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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06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warning _ roman noir








“형님!! 걔, 백현이 걔는요?”


사무실로 출근을 한 찬열은 다짜고짜 저를 붙잡는 종인과 그 옆에 앉아 저를 추궁하듯 올려다보는 시선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럴거면 그냥 집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출근 하지 말라니까- 너는, 애를 혼자 두고 나와?”

“헐. 진짜 형님 집에 데려가신 거에요?”

 

좀 어때요? 좀 어때, 동시에 저를 보며 묻는 말에 찬열은 한숨을 삼켜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데려가시지 그러셨냐는 말이 목 끝까지 나오는 터였다. 

 

“아까 진짜 쓰러져있는 거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거 봐요. 놀라서 손 떨리는 거-”

 

그건 니가 지금까지 사람을 줘 패다 와서 그런 거 아니냐, 동수의 말에 종인이 팔꿈치로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컥, 숨을 뱉는 소리를 내며 동수가 종인을 째려봤다. 나쁜 새끼.

 

“뭐라도 좀 먹여야 될텐데. 혼자 놔두고 오면 어떻게 해?”

“..형님.”

“왜 임마.”

“도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뭐가.”

“정말, 그 애가 불쌍해서 도와주시는 겁니까.”

“당연히.”

“형님. 솔직히 걔 안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

“아니지.”

“에?”

 

준면의 대답에 놀란 것은 질문을 한 찬열보다는 오히려 종인과 동수 쪽이었다. 정말 그가 그 백현이라는 아이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도와준다고 여겼던 터라 특히 종인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았다고 해야 맞겠다. 와- 형님,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 하시네요. 진짜. 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로 준면을 바라봤다. 

 

“난 걔한테 빚 다 받아낼 생각인데, 니 생각은 ?”

“..”


그런 종인을 무시하며 찬열을 바라본 준면이 그의 의사를 물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에 찬열은 답을 하지 않았다. 


“와 대박. 형님 너무 진짜 ..너무한다.”

 

종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준면은 넌 나간다는 놈이 왜 아직도 여기 있냐, 타박 아닌 타박을 주었다. 

 

“아 나가요. 나가- 저도 지금 형님이랑 같이 있기 싫거든요. 흥.”

“얼씨구. 동수야 저거 처리해라.”

“흥!”

 

사무실 문을 쾅 닫고 사라지는 등을 바라보며 동수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맞다. 가구 보냈으니까 내일은 그거나 받아.”

“네?”


갑자기 무슨 가구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백현이꺼. 가구 하나도 없잖아. 찬열은 너무 당연한 걸 묻는 다는 그의 표정에 어이가 없었다. 종인이나 준면이나 갑자기 저들 앞에 나타난 아이에게 백현이, 백현이 하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집이니 가구니, 괜찮으냐 어떠냐 묻는 것도 그렇고 도대체 무슨 생각들인지 모르겠다. 

단지 그 아이가 불쌍해서 도와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군가가 불쌍해서 동정을 하거나 불쌍해서 도와줬던 적은 없었다. 그의 선의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제가 아는 준면은 그랬다. 세상이라는 것이 그랬다. 게다가 본인 스스로도 빚은 전부 받아낼 생각이라고 하는 걸 보면 그가 하는 행동이 선의라고 생각하지는 못할테지만, 그에게 직접 들은 답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꺼림칙 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적어도 그의 주변에서 호의를 베푼다고 그걸 그대로 호의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더한 것을 원하면 원했지. 결코 호의를 호의로 돌려준 사람도 물론 없었고.  








먼지 구덩이에 깔려 밤을 보내고 병원에서 돌아와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이 생각난 백현은 씻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욕실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갈아입을 옷도 걱정이긴 했으나 일단 몸을 씻고 나면 조금은 개운해 지리라 생각했다. 이따 짐이라도 찾으러 가야겠다. 생각을 하며 거실로 나온 백현은 혹시라도 그가 아직 집에 있을까 조심스레 방 문을 열고 나왔다.

 

인기척이 없는 걸 보면 저 혼자일테니 다행이다 싶었던 그가 방 문을 완전히 열고 거실로 나와 다시 살며시 문을 닫았다. 욕실로 걸어가던 그는 주방 앞, 식탁 위에 올려진 쪽지를 보며 걸음을 멈췄다. 

