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찬백| 호우주의보 01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 warning _ roman noir


< prologue가 있습니다. 먼저 읽고 1편을 읽어주세요!


 






-

거센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렸다. 

툭- 투둑- 일정하지 않은 소리들이 창문을 무섭게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준은 찬열을 천천히 바라봤다.  

 

구관(舊館) 음악실 안에 혼자 앉아있던 찬열은 제 앞으로 다가선 운동화 끝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었다. 하준의 얼굴을 바라보던 찬열이 미간을 구겼다.

 

“혼자있게 좀, 놔두지 그랬냐”

 

비가 오면 제 목소리와 제 운명의 상대. 즉 소울메이트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했나,.. 사실 이런 쪽으론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알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직접적으로 본 사례도 드물었다. 맨날 tv나 신문에서 운명을 찾는 사람들이나,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도 듣고 보아왔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세상의 일까지 관심을 가질 만큼 제 현실이 녹록하지 못했던 탓에 찬열은 소울메이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비가 올 때 뿐이었으나 갑자기 소리를 잃는 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된 공포는 아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제 운명의 상대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 제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점점 더 그 크기를 부풀리며 번져갔다. 

 

“니 목소리.. 들리지도 않는데.”

 

찬열은 벽으로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하- 한숨을 토해내고 눈을 꿈뻑이자 눈두덩이 위로 모래가 굴러다니는 느낌이었다. 하준은 제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을 바라보다 제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짧은 진동에 미간을 찌푸렸다. 저에게 보내려고 한 것인가.. 

 

- 난 니 목소리 들리니까 된 거 아니냐.

 

- 그리고 비 올 때만 그런다며. 

 

머리 위의 창문을 올려다보며 하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 밖으로 손을 뻗어 빗줄기를 그대로 맞이하며 웃었다. 좋겠다 너는, 소울메이트도 있고. 

 

찬열은 공포감을 떨쳐내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강구하기로 마음먹었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입모양을 읽고 사람들의 기척을 감지하는 것이 제가 시작한 첫 번째였다. 

 



물론 그런 제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지만.

 

  







 

 


“백현이 지금 어디있니?”

“창고요. 박스 정리 한다고, 아까 그 새끼가 다 엎었데요.”

“바빠 죽겠는데, 정말.”

  

린지가 서둘러 복도를 빠져나갔다. 가뜩이나 정신없어 죽겠는데 취객의 난동으로 주의가 어지러운 탓이었다. 일손이 부족해지는 상황을 그녀는 견뎌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지시를 내리고 움직이던 그녀가 창고 앞 벽으로 다가섰다. 

  

“얘, 백현아! 어휴, 이어폰 좀 빼라니까.”

  

그녀는 상자 더미 앞에 주저 앉아있던 그의 등 뒤로 다가서 거칠게 이어폰을 잡아 뺐다. 제 귓가를 벗어나는 이어폰을 잡으며 고개를 돌린 백현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로 저를 찾느냐는 듯한 얼굴에 린지가 빠르게 손 끝을 들어 올렸다가 그의 어깨와 팔, 손을 매만지며 휙휙 그의 몸을 돌렸다.

  

“너 옷은 왜 이렇게 젖었니? 어머, 손은 또 이게 뭐고?”

  

내가 정말- 린지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복도로 고개를 빼내며 소리쳤다. 구급상자 가져와! 빨리! 그녀의 높은 목소리가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뚫고 복도 끝까지 퍼져나갔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만 해봐 어디. 가만 안 둬. 내가 뭐랬어? 넌 몸이 재산이랬지?”

  

빨리 안 가져오니?! 그녀의 외침에 누군가 후다닥 빠른 걸음으로 창고 앞으로 다가섰다. 

  

“아 진짜 왔네 왔어. 누나 때문에 귀청 떨어지겠어.”

“그러라고 지른 거야. 얘 치료부터 해줘. 니가. 직접. 보고도 꼭 해라?”

“아 왜 나한테 시켜-”

“응. 난 귀찮으니까.”

  

빠르게 창고를 벗어나며 민우의 등을 퍽퍽 내리친 린지의 매운 손에 그의 얼굴이 잔뜩 찌프러졌다. 아, 손 진짜 매워. 저 누나. 투덜거리며 몸을 돌린 그는 저를 올려다보는 백현을 마주하며 한숨을 뱉어내고 구급상자를 열었다.

