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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백] drown

 


물에 빠져 죽다, 익사하다; 익사시키다 

흠뻑 젖게 하다; 잠기게 하다

삼켜 버리다




-

 어슴푸레한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새벽녘 하늘의 색이 어깨 위로 스며드는 거리를 거닐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불이 켜지지 않은 점포들을 익숙하게 스쳐 에스컬레이터 위를 걸었다. 

 

피부 위로 엉기는 물의 온도 

수면 위로 느껴지는 바람의 속도

 

 발을 담근 채 라인 끝에 걸터앉아 푸- 숨을 몰아 쉬었다. 이 시간에는 저를 포함해서 1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수영을 했다. 찰박이는 물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잔잔한 떨림이 제 다리까지 전해지는 풀장 안을 넋놓고 바라봤다. 그것은 제가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수영장을 찾아오는 이유 중 하나 였다.  

과제를 하느라 늦게 까지 깨어있던 탓에 오늘은 거를까도 했지만 습관처럼 굳어진 일상에 눈이 먼저 떠졌다. 몸이 제 멋대로 반응하는 통에 피로감 짙은 하품을 뱉어내면서도 침대를 빠져나온 것은 습관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차가운 물의 온도에 적응이 될 만큼 몸을 움직인 그는 어깨를 돌리며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한 번만 더 돌고 가야겠다.. 그가 다시 물안경을 고쳐쓰려던 때였다.

 

“안녕.”

 

저에게 인사를 건낸 것 인지 아니면 그저 저 혼잣말을 뱉어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세훈은 제 등 뒤로 인기척 없이 다가선 그를 잠시 올려다봤다. 

 

“.. 안녕 하세요.”

“... 너. 내가 보여?”

“네?”

“오래 살고 볼일이네. 아니지..”

오래 죽고 볼일인가.. 궁시렁거리는 목소리에 세훈이 눈을 깜박였다. 그의 발 끝은 여전히 물 속에 잠겨있었다.   

 

“너도 정상은 아닌가 보다. 내가 보이는 걸 보니.”

조용하고 나른한, 일렁임 없는 잔잔한 목소리였다. 

“..”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곧 죽거나.” 

마주친 두 눈동자 위로 일렁이는 빛이 반사되었다. 그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그것도 아니면.. 죽었다 살아 났거나?”

세훈은 숨을 들이마시며 그의 입술을 바라봤다. 갑자기 온 몸에 한기가 돌았다. 

 



수영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물에 빠져 죽을 뻔 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한 번 공포로 각인 된 것은 기피하고 싶어 한다. 좁은 공간에 갇혔던 사람들이 가지는 폐쇄 공포증이나 높은 곳에서 느끼는 고소 공포증. 아니면 단순히 음식을 먹고 탈이 난 후에도 그 음식을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그런 심리가 누구에게나 한번 쯤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에겐 그 대상이 물이었다.

살아남은 아이, 저는 그렇게 불리었다.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 들었던 아빠는 

그 날 돌아가셨다.

 

다시는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은 욕조 안에 물을 받는 것조차 싫었다.

 

물의 표면의 일렁임, 그 깊이를 알 수 없게 투명한 색깔이 만들어낸 환상. 그것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였다. 목욕탕도 당연히 못갔다. 허리가 잠기면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쿵쾅 댔다. 가슴이 잠기면 온 몸이 마비되는 것도 같고, 온 몸이 떨리는 것도 같은 그런 이상한 감각이 돌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벼락을 맞은 듯 물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저도 모르게.


뭐, 처음에는 그랬다.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수영을 배웠다. 그것이 물인지, 내가 빠져 죽을 뻔 했던 기억인지, 아니면. 내 아빠의 죽음인지. 그것을 깨닫는 것은 조금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그러고 나니 단순히 물을 무서워 하던 시간은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심각하게 그 감각에 의존하는 중이다.

머리가 복잡하면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차가운 물에 머리를 식히고 나면 복잡한 생각들이 물 안으로 녹아든 듯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공포가 제 모든 생각을 집어 삼킨 뒤에도, 여전히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무의식이 만들어낸 의식. 세훈은 그것에 의존하고 있었다.



“너처럼 내가 보이고, 들리는 사람은 없어.”

생각의 늪에서 저를 끌어올린 것은 그의 잔잔한 목소리였다.

“...”