 

「 옷은 이것 뿐이다. 대충 입어 」

 

간결한 쪽지를 바라보던 백현은 식탁 위로 올려진 종이 가방과 그 앞으로 놓인 새 옷인 듯 택도 뜯지 않은 티셔츠와 바지를 바라보았다. 종이 가방 안을 열어보니 플라스틱 통이 보였다. 천천히 손을 넣은 백현은 아직 따뜻한 온기가 올라오는 통을 손으로 꺼내 들었다. 죽이었다. 백현은 한참 동안 제 손 안에 들린 그릇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그 것을 다시 내려두고 욕실로 향했다.

 씻고 나온 그는 죽 그릇을 열어 깨끗하게 비워냈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 이후로 먹은 것이 없었다. 그가 두고 간 새 옷은 뜯지 않았다. 먼지가 묻은 옷을 베란다에서 탁탁 털어내고 다시 입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새 옷을 입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현은 제가 비운 죽 그릇과 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쓰레기를 버리고 가게로 향했다. 무단 결근에 어제 창고에서 잔 것까지 책임을 묻겠지만 일단 사과를 드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힘들테니까


그의 집에서 나오기 전 핸드폰으로 찾아본 것은 딱 하나 였다. 지도. 백현이 어제부터 지금까지 그의 핸드폰을 쥐고 한 일은 겨우 제가 갈 곳을 찾는 것 뿐이었다. 





가게 앞에 도착한 백현은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분명 잔뜩 화가난 얼굴을 마주할 것이라 생각한 탓에 손 끝을 말아 쥐고 내려선 저를 흘끔 거리는 시선에 백현은 이리저리 고개를 숙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우선 제 메모장을 찾아야 했다. 자신의 짐을 찾기 위해 창고로 걸음을 옮기던 백현은 제 목적지에 다다르기도 전에 민우를 마주했다.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다친 데는, 괜찮냐. 임마?”

 

저를 잡고 이리저리 돌리며 살피는 민우의 손에 흔들리며 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마 위로 선명한 멍자국을 발견한 그가 소리를 빽 지르자 백현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아, 맞아. 이거.”

 

백현은 제 앞으로 내밀어지는 손, 그 손 위에 들린 제 메모장을 발견하고 서둘러 손을 뻗었다. 어제부터 그렇게 찾던 물건이었다. 펜은 없어졌나 보다. 생각하자 민우는 서둘러 제 주머니 안에 굴러다니던 펜을 내어주었다. 

 

“펜은 못 찾았다. 짐은 일단 내가 옮겨뒀는데..”


그의 말에 백현은 서둘러 빈 페이지를 펼치고 손을 움직였다.


「 감사합니다. 린지 누나는 어디계세요? 」

“지금 아마 방에 있을 텐데..”

「 고맙습니다. 」  

“혼날텐데.. 같이 가줘?”

 

걱정스러운 표정에 백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백현은 그의 앞으로 허리를 숙이며 뒤돌아섰다. 저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백현은 린지의 사무실 앞으로 다가가 굳게 닫힌 문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네-”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 짧은 숨을 뱉어낸 백현이 문고리를 틀고 안으로 들어섰다. 화장을 하던 그녀의 얼굴이 거울 너머로 제 눈을 마주하자 휙 돌려졌다. 백현은 문 앞에서 찾아둔 메모장의 페이지를 열어 린지의 앞으로 내밀며 허리를 숙였다. 익숙한 페이지였다. 그러니까 저에게는 말이다. 

 

“너 뭐야.”

「 죄송합니다. 」 

“너 뭐하는 애야.”

 

그녀가 저에게 화를 내를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백현은 눈을 감고 제 발 끝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화가 조금이라도 누그러지면 그때 사정을 해 볼 참이었다. 한 번만 봐 달라고 계속 일하게 해 달라고 지금까지 성실하게 일을 했으니 아마 조금은 눈을 감아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일어나. 너 이래도 달라질 거 없어. 너 오늘부로 해고야.”

 

백현은 그녀의 말에 서둘러 허리를 세웠다. 마주한 두 눈이 화로 가득한 것을 바라보며 안절부절 손을 움직인 그가 다시 메모장 위로 다급하게 글을 적어 내려갔다. 린지는 그 잠깐의 기다림도 더는 참아주기 어렵다는 듯, 백현의 손을 쳐냈다. 

 

“니가 뭐라고 하든, 달라질 거 없어. 난 언젠가 니가 사고 칠 줄 알았어. 어떻게 창고에서 지낼 생각을 하니?”

「 죄송합니다. 다시는.. 」 

“너한테 기회는 충분히 줬다고 생각한다. 난.”