  

“역할수행. 너도 알지? 어디가 다친 거야. 봐봐-”

  

그의 말대로 그녀의 말에 토를 다느니 빨리 해결을 하고 지나가는 게 빠를 거라 생각한 것은 백현도 마찬가지여서 잠자코 손을 내밀긴 했으나, 민우의 손에 들린 약과 밴드를 제 손으로 걷어왔다.

연고를 쭉 짜내고 그 위로 밴드를 대충 붙이는 동안 민우는 그 앞에서 제가 다 아프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으으- 소리를 뱉어냈다. 

  

“아우, 이 새끼 이거 상남자여. 상남자.”

  

평소 엄살이 심한 저에 비하면 백현은 정말 제가 범접할 수 없는 레벨의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저보다 한참은 어린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제가 형이라고 불러야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민우는 밴드로 피가 스미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보다 많이 찢어졌는데, 저걸로 되나 싶었지만 그를 더 붙잡고 있어봤자 나올게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구급상자를 갈무리 하였다. 상자를 들고 창고를 벗어나기 전, 그는 상자에서 꺼낸 연고를 백현의 조끼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발라라. 빨리 나아야 일도 하지.”

  

백현이 무어라 답을 할 새도 없이 사라진 그의 뒷모습과 제 조끼 주머니 안을 번갈아 바라보다 다시 자리에 주저 앉았다. 이어폰을 고쳐 끼고 상자를 나르는 일에 다시 집중했다. 손바닥 위로 붙은 얇은 밴드 위로 피가 스며 나와 빨갛게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선 백현의 등 뒤로 장난기 섞인 시선들이 들러붙었다. 그는 평상시처럼 느린 동작으로 제 의자 위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책을 꺼내기 위해 책상 서랍 속으로 손을 넣었던 그가 쓰레기로 가득 찬 서랍 안을 확인하며 손을 빼냈다. 축축한 것이 묻어 났다. 음료, 아니면 음식물 쓰레기. 아니면 걸레, 뭐든 상관없다는 듯 백현은 제 손으로 그 것들을 전부 끄집어 내 쓰레기통으로 움직였다.

  

“욱- 토 나와.”

“저 벙어리 새끼 냄새도 못 맡는 거 아니냐?”


역겨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무시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로 몇 번이나  비누칠을 하며 손을 씻어내도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을 터였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손을 씻던 백현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태연한 척 하는 것도 쉽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감은 백현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느리게 꿈뻑이는 시야로 회색빛 천장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쉬는 시간의 전부를 화장실에서 보내고 자리로 돌아온 백현의 책상 위로는 수업을 위한 책은 커녕 공책 한 권도 놓여있지 않았다. 가방 안의 상황도 제 책상과 별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현은 항상 제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메모장을 열어 칠판 위의 활자들을 옮겨 적었다. 멀지않은 곳에서 여러 개의 시선들이 저를 훑듯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제 행동에 키득 거리며 저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백현은 손을 움직이며 칠판으로 시선을 고정 시켰다.

열 아홉 해를 살아오면서 제가 터득한 것 중 하나는 눈치다. 상대할 것과 상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는 눈치. 그는 저런 무리들이 저를 어떻게 걸고 넘어져도 휘말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변백현.”

  

저를 부르는 상냥한 목소리에 백현은 고개를 들었다. 신발을 탁탁 털어내며 안에 있던 압정을 아무렇지 않게 갈무리 하는 제 행동을 바라보던 은재가 제 대신 익숙하게 한숨을 뱉어냈다.

  

“알바가냐?”

  

고개를 끄덕이며 신발을 고쳐 신은 백현이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저는 늘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교를 벗어났다. 미술 학원을 다닌다는 은재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그는 다른 아이들처럼 말이 많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않았다. 백현은 그의 그 적당함이 편했다. 학교에서 제가 대화를 나누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제 답답함을 이해해주는 것은 그의 몫이었지만. 

