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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07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warning _ roman n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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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골목 안, 기척도 없는 그림자가 제 등 뒤로 따라붙는 것을 느끼며 종인은 시선을 느리게 움직였다. 어깨 너머로 제 뒤를 쫓는 남자의 실루엣을 담으려 숨소리마저 죽인 그의 등 뒤로 바짝 다가온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오랜만이다.”

“아씨, 깜짝이야!”

 

종인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진짜 깜짝 놀랐잖아 이새끼야!! 영호는 그의 주먹을 피하며 상체를 뒤로 빼냈다.

 

“너무 격하게 반겨주는 거 아니냐.”

“오냐, 진짜 반겨주는 게 뭔지 보여주마!”

 

그의 목 뒤로 헤드락을 걸 듯 팔을 두르려는 종인과 그의 팔을 탁탁- 쳐내는 영호의 씨름은 사무실 앞까지 계속 되었다. 

 

“너 진짜 큰형님이 묻어버린 줄 알았다.”

“그랬는데 안 찾았냐. 좀 찾아서 꺼내 줬어야지.”

“내가 뭐하러-”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의 소란스러움에 찬열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영호는 서둘러 그의 앞으로 다가서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형님- 

 

“큰형님은 안 계십니까?”

“오늘 일찍 들어가셨다. 심부름은,”

 

영호는 제 핸드폰을 꺼내 찬열의 앞으로 내려두었다. 화면 위로 익숙한 얼굴들을 확인하며 찬열이 미간을 구겼다. 

 

“강서 장민수랑 성남에 이성원입니다. 강남 관리자가 제거되기 전부터 거래를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강서 최서준이 직접 일을 시킨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장민수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게, 최서준한테까지 비밀리에 진행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요.”

 

가만히 그의 설명을 듣고 있던 찬열이 영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며칠을 혼자 조사하고 다니느라 힘들었을 것이 뻔히 예상된 그가 영호의 핸드폰을 다시 그에게 넘겼다. 

 

“자료, 넘겨두고. 넌 가서 좀 쉬어라.”

“네.”

“네.”

“넌 이리 와봐.”

“아..”

걸렸어. 영호의 짧은 대답을 따라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종인이 찬열의 손 끝을 바라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영호는 그 틈을 타 허리를 숙이고 돌아섰다. 종인은 그의 등과 찬열을 번갈아 바라보며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도 퇴근-

 

“내일 집에 좀 있어라.”

“저 출근하지 마요? 아-”

“형님이 가구 받으라고 하셨으니까 받아 놔.”


아-싸. 라고 외치려던 종인은 입술을 벌린 채로 굳어졌다. 그게 무슨 말이지? 찬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느릿하게 입술을 떼었다.


“그러니까... 형님 집에요?”

“어.”

“가구요..?”

“어.”


그 말을 끝으로 찬열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이제 가보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소파 위로 몸을 뉘었다. 종인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 쩝 입맛을 다셨다.

 


“아니-!!! 진짜 너무 하지 않아?! 가구라니-이!! 이런 고급 인력을 어?!”

 

왕-

 

“그치? 니가 생각해도 너무한 것 같지?”

 

종인은 간식을 들고 쭈그려 앉아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 반려견에게. 대답하면 간식 하나. 우리 이거 약속했잖아. 얼른 짖어줘. 나 억울하다구우- 거의 울 듯 구겨지는 얼굴을 바라보며 동그란 머리가 갸-웃 기울었다. 됐고, 간식이나 내놔. 그의 손에서 낚아채듯 간식을 빼어 든 궁둥이가 씰룩이며 제 집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종인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먹어라. 먹어. 거실 바닥에 대자로 뻗은 그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백현은 건물 앞에 서서 마른 손 끝을 매만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 놓고 뭘 망설이나 싶겠지만 그가 겁을 먹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대를 관리하는 김사장의 사무실로 가는 것이니 말이다.