뭐, 일단.. 투명하기도 하고. 그의 말에 세훈은 그의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의 말대로 일반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그는 손끝과 발끝이 약간 투명했다. 살짝.. 유령같다.는 생각을 하는 저의 얼굴을 마주하며 그는 살며시 웃었다.

 

“그거 실례야.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거.”

“..죄송합니다.”

“뭐. 봐줄게. 오랜만에 대화 상대가 생겨서 기쁘거든.”

다시 보니 이상한 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이미 죽은 사람, 귀신이라는 것 빼고 하나 더, 그가 교복을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팔인 걸 보면 하복. 수영장 안에서 교복을 입은 사람은 처음 보았다. 세훈은 그의 가슴 위로 새겨진 이름을 눈으로 훑었다. 변백현. 제가 그를 살피는 동안 그는 저를 살피는 듯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 시선을 돌렸다는 게 맞으려나. 그는 벽에 걸려있는 디지털 시계 위를 훑어보며 나즈막이 말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의 말에 저도 따라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확인하고 나서야 세훈은 제가 일어서야 할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 밖으로 다리를 빼내며 서둘러 일어섰다. 

 

“가려구?”

“..네.”

제 대답에 그는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세훈은 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돌아서는 저를 그는 잡지 않았다. 제 등 뒤로 그의 목소리가 아득히 닿았다.

 

“잘가. 다음에 또 보자.”

그의 말에 답을 하지 못한 것은. 제가 이 수영장에 다시 올지 모르겠어서 라기 보다는, 정말로 그가 다시 제 눈에 보일 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오세훈.”

“..오랜만이다.”

“연락좀 하고 살자. 죽은 줄 알았다.”

“미안. 좀 바빴다.”

빈말은 아니었다. 정말 바빴다. 물론,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기는 좀 그랬지만.

 

“이모가 니 걱정 많이 하셔- 집에도 연락 좀 드리고 그래라.”

“..그래야지.”

이번엔 정말 빈말이었다. 순간을 회피하기 위한 빈말을 종인이 모르진 않겠지만 속아 넘어가 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하여튼.. 다음에 시간 좀 내.”

술이나 마시자. 툭툭 제 어깨를 두드리며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세훈이 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엄마를 떠올리면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저는 마땅히 지 애비 잡아먹은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이었으나 그녀는 저 때문에 평생을 서방 잡아먹은 년이라는 욕을 들으며 살아야 했으니 말이다. 

세훈은 휴대폰 화면 위를 바라보다 화면이 꺼지면 다시 켜고, 또 몇 분을 바라보다 화면이 꺼지면 다시 켜는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동안 제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버스가 만들어내는 선선한 바람이 몇 번이나 그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그가 마른 세수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다렸다는 듯 정류장에 들어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수영을 하고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수건으로 얼굴을 지그시 눌렀다. 의자 위에 올려두었던 보틀을 들어 입구를 비틀었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감각이 선연하게 느껴졌다. 시계를 바라보던 세훈은 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조금 놀랐다.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던 탓이다. 


“안녕.”

“..안녕하세요.”

세훈은 저를 향해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깜빡였다. 오늘도 그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변백현. 귀신인지 유령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저 스스로 죽었다고 말한 사람. 아니..존재. 교복을 입고 있고 저보다 어려보이는 얼굴에도 세훈은 존댓말을 사용했다. 

 

“솔직히. 또 올 줄 몰랐는데 너.”

“네?”

“또 왔네.”

세훈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훑었다. 제가 여기에 오면 안된다는 말이었을까 

 

“그렇잖아. 귀신을 만났는데 무서워서 또 수영하러 오겠나. 싶었지-”

아.. 그렇지. 그는 귀신이었지. 손끝과 발끝이 조금 투명한 귀신. 아마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를 두려워해야 맞을 것이다. 귀신이 저에게 태연하게 말을 거는 것을 보며 놀라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은 제 스스로가 이상한 것일까. 아니면.. 세훈은 수면 위로 시선을 옮기며 고른 숨을 뱉어냈다. 생각이 깊어졌다. 

 

“너는 나 안 무서워?”

그의 목소리에 세훈은 다시 그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그가 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수면 위를 바라보는 눈동자 위로 일렁이는 빛을 바라보며 세훈은 입술을 달싹였다.


“안 무서운데요.”