 

백현이 열 아홉 해를 살아오며 터득한 또 하나. 저는 사람을 딱 세가지로 구분했다. 제 답답함을 이해하는 사람이 그 첫 번째, 저를 동정하는 사람이 그 두 번째 그리고 저를 약자라 생각하며 자신이 강자가 되는 사람이 그 세 번째. 은재는 첫 번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그 답답함을 답답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대화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 하지만 백현은 제 기준으로 나눈 세 분류의 사람들 중, 첫 번째 분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웠다.

  

저와 함께 정문을 빠져나오는 동안 은재는 평소처럼 대화를 이어갔다. 저의 대답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젓거나 둘 중 하나 였으나, 그는 개의치 않아했다.

 

“나 편의점 갈 건데, 같이 갈래?”

  

잠시 손목 위로 시선을 내렸던 백현은 시간을 확인하고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 일하는 곳은 식당이었는데 일찍 일을 끝내면 저녁을 챙겨주는 곳이었다. 백현은 제 손목을 가볍게 톡톡 치고 손을 흔들었다. 은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며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올라 도착한 문 앞에 서서 백현은 소리 없는 한숨을 뱉어냈다. 숨이 벅찬 것은 아니었다. 제법 익숙한 길이었으니..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작은 단칸방 안의 공기를 익숙하게 들이마시며 가방을 내려두고 옷을 갈아입었다.


몇 시간 동안 설거지를 하다 보면 땀이 흐르듯 쏟아진다. 하나 뿐인 교복을 이 꿉꿉한 장마철에 매일 빨 수는 없으니 서둘러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들렀다 가야만 했다.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었지만 주방 이모가 저를 잘 봐주셔서 수입도 꽤 되는 곳이었다. 

  

“백현아- 밥 먹고 해라.”

  

주방 이모의 말에 아직 통 안에 가득한 그릇들을 잠시 내려보고 서있던 그의 등 뒤로 다시 쏟아진 지금 손님 없다- 퍼뜩. 하는 목소리에 그는 마지막으로 손에 들고 있던 접시의 거품을 닦아내며 장갑을 벗어두었다.

  

“먹고, 오늘 가게 문 좀 일찍 닫을 거니까 너도 일찍 들어가.”

  

테이블 위로 밥 한 공기와 밑반찬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의자를 빼내 앉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제 시선을 느끼고 쟁반을 들고 멀어지며 짧게 답했다.

  

“나는 오늘 나가서 먹을 거니까- 먹고, 마무리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저를 든 그가 소복이 쌓인 밥 안으로 그것을 밀어 넣었다.

 

 


비가 왔다. 더위와 습기를 동반한 끔찍한 장마였다. 

비를 맞으며 언덕을 다름박질했다. 옷이 젖어 마른 몸 위로 들러붙는 촉감이 저를 극도의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 듯 해서, 백현은 주먹을 꾹 쥐고 걸음을 서둘렀다. 끼익- 쇳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선 백현은 벅찬 숨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상체를 숙이고 무릎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 닫힌 문 위로 등을 기대며 바닥에 주저앉은 백현이 제 무릎 위로 입술을 뭉개듯 묻었다.

  



쿵쿵쿵! 제 등 뒤를 요란하게 두드리는 진동에 백현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이 곳에 저를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살아있는 줄도 몰랐던-아니 이제는 죽었다고 했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제 친부라는 사람도 죽었다고 했다. 이제는 정말, 세상에 저 혼자 남겨진 셈이었다. 물론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았지만.

 

쿵쿵쿵! 

“학생! 백현 학생! 안에 없나?”

 

천천히 몸을 일으킨 백현이 문을 열었다. 끼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린 문 사이로 어둠속에 묻힌 실루엣을 보며 여성은 깜짝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아휴, 깜짝이야. 불도 안 켜고 뭐해-”

 

무슨 일이냐는 듯 저를 올려다보는 마른 얼굴을 바라보며 여성은 한숨을 후-뱉어냈다. 그래, 제대로 된 대화를 기대한 제 잘못이지.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훑어본 그녀가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봤다. 

 

“학생, 지금 월세 밀린 거 알지? 벌써 2달째야. 이달 말에도 입금 안되면 방뺄 테니까 그렇게 알아-”

 

백현은 서둘러 제 주머니 안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사정이라도 해봐야 하는데, 메모장을 찾던 그의 손이 다급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여성은 딱 짤라 말했다.

