를 켜며 욕실로 들어선 그의 등 뒤로 문이 닫히고 물소리가 이어졌다. 




2년 뒤 봄, 



침대 위, 커다란 창문 너머로 아침의 햇빛이 밀려 들어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베개 위로 따스한 빛이 스며들었다.


인기척이 없는 방과 거실을 지나 말소리를 따라가 보면, 현관에 서서 신발을 신고 있는 백현과 그의 앞에 에이프런을 두르고 서있는 찬열의 모습이 보인다. 


“차 조심.”

“차 조심.”


신발을 다 신고 상체를 일으킨 백현이 찬열의 말을 따라하자, 찬열이 웃으며 백현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따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문을 연 백현이 손을 흔들고 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핸드폰을 꺼낸 백현이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재생시켰다. 그의 플레이 리스트에는 종인과 찬열이 경쟁 하듯 담아둔 곡들이 가득했다.


오전부터 강의가 있던 백현은 서둘러 강의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어폰을 다시 가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자리에 앉아 전공 서적과 필기구를 내려두고 핸드폰을 들어 톡을 확인하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교수님이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바라보며 백현은 핸드폰을 홀드 시켰다.

 

“일찍도 온다.”

“일찍 왔지.”

 

그와 동시에 제 테이블 위로 페트병을 내려두는 경수를 보며 백현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경수는 아침 일찍 도서관에 들어갔다 강의 시간에 맞춰 올라오는 것이 대부분이라 오늘도 그런 모양이다. 저 과제에 찌든 얼굴, 백현이 혀를 차며 그가 준 페트병 뚜껑을 비틀었다.  

 

“죽겠다. 밤 샜어.”

 

강의 내내 여기저기 하품을 뱉어내고 조는 사람이 널린 지루한 김교수님 수업에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노트북을 두드리던 경수를 보며, 그래 보인다는 말을 구태여 뱉어내지 않은 백현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일어섰다. 

 

“먼저 간다. 졸지 말고-”


졸긴, 가라. 바로 옆 강의실에서 수업이 연이어 있는 경수를 뒤로 하고 복도를 걸어 나온 백현이 사물함 안으로 제 책을 밀어 넣고 돌아서다 갑자기 조용해지는 주변을 느끼고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비가 오는 모양이다. 소나기인가.. 고개를 기울이던 백현은 


“백현아.”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입술 끝을 올렸다. 오전 내내 바빴을 찬열은 이제서야 저에게 목소리를 들려준다. 삐친 것은 아니고, 조금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백현은 걸음을 옮겼다. 그의 가벼운 걸음이 닿은 캠퍼스 안에는 어느새 벚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와 함께 맞는 세 번째 봄이었다. 






비가 올 때면 찬열은 어디에 있다 가도 백현의 이름을 부른다. 


“백현아.”


백현은 여전히 답을 하지 않지만, 찬열은 창문 위를 제 손끝으로 느리게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비라도 맞아야 대답해 줄 거지.”

 

“그러지. 마요..”


장난인 걸 뻔히 알면서도 조금 다급하게 뱉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면 찬열은 심장께가 찌르르하다. 

 

“백현아. 보고싶다.”

 

“..어디..계세요?”

 

작은 목소리로 퍽 대담한 내용을 뱉어내는 백현을 이기지 못하고 찬열은 또 웃음을 흘린다. 제 손목 위로 시선을 떨어트리며 와주려고? 되묻는 말에는 또 답이 없다. 시간을 확인하며 찬열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으니까.. 

 

“한시간, 뒤에 갈게. 기다려.”






제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돌린 백현이 제 어깨를 두드린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눈인사를 건넸다.


“야, 변백. 오늘도 끝나자 마자 가냐?”

“응.”


집에 무슨 꿀 단지라도 숨겨 두셨어요-? 장난스레 묻는 목소리에 백현은 낮게 웃을 뿐이었다.


“새학기인데 과팅 안 할래?”

“응. 안 할래.”

“왜- 무용과 애들인데!”