세훈은 정말로 그가 무섭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의 말대로 조금 투명한 걸 빼면.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다. 여느 공포 영화에 나오는 귀신들처럼 창백하지도, 피를 철철 흘리지도, 검은 머리에 빨간 눈 같은 모습도 아니었다. 저와 같은 .. 그러니까. 제 또래의 남자 아이 같은 모습. 아니 오히려 생기 없는 저보다 더 생기 있어 보이게 웃는 얼굴이 가장 이상한 .. 귀신.


“그렇구나.”

그는 제 대답을 듣고도 한참 뒤에야 나지막이 말했다. 세훈은 저를 바라보지 않는 옆모습을 한참 동안 눈에 담았다. 






“세훈아.”

“..엄마?”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세훈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대문 앞에 서서 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걸음을 빨리 했다.

 

“어쩐 일이야?”

“아들 얼굴 까먹을 거 같아서 왔지-”

반찬도 다 떨어졌잖아. 그녀는 손 안에 들린 종이 봉투를 들어보였다. 척 봐도 무거워 보이는데.. 세훈은 그녀의 손에서 그것을 빼앗아 들며 중얼거렸다.

 

“반찬 아직 많아.”

“얘는- 그게 벌써 언제적 건데 아직도 안 먹었어?”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잘 없어서.”

귀찮으면 대충 편의점이나 학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매번 버리기 아까워서 냉장고에 넣어둘 뿐 사실 그녀가 싸서 보낸 음식들은 대부분 손도 대지 않고 있다가 상하면 버리는 패턴을 반복했다. 그녀가 알면 속상해 할 일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아휴- 하나도 안 먹었네. 너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거야?”

냉장고 안을 정리하며 연신 잔소리를 하는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세훈은 묵묵부답이었다.


“먹고 다녀. 걱정하지마.. 집에서 잘 안 먹어서 그렇지. 그러니까 반찬 해오지 말라니까..”

미안한 마음에 괜스레 틱틱거리는 저를 아는지 그녀는 옅은 한숨을 늘어놓으며 저를 흘끗 바라봤다. 독립을 한 후로 집에 가는 것은 1년에 두 번을 꼽을까 말까 했다. 아마 그마저도 엄마에게 전화가 오지 않으면 가지 않았을 테다. 아빠의 기일. 그리고 엄마의 생일. 세훈이 그녀를 보는 시간은 1년에 딱 이틀이었다. 이렇게 불쑥 저를 찾아오지 않는 이상은.


“할머니 병원 안가볼 거야?”

“..응.”

“그래도 너한테는 친 할머니인데..”

“할머니도 나 안보고 싶어하잖아. 괜찮아.”

그녀의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병상에 누워 있다고 해도 평생을 제 아들 죽인 놈이라고 욕을 하던 손자가 보고 싶지는 않으실 테다

 

“요즘에도 수영장 다니니?”

“뭐..그냥. 가끔.”

거짓말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잘 몰랐다. 그냥, 그녀의 걱정을 더 늘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조심해. 알겠지?”

“응.”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하며 다음에는 또 이렇게 무거운 반찬통을 들고 찾아오지 마시라고 당부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알았다고 다음에는 안 그러마 했지만 아마 그녀도 저처럼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엄마를 마주하면 늘 아빠의 잔상이 떠올랐다. 저의 마지막 기억 속에 남은 아빠의 모습.





 

-

늦잠을 잤다. 깨어났을 땐 입고 있던 티셔츠가 흠뻑 젖을 만큼 악몽을 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의 내용은 이상하게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물에 빠진 날의 기억이라는 것만 떠올랐다. 

 

상체를 일으키고 욕실로 들어섰다.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오전 시간이 공강임을 깨닫고 향한 곳은 수영장이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서 라고 생각했다. 수영장에 도착해 몸을 풀고 물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던 세훈은 갑자기 의욕을 상실했다. 물 속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걸음을 돌려 벽 쪽에 위치한 의자에 앉았다. 

 

몇 분이 지났는지는 몰랐다. 수면 위를 바라보던 세훈은 인기척 없이 제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라는 기색도 없이 옆을 돌아봤다. 겨우 세 번째 만남에 세훈은 그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안녕.”

“안녕하세요.”

제 옆에 앉은 그는 제 인사에 가만히 웃으며 저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마주하며 세훈은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는 정말 귀신이 맞을까. 이렇게.. 사람처럼 생겼는데. 아니.. 뭐, 귀신도 사람이긴 했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세훈은 그의 시선이 저에게 닿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오늘은 왜 수영 안 해?”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그냥 하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인데. 또 그냥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뱉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이상하게도 세훈은 그의 말을 듣는 것 보다 그에게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냥..”

