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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02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warning _ roman noir








“5층입니다.”

 

장난스런 목소리에 찬열이 바지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다. 걸음을 옮기며 종인의 뒤통수를 가격하자 그는 제 머리를 그러 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아, 형님- 감정 너무 실렸지 말입니다!!”


아 진짜 아파. 야, 건아. 봐봐라- 나 대가리에 피 안 났냐? 네. 멀쩡합니다 형님. 아냐!! 잘 봐 새끼야- 찌그러진 거 아니냐? 네. 멀쩡하십니다.형님. 이새끼가 근데!! 제 목을 틀어 쥐는 팔에 켁켁-대는 큰 덩치가 쩔쩔매며 아이고 형님. 저 죽습니다- 엄살을 피우자 그제야 종인이 제 팔을 풀어내며 걸음을 옮겼다.

 

찬열은 그 둘을 버려두고 제 앞으로 길게 늘어선 복도를 따라 걸었다. 양쪽으로 늘어선 문이 전부 열려있었다. 아마 조직원들의 근거지가 여기였던 모양인지, 전부 모여있는데 규모도 규모거니와.. 대충봐도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게 뻔할 정도로 허술한 녀석들이 가득했다. 쯧, 그냥 종인 혼자 보낼 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를 하며 가장 안 쪽으로 걸음을 옮긴 찬열은 데스크 앞, 가죽 의자에 묶여있는 진사장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까불었나 싶을 정도로 그는 눈물까지 흘리며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물론 그는 의자에 손발이 묶인 채로 입술에 넥타이까지 물려있어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컥컥대며 숨을 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지만. 뭐, 말을 했어도 듣지는 못했을 테다 생각하며 찬열은 그 안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러다 제 옆으로 위치한 소파 앞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느낀 그가 고개를 틀어 그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저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찬열은 발이 굳었다. 고등학생 정도 되보이는 얼굴,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그저 넋이 나간 것인지 하얗게 질린 얼굴과 마른 실루엣을 바라보던 찬열은 누가봐도 조직원은 아닐 학생이 이런 곳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했다. 혹여 저렇게 비리비리하게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일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종인이나 다른 애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겠지.. 저 아이는 아마, 문으로 누군가 들어오니 무심결에 고개를 돌린 것일 테다. 찬열은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를 올려다보는 건조한 눈동자를 마주한 찬열이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은 얼굴 위를 훑듯이 시선을 움직였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 축 쳐진 눈꼬리 끝과 동그란 코, 굳게 다물어진 얇은 입술 위를 움직이던 시선이 다시 멈춘 곳은 아직도 저를 바라 보고만 있는 까만 눈동자 였다. 

  

미간을 좁히며 다가선 찬열은 소파 앞에 서있는 아이의 앞에 낮은 커피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멈춰섰다. 서로를 주시하던 시선을 먼저 떨어트린 것은 제 쪽이었다. 그는 테이블 위로 시선을 내려 그 위에 올려져 있던 하얀 종이 쪼가리를 눈에 담았다. 정확히는 그 안에 적힌 글자 위를 훑었다.

  


“정리 끝났습니다. 형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기척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종인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정리 끝났습니다. 형님 그는 다시 제 눈을 보며 느리게 발음했다.


“..수고했다.”

“그런데.. 얘는 뭡니까?”

  

분명 제가 먼저 정리를 하러 올라왔으니 아까부터 여기 있던 것을 모를 리가 없을텐데, 종인의 시선이 자신과 대치하듯 서있는 하얀 얼굴 위로 닿는 것을 확인한 찬열이 다시 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을 때는, 아이의 시선이 종인에게로 옮겨간 뒤였다. 

 

니가 먼저 올라왔지 않느냐 따져 물으려던 찬열은 종인의 성정을 잘 아는 탓에 그 말을 뱉어내지 않았다. 그는 싸울 때 주변이 보이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러니까, 제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대였다. 그는 아마 저 벙찐 표정으로 서있는 아이를 민간인으로 구분한 뒤 그냥 지나쳤을 게 분명하다. 