너 데려오면 해준다고 했단 말이야아- 제 등 뒤로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짐짓 모르는 척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간다. 내일 보자-하는 인사에도 어우! 저 보살- 잔소리처럼 쏟아내는 목소리를 지나쳐 걸은 백현은 바로 앞에 서있는 검은 차량을 확인하고 익숙한 손길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 벨트를 끌며 그의 얼굴을 바라본 백현은 어딘가 뚱- 해 있는 찬열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기분..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아니. 안전 벨트.”


그의 말에 안전 벨트를 채운 백현이 혹시 아까 대답 안 해줬다고 아직 꽁해있나 싶어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중얼거리자 찬열이 저를 바라봤다. 제 눈을 마주하고 잠시 한숨을 뱉어내던 찬열이 제 머리 위를 커다란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 느린 동작에 백현은 눈만 깜박거렸다.


“앞으로 쟤랑 다니지마.”


뭐 때문에 화가 났나 했더니 아무래도 방금 전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다. 백현은 최대한 모르는 척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 친구도 별로 없는데.”


그 표정을 바라보던 찬열은 앓는 소리를 하며 핸들 위로 머리를 박았다. 


“..하.. 정말.”


알겠어. 미안해.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낮게 웃은 백현이 그래도 아저씨가 싫다면 같이 안 다닐게요. 하자 찬열이 핸들에 박고 있던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그를 바라봤다. 기다렸다는 듯 백현이 저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저한테 아저씨만큼 중요한 거 없는 거, 아시잖아요.”


으.. 찬열이 앓는 소리를 뱉으며 다시 꿍얼거렸다.


“그런 얼굴로 그런 말 하는 거, 반칙이야.”


백현의 입술 위로 가볍게 제 입술을 붙였다 떼어낸 찬열이 백현의 이마에 제 이마를 댄 채 그의 볼 위를 느리게 쓸어 내렸다.


“..그냥 실언 한 거야. 신경 쓰지 말고 다녀.”


스무 살이 되고 새내기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속좁은 질투심에 제대로 된 학교 생활은커녕 제대로 놀지도 못했던 백현을 잘 알기에 찬열은 그의 코끝에 제 코끝을 가볍게 비비며 다시 제 마음을 가다듬고 핸들을 잡았다.



봄비는 벚꽃 잎과 함께 회색빛 아스팔트 위를 온통 분홍 빛으로 수놓았다. 어느새 완연한 봄 내음이 그들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두 사람이 멈춰선 곳은 주택가 근처의 작은 가게들이 모여있는 골목. 그 곳의 중간 쯤, 2층 짜리 건물에 자리 잡은 가게 안으로 들어선 찬열과 백현을 발견한 종인이 손을 흔들며 두 사람을 반겼다.


“백현이 안녕- 형! 왜 이렇게 늦게 와요-”

“평소랑 똑같은데..”

“손님들 벌써 줄 섰다고요- 얼른 얼른,”


이 곳은 찬열이 작년 겨울에 오픈 한 식당이었다. 주택 건물의 1,2층을 개조해 만들어 집처럼 아늑한 느낌을 더한 한정식 집. 그가 가게를 차릴 생각을 한 것은 첫 번째로 아픈 다리로는 일상 생활은 문제가 없으나 조직 생활을 계속 하기는 힘들어서 였고, 두 번째로 요리에 소질도 있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에 -준면의 반 강요에 의해-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였다. 세 번째로는 아무래도 백현 때문이었으나 이건 비밀이고., 

 

요리를 하는 것이 찬열 혼자다 보니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오픈을 하고, 오후3시부터 오후6시까지는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는데 그가 가지는 브레이크 타임은 재료 준비 시간과 쉬는 시간이나 그 시간의 절반은 백현을 데리러 가거나, 백현을 데려다 주는데 사용하고 있다. 백현은 학교와 과외를 가는 시간 외에는 찬열의 반경을 벗어나지 않아서, 그가 가게에 있는 동안은 백현의 모습도 가게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어느새 가게 안 테이블은 대기하던 손님들이 자리를 잡았고, 제가 앉은 창가 쪽 바 테이블을 빼면 빈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9시 이후로는 종인이 바(bar)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때의 상황도 지금과 별반 다르진 않았다. 물론 조금 더 소란하긴 했지만,.. 

