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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08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warning _ roman noir








강남의 관리자 밑에 있던 조직원들은 배신에 가담한 녀석들, 그리고 일찌감치 항복을 하고 다른 세력에 흡수된 놈들로 나뉜다. 배신에 가담하고 살아남은 잔챙이들의 처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력도 남아있지 않아 개인으로 움직이는 이들이라 움직임이 쉽게 포착되지 않는데다 작정하고 숨어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원래대로 라면 하나씩 흩어져 도망을 쳐야 맞는 일 일텐데, 부산과 강원도로 이미 한 번 도망을 쳤던 놈들이 다시 강동으로 올라온 이유가 무엇일까. 게다가 강동의 일이라면 딱히 저들이 신경쓸 일은 아닌데 어째서 제가 필요한 것인가. 그때 제가 강남의 조직원들을 처리한 것은 맞지만 고작 그들의 얼굴과 루트를 이미 안다는 이유로는 완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전 강남 조직원의 행동 대장인 이 원이 죽고 난 뒤에 그 오른팔 격인 녀석은 부산까지 도망을 쳤다가 찬열에게 잡혀 항복을 했다. 그는 조직을 떠나 완전히 타국으로 도망갈 것이라고 했었다. 그런 그가 현재 강동에 있다는 것은 누군가 그를 돕는 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찬열은 꼬박 일주일을 강동에 있다는 조직원들을 찾기 위해 뛰어 다녀야 했다. 물론, 실질적으로 뛴 것은 찬열의 밑에 있는 성철과 권이었으나 그도 꼬박 일주일을 그들과 함께 차에서 시간을 보내며 피로를 쌓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형님. 아무래도 눈치챈 모양입니다. 이렇게까지 안 보일 수가 없어요.”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어라.”

“저희가 교대로 붙을 테니 형님은 눈 좀 붙이고 나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안개처럼 휘날리며 창문 위로 들러붙었다. 비가 오니 찬열의 피로감은 정점을 찍었다. 그는 한숨을 뱉어내며 눈을 감고 제 관자놀이 위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성철이 제 눈치를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제 상태를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한손으로 꼽을 정도 였다. 그 중에 성철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아마 더 제 걱정을 하는 모양이었다.

누적된 피로는 세 사람 모두 비슷할 터였다. 제가 여기서 들어가지 않는다고 버티면 아마 둘은 꼼짝없이 저와 행동을 같이할 것이다. 그는 결국 알겠다는 듯 차를 돌리라고 손짓했다. 찬열의 손짓에 시동을 건 성철이 백미러로 그를 흘끔거렸다. 

 

“집으로 모실까요, 형님?”

“사무실.”

 

느리게 눈을 감은 찬열이 의자 등받이로 몸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아니다. 집으로.. 네. 성철이 작게 답을 하며 핸들을 틀었다. 




찬열은 집이라는 단어에 딱히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저에게 해당사항이 없던 곳이기도 했고 사실, 가정이나 집에 대한 환상도 없었다. 집을 산 것도 준면이었고 그걸 제 앞으로 달아둔 것도 준면이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찬열에게 집이라는 곳은 그냥, 씻고 잠을 자고 옷을 갈아입는 정도의 행위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사무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곳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찬열은 불이 꺼진 거실을 바라보며 센서등이 켜진 현관을 지나 안으로 걸음 했다. 답답한 듯 셔츠 단추 위를 움직이던 손이 세 번째 단추를 지나고 있을 때, 거실 불이 켜졌다. 

 

갑자기 환해지는 시야에 찬열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문소리에 나온 것인지 아이는 거실 불을 켜고 저를 마주하자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거실 안으로 들어선 찬열이 손목을 내려다봤다. 벌써 2시가 넘었는데, 늦게 까지 일하고 다음날 또 아침 일찍 등교를 하는 아이를 알아서 지금쯤 이면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찬열은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얀 얼굴 위로 묻어난 피로감을 느꼈다. 

 

“..너.”

 

고개를 숙였던 백현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가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의아함을 느끼기도 잠시 제 티셔츠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무언가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붉은 선혈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을 바라보던 백현은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뒤로 젖힌 시야가 하얀 천장을 담았다. 코피가 난 모양이다. 하필이면.. 지금.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전에 백현은 난처한 표정으로 서서 손으로 제 코를 막고 돌아서려 했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현이 몸을 돌리기 전, 찬열이 빠른 걸음으로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식탁 위에 티슈를 뽑아 들었다.