1층에 들어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서 버튼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지난번에 왔을 때 종인이라는 남자가 하던 대로 3이란 숫자 위를 누르고 기다렸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지는 않을텐데 조용한 건물 안을 느끼며 백현은 괜히 아침 일찍 걸음을 한 건 아닐까 걱정이 들기시작했다. 낯선 복도를 따라 걸으며 백현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사람은커녕 인기척도 없는 조용한 실내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사무실 문 앞에 서서 똑똑- 노크를 한 그가 잠시 심호흡을 하는 동안에도 안에서는 제 노크에 대한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똑똑- 다시 노크를 한 백현은 여전히 조용한 사무실 안을 느끼고 난감한 듯 입술을 축였다. 돌아갔다 이따 다시 와야 하는 걸까..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과 아무도 없는 집이 어차피 똑같다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백현은 처음 이 곳에 왔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벽 쪽으로 큰 창문을 가리듯 내려진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들어온 햇빛이 비추는 데스크와 바로 옆에 있는 책장, 그리고 벽 쪽으로 붙은 그늘 진 소파 위로 누워있는 긴 실루엣을 발견한 백현은 걸음을 멈추고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미동없이 고른 숨을 뱉어내고 있는 실루엣 위를 바라보던 백현이 마른 침을 삼키며 문을 조심히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제서야 백현은 그가 집에 잘 들어가지 않는 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문 앞에 멈춰 섰던 백현의 걸음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옮겨갔다. 불도 켜지 않은 실내, 블라인드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이 전부인 곳에서 찬열의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는 아침이라기 보단 밤의 풍경 같았다. 

사무실 안에 있는 것은 그 뿐인 것 같았다. 백현은 결국 나중에 다시 오는 쪽을 택했다.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에 찬열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인기척에 잠에서 깬 그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 저를 바라보던 시선, 창가로 다가서던 발걸음을 떠올리며 그의 움직임을 되짚듯 시선을 움직였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가 사무실 풍경을 느리게 훑었다. 햇빛이 새어 들어오던 블라인드가 촘촘하게 닫혀있는 것을 바라보며 찬열은 다시 눈을 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녁에 오는 거였는데.. 사무실을 빠져나온 백현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걸음을 옮겼다. 나온김에 일자리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익숙하게 상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직원구함- 종이가 붙어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 안녕하세요. 직원 구하셨나요? 」 


손님인 줄 알고 인사를 했던 남자가 제 앞으로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하는 백현을 따라 엉겁결에 같이 허리를 숙이며 제 앞으로 내밀어지는 메모장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네? 하고 되물었다. 


“아.. 구했어요.”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백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를 숙이며 가게를 나왔다. 가게를 들어간 것이 세 번, 나온 것이 세 번쯤 되었을 때, 딱 세 번의 거절을 들었을 때 백현은 한숨을 뱉어내며 손목 위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1시 04분을 가리키는 시계 바늘 위를 바라보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나.. 생각한 백현은 햇빛이 쨍쨍한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에 매장 안으로 들어선 백현의 이마 위로 땀이 맺혀있었다. 개학을 하기 전에 일자리를 찾아둬야 할텐데..백현은 메모장을 접어 주머니 안으로 깊게 넣으며 생각했다. 점심을 대충 때운 그가 다시 걸음을 옮긴 것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졌으나 왠지 걸음이 축축 쳐지는 기분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느리게 닿았다 떨어졌다.  


“어. 뭐야. 너 여기서 뭐하냐?”

 

백현은 제 앞으로 다가서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걸음을 멈췄다. 종인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더니 익숙하게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물었다. 

 

“사무실 가는 길? 나도 지금 가는 길인데- 같이 가자.”

 

백현이 그의 말에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을 때는 이미 종인은 그를 이끌고 사무실 쪽으로 방향을 튼 뒤였다. 백현은 들고 있던 메모장을 접어 다시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으며 그를 따라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와 함께 사무실에 도착한 백현은 아까와는 다르게 몇몇 사람들이 건물 안에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며 조금 안도했다.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등을 바라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백현은 시선을 바닥으로 고정 시킨 채 안으로 들어섰다.  