“물귀신이라도 있을 까봐?”

그는 농담이라도 한 사람처럼 제 말을 끝내며 꺄르륵 웃었다. 세훈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상한 사람이네 싶었다. 

 

“재미 없는 거 나도 알거든. 표정 좀 풀지?”

“.. 죄송해요.”

그는 저를 흘기며 의자를 잡고 앞 뒤로 몸을 흔들었다. 투명한 발끝을 대롱 대롱 흔들며 그가 웃었다.


“이름이 뭐야?”

“.. 오 세훈이요.”

“너 진짜 겁 없구나?”

“네?”

“너 지금 귀신한테 니 이름 가르쳐 준거야.”

내가 해꼬지라도 하면 어쩌려구? 니 이름 빨간펜으로 막 쓰고? 장난스럽게 묻는 얼굴 위로 묻어난 웃음기에 세훈은 그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실 거에요?”

“뭐어?”

“저 괴롭히실 거에요?”

“음..아니.”

너 괴롭혀도 하나도 재미 없을 것 같아. 덧 붙인 말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나 세훈은 그의 입에서 아니라는 대답을 들은 뒤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파란 풀장 안의 물이 하얀색 타일 위로 넘쳐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세훈아.. 할머니 병원에 가봐. 아마..이제 힘드실 거야.]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훈은 가만히 탁자 위를 더듬었다. 아마.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럼에도 섣불리 가겠노라 답을 뱉어내지 못했다. 마지막 인사까지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할머니의 마음일지 제 마음일지에 대한 것은 미뤄두고 세훈은 그저 제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했다.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끝내 한숨을 뱉어내면서도 알겠노라 답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피로에 젖은 눈을 깜빡이던 그가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피로감이 한순간에 저를 뒤덮었다. 이불로 얼굴을 완전히 덮으며 눈을 감았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빛이 눈이 부셨기 때문이다. 






-

그 뒤로도 수영장은 계속 갔다. 수영을 하는 날이 줄어들었을 뿐, 세훈은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하며 그를 기다렸다. 

 

“안녕. ”

세훈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제가 기다렸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너. 진짜 착하구나?”

세훈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내 인사 이렇게 착실하게 받아주는 사람이 너 뿐이거든.”

아, 물론 나를 보는 사람도 너 뿐이긴 하지만. 그는 저번처럼 의자 아래로 발을 흔들며 말했다. 평소보다 조금 높은 목소리에 그가 기분이 좋은가 보다 생각했다.  제가 그의 말대로 착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기분이 좋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를 보는 사람이, 그의 인사를 받아줄 사람이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 근데 자꾸 혼자 대화한다고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봐봐- 저 여자. 너 엄청 이상하게 쳐다봐.

그가 제 귓가로 나즈막이 속삭이자 세훈은 조금 소름이 끼쳤다. 그건 그러니까.. 결코 두려움이나, 공포는 아니었다.

귓가에 닿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간지러웠달까.


“상관없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다 모르는 사람들이다. 밖에 나가서 아는 척을 할 사람도 제 이름이나 나이, 제가 어디에 사는 지를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런 점에서 저는 조금 대담한 편이었으니까. 아니, 사실은 그냥 정말 다 상관없기도 했다.  

 

“세훈아.”

제 이름을 알려주긴 했으나 그가 제 이름을 부를지는 몰랐다. 제 상상보다 더 그의 목소리는 나른하게 제 이름을 불렀다. 세훈아-라기 보단, 세후나.. 같은 느낌으로.

 

“너. 게이야?”

“네?”

이번에는 조금, 당황한 티를 내는 제 얼굴을 그는 잠시 바라보기만 했다. 세훈은 정말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뜬금없는 질문이라는 걸 떠나서 그가 저에게 할 말들을 상상하고 또 상상해봐도 그 단어를 뱉는 상상은 전혀 제 머릿속에도 떠오르지 않은 탓이다. 


“섰는데?”

“...”

그의 손 끝을 잠시 바라보다 그 손 끝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팽팽한 수영복 위로도 조금 형태를 알 수 있을 만큼 뻗뻗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목이 뜨끈 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세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그를 등지고 걸었다. 