 

“뒤로 젖히지 말고, 숙여.”


그의 커다란 손이 제 뒤통수와 목 언저리를 감싸듯 잡고 고개를 내리는 순간에 백현의 시야가 천장에서 바닥으로 확 바뀌었다. 티슈로 코를 막고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백현이 서둘러 그의 손에서 티슈를 빼앗듯 제 쪽으로 당기며 뒷걸음질을 쳤다. 

 

“가만히 있어.”

 

백현은 제 목과 코를 잡느라 두 팔로 저를 감싸듯 서있는 그의 품 안에서 눈을 깜빡이며 입으로 숨을 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의 손 위로 제 숨이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밀어내는 제 손길에 미동 없이 피를 지혈하듯 누르고 있던 그가 제 손을 잡아 티슈 위로 얹고 다시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잠은 왜 안자고, 지금까지 뭐 하느라 코피가 나.”

 

딱히 추궁할 마음은 아니었으나 저도 모르게 뱉어낸 말은 딱딱하기 그지 없었다. 티슈를 더 뽑아 아이의 손에 묻은 피를 닦고 얼굴을 잡아 피가 더 흐르는지 살피는 시선에 아이는 숨을 죽인채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찬열은 괜히 한숨을 뱉어내며 아이의 얼굴을 놓아주었다. 저를 피해 숙인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의 동그란 정수리를 바라보던 그가 한숨을 삼켜내며 말했다.

 

“들어가서 자라.”

 

고3, 한창 공부를 할 나이인 걸 알았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평범한 아이들보다 더 바쁘게 살아가는 아이에게 피로는 어쩌면 당연히 따라붙는 것일 테다. 갚아야 할 빚, 그것을 전부 혼자 떠안고 살아가는 아이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답답함이 일었다. 욕실로 들어선 찬열은 세면대에 물을 틀며 제 손에 묻어난 붉은 선혈을 바라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찬 물을 틀어 핏자국을 씻어낸 하얀 세면대 안으로 붉은 물이 흘러 드는 것을 바라보던 찬열이 한참을 제 손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처음, 아이를 봤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비가 오는 골목길, 깨진 유리 위로 넘어진 작은 실루엣. 네온 사인에 환하게 빛나는 손바닥 위로 베어 나는 붉은 선혈이 떠올랐다. 손바닥 위의 붉은 피를 옷 위로 대충 문질러 닦던 손길이 떠올랐다. 찬열은 거친 손길로 물을 잠그고 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흐르는 물 소리가 마치 그 날의 빗 소리 같이 느껴졌다.


셔츠를 벗은 그가 찬물을 얼굴 위로 끼얹었다. 매일 여기저기 다치고 찢기는 것이 일상인 제가 아이의 피로한 얼굴, 바닥으로 떨어지는 선혈에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거울 너머로 마주하며 찬열은 미간을 찌푸렸다. 

 



 

 

 


벙어리 

장애인

 

백현은 익숙하게 제 자리에 앉으며 어지러운 책상 위로 책을 올려두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익숙하게 듣던 말들은 이제 저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말들 중 하나였다. 나이와 성숙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나이가 들어도 저에게 쏟아지는 어리석은 비판들은 여전했다. 

 

“야, 이것 좀 빨아와.”

 

제 등 뒤로 툭-닿았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체를 잠시 내려다보던 백현은 그것을 들고 자리를 벗어났다. 냄새나는 걸레를 들어 개수대 앞으로 다가선 그가 물을 틀어두고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부딪히는 것 보다 피하는 것을 선택한 삶. 늦게 들어가면 늦게 들어가는 대로 욕을 하고 괴롭힘을 당할 테지만 일단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수업이 다시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잊혀지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그냥 정말 저를 자신들의 눈 앞에서 치우는 것이 목적일 때도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상처를 받았다. 저도 인격이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아프지 않고, 싫지 않을 수있단 말인가. 백현은 제 친모로부터 버림받았을 때부터 이미 사람에 대한 불신을 키워온 사람이다. 타인의 생각 없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를 받고 저를 보며 속닥이는 목소리들에 눈물이 차오르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호소를 하고 도와 달라는 요청을 해보지 않은 것은 어려서부터 였다. 그런 것은 소용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저에게 쏟아지는 어리석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포기가 빨랐다. 백현에게 포기란 기대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면 백현은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에 그의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해결했다. 문을 열고 거실을 거쳐 방 안으로 들어선 그가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불이 켜진 방 안으로 들어서며 의자 위로 가방을 내려둔 백현은 책상 위로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색이 다른 네모난 상자 두 개가 놓여있었다. 그 위로 적힌 비타민, 오메가 같은 단어를 느리게 읽은 백현은 그 것을 들고 눈을 깜빡였다. 잘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알약이 굴러다니는 느낌이 났다. 이 집에는 저와 딱 한사람 만이 살고 있었다. 가구를 들일 때를 빼면 딱히 방문객이랄 사람도 없는 집이었다. 이 집에는 객으로 머무는 저와 주인으로 있는 그. 단 둘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저에게 이런 물건을 남겨두고 갈 사람이 아닌데.. 오히려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이 방에 본인의 물건을 두고 나갈 사람도 아니다. 