 

백현은 서둘러 적어 내려가던 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저에게 준 기회는 많았다. 말을 하지 못하는 저의 착실함 하나만을 보고 지금까지 저를 일하게 해준 사람이었다. 미성년자 인 것을 숨기고 일을 했던 것이 들켰을 때도 제 사정을 이미 알고 난 후라 저를 내치지 못하고 일을 하게 해준 사람이었다. 이 이상 매달린 다면 제가 민폐를 끼치는 일이 될 것이다. 

 

“오늘까지 월급. 병원비 다 줄 테니까. 다신 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마.”

 

백현은 쓰고 있던 페이지를 넘겼다. 하얀 종이 위로 글을 적어내려 가는 손 위로 여기저기 베인 듯 굳어진 상처 위로 그녀의 시선이 아주 잠깐 닿았다 떨어졌다. 

  

「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폐 끼쳐서 죄송해요.. 」 

 

백현은 허리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얼굴에는 단호함이 없었다. 백현은 그녀를 잘 알았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저에게 정을 주려고 하지 않는 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 정말 이 이상은 폐만 끼치게 될 것이다.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쓸모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준면의 성화에 못 이겨 집으로 돌아온 찬열은 신발을 벗고 제 방으로 들어가려다 인기척 하나 없는 집안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제가 가져다 둔 종이 가방과 옷이 그대로 올려져 있는 테이블 위로 시선을 둔 찬열이 아이에게 안내해 준 방 앞으로 다가섰다. 노크를 할 것도 없었다. 차라리 자고 있을 때라면 제가 기척을 느끼기가 쉬웠을 것이다. 아이는 이 곳에 없었다.

찬열은 문을 열며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사용한 적 없다는 듯 접혀있는 이불과 그 위로 가지런히 올려진 핸드폰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없던 사람이었던 듯 흔적 하나 남지 않은 아이의 잔상이 찬열은 못마땅했다. 방문을 닫고 다시 거실로 나온 그는 종이 가방 안을 들여다 보았다. 두 개의 플라스틱 통 중에 하나가 없어진 것을 깨달은 그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죽은 먹었네..”

남아있는 죽 그릇을 잠시 바라보던 찬열이 그것을 봉투 안에서 꺼내 들었다. 뜨겁던 온기가 완전히 식어 차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릇을 냉장고 안으로 대충 밀어 넣었다. 죽은 먹어본 적도 없었고, 사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씻고 옷을 갈아입은 찬열은 다시 사무실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었다. 큰 길을 따라 걷던 그는 환한 불빛 위로 붙어있는 포스터를 잠시 눈에 담았다. 흔하게 보이는 죽 전문점.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동그란 그릇을 바라보며 어둠 속에 잠들어있던 파리한 얼굴과 상처가 가득한 마른 손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그 순간 왜 그런 장면이 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실은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깨닫고 보니 그는 어느새 가게 안에 들어가 있었다. 죽을 사본 적이 없던 그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대충 주문을 하고, 계산을 했다. 포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찬열은 제 이마 위를 긁적였다. 아프다고 죽을 사다 먹은 적은 물론, 누가 아파서 죽을 사다 주는 것 또한 처음이었다. 찬열은 제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 찬열은 죽이 포장된 그릇이 담긴 봉투를 식탁 위로 올려두고 다시 집을 나섰다.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제 예상보다 늦어졌다. 물론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도 욕을 있는대로 먹어야 했지만,.. 



그나저나 어디를 갔을까..그 몸으로. 병원에서는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당분간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찬열은 마른 세수를 하며 제 방으로 갈지 아니면 아이를 찾으러 나갈 지를 고민했다. 

준면의 빚을 갚게 하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니 아이를 놓치면 아마 그 빚을 정말 저에게 달아두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찬열이 느리게 관자놀이 위를 누르듯 손을 올렸을 때 문 밖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찬열은 눈을 감은 채로 기척을 살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아주 예민한 편이었다. 다른 건 전부다 둔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사람의 기척을 읽어내는 것 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을 것이다. 


 


찬열은 현관 문을 열고 서서 저를 올려다보는 놀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열린 문 앞에 서서 문을 열려고 했는지 초인종을 누르려고 했는지 손을 뻗은 채로 놀라 저를 올려다보는 얼굴을 마주하며 찬열은 한숨 같은 숨을 뱉어냈다.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는데.”

 

백현은 그의 말에 깜빡이던 눈동자를 멈췄다. 도망.. 고개를 숙인 그가 고개를 느리게 가로 젖는 것을 바라본 찬열이 옆으로 비켜 섰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신호와도 같았다. 이번에 백현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그대로 따르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찬열은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의 등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 등 뒤에 매어진 가방 위로 잠시 시선을 두었다. 짐을 찾으러 갔던 모양이지. 현관문을 닫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 찬열은 거실에 올라서 여전히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서 제 눈치를 보듯 손을 모아 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뱉어냈다. 추궁을 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좀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들어가서 ..”