  

“학생, 왜 여깄어?”


말이 없는 저와 제 멋대로 학생이라 단정 지은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보던 그가 누구도 제 물음에 답을 하지 않는 현 상황이 답답하다는 듯 그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려 몸을 움직이자 찬열은 툭- 제 앞에 놓인 테이블을 걷어차듯 발을 뻗었다. 끼익- 듣기 싫은 소리를 뱉어내며 밀려난 테이블을 보고 놀란 것은 종인 뿐이었다. 자연스레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그의 시선이 그 위에 놓인 종이 위로 닿은 것은 당연했다. 그는 종이를 구기듯 들어 올려 그 안에 적힌 활자와 아직도 저 둘을 경계하듯 바라보고 있는 얼굴 위를 번갈아 보았다.

  

“와.. 너 빚 많구나?”

  

제 말에 가만히 눈을 깜빡이는 얼굴을 바라보며 종인은 뭐 이런 애가 다있냐. 하는 감상을 하던 중이었다. 아이의 얼굴은 놀라 굳어진 채였으나 그의 눈동자는 건조했으며, 지금 상황을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 듯 보였다. 익숨함일까 담담함일까를 생각하던 그는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이런 장면을 보고 놀라지 않을 리는 없을텐데..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기울이며 찬열을 돌아봤다. 물론 책임 전가를 위해. 

  

“얘 어쩔까요 형님? 이제 저희 쪽 돈인데요. 이거.”

  

서류를 팔랑 흔들며 찬열을 올려다본 종인은 그의 시선이 아직 제 앞에 서있는 아이의 얼굴 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님? 하고 그를 다시 부르려다 입을 다물고 종이를 착착 접었다.

  

“일단 데려가서 큰 형님께 보고 하겠습니다.”

“알아서 해.”

  

몸을 돌린 찬열의 등을 바라보며 종인이 다시 아이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여기 적힌 거 니 이름 맞지? 변백현.. 어이?”


복도 밖으로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던 백현의 얼굴 앞으로 손을 휘휘- 저은 종인의 얼굴로 그의 시선이 옮겨왔다.

  

“변 백현. 이거 너 맞냐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백현이 서류를 가리키며 묻는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일단 가자.”

  

턱을 매만지며 백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종인은 벌써 차에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을 찬열을 떠올리며 모르겠다는 듯 손을 까딱이고 돌아섰다. 따라와. 몸을 돌린 제 등 뒤로 조용한 발걸음이 따라 붙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뒤로 여전히 소리를 지르던 진사장은 그렇게 잊혀진 채, 방치되어 가던 중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찬열은 익숙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다 준면을 발견하고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집에 계시라니까 왜 여기.. 물론 그가 제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감시역으로 영호까지 붙여뒀는데. 


“큰형님? 언제 나오셨습니까?”

“내가 대답을 해야되냐. 임마.”

“아- 이영호 이 새끼는요?”

“잠수시키고 왔다.”

“헐. 죽이셨습니까?”

 

그런 둘의 대화를 바라보던 찬열이 제 관자놀이 위를 꾹 누르며 소파 위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준면이 그런 찬열과 아직 제 앞에 서있는 종인을 휙휙 쳐다보며 다음 타깃은 니들이다. 하자 종인은 히익-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진짜 무섭다고요!! 소리를 지르는 것을 모르는 척, 준면은 문 앞에 쭈볏거리고 서있는 실루엣을 돌아봤다. 그 시선을 느낀 종인이 머뭇거리는 아이에게 서둘러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들어와. 이쪽으로-”

  

어린 것이 아직 얼이 빠져있는 모양인지 말 한마디 없이 제 손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던 종인이 준면의 앞으로 제가 잘 접어 주머니 안으로 대충 넣어두었던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뭔.. 얌마, 너는 무슨 서류를.”

