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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11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warning _ roman noir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영호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 그는 며칠 동안 찬열을 살피다 넌지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형님. 평소 제가 어떤 일을 해도 담담하던 그가 그럴 때 마다 브레이크에 걸린 듯 잠시 멈춰 섰던 찬열은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에 또 다시 폭주 기관차처럼 거칠게 몸을 움직였다. 몸을 혹사 시키는 것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큰 집에서 생활하는 조직원들을 조사하고 있던 영호는 집 안으로 약을 들인 사람을 찾으며 쉽게 단서가 잡히지 않는 것과 준면이 찾아간 시기에 사용한 것을 합쳐 보았을 때 단독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다고 판단하고 다른 분파와 손을 잡은 이가 있는지 조사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선선해진 날씨는 비가 오면 춥게 느껴지기 까지 하는 시기가 되어 있었다. 

 

 

 

 

 

“범인 찾았습니다. 형님.”

“현재 도주 중 이랍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영호의 말에 찬열은 어디냐.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새끼들 인천으로 튀었답니다. 위치는 파악했습니다. 저랑 영호,”

“아니. 내가 직접 간다. 규모는.”

“하지만..”

“얼마 안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확하진 않습니다.”

“운전은 성철이 시키고, 동수. 따라와라.”

“형님!”

“그 놈이 진범이라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더 조사해. 그리고 바로 보고하고.”

“..네. 형님.”

 

찬열이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종인은 잠시 씩씩대며 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사무실 안을 방방 뛰어다녔으나 찬열의 말이 맞다. 단순히 도망간 놈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준면을 범인으로 몰면서 보스를 치려던 놈이다. 뒤를 봐주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계속 되는 비가 신경 쓰인 탓에 제가 가려고 했던 것인데.. 종인이 제 손끝을 물며 창 밖을 잠시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몸을 움직이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아서.


“지금 밖에 비 오지 않아?”

“지금 형님 상태면 비가 문제가 아니라 수면 부족이 문제일 거 같은데.”


종인과 영호가 창 밖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돌렸다. 차에 올라탄 종인은 운전석에 앉은 경진에게 큰 집, 짧게 뱉으며 핸드폰 화면 위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영호가 찾아낸 범인은 큰 집에 있던 조직원 둘, 그들은 성남의 조직과 손을 잡고 움직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강남의 전 관리자를 배신자로 엮어 치워내고 그 자리를 강서에서 낚아 채 이익을 분배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시 손을 쓴 것이 큰 집을 직접 치기로 했던 모양이나 운좋게도 진성이 깨어났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준면이 큰 집으로 향하는 중이라고 들었으니 종인과 영호도 그 쪽으로 걸음을 돌린 것이다. 


“형님.”

“빨리왔네. 김종인 넌 여기서 기다려.”

“..네.”

 

영호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는 준면의 등을 바라보던 종인이 차로 다시 걸음을 틀며 시선을 옮겼다. 물에 젖은 흙바닥이 질척하게 신발 밑창으로 달라붙는 것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그는 제 앞을 가로막는 그림자에 시선을 들어 올렸다. 

 

“어디가냐?”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검은 우산 뿐이었다. 

 


 





“형님. 이쪽입니다.”

 

버려진 건물, 철거촌의 골목을 누비던 찬열은 반대편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비가 온 탓이다. 성철이 그의 등 뒤를 쫓아 걸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형님. 저쪽이랍니다.”


성철이 가리킨 쪽을 잠시 바라보던 찬열은 지나치게 시끄러운 주변을 살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소란 스럽다고 해야 맞는 것인가. 소리가 아니라 기척이라는 것이 그랬으니까.. 숨을 죽이고 있는 인물이 적어도 자신들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인기척에 찬열이 걸음을 멈추자 그의 뒤를 따라 걷던 성철이 덩달아 걸음을 멈추며 그를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함정이다.”

“네?, 동수 형..형님!!”


찬열의 말에 동수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그의 등 뒤를 치고 나오는 무리들로 향했다. 