백현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가느다란 손 끝이 작은 상자 위로, 그 위에 적힌 단어들 위로 느리게 움직였다.   




 

 



오전부터 날씨가 흐릿하더니 오후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수량 60%, 찬열은 핸드폰 위로 찍힌 숫자와 비구름을 가만히 바라보다 쯧, 혀를 찼다. 소나기인가 싶었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것을 보니 금방 그칠 것 같진 않았다. 결국 그는 집으로 걸음을 돌렸다. 

 

집 안으로 들어서던 그는 익숙하지 않은 온기에 현관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거실로 들어서며 불이 켜진 주방을 바라본 찬열은 불 앞에 서있는 마른 등을 잠시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저녁 시간인 모양이었다. 일을 가기 전 저녁을 해결하고 가는 모양인지 백현은 식탁 위로 반찬 몇 가지-그래봤자 참치나 김 같은 것이 전부인 부실한 밥상이었지만-를 올려두고 그릇을 꺼내고 있었다.

 

“반찬이 이게 다냐.”

 

백현은 아무도 없던 집 안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언제 집에 온 것인지 찬열이 바로 제가 차려둔 식탁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는 저를 바라보는 놀란 눈동자를 마주하며 그릇을 꺼내느라 자신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먹으니 살이 붙나,”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백현은 부끄러운 감정이 차올랐다. 서둘러 배만 채우고 나가던 제 식사 시간을 그에게 들키리라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백현은 그릇을 닦으며 묻은 물기를 바지 위로 문질러 닦고 잠시 그를 바라보았으나 찬열은 등을 돌려 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저를 붙잡는 손길에 걸음을 멈춘 그는 제 셔츠를 잡은 마른 손과 하얀 얼굴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은 누구랑 대화를 할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저를 잡은 손길이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찬열은 그가 제 옷을 놓고 주머니 안으로 손을 찔러 넣는 것을 보며 다시 깨달았다. 이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비가 올 때의 찬열은 늘 사람들의 기척을 읽고 입모양을 읽어내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제 눈과 감을 평소의 배로 사용해야 했다. 비가 그칠 때 쯤이면 엄청난 피로감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가 메모장을 넘기고 펜을 움직이는 동안 찬열은 눈을 감았다 뜨며 아이의 얼굴 위를 바라봤다. 정확하게는 정수리 위로 향해있던 시선은 아이가 다시 고개를 들자 천천히 떨어졌다. 

 

「 저녁 드셨어요? 」 

 

메모장 위로 적힌 글자를 하나하나 곱씹듯 바라보던 찬열은 느리게 시선을 들어 아이의 눈을 마주했다. 백현은 그를 올려다보며 그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아니.”

 

 

 

백현이 차린 저녁상은 참치 캔, 김, 김치가 전부였다. 국이나 찌개하나 없이 조촐한 밥상에 밥만 두 공기가 놓인 식탁 위를 바라보던 찬열은 제 목을 긁적이는 마른 손을 바라보며 수저를 들었다. 제 집에 식재료는커녕 쌀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찬열은 당연하게 아이의 식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또한 원래 식사라는 것을 끼니마다 챙기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사무실에 있을 때야 종인이나 영호, 준면에게 이끌려 밥을 챙겨먹곤 했지만 스스로 집에 먹을 것을 사다둔 적은 없었다. 그러니 아이의 밥상이 이해가 되는 찬열이었다.

그동안 혼자 살며 제 몸을 돌보기는커녕 일과 학업을 해결하기도 버거웠을 아이의 상황 역시도 이해했다. 이렇게 끼니를 때우는 것이 습관처럼 이어졌을 것이다. 저처럼.

 

“알바. 몇 시부터 하냐.”