  

꼬깃꼬깃. 아주 찢어오지 그랬냐- 잔소리를 뱉으려던 준면이 하얀 종이 위로 적힌 글자를 읽어 내려가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종인을 따라 들어오던 아이를 보며 품었던 의문이 종이 한 장으로 쉽게 풀어졌다.

준면은 지금의 상황을 경계하듯 움직이는 눈초리를 바라보며 잠시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허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나.. 대충 넘겨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서류 위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입술을 달삭였다.

  

“학생. 이름이 뭐야?”

  

제 질문에 답이 없는 것을 잠시 기다리던 그가 고개를 들자 종인이 아이의 옆구리를 툭 치며 형님이 질문하시잖아 임마. 거친 목소리를 뱉어냈으나 아이는 그와 저를 다시 번갈아 볼 뿐, 저의 질문에 답을 하지는 않았다.

  

“이름이 뭐냐고. 아가.”

  

한 쪽 입술을 느리게 끌어 올리며 재차 물었다. 아이는 그의 질문에 눈을 깜빡이길 잠시, 제 바지 주머니로 손을 찔러 넣었다. 그의 손에 딸려 나온 메모장과 펜을 바라보던 준면의 입술이 다시 일자로 내려앉았다.

  

아이는 익숙한 동작처럼 종이를 몇 장 넘기고는 자신이 원하는 페이지를 찾아들었다. 

  

「 변 백현 입니다. 」

  

종이 위에 적힌 검은 글씨 위로 세 사람의 시선이 박혔다. 손때가 묻은 종이 위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잠시 기다리던 아이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짧은 글을 읽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해서였다. 종인은 티나지 않게 고개를 다시 돌리며 눈을 꿈뻑였다. 이럴 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준면의 시선이 다시 백현의 얼굴로 향했을 때, 그는 제가 느꼈던 기분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에서 느낀 익숙함. 그것이 언젠가 제가 마주했던 얼굴과 매우 흡사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 제 기분이 다시 바닥을 쳤다는 것이 명백한 증거였다. 아무 것도 담고 있지 않은 얼굴, 건조한 눈빛. 

그것은 21살의 박찬열과 매우 흡사한 모양새를 띄고 있었다.

  

세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저를 바라보다 시선을 피하고, 저를 바라보고 하며 각자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백현은 다시 메모장을 닫고 고개를 들어 아직도 저를 바라보고 있는 준면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는 무미건조한 백현의 얼굴과 눈동자, 그리고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걸려있는 검은 펜을 차례로 훑으며 한숨을 삼켰다.

  

“집은,. 어디냐. 꼬마야.”

  

제 손가락 사이로 그러쥔 펜을 움켜쥐는 손 끝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바라보며 준면이 등을 돌려 제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종인아. 쟤 집 까지 데려다 줘라.”

“네. 형님.”

  

습관처럼 대답을 뱉어낸 종인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뒤늦게 의아함을 가지긴 했으나 하라면 해야지. 사무실 밖에 있던 녀석에게 이 꼬맹이 집에 좀 데려다줘라. 짧게 말하고 백현을 밖으로 내보냈다.

  



준면은 제 의자 위로 몸을 깊게 묻으며 이마를 짚었다. 변백현, 삐뚤게 쓰여진 이름과 그 위로 찍힌 지장까지 전부 강요에 의해 날조된 서류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건 저 뿐만 아니라 그 아이를 데려온 종인이나 찬열, 모두가 눈치챌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적힌 것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적은 종이를 제 눈 앞으로 들이밀고 서있었다.

준면은 느린 동작으로 의자를 돌려 창 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까만 배경 위로 아른거리는 불빛이 유리창 위로 어지러이 달라붙은 물방울 위로 색을 물들였다. 

  


그 날은, 긴 장마의 마지막 날이었다. 