 

“함정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신호탄으로 찬열과 성철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반대편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찬열은 저에게 달려드는 남자들을 가볍게 피하며 그들을 바닥으로 때려 눕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와 성철의 틈으로 밀려 들어온 인파에 당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쾅- 멀리서 폭발음 같은 소리가 터지자 성철이 어깨를 움츠리며 찬열을 돌아봤다. 그는 아무래도 듣지 모양이었다. 제 시선을 느낀 찬열이 그를 바라보자 성철이 느리게 말을 이었다. 찬열의 시선이 제 입모양을 읽어내는 것을 느꼈다.  

 

“형님. 폭발음이 들렸는데, 총은 아닌 것 같습니다.”

“폭발음?”


제 앞으로 뻗어진 팔을 쳐내고 허벅지와 정강이를 빠르게 걷어 찬 찬열이 그의 다리를 밟고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몸을 돌렸다. 아슬아슬하게 옷깃을 스쳐 지나가는 칼날 끝을 피함과 동시에 제 오른쪽 골목에서 튀어 나온 남자의 팔이 어깨로 파고 들었다. 벽으로 밀려 나며 다리를 뻗은 찬열의 발이 남자의 복부를 가격함과 동시에 그의 등이 바닥으로 꽂혔다. 바로 앞에서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온 무리들을 상대하며 성철은 소리를 내질렀다. 

 

“일단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찬열과 함께 범인을 잡던 인원은 동수와 성철을 포함해서 10명 남짓, 이미 동수와 둘로 나눠 수색을 하던 터라 제 뒤로 따라 붙은 것은 넷. 저를 둘러싼 인원은 적어도 두 배는 넘는 수라는 것은 대충 봐도 알 수 있었다. 범인이 누군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준면의 팔다리를 자르고 그의 자리, 나아가 큰 집까지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준비를 철저하게 한 모양이지. 찬열은 제 앞으로 뻗어지는 손목을 비틀고 등을 발로 걷어차며 몸을 돌렸다. 

 

“김동수!! 뒤로 빠져!”


반대편에서 동수가 저와 같은 상황에 휩쌓인 것이 보였다. 저에게 휘둘러지는 날카로운 칼 끝을 피하려 목을 뒤로 빼낸 찬열이 그의 상체를 가격하며 소리쳤다. 

 

 




검은 우산을 들고 서있는 인영을 잠시 바라보던 종인이 미간을 팍 찌푸리며 차 쪽과 제 등 뒤를 살폈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경진이 끌려 나와 있는 것을 보며 얼굴을 굳힌 그가 우산 아래에 서있는 이성원을 날카롭게 바라봤다. 그는 성남의 관리자였다. 

 

“오랜만이네. 근데 인사가 좀 격하십니다?”

“무슨 소리. 이정도면 인사 축에도 못 끼지.”

“회의도 없는데,. 여기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쥐새끼들 잡으러.”

“아-아, 아까 보긴 했습니다. 검은 우산 쓰고 있던데?”

 “여전히 재밌네.. 마침 잘 됐다. 하나하나 잡으려니 귀찮던 참인데. 나는 운도 좋지- 이렇게 한 번에 모였으니.”

“뭔 개소리래.”

왈왈- 소리를 내며 웃은 종인이 제 주변을 둘러 싸는 남자들의 등장에 얼굴을 굳히며 그들을 쏘아봤다. 

 

“올. 생각보다 많은데-”

“내 생각도 그래. 너하나 잡는데 이렇게 많이 필요는 없는 거 같지?”

“뭐, 그래서 나도 준비 했지. 나 하나 잡는데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잖아.”

 

종인이 등 뒤로 손을 까딱-움직이자 그들의 앞으로 검은 차들이 속력을 내며 달려 들었다. 

 

“뭐,”

“누가 그러더라고.. 함정이다!!”

 

종인의 말을 신호로 차 안에서 쏟아진 무리들과 집 안에서 나온 무리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그를 둘러싼 남자들을 제압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인천에서 이미 전화 받았습니다. 그쪽에 얼마나 많은 인원을 투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정리됐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그럼, 수고.”

 

 


 끝없이 쏟아지는 인파를 뚫고 동수를 막아선 찬열은 그의 앞으로 하나 둘 덤벼드는 놈들을 처리하며 그에게 말했다. 