한 장소에서 일을 하다 보니 찬열의 브레이크 타임에 가게를 봐주는 것은 대부분 종인이었다. 종인은 조직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고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요즘엔 바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 준면에게 폭풍 같은 잔소리를 듣고 있는 중이다. 그는 이제 찬열을 형님이 아닌 형이라고 불렀는데, 가게에서 형님 소리를 하다 세훈에게 깡패 같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세훈은 두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잘생긴 알바생으로 저녁 5시부터 시작해 밤 12시까지 일을 하고 있는데, 사장이 둘이다 보니 피곤한 것은 사실이나 월급이 짭짤해 그만둘 생각은 없어보였다. 


테이블 마다 자리한 사람들의 대화 소리, 사진을 찍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잠시 바라보던 백현이 제 앞으로 놓이는 머그잔에 시선을 올려 등 뒤를 바라봤다.


“마시고 해.”

 

사장님 지시. 뒷말을 덧붙이며 코끝을 찡그린 세훈이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백현도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불 앞에 서있는 찬열의 등이 보였다. 오픈 키친의 좋은 점은 어디에 앉아도 찬열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백현은 머그잔으로 손을 뻗으며 미소를 지었다.


“백현이 선생님!”

“어? 준영아.”


백현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제 품으로 달려드는 아이를 마주 안았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건가 했더니 그의 등 뒤로 진이 빠진 표정의 성철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준영이 아빠랑 어디 갔다 와?”

 

제 허리를 두 팔로 그러 안은 준영을 내려다보며 그의 머리칼을 쓸어 넘긴 백현이 묻자 고개를 빼꼼히 든 준영이 그를 올려다보며 답했다. 

 

“소풍이요!”

“말도 마라 백현아.. 죽겠다. 오늘 소풍이었는데. 비가 와서.. 어휴.”

“아아. 고생하셨겠어요. 우리 준영이 속상했겠네-” 

“누가 우리 준영이야.”

“힉-”

 

갑자기 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백현이 서둘러 고개를 들어 올리자 찬열이 커다란 손으로 준영의 팔을 떼어내고 있었다. 힉- 소리를 내며 백현의 품으로 얼굴을 박던 준영은, 안녕하십니까 형님. 인사를 하는 제 아빠의 품으로 다시 반환 되었다.. 힝. 나쁜 아저씨! 준영이 입술을 삐죽이며 그를 흘깃 거리다 저를 내려다보는 눈에 얼른 제 아빠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왜.. 나오셨어요?”

“..다시 들어 갈 거야.”


그가 다시 멀어지자 백현이 성철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식사 하시고 가실 거에요?”

“으응. 오늘 애 엄마도 회사 가서, 내가 저녁 당번이거든. 준영이가 여기로 오자고 해서..”

“준영이 어디 앉을래?”

“선생님 옆이요!!”

 

찬열이 주방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후다닥 뛰어 백현의 옆자리를 차지한 준영이 슬쩍 주방을 바라보며 혀를 내미는 것을 백현은 보지 못했다. 준영은 아직도 백현을 짝사랑 중이었고, 그에게 찬열은 제 인생 최대의 적이자 최대의 라이벌이었다. 


“선생님. 다음 주에 놀이동산 같이 가기로 한 거 잊으시면 안돼요!”

“응. 안 잊을게- 숙제 잘 하고 있어야 해?”

 

식사를 하고도 아쉬운 표정으로 백현의 옆에서 그를 바라보던 준영의 옆에서 찬열의 살기 어린 눈빛을 견디다 못한 성철이 그를 안고 돌아간 뒤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백현씨!”


창가에 앉아있던 백현은 저를 부르며 손을 흔드는 민서를 발견하고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여기 있었네요-”

“아, 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백현이 저에게 인사를 하며 웃는 얼굴과 그녀의 앞에 있던 하준, 두 사람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안녕. 백현아- 창가 자리 있어?”

“그럼요.”