-

스물 여섯의 제 인생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무수히 지나온 잿빛과 핏빛에서 그 비슷한 하나를 걸러내는 것이니 말이다. 제 인생이 온통 잿빛과 핏빛만 가득했다고 하면 누가 믿어주기는 할까 싶지만. 

그때 저는 큰 형님의 밑에서 직접 움직이던 두 개의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바쁘게 움직이던 제가 사고 현장에 도착해서 본 것은 허망한 눈동자를 가진 다 죽어가는 남자애. 스물 하나의 박찬열은 저를 보며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같은 세상 사람. 

준면이 찬열을 다시 만났을 때, 했던 생각이었다. 아.. 이 아이도 저와 같은 세상으로 떨어졌구나. 뭐.. 예상은 했던 일이었다. 준면이 기억하는 찬열은 열아홉, 빗소리에 발버둥 치며 괴로워 하던 절망적인 눈동자. 그리고 다시 마주했을 때의 그 공허한 눈은 꼭 저와 같았다. 고작 햇수로 2년, 실상으로 1년이 조금 더 되어서 다시 마주한 그에게 남아있던 것이 차라리 그때의 절망이었다면 준면은 아마 그를 이 세계로 끌어들이지 않았을 테다. 

 

그러나 그에게 남아있던 것이 공허함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그를 붙잡았다. 그가 제 옆에서 같은 길을 걸어가길 바랬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준면은 아직도 찬열이 이곳을 떠나주길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

 


준면은 구겨진 종이 위를 가만히 바라보다 조금 전 마주했던 메마른 눈을 떠올렸다. 하..숨을 뱉어낸 준면이 눈을 감고 헛웃음을 뱉어냈다. 박찬열, 

 

“어디서 비슷한 걸 잘도 주워왔구나.”

 

저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는 널리고 널렸다. 허나 저를 닮은 이는 흔하지 않은 법이지. 

 

 

 

 

  

 


아이 앞으로 달려있는 빚의 액수는 8천 만원. 서류에 적혀있는 내용 대로라면 원금을 갚기도 전에 이자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를 것이다. 준면은 사무실 밖에 있을 종인을 불러들였다. 서류는 이미 2개월도 전에 작성 된 것이었다. 아마 오늘까지 빚을 갚기 위해 발버둥을 쳤을 것이다. 

 

“김종인.”

“네. 형님.”

 

부르셨습니까? 준면은 서류를 바라보던 눈을 들어 제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종인을 바라보았다. 

 

“얘, 조사 좀.”

 

손끝으로 튕기듯 서류 위를 툭 치는 동작을 바라보며 종인은 종이 위를 잠시 훑었다. 변백현. 삐뚤삐뚤한 이름과 지장을 잠시 바라보던 종인이 고개를 들어 준면을 바라봤다. 

 

“아. 그렇지 않아도 하고 있습니다-”

 

시키실 것 같아서. 뒷말을 생략하자 준면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 되는 대로 보고할까요. 형님?”

 

특별한 것 없습니다만.. 꺼림칙한 건 많던데.. 종인의 그렇지 않아도 하고 있다는 말은 100% 진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 진사장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소파 위에 앉아 허망한 눈으로 서류를 바라보던 아이의 얼굴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던 탓이다. 뭐 조사라고 해봤자 뻔하겠지만, 파면 팔수록 기분은 점점 더 찝찝해져 가겠지만 하라면 해야지. 별 수 있나. 그러라는 대답을 듣고 준면의 사무실을 나서려던 종인은 김종인- 다시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구겨진 종이를 서랍 안으로 대충 접어 밀어 넣은 준면이 다시 저를 돌아보며 물었다. 

 

“박찬열은.”

“밖에 계십니다. 모셔올까요? 형님?”

“됐고, 꼬맹이는.” 

“귀가 시켰습니다.”

“박찬열도 귀가 좀 시켜라.”

“아이 참.. 또 그러신다.”

 

종인이 다시 입술을 열려다 저를 올려다보며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준면의 등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네. 꼭 안전 귀가 시켜드리겠습니다!!”