 

“더 들을 것도 없고. 그래도 3달이면 많이 봐준 건지나 알아. 학생 딱해서 기다려보려고 했는데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 이번 달 말이야. 밀린 2달분이라도 입금해.”

 

그녀는 제가 다시 잡을 세도 없이 뒤를 돌았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제가 더 이상 사정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저를 더 불쌍하게 여기기야 하겠지.. 그렇다고 돈도 없는 저를 이곳에 계속 살게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백현은 다시 문을 닫고 바닥으로 주저 앉았다. 

 

 

  

  

  




찬열은 사무실로 들어서며 준면의 등을 보고 꾸벅 허리를 숙였다. 준면은 그의 등장에 허리를 틀고 손을 까딱였다. 앉아라 목아파. 

  

“일찍 오셨습니까. 형님.”

  

아침부터 회의라는 말에 서둘러 차를 몰았던 그는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어 방금,”

  

서류 위에 붙어있던 시선이 떨어진 것은 찬열에게서 흘러나오는 옅은 향수 냄새 때문이었다. 남들이 생각하기엔 그저 섬유 유연제라고 생각할 만큼 옅은 향을 느낀 것은 그를 21살 때부터 봐온 저를 포함해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새끼 이거,

  

“어디 다쳤냐.”

“아닙니다.”

“..불편하면 종인이 데리고,”

“형님.”

“알았어 새끼야. 몸 관리 잘해라.”

  

굳어지는 표정을 잠시 바라보던 준면이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뱉어냈다. 간부 회의, 솔직히 말이 간부 회의지 서로 눈치 싸움, 힘겨루기를 하며 진을 빼는 자리다. 엿 같지만 저는 꼭 참석해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찬열이 따라가는 것은 오로지 저 때문이다. 

  

한창 회의가 열리는 시기에는 중요 구역의 배분과 서열이 다시 정해지기도 한다. 그만큼 위험이 따르는 자리다. 

  





“형님.”

  

준면은 방 안으로 들어서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준면의 큰 형님, 그러니까 그가 14년을 모신 형님이 지금의 서울과 경기 지역의 보스로 그는 제 아래로 16명의 중간 보스, 그 아래 조직들까지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자였다. 제가 이쪽 길을 걷기도 전에 그는 이미 여러 조직을 통합하는 일을 해왔던 사람으로 지금의 조직의 뿌리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일찍도 왔다.” 

“부르셨는데 당연히 와야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도착한 것은 인사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저를 17년 전, 지옥에서 건져 올린 사내다. 제 생명의 은인이자 그 목숨 값을 갚아야 하는 사람. 그 생각 하나로 그의 곁에 머문지 꼬박 14년 이란 시간 뒤에 준면은 지금의 자리에 올라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주 좀 들러라. 지 새끼들 있다고 아주,”


자주 보면 뭐합니까, 말만 많아지고 시끄러운데.. 궁시렁 거리며 자리에 앉은 준면이 너스레를 떨었다.   


“형님. 제가 그렇게 좋으십니까.”

“일단 그 깐죽거리는 목소리는 맘에 들지.”

  

참나, 준면은 제 앞에 놓인 주전자를 기울여 찻잔 안으로 천천히 차를 따라냈다. 그의 동작을 바라보던 보스의 눈이 순식간에 차게 식었다. 김준면..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준면의 고개가 들렸다.

 

“예. 형님.”

“올해, 강남 쪽 니가 맡아.”

“형님.”

 

진짜 왜 그러십니까. 저 골치 아픈 거 딱 싫습니다. 말을 이어가려던 준면은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입술을 다물었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라는 것은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만큼은 지금까지처럼 아들놈 대하듯 제 편의를 봐주시던 눈빛이 아니었으니까.

 

  


  

  

방 안으로 들어선 큰 형님을 향해 고개를 숙이던 각 지역구 보스들은 그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허리를 펴고 각자의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의 나이와 비슷한 연배, 간혹 그보다 나이가 많은 이도 있었으나 모두가 그를 제 윗사람으로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들이 많네.”

“아닙니다. 형님.”

“당연한 일 아닙니까. 형님. 오랜만에 뵈니 얼굴이 더 좋아지셨습니다.”