 

“잘가. 오세훈-”

빨라지는 걸음 뒤로 그가 손을 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재미있다는 얼굴을 하고 있겠지. 샤워실로 빠르게 들어서 차가운 물을 틀어 몸을 식히며 세훈은 고개를 숙였다. 하.. 


이름 한 번 불렸다고 세울 일인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제가 그를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고 제 이름 한번 불렸다고 이렇게 혈기 왕성하게 반응 할 줄은 몰랐던 탓이다. 그러면서 제 감정을 부정하는 것도 잊고 앞으로 그를 어떻게 보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훈은 그때까지도 제 감정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


“안녕.”

“..안녕..하세요.”

세훈은 그를 마주하자마자 떠오른 기억에 목이 뜨끈해 졌다. 부끄러움이 몰려온 탓이다. 다행인 것은 오늘은 그가 물 속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수경과 수모를 쓰고 거기다 목 끝까지 잠긴 제 신체 변화가 그에게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오늘은.. 수영하네?”

“..네.”

한동안 수영장에 있을 때는 늘 그와 함께 있었다. 수영을 한 시간보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얼굴을 바라본 시간이 더 많았다. 새벽같이 수영장으로 오며 자기 반성을 조금 했다. 이제 수영도 해야지. 싶어서 준비 운동을 하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겨우 30분이 지났을까.. 그를 마주하니 세훈은 다시 물 밖으로 나오고 싶은 충동을 누르려 벽을 짚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의 손이 시원하게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제 옆에 서있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세훈은 숨을 들이시고 내쉬며 물 속을 바라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의 모습을 확인하지 않으려 더욱 힘차게 발을 움직였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음.. 좀 오래 전 부터?”

세훈은 어느새 익숙해진 의자 위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뱉었다. 아마 답을 찾는 시간이었는지 제 질문에 답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훈은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제 자신을 힐난하는 중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레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레일을 돌아 그의 앞으로 돌아온 순간에, 세훈은 제 마음을 인정했다. 

그가 보고 싶다.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왜. 여기 있어요? 수영 좋아해요?”

“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물은, 싫어해.”

물을 싫어한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수면 위를 바라봤다. 그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바라보며 세훈은 그가 물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귀신도 무서워하는 것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물이 왜 싫어요?”

그는 제 질문에 저를 돌아봤다. 마주한 눈빛이 조금 서늘하다고 생각했다. 그를 만나고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바라보며 세훈은 제 질문을 주워 담고 싶었다. 그러나 제가 잠시 머뭇거리는 틈을 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물 근처로 다가섰다. 그러고 보면 제가 물에 있을 때면 그는 항상 저와도 조금 떨어져 있었다. 

 

“사실은. 물이 무서워.”

그건, 물에서 멀어지기 위함이었을까. 그는 저를 돌아보며 살며시 웃어 보였다. 그 미소에 세훈은 반대로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큼 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서자 그는 잠시 자신의 등 뒤를 흘끔 바라봤다. 그의 모습은 당연하게도 수면 위로 비치지 않았다. 물 안에 비친 것은 저의 모습 뿐이었다. 


“물에 들어가면, 나. 사라지거든.”

그의 말에 세훈의 눈이 커졌다. 세훈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를 잡을 뻔 했다. 그가 물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를 잡고 제 쪽으로 끌어당기고 싶었다. 제가 그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럼.. 그때.”

“응?”

“..아니에요.” 

세훈은 저를 바라보는 그를 보며 슬며시 뒤로 물러섰다. 그가 제 앞으로 다가오길 바랬다. 물가에서 멀어지길 바랬다. 제 모습이 완전히 수면 위에서 사라질 정도로 멀리 그에게서 멀어진 뒤에 입술을 열었다. 


“다른데 가고 싶진 않아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거나.. 세훈은 그 말을 차마 뱉어내지 못했다. 그에게 어떤 답을 들을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글쎄...? 사실 나는 기억나는 게 없거든. 전혀.”

“전혀?”

“응. 내 이름도 기억안나.”

“..”

“그냥 이거, 내가 입고 있는 이 교복. 여기에 써있는 이름이 내 이름이겠거니. 하는거지.”

세훈은 그의 가느다랗고 투명한 손 끝이 가리키는 교복 위로 시선을 내렸다.