 

젓가락이 맞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리던 조용한 식탁 위에서 찬열은 느리게 입술을 달싹였다. 아이는 그의 질문에 익숙하게 메모장 위로 펜을 움직였다. 

 

「 8시요. 」 

찬열은 메모장 위로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밥과 반찬 위로 움직이는 손을 따라 백현의 시선이 잠시 따라붙었다. 그가 다시 질문을 던질까 아이는 아직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 손 끝으로 찬열의 시선이 잠시 닿았다. 떨어졌다.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 찬열이 느리게 입술을 열었다. 

 

“..밥 먹어.”

 

찬열의 목소리에 아이는 다시 제 옆으로 펜을 내려두고 젓가락을 들었다. 차라리 혼자 식사를 하게 둘 걸 그랬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제가 여기서 일어나는 것을 더 불편하게 여길 테니 찬열은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찬열의 젓가락 끝이 김으로 한 번.. 밥으로 한 번, 참치로 한 번 천천히 움직이자 백현의 젓가락이 그의 움직임을 쫓듯 느리게 따라 붙었다. 김으로 한 번.. 밥으로 한 번, 참치로 한 번.

 

 


창 밖으로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백현은 등교를 하기 전,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정리하다 문득 자신이 이 일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집, 주방에 서서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익숙해진 것은 매일 저녁을 집에서 때우고 나가며 생긴 습관 때문일 것이다. 이제 앞으로는 편의점에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백현은 집을 나섰다. 교복을 입은 무리들 사이로 그의 모습이 자연스레 섞여 들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들의 사이에 완벽하게 스며들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매일, 매 순간 깨닫곤 했다. 실내화를 꺼내 신다 무심결에 손을 넣어보지 않았던 제 자신을 탓하며 백현은 발을 다시 빼냈다. 발바닥을 손 끝으로 매만지자 무언가 툭 걸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압정이었다. 다행이 깊게 박히진 않은 듯 했으나, 양말 위로 붉은 선혈이 스며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피가 스며 나온 하얀 발바닥 위를 잠시 바라보던 백현은 데구르르 굴러 가는 압정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신발장 앞에 툭- 부딪혀 멈춰서는 것을 허리를 숙여 주워 들었다. 다른 사람이 또 밟는 일은 없어야 겠지 싶어서였다.  

백현의 가는 손가락이 살며시 떨렸다. 아픔보다는 놀라움 때문이었다. 스스로가 이렇게 안일한 행동을 할 만큼, 요즘의 자신이 얼마나 풀어져 있었는지 깨닫게 되는 것은 없었으니까. 평범한 집에서 평범하게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하며 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백현은 놀라웠다. 미간을 찌푸린 그가 실내화를 뒤집어 압정을 손바닥 위로 탁탁 털어냈다. 그것을 갈무리 하여 쓰레기통 안으로 던지듯 뿌린 백현이 실내화를 다시 고쳐 신고 교실로 향했다. 

 


 

 

“야, 너 설마 귀도 안 들리냐?”

“킄크, 야. 눈도 안 보이는 거 아닐까?”

 

제 식판 위로 쏟아지는 먹다 남은 반찬 찌꺼기를 바라보며 백현은 가만히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좀 안 먹는다고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제가 지금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더 큰 괴롭힘을 몰아온다. 백현은 빠른 계산을 끝내고 거창한 이유 없이 행해지는 폭력을 감내하는 중이다. 

 

“아, 진짜. 이 새끼는 재미가 없어. 재미가.”

“뭘 해야 반응을 하냐, 도대체-”

 

툭툭- 제 뺨을 내리치는 손에 백현의 고개가 옆으로 툭툭- 돌아갔다. 여린 피부가 금세 발갛게 물드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지 그들은 웃으며 백현을 훑어보기만 했다. 

 

“때려도 안돼, 걸레짝을 만들어도 안돼,”

“진짜 꼴 보기 싫은데, 죽여야되나.”


백현은 그 목소리에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저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된 적이 있었나를 생각했던 적은 중학교 때였다. 이제 그들이 저를 싫어해서도, 제가 그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도 아님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이유가 없었다. 정말 제가 싫어서? 아마 아닐 것이다. 그들은 그냥 심심풀이로 저를 때리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기분을 풀기 위한 도구로 저를 이용하는 것 일 수도 있다. 

 

때리고 괴롭히고 어떻게 해도.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쉬운 사람이 바로 저 이기 때문에 제가 그들의 타깃이 될 뿐이라는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오며 알게 되었다. 원래 폭력이나 따돌림의 이유라는 것이 거창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저도 거창하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괴롭힘들에는 말이다.