 

“김종인한테 전화해. 함정이라고, 그쪽에도 아마 붙었을 거다.”

“네, 네. 형님.”

 

그가 시간을 버는 동안 동수가 서둘러 종인에게 연락을 넣은 것은 그들이 큰 집으로 이동하기 전이었다. 일부러 김진성이 깨어났다는 정보를 여기저기 흘리며 이동한 것은 강서건 성남이건 전력을 쏟아부어 한번에 쓸어버리길 바래서 였다. 준면은 먼저 도착해 큰 집의 조직원들을 지휘했고, 종인과 영호가 합류한 뒤에 함정에 빠진 척, 그들을 잡은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형님. 이쪽은 처리됐습니다.”

[그래.]

 

종인의 전화를 받은 찬열이 짧게 대답하며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었을 때는 이미 그 쪽도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인원이 많은 것은 물론 벅찬 일이긴 하나 그래봤자 잔챙이, 함정이라고 해봤자 단지 수로 몰아붙일 생각이었던 모양인지 생각보다 빨리 정리된 현장에 찬열은 흙 먼지를 털어내며 이동하고 있었다. 

 

차를 세워둔 곳 까지 와서야 그들은 아까의 폭발음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불에 타고 있는 차량을 멍하니 바라보던 성철이 욕지기를 뱉어냈다. 당장 발이 묶인 것을 떠나 다친 애들도 있는데, 남아있는 차량은 한 대. 10명 남짓의 인원이 한번에 타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형님.”

“일단 그쪽도 정신 없을 테니까.. 다친 애들부터 먼저 보내고, 권이 넌.. 택시 불러.”

“형님은 차로 가시는게..”

“됐으니까 출발해라.”

본인의 상처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당장 과다 출혈이나 쇼크가 올 정도는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인적이 드문 철거촌까지 들어올 택시는 별로 없었으나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니 괜찮을 것이라 판단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지는 차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던 찬열의 시야가 점점 흐릿해진 것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잠에서 깬 찬열은 회색빛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불이 꺼진 방 안을 잠시 둘러보다 상체를 일으킨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제 허리를 감쌌다. 통증에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던 찬열은 방 문을 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시선을 올렸다. 

 

“..니가, 왜. 여기에..”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백현이었다.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온 백현이 자신의 상처 위를 짚고 있던 찬열의 손을 확인하고 놀란 듯 하더니 들고있던 쟁반을 내려두고 그의 상체를 다시 뒤로 눕혔다.

 

“하..”

 

찬열의 느린 숨소리에 고통이 섞여있는 것을 감지하며 백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안절부절 못하며 메모장을 꺼내든 백현은 그 위로, 다급하게 글을 적었다.  

 

「 지금 움직이시면 안돼요. 」

“..니가 왜, 여기 있냐니까.”

「 권이 아저씨가 연락 하셨어요. 」 


택시 부르랬지 누가 그 쪽으로 연락을 하라고 했나, 지끈 거리는 머리에 한숨을 뱉어낸 찬열은 다시 제 앞으로 메모장을 내미는 백현을 바라보았다. 


「 이쪽으로 사람을 보내라고 하셨는데, 사장님이 다른 분들은 전부 바쁘시다고.. 그리고 조직원인 거 티 난다고. 」

“…돌겠네.”

 

찬열은 마른 세수를 하며 제 마른 입술 위를 혀 끝으로 적셨다. 그는 지금 제가 다친 상황이나 그 아픔보다, 당장 아이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니까 그렇게 도망치듯 집을 벗어난 뒤로 백현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 끝나기도 전이었으니 말이다. 뻔뻔하게 없었던 일로 치면 그만이긴 했지만, 아이의 앞에서 뻔뻔해지는 것이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백현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찬열을 부축해 일으켜 세운 김에 약을 먹여야겠다 생각했다. 들고 들어온 것도 그가 깨어날 때 먹일 죽과 약 봉투, 물이 올려진 쟁반이었다.

 

「 이거 드시고 약 드시래요. 」

 

찬열은 숨을 느리게 뱉어내며 천장을 바라봤다 다시 제 앞으로 내밀어진 메모장 위를 훑었다. 