“..변백현.”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것이 처음이라는 자각도 하지 못하고 세훈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백현이 눈을 깜빡였다. 세훈은 그의 이름표를 훑느라 제 얼굴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세훈아.”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세훈은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던 눈동자를 마주했다.


“네.”

“너 지금 귀신 이름 막 부른거야.”

“..네.”

“너 진짜 재밌다.”

고개를 숙인 그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아니. 웃음소리라고 하기에는 조금 기분이 가라앉은 것 같아 보였지만.


“다른데라면.. 가고 싶은 데가 있긴 해.”

“어디요?”

“집.”

이름도 기억 못한다면서 집은 기억이 날까? 집이 어디냐고 제가 물어봐도 되는 걸까?


“근데, 집이 어딘지 기억이 안나. 그래서 못가.”

“...”

“세훈아.. 저 사람이 너 부르는데?”

“아..”

세훈은 잠시 그의 손 끝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를 부른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곳에 제가 아는 사람은 그 밖에 없었으니까.






[할머니 돌아가셨어.. 집에는 올거지?]

“갈게..”

 

마지막 인사는 결국 저 혼자 하게 되었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후회가 되진 않았다. 아마 그때 할머니를 마주했다면 지금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것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훈은 절을 하고 일어섰다.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제가 올 동안 혼자 빈소를 지킨 것은 엄마였다. 남편도 아들도 죽고 혼자 살고 계셨던 할머니의 빈소를 지킬 사람은 우리 뿐이었다. 


“내가 있을게. 좀 쉬다 와..”

“그래.. 고마워 아들.”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사람들을 마주하며, 영정 사진 앞에 놓인 향에서 피어 오르는 불꽃과 연기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아이고 딱한 사람.. 가여운 사람.”

누군가 그녀의 영정 사진 앞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훈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불현듯 아빠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빠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항상 기억나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제가 물에 빠졌던 그날의 기억이었다. 물 속에서 저를 붙잡고 물 밖으로 밀어내던 팔과 손, 세훈은 갑자기 한기가 도는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으나 소용은 없었다.  


“엄마. 엄마!”

“세훈아? 무슨 일이야.”

“나, 나. 집. 집 열쇠 좀.”

“집? 엄마 집?”

“응. 지금. 가봐야 해.”

“집에?”

“응.”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내미는 저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인 그녀가 겉옷을 뒤져 집 열쇠를 건내 주었다. 그는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뛰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내리고 달음박질을 하며 숨이 턱 끝까지 치고 올라올 때 마다 주춤거리는 몸을 다시 일으켜 달렸다. 집 안에 들어선 그가 안방으로 들어가 서랍장 안을 뒤졌다.    

 

 

 



-

“안녕.”

“저희 집. 가실래요?”

“..오늘은 인사가 독특하네?”

“아. 안녕하세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니 그 전날 눈을 감기 전부터 세훈의 머릿속은 그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니 새벽같이 눈을 뜨고 빠른 걸음으로 수영장에 도착해 그를 마주하자마자 뱉어낸 말이 인사가 아닌 독특한-그의 표현에 따르면-말이었다는 것이 당연했다.


“갈래. 세훈아. 너희집.”

“..네.”

세훈은 저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오는 백현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가 수영장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은 저 뿐만이 아니었다. 백현은 연신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바라보고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저에게 말을 걸었으며 평소보다 더 해맑은 얼굴로 웃었다. 그의 얼굴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던 세훈이 문 안으로 들어서며 그에게 손짓했다. 들어와요.

 

“우와- 여기가 너희 집이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집 안을 둘러보던 백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세훈은 신발을 벗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신발을 신은 채였지만 딱히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투명한 그의 발 끝은 땅에도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세훈아. 너 지금 귀신 너네 집에 들인 거 같은데?”

“그 말 하기엔 좀 늦었다고 생각 안 해요?”

이미 들어와서 집안을 온통 헤집고 다니며 구경을 한 사람의 입에서 들을 말인가 싶어서 세훈은 처음으로 그에게 농담 같은 말을 했다. 그는 잠시 눈을 깜빡이며 흥-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갑자기 너희 집은 왜 초대한거야?”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그런데 그 전에.”

보여주고 싶은 것? 물어보고 싶은 것? 백현은 제 말에 의아한 표정을 하며 얼굴을 기울였다. 그를 마주한 세훈이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서. 