 

멀어지는 그의 등을 보며 종인이 다시 소파 위로 몸을 깊게 묻었다. 아니 그 덩치를 어떻게 안전 귀가 시킵니까 제가아.. 늘어 트리는 한숨에 땅이 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찬열은 비에 젖는 구두 끝을 바라보며 느린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제 등 뒤로 허리를 숙인 녀석이 저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들리지 않았지만 손을 들어 받아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찬열은 피로감에 젖은 눈을 꿈뻑이며 욕실로 향했다. 눅눅한 자켓과 셔츠를 벗어던졌다. 샤워기를 틀었다. 비를 맞는 기분이었으나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었다. 하.. 느린 숨을 뱉어낸 그가 얼굴 위를 쓸어내며 중얼거렸다.

 

“지긋지긋하다. 진짜.”

 


 

 -

찬열은 소년원에 들어갔을 때, 제 철없음과 어리석음이 제 인생을 비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제 인생은 어긋남의 연속이었다. 제 처음 기억은 보육원이었다. 아주 어릴 때 버려졌다고 들었다. 부모님이 보고 싶은 적은 없었다. 그들에게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이해를 했다기보단 환상 같은 것이 없었다고 해야 맞을까.

 

고아인 것을 빼면 평범한 삶이었다.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나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그 대상이 불특정 다수가 되기는 했다. 물론 먼저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번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쉽다고 하지 않나. 싸움도 그랬다. 처음 시작이 어려웠지 몇 번을 마주하다 보면 익숙해져 갔다. 

 

철없던 시절이었다. 어린애라고 하면 딱 맞았던 시절. 그러니 앞뒤 분간 없이 뛰어다녔던 거 겠지. 의미 없는 시간들이 흐르고 각성을 한 뒤로는 제가 비가 올 때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평소 저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던 이들은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이를 갈았다. 제 분노에 이유가 없듯 그들의 분노에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그들도 철이 없었던 거라고 지금에서야 생각했다.


“주영아. 정신 차리자- 넌, 혼자 오면 안 된다니까.”

 

자신의 밑에 깔려서 팔로 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놈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하던 하준이 저를 돌아봤다. 사실 싸움은 저보다 하준이 더 잘했다. 저는 그저 옆에서 분위기 조성만 할 뿐. 그때의 저는, 하준과 더불어 적이 많았다. 하준은 그들의 앞에서 일부러 저를 치켜세웠다. 일부러 너는 나서지마. 내가 해결할게- 하며.

 

“야 김하준,”

“앉아있어. 뭐 이런 걸 니가 나서냐. 얘 그러다 잘못된다.”

 

뭐래, 교실 가자고. 더워- 그때 저는 교복을 펄럭이며 말했다. 춘추복 입으라더니 이렇게 더운데 무슨 춘추복, 더워 죽겠네. 짜증을 담아 얼굴을 구기며 바라보는 저를 보며 하준은혀를 찼다. 그렇게 하면 저보다 더 쎈 캐릭터가 니가 될 거다. 닥치고 있어라.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물론 그의 작전은 제가 키가 크기 시작했을 때부터 계속 되던 것이었다. 그러니 그 즘엔 누구나 그렇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한방이면 픽픽- 나가 떨어지던 녀석들이 저를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하준을 타깃으로 삼았을 것이다. 김하준을 먼저 쓰러트리고 박찬열을 처리하고 싶었겠지. 그 반대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박찬열 그 새끼, 비 오면 소리 못 듣는다던데.. 그때 치자. 아마 그런 생각들을 했겠지.


비가 내렸다. 그들은 비가 내리길 기다렸다는 듯, 준비된 계획을 실행하듯 비가 오자마자 저와 하준을 뒤쫓았다. 먹구름이 집어삼킨 하늘을 올려다보며 찬열은 욕을 읖조렸다. 비라면 지긋지긋 했다. 