“형님 또 여기서 주무시네.”

 

종인은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서며 동수와 눈 인사를 했다. 큰형님은? 그의 질문에 동수는 사무실에. 짧게 답을 하며 그의 등 뒤로 따라 들어오는 마른 실루엣을 바라봤다. 

 

“누구?”

“아. 얘가 백현이.” 

“아아.”

  

저를 바라보며 허리를 숙이는 백현을 잠시 바라보던 동수가 안쪽의 사무실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가 봐. 큰형님 안에 계시니까.”

 

그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며 잠시 소파 위로 시선을 돌렸다. 긴 실루엣은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이런 소란스러움이 익숙한 모양이라 생각하며 문 앞으로 다가선 백현이 문을 두드려 노크했다.  

 

“들어와.”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백현이 문을 열었다. 그는 제 데스크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 등장에 시선을 돌린 그가 저에게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는 그를 바라보던 준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쪽으로 앉아.”

 

백현은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몸을 움직였다. 그를 만나면 따져 물을 말들이 많았다. 저를 그 집에서 살게 해 준 것도, 그 가구들도, 제가 갚아야 할 빚이 얼마나 더 늘어났는지에 대해서도. 


“할말 있어서 오라고 했다. 어제 받은 것들에 대해서 궁금해 할 것 같아서.”

 

그의 말에 백현은 메모장을 꺼냈다. 

저를 왜 도와주는 것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이, 빚을 어떻게 다 갚게 할 생각 인지에 대해서 물으려던 백현은 어떤 것부터 질문을 해야 하는지 망설이다 결국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그에게 묻고 싶던 말들도, 물어야 했던 말들도 전부 대답을 듣는다고 달라질 질문들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는 머뭇거리는 저를 잠시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거 전부 다 니 빚으로 달아둘 거 맞아. 그러니까 그냥 쓰는 게 너한테도 이득일걸. 이미 결제도 했고.”


백현은 그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그래. 어차피 그에게 어떤 답을 들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가 저를 동정해서 도와주었건, 아니면 빚을 더 불리기 위해서 그랬건 어차피 지금 당장 살 곳도 없는 저에게 살 곳을 준 것도 그였고, 계약서대로 이자가 불어나는 것도 알고 있으니 갚아야 할 액수가 늘어나던 것은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 아르바이트 다시 구하고 있어요. 돈은 꼭 갚겠습니다. 시간을 조금만 주세요. 」  


결국 백현이 종이 위로 적어낸 말은 그게 전부였다. 준면은 저를 바라보는 백현의 얼굴과 메모장 위로 번갈아 시선을 옮긴 뒤에 답했다. 


“개학하면 공부나 열심히 해. 니 머리가 나한테도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그의 말에 백현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의 솔직함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그는 진사장처럼 자신을 팔아 넘기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백현에겐 지금 그런 확신이 필요했다. 


“아르바이트는 뭐.. 니 마음대로 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될 거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쟤가 그때 그 진사장네서 데려온 애야?”

“어. 너도 봤냐?”

“뭐. 대충.”


서류를 관리하던 동수는 이미 그의 차용증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엉터리 같은 서류, 차용증이라고 하기도 뭐한 그런 종이 한 장. 하지만 그날 현장에 나갔던 찬열이나 종인은 차치하고 준면도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는 것을 보며 의아하긴 했으나 워낙 엉뚱한 분이니 그러려니 했다. 뭐, 권한이란 것도 없었지만. 

찬열의 감흥 없는 표정이나, 종인의 놀라는 표정을 바라보며 동수는 별다른 생각도 없었다. 비쩍 마른 몸이나 건조한 눈빛 같은 것이 안쓰러워 보이는 어린 애. 그러나 세상에 불쌍한 애들이 한 둘 인가 어디,.. 당장 저희 식구들 중에서도 저런 케이스는 오히려 흔한 편에 속했다. 오늘 아이를 처음 본 그는 준면이 왜 그렇게 그 아이의 빚을 다 받아내고자 했는 지에 대해 의문점이 생기긴 했다.