  

서둘러 안부를 주고 받는 얼굴들을 바라보며 큰 형님은 허허 낮게 웃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지역구의 배분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 없이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할 뿐이었다. 지금의 조직이 크고 작은 싸움 없이 하나로 통합된 것은 오랜 시간에 거쳐 이어지던 싸움과 서로의 힘겨루기, 그리고 엄청난 자원 낭비가 뒤따른 후의 일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서로의 이윤을 배분하고 관리하며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이 각 지역구 책임자들의 의무 중 하나였다. 그들 사이에서도 특히 나이가 어린 준면이 각 지역을 맡고 있는 책임자의 자리에 올라선 것은 올해로 고작 3년 째, 17년 전 지금의 큰 형님 정진성의 밑으로 들어와 직속으로 14년, 그의 목숨을 몇 번이나 살리고 죽을 뻔한 적도 수없이 많이 겪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서른 여섯이라는 저들보다 한참은 어린 나이의 그가 저들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자들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니, 

  

“하반기부터 강남 지역은 김준면이 맡는다.”

 

이어지는 말에 장내가 술렁이는 것은 당연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찬열은 조수석에 올라타 백미러로 뒷자석을 살피며 물었다. 준면이 어깨를 으쓱이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바라보며 후- 낮은 한숨을 뱉어냈다. 지금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저 뿐인가 보다.

 

“당분간 고생 좀 해라.”

 

준면의 말에 찬열은 결국 눈을 감았다.

 

큰 형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남자들의 시선이 준면을 향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날이 선 시선들이 달라붙을 때 마다 찬열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원래라면 기존의 저들이 관리하던 구역을 그대로 관리했어야 맞다. 회의가 대외적으로 단합을 위한 공평한 지역 배분, 이익 배분이었지 사실상 대부분이 처음 맡았던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편이었다. 죽거나 서로 싸움을 하거나, 배신을 하지 않는 이상은. 

이번 강남구 관리자가 공석인 이유가 그러했다. 배신을 했다. 결국엔 잡아내긴 했으나 그 관리자의 자리가 비어있으면 그 자리를 탐하는 자들이 생기기 마련이라 서둘러 긴급 회의를 열었던 것이 오늘의 일이었다. 그런 자리에 준면이 거론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다. 

지금까지 관리하던 지역의 골칫거리들이 사라지자 새로운 골칫거리들이 생겨난 셈이었다. 언질이라도 주시지 원망이 섞여 들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의 원망의 주체는 제 형님에 대한 걱정이며 제 식구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런 일을 직업으로, 삶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매 순간을 이런 위험에 노출되었지만, 준면은 특히 위험했다. 

 


 

준면을 처음 만난 것은 ‘심부름’을 하고 난 뒤였다. 소년원에서 나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여기저기 전전해 다니던 저에게 남은 것은 범죄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 더 이상 무너질 곳이 없다고 생각할 만큼 무너진 제 세계에 함께 서있던 사람. 

 

어이, 너. 살아 있냐?

 

저를 바라보는 그와 시선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상이었다. 

 

이 바닥에서는 작은 체구에 속하는 사람이었으나, 저보다 몇배나 덩치가 커보이는 자들도 단번에 압도할 만큼 강한 사람. 그러나 어딘가 망가진 듯한 사람.

 

찬열이 보기에 준면은 단순히 싸움을 잘하고 머리가 좋아서 살아 남은 것이 아니었다. 저를 죽일 사람이 없어서, 죽을 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으니까.. 위험에 대한 자각이나 경각심이 부족한 탓이라고 찬열은 생각했다. 그러니 지금까지 제가 그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뜬금없이 강남이요?”

 

사무실에 들어오자 종인이 제 옆으로 자리를 잡으며 물었다. 찬열은 한숨을 뱉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뜬금없지. 

 

“아니.. 여기 좋은데..”