 

민서와 하준은 찬열의 가게의 단골로 주에 3번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올 때마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의 질문에 답을 하며 휠체어를 제 손으로 잡는 백현의 행동에도 그래. 그럼 거기로~ 답을 하며 안내를 받았다. -그는 지금도 찬열이 휠체어에 손을 대는 것은 싫어한다.-

백현은 늘 예약 좌석으로 빼두는 1층 창가 자리로 두 사람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하준의 자리로 항상 의자를 빼두는 쪽에 그의 휠체어를 끌고 들어온 백현은 입구에서 자리까지 들어오는 동안 휠체어가 막힘 없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찬열이 얼마나 이 자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매번 느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세훈씨.”

“메뉴판 드릴까요? 아니면, 항상 드시던 대로 주문 넣어드릴까요?”

 

단골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민서는 가게 안의 사람들을 이름으로 부르며 늘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성격이었다. 세훈은 언제나처럼 자신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녀에게 웃으며 화답하고 테이블 위를 세팅했다. 

 

“저는 항상 시키던 대로요. 하준씨는요?”

“나도. 백현이 너는?”

“아. 저는 ..”

“찬열씨랑 드시겠죠- 당신도 참.”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세훈의 대답을 제가 대신하며 주방으로 향한 백현이 카운터 앞으로 손을 톡톡 두드렸다. 

 

“하준 아저씨 오셨어요.”

 

저와 눈을 마주한 찬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평소대로? 묻자 백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배 안 고파?”

“네.”

“종인이도 아직 안 먹었을 거야. 같이 먹어.”


평소대로 라면 브레이크 타임에 이른 저녁을 했을 텐데, 오늘 따라 대기 손님이 많았던 탓에 찬열도 오자마자 일을 시작했던 터라 백현도 덩달아 저녁을 먹지 못했으니 배가 고픈 것이 뻔한데 고개를 흔드는 걸 보니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괜찮아요. 점심 늦게 먹었어요.”


카운터에 몸을 기댄 백현이 웃으며 말하자 찬열이 접시를 카운터에 올려두며 종을 눌렀다. 경쾌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들은 세훈이 접시를 들어 올렸다.


“..배고프면 말 해.”

“아저씨랑 같이 먹을래요.”

“.. 세훈아, 클로즈 걸어.”

“아? 사장님!”

“밖에 비 온다.”

“뭔, 비가 갑자기-”


찬열의 말에 주방을 한 번, 그 앞에 서있는 백현을 한 번 비가 온다는 창 밖을 한 번 정신없이 바라본 세훈은 후다닥 주방 앞으로 뛰어왔다. 비가 올때면 자주-습관적으로- 가게 문 앞에 클로즈를 걸고 백현과 시간을 보내는 찬열을 잘 알기에 세훈이 백현의 팔을 잡았다. 


“백현아. 안돼. 지금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걱정마세요. 농담 하시는 거니까.”

“농담 아,”

“하준 아저씨 기다리시겠어요.”


진심으로 가게 문을 닫을 생각이던 찬열이 단호하게 돌아서는 백현을 바라보며 한숨을 폭 뱉어냈다. 제가 말을 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한 찬열이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백현은 그를 뒤로 하고 홀(hall)로 나왔다.


꽉 찼던 테이블이 조금 환기되는 동안 하준과 민서가 식사를 하고 돌아가고, 백현은 노트북을 두드리던 손을 들어 탈탈 털어내며 뻐근한 목을 돌렸다. 시계를 확인하니 8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백현은 노트북을 챙겨 가방 안으로 밀어 넣고 일어날 채비를 했다. 주문 마감 시간이 8시 반이기 때문이었다.

 

“백현아.”

“아.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

  

백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정도면 이곳은 찬열의 가게가 아니라 백현의 가게인가 싶기도 하다. 어째, 그의 가게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이름이 백현인 걸 보면.. 바로 제 앞으로 다가온 준면의 손이 제 머리 위로 닿는 것을 느끼며 백현은 그의 등 뒤로 따라 들어오는 남자들에게도 눈인사를 건넸다.  

 

“형님. ..저희 어제도 여기 왔었습니다.”

“..너한테 안 물었다.”

“잘 지냈어요.”

“우리 백현이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할까?”

“..”