정산을 끝낸 동수가 찬열의 앞으로 익숙하게 봉투를 내밀었다. 영호에게 직접 관심 끄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여전히 그는 찬열의 행방이 궁금했다. 제가 봐온 걸로만 따져도 벌써 몇 년, 매달 월급처럼 지급되는 돈은 전부 현금으로 받아가는 찬열은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그것을 들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여느 때처럼 익숙한 길을 오르던 찬열은 초록색 대문 앞에 서서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봉투를 꺼내들었다. 우체통 안으로 봉투를 밀어 넣으려 던 찬열은 제 등 뒤로 느껴진 기척에 멈칫하며 등을 돌렸다.

뜻밖의 조우, 이렇게 마주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찬열은 아주 잠깐 고민을 했다. 


“오랜만이네요. 박찬열씨.”


모르는 척 돌아서려는 저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찬열은 그 자리에서 등을 돌려 사라지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 오랜만이다.”

“역시. 그쪽 맞네요.. 매 달, 돈 봉투 넣고 가는 거.” 

 

그녀는 제 손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어보였다. 이번에는 답을 하지 않는 쪽을 택한 찬열이 느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음에 다시 오는 것이나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리게 걸음을 옮겨 다시 골목 안으로 사라지려 몸을 틀었던 찬열은 등 뒤로 쏟아지는 목소리에 다시 걸음을 멈췄다. 

 

“우리 오빤, 그 쪽 돈 안 받고 싶어해요.”

 “..”

“그 쪽 때문에 통장도 다시 만들었는데, 이사도 보내시게요?”


그녀의 말에 찬열은 생각을 멈추고 시선을 마주했다. 싸늘한 눈동자가 제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제 친오빠, 하준의 사고 이후로 찬열을 볼 때 마다 그런 표정을 했다. 

죽일 놈, 개새끼. 저보다 어린 여자아이의 시선이 세상의 그 어떤 시선과 손가락질 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어린 찬열 뿐만이 아니었다. 찬열은 아직도 그녀의 앞에만 서면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하준이 제 돈을 받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을 뿐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제 일당의 일부를 그의 앞으로 빼둔 것, 그리고 매 달 그에게 그 돈을 보내주었던 것. 그것은 단지 하준에 대한 사죄라기 보다 오히려 제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와도 같았으니까. 

아마, 하준도. 그리고 그의 동생인 희정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테다. 그러니 제 돈을 받고 싶지 않아 했겠지.


처음에는 계좌로 입금을 했다. 3년이 되지 않아서 계좌번호가 없어졌다. 아마 통장을 없앴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하준의 어머님이 일하시던 가게로 돈을 보냈다. 몇 번 저 대신 다녀왔던 영호는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 소금소태를 맞고 돌아온 것을 본 뒤로는 제가 직접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저라는 사실을 알린 적은 한번도 없었고 또 알리고 싶지도 않아서 새벽 시간을 틈타 우편함에 봉투를 밀어넣는 것이 현재로써는 그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아마 저라는 것을 짐작은 했어도 저라는 확신을 하지는 못했을 희정이 오늘 저를 마주한 것은 명백한 제 실수였다. 


찬열은 덧붙이는 말 없이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삽시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제 등 뒤로 따라붙던 시선이 멀어지고 나서야 찬열은 숨을 몰아쉬었다.

 

 

 

 

 

백현은 우당탕-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에 놀라 선잠이 달아났다. 책상 위에 엎어져있던 그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무슨 소리인지 확인을 하기 위해 문을 살며시 열었던 그는 어두운 거실을 내다보며 손목 위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3시 48분, 4시가 되어가는 새벽. 이 시간에 무슨 소란인가.. 설마 도둑이라도 든걸까 주춤거리는 걸음으로 거실로 나온 그는 현관 바닥에 널브러진 검은 물체를 내려다봤다. 