 

눈을 뜨고 입을 열었던 찬열은 제 앞으로 내밀어진 메모장을 발견하며 말 허리를 잘랐다. 아이가 저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준면이라면 또 몰라도 아이가 저에게 할 말이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찬열은 느린 걸음으로 아이의 앞으로 다가섰다. 저를 보며 잔뜩 긴장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메모장을 틀어 쥔 손 끝이 하얗게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던 찬열은 느리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까지 무서워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아직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면 아주 까무러치겠네.. 싶어서.


「 돌아오려고 했어요. 」 

 

뜻밖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솔직히 이건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저에게 이런 말을 하리 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저만 보면 바들바들 떠는 이 아이가. 찬열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백현은 다시 메모장을 한 장 넘겨 펜을 움직였다. 


「 빚도 갚을 거고요.. 」 


 하, 다시 제 앞으로 내밀어진 메모장을 확인한 찬열이 헛웃음을 뱉어냈다. 준면이 저에게 아이를 잘 잡아두라고 했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 아이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는 걸까. 제 앞에서 뱉어냈던 말들이 아이에게 어떻게 적용될 줄 알았던 것일까.  


“그거 고맙네.”

 

니가 도망갔으면 진짜로 내가 갚을 뻔 했으니까, 뒷 말을 생략한 찬열이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제 앞에 저렇게 서있는 걸 보면 더 할 말이 남아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소파로 자리를 옮긴 찬열을 쫓아 눈을 움직이던 백현이 다시 메모장을 넘겨 글을 적었다. 

 

「 최대한 빨리 나갈게요. 」 

 

최대한 빨리라.. 

 

「 귀찮게 하는 일 없게 할게요. 」 

 

귀찮게 한다라.. 찬열은 그의 동작을 느리게 바라보며 어떤 답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할 말은 이게 끝인가.. 더 이상 메모장을 넘기지 않는 손 끝을 바라보며 찬열은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일단은..형님께서 지시하신 일이고 이 집도 형님 거야. 나한테 이런 말, 할 필요 없단 뜻이다.”

 


찬열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안에도 백현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말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와 더 이상의 대화를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백현은 가만히 멀어지는 등을 바라봤다. 하얗게 질려있던 손 끝이 아래로 떨어졌다. 펼쳐져 있는 페이지 안에 급하게 적은 글자들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렸다. 

 

귀찮게 하는 일 없게 할게요.

 




 

 


영호는 담벼락에 등을 붙인 채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축축한 습기가 올라왔으나 전방을 주시하는 시선은 작은 떨림조차 없었다. 강서의 관리를 맡고 있는 최서준의 오른팔인 장민수가 성남의 관리자와의 거래라, 가로등 불 밑에 비치는 인영은 적어도 열. 오고 가는 말이 들리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행동만 보아도 대충 감이 잡혔다. 손을 잡기로 한 것일 테다 그 결과가 아마 강남의 관리자를 제거한 것일 테고.,

 

그러나 그렇게 공석을 만들어낸 강남을 홀라당 준면에게 빼앗긴 이들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판단했겠지. 그렇지 않고 서는 지속적인 거래를 할 필요가 없을 테니.. 아무리 한 조직에 몸 담고 있다고 해도 분파는 전부 다르다. 서로 싸우지 않기로 합의를 보고 공존하는 것이지. 따지고 보면 같은 식구는 아니니까. 그럼에도 아직까지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아직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영호는 조금 더 파보기엔 위험을 감수해야 함을 깨닫고 걸음을 돌렸다. 일단은 보고를 마친 뒤에 움직일 생각이었다.  








다음날 백현은 아침 일찍 식당을 찾았다. 연락도 없이 무단 결근을 한 셈이라 사과부터 했던 그는 김사장 님이 너 못 온다고 직접 연락 주셨다. 하는 사장님의 말에 잠시 의아했다. 김사장이 누구지.. 

제가 어제 무단 결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알아도 저를 대신해 말을 해 줄 사람도 없었지만,.. 어제 저를 병원에 데려간 남자들 중에 누군가 일까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백현은 어차피 방학이 끝나가는 시점이라 평일 알바는 무리라는 말도 전했다. 

 

「 주말에는 계속 일 할게요. 」 

“그래. 그렇게 해.”


평소에도 개학을 하면 주말에 일을 했던 터라 사장님은 흔쾌히 승낙을 해 주셨다.  


“많이 다쳤다면서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거니?”