 

영호는 다시 형님 저희 어제도 여기서 술 마셨습니다. 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찬열이 주방에서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백현이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세훈은 그들을 테이블로 안내하며 물었다. 

 

“사장님은요?”

“너네 사장님 오늘 한강에서 찾는 게 빠를 거다.”

“대-박.”

 

경악스런 표정을 지은 세훈이 준면의 앞으로 메뉴판을 내려두며 말했다.

 

“그럼 제 월급은요?”

“월급 계산 김동수가 하잖아.”

“아 맞네.”

 

영호가 두 사람의 대화에 어이가 없다는 듯 숨을 뱉어냈다. 

 

“형님. 돈 안되게 무슨 한강입니까?”

“..너 같은 소리 한다.”

 

영호가 제 옆으로 앉는 동수를 보며 쯧, 혀를 찼다. 세훈은 어휴- 저 아저씨들 이상해. 한숨을 뱉어내며 테이블에서 멀리 떨어져 바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 형님!!”

 

뒤늦게 쿵쾅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선 종인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준면이 메뉴판을 툭툭 두드리며 주문을 하라고 동수를 재촉했다.

 

“주문은 김종인 담당인데요. 형님.”

“하여튼,”

“아니. 어떻게 저를 거기다 혼자 버리고 가실 수가 있어요!”

 

씩씩거리며 테이블 앞으로 다가선 종인이 달달 떨리는 어깨를 감싸고 준면의 옆에 앉아 그의 자켓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야, 이.”

“아우 손시려- 무슨 봄날씨가 이래.”

“니가 옷을 얇게 입고 돌아다니니까- 야, 손 안 치워!”

“밖에 진짜 10분만 서 계셔보세요. 진짜 추움.”

“..술 마시면 따뜻해져.”

“야 김종인. 얘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 같던데.”

“뭐가 또, 왜.”

“내가 뭐!”

“야 김동수. 너 우리 가게 공동 명의 인 거 알지? 반은 찬열 형님 거다 이거.”

“아오. 아니라고-!”

“뭐. 가게 팔아먹고 튀려고 한 거 아니야?”

“이게 누굴 사기꾼으로 아나.”

“맞잖아. 배신자.”

“저이씨,”


더 이상 반박을 하지 못한 동수가 후- 한숨을 뱉어내며 머리를 넘겼다. 그는 2년 전, 자신의 차에 장난을 친 무리를 잡으러 혼자 뛰어 들었다가 종인을 마주쳤다. 처음에 종인에게 죽도록 -진짜 죽도록- 얻어맞은 그는 자발적으로 조직의 막내 자리로 다시 들어가 생활했다. 저를 형님으로 모시던 동생들에게 형님 소리를 하며 생활하는 중이었다. 동수는 아직도 준면의 사무실 근처도 못 올라갔으나 찬열이 가게를 차릴 때, 가게 재정 관리를 맡아 주기로 한 뒤로 그들과 자주 얼굴을 부딪히게 되었다.

특히 이렇게 가게 술을 거덜 내러 올 때면 밀착 특별 감시를 했다. 사장2-종인-가 가게 술을 파는 게 아니라 마시려고 사둔 것 같았으니까.


찬열은 주방을 정리하고 나와 백현의 앞으로 다가서며 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멀리서 바라봤다. 


“오늘도 술 마시면 진짜 혼나.”

“..어떻게요?”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저를 올려다본 백현의 표정이 장난스럽게 변하는 것을 보며 찬열이 손을 들어 올렸다. 눈가를 살살 매만지며 웃으니 백현이 코 끝을 찡그렸다. 


“..지난 번처럼.”

“..그럼 마실래요.”


그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의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며 찬열은 저도 모르게 입술 끝을 끌어 올렸다. 백현은 저녁이면 바(bar)로 바뀌는 벽 쪽 카운터로 다가서며 세훈을 바라봤다.

 

“세훈이 형. 저 ..”

“일단, 밥부터 먹고. 저녁도 안 먹었잖아.”