 

“킄크, 미친아. 이 새끼 죽이고 감방 가고 싶냐?”

“야. 가자, 시간 아까워.”


그들이 정말 저를 괴롭히는 시간조차 아까워했으면 좋겠다고 백현은 생각했다. 더럽혀진 식탁 위를 바라보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멀어지는 등을 바라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저 또한 그들에게 시선을 주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으니까. 

식판을 비우고 휴지를 가져다 상 위를 닦았다. 국과 김치, 국물이 흐른 바닥을 닦으며 백현은 역한 음식 냄새에 토악질이 일었으나 꾹 참으며 바닥을 깨끗하게 닦고 화장실로 향했다. 저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들, 아무 감흥 없는 눈빛 들을 지나쳐 화장실로 향한 백현은 하얀 와이셔츠 위로 여기저기 물든 얼룩들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백현은 결국 체육복을 입은 채 하교를 했다. 물에 젖은 와이셔츠는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돌아가서 바로 세탁을 해야겠다 생각하며 교정을 빠져 나온 그는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는 제 발걸음 앞을 가로막는 그림자에 걸음을 멈췄다.   

 

“야, 백현아. 너 돈 좀 있냐?”


차라리 저를 때리거나 제 물건들을 더럽히는 종류의 괴롭힘이라면 참고 피해가겠지만 이런 종류의 괴롭힘은 백현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 였다. 물론 돈이 없어서 였다. 돈이 있어서 뺏기는 것과 돈이 없어서 맞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싫었는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도대체 무슨 날일까. 제 스스로의 나태함과 안일함을 이렇게 꾸짖는 것일까. 하루에 이렇게 몰아치듯 저를 괴롭히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백현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들 사이를 빠져 나가려다 가방을 빼앗겼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제 가방을 뒤집어 탈탈 털어내며 안에 있던 물건들을 바닥으로 쏟아냈다. 그래봤자 책과 공책, 볼펜들 몇 자루, 와이셔츠가 전부인 가방 안에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있을 리는 없었다.  

 

“백현아, 너 맨날 알바하잖아. 왜 돈도 안 들고다녀? 넌 그냥, 맞고 싶어서 태어난 애 같다. 어?”

 

세상에 맞고 싶어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그러나 백현은 제 앞으로 쏟아지는 말에 시선을 떨어트린 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지쳤다는 표현이 맞을까. 아니 제 말을 들어줄 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의 체념과도 같은 것일까. 백현은 답답한 속을, 어지러운 머리를 어찌하지 못하고 바닥 위에 떨어진 제 물건들을 줍기 시작했다. 

 

“아오, 답답해. 이 벙어리 새끼 진짜.”

 

그 느릿한 손짓을 바라보던 아이가 욕을 짓씹듯 뱉어내며 제 어깨를 발로 걷어차는 힘에 백현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픔보다는 먼저 체육복도 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거면 그냥, 이미 더러워진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 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했다. 

 

“그냥 가자. 이새끼 뭐.. 있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사람은 자아가 위협 받는 상황에 방어 기제를 통해 자신을 보호한다고 했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것이 전치, 화가나는 일을 다른 이에게 분풀이 하는 것이 바로 전치라고 배웠다. 그들은 자신의 기분을 풀기 위해 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그럼 저는 어떤 방어 기제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것인가. 백현은 작년부터 제 안에서 되풀이 되는 이 질문에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백현은 고개를 숙이며 제 안에서 되풀이되는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제 자신을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할 수 있을까. 하고 싶기는 할까. 답을 찾기 전에 질문이 늘어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다. 저는 스스로 답을 회피하며 질문에 질문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제 마지막 질문은 언제나, 

이 모든 게 언제쯤 끝이 날 것인가. 였다.

 

“야, 변백현!”

“뭐냐.”

백현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반쯤 나갔던 정신을 붙잡았다. 조금,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저를 둘러싼 무리들 사이로 파고든 인영이 저를 일으켜 세움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종인은 제 앞에 서있는 교복을 입은 학생, 그리고 그 옆으로 술에 취한 것인지 축- 늘어져 부축을 받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교복 입고 잘하는 짓이다- 하며 혀를 쯧쯧 차다가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에 축 늘어진 몸을 슥 훑었다. 

 

“변백현?”

“..누구.”

“얘 왜 이래.”