 

“누가.”

「 아까 의사 선생님이.. 」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가.”

「 혼자. 」

“팔 다친 거 아니잖아.”

 

메모장을 쓰던 백현이 손을 멈추고 돌아서는 것을 바라보지 않으려 찬열은 벽에 등을 기댄채 눈을 감고 있었다. 통증은 조금 있었으나 당장 움직이는 것이 버거울 정도도아니었다. 정확하게 복부와 어깨를 스치듯 베었다. 의사도 오히려 그의 상처보다는 피로 상태를 체크하고 돌아가야 했을 정도니까. 찬열은 아이가 들고 들어온 쟁반을 잠시 내려다보다 약 병으로 손을 뻗었다. 안에는 수면제를 비롯한 진통제,소염제를 비롯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대충 약을 털어내듯 손바닥 위로 떨어트린 찬열이 물과 함께 그것을 삼켜내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


느리게 숨을 뱉어내며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연 찬열은 계속되는 비에 미간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 창문을 닫지도 못했다. 처마 끝으로 방울 져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는 백현의 옆 모습을 바라보며 찬열은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서 있었다. 


비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굴 위를 바라보던 찬열의 손 끝이 창틀을 쓸어 내렸다. 눅눅한 비 냄새가 창문을 너머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순식간 이었으나 찬열은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이를 마주하고 있으면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오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제가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론 똑같았다. 귀머거리와 벙어리라, 아주 잘도 엮였네. 찬열은 담배를 꺼내 물며 미간을 찌푸렸다. 

 

「 지금 담배 피시면 안돼요. 」

 

찬열은 제 앞으로 내밀어진 메모장을 발견하기도 전에 가까이 다가오는 백현을 느끼고 손을 제 등 뒤로 돌렸다. 담배 연기에 기침을 하던 백현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으나 아이는 자신이 담배를 숨기는 줄로 알았는지 조금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진통제라도 더 주던가.”

 

아이는 잠시 저를 바라보다 다시 메모장 위로 무언가를 끄적였다. 찬열은 그 작은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아직 반도 태우지 않은 담배 꽁초를 발 밑으로 떨어트려 밟았다. 

 

「 진통제도 너무 많이는 안된다고 하셨어요.. 」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나 반쯤 농담처럼 했던 말에 진지하게 대답하는 백현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찬열은 아이가 사용하는 작은 메모장과 가느다란 손가락, 그리고 그 끝에 들린 펜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생각해보면 백현과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 있었던 적도 없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대화는 지극히 일방적이고 단편적이었다.


“너, 학교는..”


백현은 그의 질문에 느리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조금 늦다고 생각되지 않는 걸까. 그러면서도 찬열의 질문에 답을 적는 손은 평소보다는 조금 빨랐다. 

 

「 오늘 주말인데요. 」

 

아.. 탄식 같은 말을 뱉어낸 찬열이 고개를 들어 올리는 백현을 마주 봤다. 아이의 입술이 부드럽게 호를 그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찬열은 백현과 함께 있는 공간이 언제부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함없이 건조한 얼굴과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백현을 마주하면 찬열은 왠지 가슴이 답답했다. 아, 그래. 처음부터 그랬다. 언제부터 라고 한다면 사실 그건 아이를 마주한 처음 그 날부터 였을 것이다. 처음 시선을 마주했던 그 순간부터 아이가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려 던 것은 아마 자기 방어 였을테지.


 

 

“형님.”

[그래. 몸은,]

“괜찮습니다. 의사까지 보내실.”

[시끄러 이 새끼야. 내가 너 몸관리 하라고 했냐 안했냐.]


필요는 없었다고 말을 이으려던 찬열은 제 말을 끊고 들어오는 준면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 찬열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는 없었다.


“.. 죄송합니다 형님.”

[큰 형님 깨어 나셨다. 마무리 될 것 같으니까 좀 쉬다가 올라와라.]

“네?”