잠시 눈을 깜빡이며 숨만 쉬고 있던 백현은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술 냄새가 진동 하는 것을 보니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다 넘어진 모양이다. 백현은 그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 했다. 허나 제 힘으로는 그를 바닥에서 돌려 눕히는 것도 힘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는 저보다 키는 물론이고 몸집도 큰 사내였다. 침실과 거실, 그가 누워있는 현관을 바라보며 집이 넓은 것이 좋은 것 만은 아니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찬열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높아지는 시야에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고개를 들었다. 사무실이 아니라 집으로 온 것이 맞을텐데 종인이나 영호를 불러 온 것도 아니라 저를 옮길 사람이 없을 텐데 침실로 가까워지는 발이 질질 끌리듯 거실을 쓸며 이동하는 것을 느낀 찬열이 고개를 틀어 제 몸을 잡고 있는 손을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저 혼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가느다란 손가락, 바들바들 떨리는 팔을 내려다보며 저보다 작고 마른 몸이 떠올랐다. 눈을 깜빡이는 사이 거실을 지나 제 침실 문 앞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 제 방 침대 위로 순식간에 시야가 훅-훅 바뀌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던 찬열은 저를 침대 위로 내려놓는 조심스러운 손길을 바라보며 한숨을 뱉어냈다.


“하..”

 

아이는 저를 침대 위로 앉히고 잠시 바라보다 돌아섰다. 찬열은 상체를 침대 위로 젖히고 무거운 다리를 끌어 올렸다. 갑갑한 자켓은 대충 어깨 밑으로 떨어트리고 눈을 감았다 느리게 열었다 다시 닫기를 몇 번 반복했다. 순식간에 졸음이 몰려왔다. 마른 입 안이 조금 갑갑하게 느껴졌으나 지금 당장은 잠이 먼저였다. 


그러나 곧바로 제 팔을 잡아 다시 일으키는 힘에 찬열은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아이는 제 얼굴 앞으로 물 컵을 들이밀었다. 그는 무턱대고 투명한 유리 잔 안을 입술 위로 누르듯 끌어당겼다. 꿀꺽-꿀꺽 시원하게 목 뒤로 넘어가는 온도에 갈증이 해소되자 찬열은 시선을 들어 아이를 마주했다. 저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마주한 그가 물 컵을 떼어내고 하- 느리게 숨을 뱉어냈다.  

 

제 상체가 다시 뒤로 넘어가는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찬열은 잠에 빠져 들었다. 








백현은 개학을 하고 곧바로 일을 다시 시작했다. 평일 8시부터 1시까지 서빙과 청소, 마감까지. 경력이 있어 생각보다 빨리 일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학기가 다시 시작되고 책도 문제집도 다시 중고로 구했다. 백현도 알고 있었다. 당장 먹고사는 것도 힘들어 일을 하며 생계 유지를 해 왔지만, 공부를 하는 것 만이 제가 이 세상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어서오세요-”

 

딸랑이는 종소리에 익숙하게 인사를 뱉는 직원들의 틈바구니에 백현은 테이블을 닦으며 섞여 있었다. 지난 번 보다 작은 가게에는 저녁 시간때면 사람이 몰려 들어왔다. 한 순간에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겪고 나면 백현은 진이 빠졌다. 

 

“얘 이거. 3번 테이블, 5번 치우고.”

 

백현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쟁반을 들고 움직였다. 처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고민을 하던 사장님은 손과 발이 빠르고 눈치가 빠른 그를 보며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정신없이 주문이 쏟아지는 홀과 주방을 오가며 백현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사무실에 들어온 찬열은 사무실 안 쪽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움에 문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문 앞에 서있던 남자가 저를 보고 아는 척을 하며 턱을 들었다. 찬열은 눈인사를 하며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냐.”

“형님이랑 같이 왔다. 잘지내냐.”

“뭐, 정신없지.”

 

강동의 현 관리자 문도윤의 오른팔 한용석. 그는 저와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직급을 가진 사람이었다. 문도윤은 제 큰 형님인 김진성을 맹신하는 남자로, 준면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그의 오른팔인 용석과 저는 자주 얼굴을 마주했다. 처음에는 서로 성격이 비슷해 대면 대면하게 굴던 둘은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찬열은 안 쪽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용석을 바라봤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술을 열었다. 