그는 백현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 둘의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단순히 잠이 든 것인지 기절을 한 것인지를 살피기도 전에 여기저기 더러운 먼지와 발자국이 찍힌 체육복 위를 바라보며 종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야. 너.”

“아저씨는 뭔데요.”

“아저, 후- 야. 너 이리와봐.”

아저씨라는 말에 꼭지가 돈 것 같은 표정으로 손을 까딱-인 종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은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얘 부축하기도 힘드니까 좀 비켜요.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에 종인이 허- 하고 헛웃음을 뱉어냈다. 

 

“너 얘 친구냐?”

“아저씨는요.”

“아저씨,..으느르그.”

“얘 친구에요?”

“뭐.. 비슷해.”

“..저도. 비슷해요.”

 

종인이 눈썹을 찌푸리며 은재를 바라봤다. 상식적으로 본인이 때린 아이를 부축해서 데려가는 아이는 없겠지 생각했다. 축 쳐진 백현의 몸을 내려다본 그가 은재가 잡고 있던 반대쪽 팔을 잡아 제 어깨 위로 걸치듯 올렸다. 

 

“얼굴. 알지?”  

“무슨 얼굴이요?”

“어떤 새끼들인지, 봤냐고.”

“.. 네.”

“그럼 됐어.”


종인은 일단 가까운 사무실로 백현을 데려가기로 했다. 보아하니 병원으로 갈 정도의 상태는 아닌 것 같고, 우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거기가 제일 가까웠으니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드나들 곳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종인은 제 행동에 변명을 만들듯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백현을 부축해 걷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종인은 긴 소파 위로 백현을 눕히고 두리번 거리며 실내를 확인하는 은재를 올려다봤다. 


“물 줄까?”

“..괜찮습니다. 그런데, 병원 안 데려가도 되는 겁니까?”

“어디 부러지거나 그런 것 같진 않고. 병원 가도 딱히 할 거 없을 거다.”

 

게다가 병원에 데려간다고 해도 정신이 들면 또 곧바로 퇴원을 할 백현을 뻔히 아는 탓에 종인은 아이가 깨어나길 기다리기로 했다. 흙먼지가 묻은 체육복을 바라보던 종인은 백현의 것 인 듯 자크가 반쯤 열린 가방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는 백현의 친구를 잠시 바라봤다. 

 

“그거, 얘 거냐?”

“네.”

“이름이 뭐냐.”

“제 이름은 왜요.”

저를 경계하듯 바라보는 아이의 눈을 마주하며 종인은 헛웃음을 흘렸다. 당돌하게 눈을 마주하는 걸 보면 저를 무서워서 해서는 아닌 것 같은데,

 

“얘 깨어나면 누가 데려다 줬는지는 알려줘야지.”

“..됐고요. 얘 집 모르세요?”

“..아는데?”

“집에 안 데려다 줘도 되요?”

“괜찮아. 여기도.”

“..”

뭐가 괜찮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종인에게서 고개를 돌려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는 백현을 바라봤다. 오늘 백현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덩치가 큰 아이들의 틈에서 흔들리는 마른 몸을 발견한 뒤에는 저도 놀라 소리부터 질렀다. 물론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알리길 꺼려하는 일 들을 제가 나서서 해결할 만큼 백현과 친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게다가 이렇게 심한 일을 당하리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백현은 말을 못할 뿐이지 공부를 못하는 것도 성격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 아이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지는 않는 다는 것을 은재는 오늘 다시 깨달았다. 


“몇 명이었어?”

“..다섯이요.”

주어가 없는 문장에도 은재는 그의 말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였을 지도 모른다. 종인은 은재를 바라보며 다섯. 손 끝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이름, 사진. 있지?” 

“걔네 얼굴, 아시면. 어쩌시려구요?”

“그건, 니가 알 필요 없고.”

“..”

 

은재는 핸드폰을 뒤적였다. 분명 어딘가 그 아이들의 사진이 있을 것이다. 그가 건낸 사진을 바라보던 종인은 제 핸드폰으로 화면을 찍고, 이름도 여기 적어. 자신의 핸드폰을 그에게 쥐어 주었다. 이래서 sns가 문제야.. 궁시렁 거리며. 소파 위로 안착한 그를 잠시 바라보던 은재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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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정당한 사유는 없습니다. 즐겁게 살아가기도 모자란 시간들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호우주의보를 쓰다보니 요즘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애정이 많은 작품인데.. 다른 글들도 전부 우울해져서 고민입니다 ;ㅁ; (심지어 떡썰도 우울해졌다고 한다..)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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