당장 백현부터 데려가 달라 말하려던 찬열은 뜻밖의 소식에 그의 말을 되물었으나 준면은 바쁘니까 끊어. 짧은 답을 끝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찬열은 잠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다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뱉어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찬열은 아직도 바닥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잠시 멈칫했다. 비가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찬열은 하염 없이 나약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멀리서 보이는 바다의 지평선, 그 너머의 하늘조차 회색빛 구름이 넘실거리는 날, 서늘한 바람이 몸을 감싸는 기분에 찬열은 그 스산한 바람 소리도 빗소리도 멀리서 들릴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차라리 다행인가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아마 그 소리마저 저를 괴롭혔더라면 저는 진작 무너져 내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치게 고요한 것은 비 때문 만은 아닌 듯 했다. 집을 통째로 빌린 것인지 아니면 이런 계절, 비까지 오는 날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는 것인지 집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이라고는 저와 백현의 것이 전부였다. 사실 찬열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는 시기나 여행을 즐기는 휴가지에 대한 감각도 없었다. 당연히 이런 시기에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찬열은 꼬박 하루를 잠만 자는데 소요했다. 그동안의 피로가 정적 속에 가라 앉은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정신이 맑아진 것은 다음날 오전이 되어서였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온 그가 툇마루에 앉아 처마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빗줄기가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찬열은 늦은 감상을 토해냈다. 비가..

 

「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네요. 」

 

제 앞으로 내밀어진 종이 위로 적힌 글씨를 읽어내며 찬열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시선이 느리게 움직여 백현의 얼굴 위로 닿았을 때, 찬열은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찌푸렸다. 

주머니 안으로 메모장을 갈무리하는 백현의 손 끝을 바라보던 찬열은 제 숨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

그것은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 있던 말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주변의 소음들이 점멸하는 순간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던 때의 기억은 흐릿하나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난간에 기대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

 

“ .. 세상이 이렇게 고요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


평생을 원치않던 소란함 속에 살고있던 찬열에게는 세상은 온통 시끄럽고 무의미한 소음들이 가득했던 곳이라 이렇게 조용한 세상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비가 오고 각인하며 처음으로 세상의 소리들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네.”

 

아직 이 익숙하지 않은 고요함이 불편해지기 전의 독백 같은 대화들, 그리고 저와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제 소울메이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지금 내가 들을 수 있는 게 당신 목소리 뿐인데.. 소울메이트.”

 

막연한 두려움과 막연한 기대를 안고 쏟아내던 제 목소리를 떠올리던 찬열은 제 옆을 스쳐 지나가난 인기척에 순식간에 과거에서 현재로 끌려 나왔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잡은 것은 백현의 가는 손목이었다. 

 

제 손안에 잡힌 손목을 잠시 바라보던 찬열이 아이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너..”

 

저를 내려다보는 아이의 시선을 느낀 찬열은 잠시 숨을 고르며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켰다. 아이의 팔을 가만히 끌어 당겨 제 옆으로 앉힌 그의 시선이 다시 흐릿한 지평선 너머를 향했을 때 찬열은 겨우 한 마디의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여기 있어라.”

 

이번에도 찬열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제가 묻고 싶던 말을 삼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가. 특별하게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일 테다. 아이를 보면 자꾸만 제 과거가 떠오르는 것도 아이와 제가 비슷한 곳이 많아서 일 뿐이라고 찬열은 생각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인정한 것이 있다면,

백현은 제 생각보다 더 저를 자극하는 아이라는 것이다.








[사무실 정리 될 때까지 나오지마. 너 있으면 정신 사나워.]


 사무실이 얼마나 난장판이 된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기회에 다시 리모델링이라도 하실 모양이다. 찬열은 당분간 사무실 금지령이 내려졌다. 뿐만 아니라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찬열은 그것이 저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출근. 안 하냐.”


계속 제 주변을 맴도는 것을 느끼긴 했으나 그가 할 질문을 눈치채지 못했던 터라 백현은 아주 잠깐 버퍼링이 걸리듯 그의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고 있었다.