그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백현은 점점 세훈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서로의 숨이 엉킬 듯 가까워진 거리에 서자 세훈은 다시금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숨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입술이 닿을 듯 가까워진 거리에 서서 세훈은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을 감싸듯 손을 올린 그는 허공에서 손을 멈추고 그의 입술 위로 제 입술을 마주 대었다. 




차가울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세훈은 눈을 뜨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그를 마주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였다. 또, 그가 울고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세훈아.”

“하..”

“왜 울어.”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난 후였다. 그의 목소리에 세훈은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제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는 세훈의 모습을 백현은 가만히 바라 보고만 있었다.

 

“울지마.”

그는 손을 뻗어 세훈의 머리칼 위를 매만지듯 움직였지만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지는 못했다. 

 

“저 그 교복 알아요.”

“..니가 어떻게 알아?”

“봤어요. .. 사진에서.”

“사진?”

세훈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앨범을 가리키며 말했다. 


“.. 여기.”

“...”

백현은 잠시 세훈의 손 끝이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졸업 앨범이었다. 눈을 깜빡이던 그는 다시 세훈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그랬구나. 그래서 존댓말 했구나?”

“백현이형.”

“응. 세훈아.”

“만져봐도 되요?”

“.. 특이한 녀석.”

가만히 웃으며 눈을 감았다 뜨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세훈은 그것을 허락이라고 생각했다. 조심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투명한 그의 손이 제 손을 스치듯 빠져나갔다. 세훈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그날.. 나 왜 구해줬어요?”

 그는 저의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세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를 잡고 싶었다. 그를 흔들며 왜 그랬는지 대답을 듣고 싶었다. 허나 할 수 없었다. 


“죽게 놔두지. 왜.. 왜 구해줬어요.”

“내가..어떻게 그래. 세훈아.”

저를 구한 것은 아빠가 아니다. 저를 구한 것은 그다. 변백현. 그였다.

변백현. 그를 아빠의 졸업앨범에서 봤던 것은 물에 빠지기 전이었다. 아빠는 그의 사진을 손 끝으로 쓸며 말했다. 딱한 백현이. 가여운 백현이. 어린 세훈은 그가 왜 가여운지 몰랐다. 그가 왜 딱한 사람인지 몰랐다. 물에 빠지기 전 까지는, 

물에 빠져 허우적 대는 저를 끌어 올리던 아빠도 사실은 수영에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물을 많이 먹은 것은 저보다 아빠 쪽이었다. 저를 자꾸만 물 밖으로 올리려고 노력하는 덕에 제 몸은 점점 더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새도 없었다. 

 

‘안녕.’

그때 들었던 목소리가 아마 그의 목소리였을 거다. 


‘..백현아.’

딱한 백현이. 가여운 백현이. 내가 .. 수영만 잘 했더라면. 그 아이를 도와줬을 텐데.. 아빠는 물에 빠져 운명을 달리한 제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제 잘못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저를 구하러 물에 뛰어든 것은. 소중한 사람을 또 잃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또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살려줘. 제, 제발.. 우리..우리 세훈이 좀.’

물 속으로 가라앉는 무거운 몸을 바라보며 눈꺼풀을 꿈뻑 였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저를 건져낸 것이 아빠였는지, 그였는지 세훈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 




“세훈아. 널 구한 건 너희 아빠야.”

“..”

거짓말.


“내가 아니야.”

“거짓말.”

저를 바라보는 떨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백현은 옅게 웃었다. 거짓말 아닌데. 세훈아.


“너희 아빠가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난 못 했을거야.”


나도 물이 무서웠거든


“그건 그렇고 세훈아. 너는 이제 좀 자는 게 어때?”


그의 말에 세훈은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주며 눈을 홉떴다. 갑자기 쏟아지는 잠을 느낀 탓이었다. 잠들고 싶지 않았다. 


“변백..현.”

“왜 오세훈.”

“가지.. 말아요.”

“..정말. 특이한 녀석.”

“가..지마..”


백현의 손이 세훈의 눈꺼풀 위를 덮었다.














-

급 ..보고싶었던 유령 백현 // 

처음에는 꾸금으로 쓰려고 했는데 말이죠. 애틋한 감정이 들어가지구..

백현이는 정말 예전에 물에 빠져 죽고 유령이 된 거구요. 훈이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을 때, 나타나서 만났었습니다. 

후의 이야기는 이번에도 열린 결말로..(?)

후편이나 외전으로 더 찌고 싶은 썰이네요 ;ㅅ;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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