 

물론 그에게 주문을 하기도 전에 찬열에게 다시 끌려가야 했지만, 

그런 두 사람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세훈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식당에선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것이 주된 업무인 세훈은 바 운영 시간에는 바텐딩을 하고 있는데, 경력이 짧은 것 치고 바텐딩 솜씨가 예술이었다.-아마 종인이 어디에서 스카웃을 해 온 모양이다.- 화려함은 말해 입 아프고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백현도 가끔 그의 칵테일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맛도 좋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지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2층 룸 안으로 자리한 두 사람은 늦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찬열은 하루 종일 불 앞에 서서 요리를 하는 것이 직업이 된 뒤로도 백현의 식사를 챙기는 시간이 즐거웠다. 

 

식사를 하며 저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는 목소리. 우물우물 거리는 입술이나 볼록해진 볼로 제가 챙겨주는 것들을 먹는 모습을 보는 시간이 소중했고 백현이 이전보다 살이 붙는 것을 보는 것도 좋았다. 

 

“저는 과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경수는 벌써 밤새 공부하고 책을 진짜 씹어 먹어요.”

 

정말 문자 그대로 책을 씹어 먹는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백현을 보며 찬열이 그래서, 너도 먹고 싶었어? 물으니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 것이 귀여웠다.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 동안 아래층에선 술 파티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1층으로 내려온 찬열은 준면에게 붙들려 그 자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오늘의 타깃은 찬열인 모양이다 생각하며 백현은 슬그머니 그의 뒤로 몸을 뺐다. 준면은 대게 한 명을 정하면 그 사람이 나가떨어지는 것을 볼 때까지 먹인다. 백현이 바 앞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세훈에게 눈짓 했다. 

 

“얼마나 드신 거에요?”

 

세훈이 질렸다는 표정을 하며 제 발 아래 쪽에 놓인 바스켓을 바라보았다. 빈 병이 쌓여있는 것을 바라보며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술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독한 술을 마시는 준면과 도수에 상관없이 맛있는 술을 좋아하는 종인, 주는 대로 마시는 영호, 뭐든지 빨리 마시는 동수까지 .. 네 사람은 금세 테이블 위로 빈 병 쌓기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사실 백현은 늘 제가 취한 모습만 봤지 찬열이 취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제가 술이 약한 편이기도 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도 맞다. 


“백현이 넌 뭐 줄까?”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오늘은.. 제가 운전 해야 할 것 같네요.”


준면의 옆에 앉아 제 어깨를 내리 누르는 손을 치워내지 못하고 몸을 비트는 찬열의 옆모습을 보며 백현이 대답했다. 세훈은 그래. 그럼- 필요하면 얘기해. 하며 그의 옆에 앉은 손님들의 주문을 받았다. 


“백현아!”


멀리서 종인이 저를 부르며 오라는 듯 손짓했지만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백현은 지난번 강의가 끝나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가 잔뜩 취해 인사불성이 되서 찬열에게 전화를 한 뒤로 알코올 금지령을 받은 상태였다. 물론, 어떻게 혼났는지는 비밀이지만.. 뭐 이참에 찬열이 취한 모습이나 봐야지 생각하며 백현은 최대한 테이블에서 멀리 떨어져 앉았다.


혼자 일하는 세훈을 도와 서빙을 하던 백현은 갑자기 조용해지는 주변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아마 비가 내리는 모양이었다. 백현은 창 밖을 바라보며 어두운 밤의 풍경과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를 잠시 지켜보고 있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새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백현아.”


백현은 그의 목소리에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들었다. 바로 제 옆에서 느껴지는 목소리와 숨결에 눈을 감은 백현이 네.. 작게 답하자 찬열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백현은 창가 앞으로 몸을 붙이고 앉아 차가운 유리의 표면을 손끝으로 쓸었다. 물방울 위를 그리듯 따라 움직이며 비의 온도를 느끼고 있었다.


“백현아.”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자 찬열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저와 눈을 마주하며 찬열이 손을 내밀었다.


“집에 갈래?”

“..네.”


백현은 그의 커다란 손을 잡으며 답했다. 그가 제 손을 끌어 당기자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백현이 그의 어깨를 잡자 찬열의 시선이 아래로 내리 깔렸다. 그 시선이 제 입술 위로 닿아 있는 것을 느끼며 백현은 그의 옷깃을 그러 잡았다.