“요즘 소문 이상해서.”

 

강서와 성남에서 거래하는 것을 강동에서도 알고 있었던 모양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진 것인가. 찬열이 그가 서 있는 등 뒤의 문을 바라보며 그의 옆으로 기대 섰다.

 

“무슨 소문.”

“큰 집 노린다는 소문이 있어.”


큰 집, 김진성의 관리 구역과 그가 소유하고 있는 자리를 조직원들은 대게 그렇게 불렀다. 이미 한 번 물거품이 된 시도였다. 강남의 전 관리자가 살해 당하며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준면이 갑자기 강남을 맡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나 짧은 생각을 마치고 용석을 바라봤다. 

 

“정확한 정보는.”

“그걸 알았으면 우리가 처리했지. 생각보다 복잡해. 오래 준비한 모양인데..”


지난 회의 전까지도 준면의 이동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큰 형님이 갑작스레 그에게 강남의 관리를 맡긴 이유는 그에게 뿌리를 뽑으라는 명령을 대신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호에게 그런 심부름을 시켰던 거라면, 행동을 개시하기에 앞서 대비를 해야 했다. 


“너도 조심해라.”

 

그의 말대로 준면뿐만 아니라 저나 제 밑의 조직원들 전부 타깃이 되지 않았다는 장담을 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준면을 무너트리기 위해 먼저 그 손발을 잘라내는 것부터 시작할 테니. 

 

“걱정도.”

“니가 아무리 괴물이어도 작정하고 덤비면 다 어려운 법이다.”

“주의하지.”


문 앞에 서있던 둘의 사이로 문도윤이 모습을 들어냈다. 찬열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그는 인사를 받으며 툭툭 어깨를 내리쳤다.


“오랜만이네 박씨.”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전히 잘생겼어. 이 집 식구들은 얼굴로 면접보고 뽑나?”

“어. 당연하지, 잘생긴 게 최고야.”

“농담은,”

머쓱해하는 찬열을 대신해 준면이 농으로 받아치니 문도윤은 껄껄 웃으며 준면의 팔을 툭툭 치고 사무실을 벗어났다. 그럼, 다음에 또 들르도록 하지. 그의 등 뒤로 따라붙는 용석과 인사를 한 찬열은 준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말없이 다시 제 사무실 안으로 걸음을 옮긴 뒤였다. 닫히지 않고 반 쯤 열려있는 문 사이로 준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찬열.”


찬열은 그의 부름에 걸음을 옮기고 안으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자리에 앉은 그가 턱 끝으로 소파 위를 가리켰다. 그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 찬열이 자리를 잡고 앉자 준면은 제 앞으로 툭- 사진을 떨어트렸다. 


“지난번 부산에서 잡았던 놈, 이놈 맞지.”


테이블 위로 올려진 사진을 바라보며 찬열은 그의 눈을 마주 봤다.


“네.”

“이 놈이랑 거래하던 놈들이 이번에 강동까지 올라왔다는데 니가 그 쪽으로 좀 갔다 와야겠다.”

“네?”

“왜. 뭐 다른 거 할 거 있어?”

“.. 아닙니다. 오늘 가면 됩니까.”

“빠르면 빠를 수록 좋지.”

 

강남의 전 관리자의 끄나풀 들이었다. 그때 제가 이들을 제거하면서 강남의 관리자를 완전히 뿌리 뽑는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나 이 놈들은 잔챙이에 불과했다. 부산과 강원도까지 도주를 했던 놈들이 다시 강동으로 올라온 것이 이상하긴 했으나 당장 급한 것은 이 문제가 아닐 텐데, 지금 당장 강서나 성남의 관리자를 압박해도 모자랄 판에 준면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허나 제 의견을 내세우기 전에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이 먼저였다. 제 형님, 준면을 전적으로 믿어야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찬열은 곧바로 강동으로 향했다.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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