 

고개를 끄덕이는 저를 보면서도 걱정을 늘어놓는 사장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에 백현은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크게 다친 곳도 없는데 무단 결근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개학이 코 앞이긴 했다. 개학을 하게 되면 오후 파트타임이나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못해도 두 개는 같이 해야 될 텐데.. 다행이 식당은 짤리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으니 되었지만 평일 알바는 새로 구해야했다. 거리를 걸으면서도 직원을 구하는 집이 있는지 주변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다시 그의 집으로 돌아온 백현은 아파트 입구부터 느꼈던 부산스러움을 그의 집 문 앞에서 그대로 느끼며 주춤거렸다.


 

“오! 너 마침 잘왔다!”

 

문 앞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던 백현은 저를 부르며 웃는 남자를 보고 백현은 잠시 발걸음을 물렸다. 

 

“너 괜찮아?!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얼마나 놀랬는지 아냐? 이 쪼고만게.”

 

제 이마 위로 꿀밤을 놓으며 자연스레 제 어깨를 끌어당기는 남자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던 백현이 한숨을 삼켜냈다. 도대체 저의 일을 몇 사람이나 알고 있는 걸까.. 백현은 고개를 수그리며 지금의 상황을 회피하려는 듯 그의 시선을 피했다. 

 

“일단 들어가 봐. 가구 배치는 대충 했는데 - 니가 편한 대로 하는 게 좋지 않겠냐?”

 

가구? 그의 말에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남자에게 등을 떠밀려 안으로 들어온 백현은 제 방이라고 했던 방 문이 활짝 열린 채 휑 하던 공간이 가구로 빼곡히 채워진 것을 바라보며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제가 나갔다 온 것이 고작 몇 시간이나 될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종인은 현관에서부터 백현을 끌고 들어와 제 방 앞으로 안내하는 내내 그 뒷모습을 살폈다. 그때 그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는 핏기 없이 하얀 얼굴이 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돌아다녀도 괜찮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방 앞으로 끌고 오자 백현의 얼굴에 금세 다시 핏기가 가셨다.


“왜. 마음에 안들어?”


백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서둘러 제 주머니를 뒤지듯 손을 움직였다. 이게 다 뭐냐고 물으려고 했다. 침대며 책상, 책장 딱 봐도 이 집에 사는 사람이 쓸 물건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제 몫으로 가져다 둔 가구인 것 같았다.


“큰형님이 일단 너 내일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어. 그때 얘기 하자고-”


백현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돌아봤다. 그래. 이 남자와 말을 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김사장, 그러니까 김준면 사장과 대화를 해야 할 일이었다. 백현은 바지 주머니로 찔러 넣었던 손을 힘 없이 거두었다. 



그가 돌아간 뒤, 넓은 집 안에 혼자 남겨진 백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은 그가 방 안으로 들어서 책상 위를 손 끝으로 쓸었다. 깔끔한 책상과 책장, 침대. 방 안을 둘러보던 시선이 바닥에 놓여있던 제 가방 위로 닿았을 때가 되어서야 백현은 걸음을 움직였다. 

이 집도, 이 방도, 이 가구들도 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검은 가방을 바라보던 백현이 가볍게 머리를 털어냈다. 정신 차리자. 정신. 백현은 스스로를 달래며 창가로 다가섰다. 가구를 옮기느라 먼지가 났을 테다 창문을 열고 그가 청소 도구를 찾아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병원비와 머물 곳, 가구.. 벌써 제가 진 빚의 무게가 늘어났다. 밥값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가구 위와 바닥을 닦았다. 깔끔한 성격인 건지 아니면 청소를 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집 안은 제가 손댈 것도 마땅히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청소를 하고 씻고 저녁 시간이 되어가자 백현은 안절부절 못하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일을 쉰다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습관처럼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해야 할까 생각하며 주방을 살피다 생각해보니 그는 이 시간에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괜히 제 물건도 아닌 것을 손댄다는 생각에 백현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하루 종일 청소를 하며 돌아다녔던 집 안은 여전히 낯설었다. 

 

백현은 지갑을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편의점에서 저녁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사고 비닐을 벗기고 스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젓가락으로 꾹 누르며 백현은 창 밖을 바라봤다. 아파트 단지가 훤히 눈에 들어오는 거리였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면발을 젓가락으로 느리게 휘저으며 백현은 눈을 깜빡였다. 회색빛 시멘트 바닥이 검게 물드는 동안에도 찬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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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주의보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다 맘이 아픈 캐릭터들 뿐입니다... 우리 백현이는 언제쯤 웃게 될까요.. 8ㅅ8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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