“걸어 갈까. 오랜 만에.”

“..산책도 할 겸?”

“그래. 산책도 할 겸.”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백현의 손을 잡고 찬열이 가게를 나섰다. 그들의 뒷모습으로 따라붙는 시선들이 느껴졌으나 두 사람은 우산을 쓰고 밖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빗방울이 우산 위를 톡톡 두드리며 떨어졌다. 밤의 색을 닮은 싸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봄이라고는 하나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편이었다. 살짝 몸을 떠는 백현의 어깨 위로 찬열의 커다란 손이 내려 앉았다.


“추워?”

“..조금.”

“차로 갈까?”

“괜찮아요. 걸을 래요.”


백현의 목소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찬열이 그의 팔을 쓸어 내렸다. 그의 손에서 조금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아마 술기운으로 열이 조금 오른 모양이다 생각한 백현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가 취하진 않았는지 살폈다. 알코올 향이 조금 나긴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보이는 찬열을 보며 흐응 고개를 기울인 백현의 시선에 찬열이 그를 내려다봤다.


“왜.”

“주량이 얼마나 되세요?”

“글쎄..”


글쎄라니 정말 모르는 건가 아니면 알려주기 싫어 농담을 하는 것일까 .. 집 근처에 다다르자 백현은 그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느리게 입술을 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예전에.. 아저씨가 제 흑기사 하셨던 날.”

“흑기사?”

 

저를 돌아보며 묻는 찬열의 얼굴을 보며 백현이 낮게 웃었다. 흑기사 맞잖아요..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계속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백현이 다시 입술을 열었다.

 

“제가 택시 잡으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막았..잖아요.”

 

기억 안나요? 백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젖은 아스팔트 위를 바라보던 찬열이 느리게 그 날을 회상하며 답했다. 

 

“..그랬지.”

 

팔을 뻗으며 도로 쪽으로 다가서던 백현의 몸을 낚아 채듯잡았던 때, 조금 놀란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던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가 뭐라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때 .. 왜 그러신 거에요?”

 

그때, 백현을 제 뒤로 끌어당기며 택시를 잡았던 순간의 감정이 제 머릿속을 스쳤다. 

 

“그때 왜. 화내셨던 거에요?”

 

저의 등을 바라보며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백현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손으로 마른 등을 쓸어 내리며 찬열은 숨을 들이마셨다.

 

 

“..니가, 다칠 까봐.”

“..아저씨. 그때는 저 ..”

 

안 좋아하셨잖아요. 백현을 저를 바라보며 멈춰서는 찬열의 걸음을 바라보며 뒷말을 삼켰다. 그의 표정이 조금 굳어진 것 같아 보여서 였다. 괜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아 백현은 서둘러 화제를 돌리려 입술을 열었다.

 

“좋아..했나봐.”

 

그러나 저보다 조금 빨리 목소리를 낸 것은 찬열이었다. 백현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숨을 멈췄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백현이 입술을 달싹거리며 머뭇거리자 찬열이 그의 얼굴 위를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좋아했네. 내가 너를 .. 계속 좋아했어. 백현아.”

“..”

“왜. 몰랐을까.”

“..아저씨. 집에 가서 저랑 2차 해요.”

 

뜬금없는 백현의 목소리에 찬열이 눈을 깜빡이다 웃음을 뱉어냈다. 지금 그 분위기 아니었는데, 백현아.

 

“..술 안 마시기로 했잖아.”

“둘이 마시는 건 괜찮지 않아요?”

“.. 생각 좀 해 보고.”

“야박해.”


저를 힐끔거리며 입술을 삐죽이는 백현을 내려다보며 찬열이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며 백현이 가만히 서있자 그가 우산으로 백현의 머리 위를 가리며 다시 멈춰 섰다.


“..알았어. 집에 가서.”

 

백현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걸음을 옮기며 제 손을 잡자 찬열은 한숨을 삼키며 그를 제 옆으로 끌어 당겼다. 그래도.. 백현이 그의 손을 느리게 어루만지며 다시 입술을 떼었다.

 

“어쨌든, 약속 어긴 거니까.. 벌은 받을게요. 지난 번처럼.”