「 사장님이 사무실 정리되면 나오라고 하셨어요.. 」


그는 제 답을 읽고도 잠시간 제 메모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듯 하더니 이마 위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아마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라 그런 것 같았으나 사실인 걸 어찌하겠나.. 백현은 조용히 다시 메모장을 거두어 내고 제 할일을 했다. 준면은 저에게 회사에 나오지 않는 동안 찬열을 부탁한다고 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지자 백현은 방에서 나왔다. 굳게 닫혀있는 찬열의 방 문을 바라본 그가 주방으로 들어서며 불을 켰다. 쌀을 씻고 밥솥의 스위치를 누르고 냉장고를 뒤져 식재료를 살펴보던 백현이 아랫 입술을 깨물며 심각한 표정을 했다.

사실 요리에는 소질이 없었다. 당연히 그가 꺼내든 것은 즉석 식품과 데우기만 하면 국이 되는 냉동 식품들. 그것들을끓이고 렌지에 돌리는 정도가 그에게는 최선이었다.

음식 냄새다 집 안을 가득 채웠을 즘 시간은 빠르게 흘러 시계바늘은 7이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백현은 식탁 위를 한 번 체크하고 찬열의 방문 앞으로 다가섰다.


똑똑- 작은 노크 소리가 들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찬열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제 방문 앞에 서있는 백현에게 시선을 두었다가 불이 켜진 주방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제 앞으로 메모장을 내미는 백현에게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 식사 하실래요? 」

“그래.”


집에 돌아와 그동안의 피로를 해소하려는 듯 잠만 자던 찬열은 아주 잠깐 눈을 붙이고 있다가 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반응하듯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한 얼굴로 식탁 앞으로 다가섰다.

대충봐도 평소 백현이 밥을 먹을 때와는 다르게 반찬과 국, 밥까지 가짓수가 많아진 밥상을 잠시 바라보던 찬열이 한 사람 분의 식기를 바라보며 백현을 돌아봤다.


“너는.”


제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 메모장을 꺼내드는 백현을 바라봤다.


「 저는 먹었어요. 」

“언제. 차리면서? .. 앉아.”


찬열은 다시 펜을 고쳐 쥐는 백현은 제 몫의 밥공기가 놓여있는 자리에 앉히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밥을 한공기 퍼내고 수저와 젓가락을 챙겨 그의 맞은편에 앉는 동안 백현의 시선이 저를 따라붙는 것을 모르는 척 했다.


“뭐해. 먹어.”


저를 바라보기만 하는 백현을 잠시 마주한 그가 김이 모락모락나는 국을 떠 먹으며 제법인데 같은 생각을 하다 먼저번 장을 볼 때 제가 잔뜩 쓸어 담았던 냉동 식품들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전부 제가 사둔 것들이었다. 그게 벌써 얼마 전이던가, 이게 아직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 제 앞에서 저를 따라 수저를 들고 있던 백현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집에서 밥 안 챙겨 먹냐.”


국을 떠 먹은 백현이 그의 말에 잔기침을 뱉어냈다. 찬열은 점점 빨갛게 변하는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낮은 한숨을 뱉으며 일어섰다. 물을 따라 그의 앞으로 내려다두고 다시 자리에 앉는 저를 백현은 잠시 바라보다 얼른 물컵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찬열이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요리를 못해서 못 챙겨 먹는 거면 내가 할 테니까.”


백현은 심호흡을 하며 제 가슴께를 주먹으로 두드리다 그의 말에 잠시 행동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그의 시선이 식탁 위로 꽂혔다가 다시 저를 마주하는 순간에 백현은 다시 잔기침이 터졌다. 사레가 단단히 걸린 모양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식탁 위를 정리하던 백현은 싱크대 앞으로 다가서는 찬열의 실루엣을 잠시 바라보며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그의 팔을 잡았다. 그가 수세미를 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 젓자 찬열이 잠시 백현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할테니까 넌 들어가서 쉬어.”


백현은 그의 모습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의 성격을 모두 알 수 있을 만큼 길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저에게 이렇게 다정하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던 터라 백현은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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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편 업로드를 하기 전,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이번에 혐생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사실 글이 잘 안써지기도 했고 답답해 하실 부분들이 많았던 것도 알고 있지만, 제가 원래 쓰려던 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 가득 담아 오늘도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 _ _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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