 

“뭐하냐, 안 가냐?”

 

제 어깨를 툭 치며 말하는 하준의 입모양을 대충 읽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일부러 저를 위해 느릿하게 말해주는 그의 배려 덕분이기도 했고.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을 때, 슬쩍 보아도 두 사람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무리들이 제 앞을 가로막는 것이 보였다. 하준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냐, ..우리 주영이 엉아들 불러왔어?”

 

웃기지도 않는 다는 듯 우쭈쭈-소리를 내던 하준을 보며 주영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하준은 저에게 달려드는 놈들의 복부를 걷어차고 하나둘 제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치워냈다. 문제는 찬열이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던 평소와도 어딘가 달랐다.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누군가 거칠게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찬열의 숨이 덩달아 거칠어졌다. 그가 허리를 숙이며 제 무릎을 탁 짚었다. 하..하아.. 숨을 내뱉는 그를 돌아보며 하준이 소리쳤다.

 

“박찬열!”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찬열은 점점 커지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몸부림 쳤다. 흑.. 흐으. 흡. 비를 맞으면 맞을수록 소리가 증폭되듯 커져 갔다. 제 감정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온통 그 울음 소리로 적셔지듯, 순식간에 젖어 들었다. 

 

“하아..하.”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야- 박찬열! 돌겠네 진짜!”

 

저 하나 간수하기에도 수가 많은 무리들을 상대하며 찬열까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하준은 눈을 돌리며 저들이 걸어온 쪽을 다시 살폈다. 무작정 찬열을 이끌고 뛰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못해서 찬열은 다시 주저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고 있는 저를 보며 하준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겼다. 제가 이 상태의 찬열을 지키면서 상대하기에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지금은 안돼, 지금은. 씨발!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하으..”

 

하준은 제 팔을 끌어당겼다. 이러다가 둘 다 죽어.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찬열은 손을 벌벌 떨며 제 귀를 틀어 막았다.

 

“그만,.. 그만.”

 

젖은 바닥에 앉아 제 무릎 위로 머리를 묻은 찬열이 제 귀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이봐. 야, 꼬마야.”

 

누군가 저를 부르는 듯 제 옷깃을 잡아 챘지만 찬열은 비틀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야! 박찬열!! 

 

끼익- 빗물에 미끄러지는 타이어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린 것은 찬열이 아니었다. 그의 옷깃을 끌어당긴 남자가 찬열을 갈무리 하여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찬열은 그의 팔과 빗줄기 사이로 붉게 물든 시멘트 바닥을 어렴풋이 보았다. 

온통 빨간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회색의 시멘트 바닥 위로 붉은 물이 번져있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저는 소년원으로, 하준은 병원으로. 평생 휠체어에 앉아 생활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다친 것이 저 때문이냐고 했을 때, 그렇다고 답했다. 저의 답변을 들은 누군가가 제 서류에 김하준의 이름을 적어 넣었을 것이다. 국선 변호사가 저를 변호해 주긴 했다. 제가 스스로를 변호할 생각이 없었을 뿐이지.. 

 

비만 오지 않았다면, 아니 제가 각성하지 않았다면, 소울메이트가 없었다면, 제가 없었다면 하준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고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 저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그때 제가 하준을 밀어냈더라면 제 곁에 아무도 없게 했더라면.. 후회라는 것은 한순간도 저를 떠나지 않고 지독하게 저를 맴돌았다.  

물론, 저에게 주어지지도 않은 또 다른 삶을 상상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후회라는 것이 그랬다. 그것은 흡사 제 머리 위를 떠다니는 먹구름과도 같았다. 저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이제 끔찍한 것은 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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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주의보 시작하고 비가 많이 왔어요-놀랍도다-..! 

다들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ㅠㅠ 안전이 최고에요..


저번 편에 오타가 많았네요..! 읽는데 불편을 드려 죄송해요 ;ㅅ; 

남겨주신 마음은 언제나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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