그의 말에 찬열이 다시 걸음을 멈췄다. 

 

“..지금 혼나려고, 술. 마시려는 거야?”

“..뭐. 그 이유가 한.. 90% 정도..?”

“..”

“그냥..”

“..들어.”

 

에? 백현은 제 손에 우산 손잡이를 쥐어 주는 찬열의 행동에 놀라 눈을 깜빡이며 그것을 고쳐 잡는 순간,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끼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ㅊ,찬열..!”

“술은, 혼난 뒤에 마시자.”

“에?”

 

저를 안고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는 찬열을 보며 백현은 서둘러 우산을 접었다. 허둥지둥 몸을 움직이던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졌다가 눈이 마주치며 다시 제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찬열이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백현은 그의 목을 팔로 감아 제 쪽으로 끌어 당겼다. 그에게서는 비의 냄새가 났다. 봄의 밤 공기 같은 온도를 하고 있던 백현의 입술이 찬열의 입술 위로 닿았다.  

제 얼굴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제 입술 위로 키스를 퍼붓는 백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찬열은 거칠어진 숨을 뱉어냈다. 집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그러 안으며 뜨겁게 입술을 맞대고 숨을 나누는 동안 커다란 창문 위로 봄 비가 달라 붙었다.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아..”

 

백현이 뜨거운 숨을 뱉으며 입술을 열자 찬열이 눈을 뜨고 검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의 얼굴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찬열의 손이 그의 얼굴 위를 어루만졌다. 비의 온도가 백현에게 스며들기라도 할까 걱정 어린 눈빛을 한 채 그의 입술 위로 느리게 입을 맞췄다. 

 

“백현아.”

“네.”

 

제 얼굴을 어루만지는 작은 손 위로 제 손을 덮으며 찬열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 소울메이트.”

“..왜 불러요.. 내, 소울메이트.”

“비가 와서, 다행이다.”

 

백현은 그의 입술을 제 손끝으로 매만지며 그의 입술 위로 제 입술을 느리게 마주 대었다. 찬열.. 그가 제 이름을 부르며 눈을 감았다. 

 

“비는 계절일 뿐이에요.”

 

 

 

 

 

“비가 오지 않아도, 나는 당신의 소울메이트 에요.”


백현의 목소리는 오로지 찬열에게만 들렸다. 











비를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비를 홀로 맞으며

나는 너를 기다렸다.

너만을 기다렸다.

나는 이제 이 비가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으며

너와 함께할 내일이 기대될 뿐이다.















-

보고 싶은 것이 참 많았던 호우주의보, 그 안의 두 사람과 함께 울고 웃으며 두 사람이 받은 사랑을 간직하며, 이렇게 이야기를 끝마치려 합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저는.. 두 사람이 서로 운명이고 소울메이트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관계를 시작하기 보다 서로의 환경과 서로에 대한 마음을 깨달으며 천천히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관계를 원했던 것 같아요. 백현이가 연재 내내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대부분 그런 이유에서 였구요. 

제가 표현이 서툴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진 몰라도.. 저는 사실 거의 완결까지도 백현이가 말이 서투르게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살아오면서 한 평생 말을 하지 못했던 아이가 갑자기 말을 잘 하는 것도 이상하니까요. 호우주의보에서 백현이가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은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가 어릴 때의 트라우마와 자신의 소울메이트에 의한 거부 때문이었고 당연히 그런 소울메이트를 마주했으니 두렵고 말을 하기가 더 어려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연재하는 동안 주신 관심과 사랑, 정말 하나하나 너무 소중하고 값진 것들 이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그 마음을 돌려드리기가 어렵네요.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들 남겨두고 호우주의보 떠나 보냅니다. 두 사람의 미래에도 여러분들이 함께하길.. 바라며.


write. -해피엔딩 집착녀- 우주 


oct, 2018.


마지막 화의 tmi. 

호우주의보는 

呼 부를 호 : 부르다, 숨을 내쉬다, 부르짖다, 

偶 짝 우 : 짝, 배필(配匹), 짝수, 우연(偶然) 

두 한자를 썼습니다.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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