 

지금 구역에서 하는 사업이라고 해봤자, 사업장 관리와 구역 관리가 전부였다. 지역 안에 사업장을 관리하고 다른 지역에서 넘어오는 패거리들의 행패를 막고 상인들의 피해가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을 옮기게 되면 그만큼 새로운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고, 골칫거리가 더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지역을 탐내는 인간들이 들으면 기가 막혀 할 일이지만. 사실상 준면은 지금 조직을 더 늘리지도 않고 유지하며 식구들을 챙기기에 지금이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제 이동의 이유에는 아마 다른 목적이 깔려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강남을 관리하던 자는 도박장 운영과 사채로 소문이 더러운 자였다. 이윤 배분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제 식구들에게 조차 악의를 사더니 결국 약 3개월전, 살해되었다.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준면과 찬열만 알고 있지만, 아마도 배신의 결과일 것이다. 

 

종인은 새로운 구역을 돌며 얼굴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었다. 상인들과 인사를 하고 얼굴을 익혀두는 것이 오늘의 주 업무였다. 기존의 악명 높은 관리자의 뒤를 이을 자들에게 향하는 시선은 따갑다 못해 뜨거울 지경이었으나 종인은 이런 종류의 기선 제압을 타고났다 싶을 정도로 아주 잘하는 타입이었다. 

 

해가 완벽히 떨어지고 꼴딱 밤을 새고 사무실 안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소파 위로 길게 몸을 뉘이다 불연 듯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찬열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어서였다. 당분간 준면의 호의를 직접 한다고 하셨으니 아마 준면과 같이 출근을 하겠지만 혹시 모르니.. 종인은 긴 소파보다 조금 작은 2인용 소파로 몸을 옮겼다. 아이고 피곤하다.. 몸을 구기고 누운 그가 제 옷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감았다.  

 

생각보다 사업장 관리는 더 엉망이었다. 질서 하나 없이 이루어진 관리의 후폭풍을 감당하며 동수와 종인만 죽어났다. 아니, 무슨 불법 사업장이 이렇게 많아. 이러면 물 관리를 어떻게 하려고.. 궁시렁 거린 동수가 서류 위로 줄을 직직 그으며 미간을 구겼다. 

 

영호는 제 아래로 5명을 이끌고 근처의 사건 사고들을 처리하기 바빴다. 관리자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행패를 부리는 주변 지역 놈들의 처리는 제법 귀찮았으나 가끔은 이렇게 몸을 써줘야 감을 잃지 않는 거라고, 영호는 오히려 반갑다는 듯 날뛰고 다녔다. 종인은 저 싸이코패스새끼.. 하며 궁시렁거렸다. 물론, 그가 없는 자리에서만 그랬다. 

 

준면은 며칠을 자택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니까 걱정할게 없다는 데도 저를 감금하는 찬열에 의해서, 반 강제적으로 집에서만 지내야 했다. 지긋지긋한 얼굴 보기도 싫다며 엉덩이를 뻥 차서 내쫓으니 문 앞에 버티고 서있는 걸 보고 결국은 포기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찬열은 제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저도 모르게 팔부터 뻗었다. 직업 정신이라기 보단, 

 

“아, 형님-. 나 죽네-”

 

생존 본능이었다.

종인이 켁켁 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분명 피할 수 있으면서도 저러는 것이 꼴보기 싫어 찬열은 혀를 쯧 찼다. 용건, 왜 왔냐는 말을 돌려하며 찬열이 뱉은 단어는 그 짧은 단어 하나였으나 종인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여기서 버티고 있지 마시고 사무실로 가세요- 차라리. 머리말은 잘라내듯 무시를 하고 묵묵히 본론을 기다리는 찬열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쉰 종인이 찬열의 옆으로 등을 기대고 섰다.

    

“진사장 애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형님.”

“..진 사장은,”

“네. 그 쪽도 확인했습니다. 오늘 칠까요?”

  

찬열은 혀 끝으로 얼음을 굴리며 생각했다. 오늘, 그래. 빠르면 빠를 수록 좋지. 고개를 대충 끄덕이니 준비시키겠습니다. 대답을 뱉어내고 고개를 숙인 종인이 밖으로 나섰다. 

진대일 사장, 일명 진사장. 근방에서 악명 높기로 소문난 사채 업자였다. 전에 있던 관리자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서로의 구역을 끊임없이 침범하고 사소한 다툼을 일으켜 주변 상인들이 저들만 피해를 보았다 언성을 높이며 떠드는 자. 곧바로 작업을 시작한 종인은 그들이 부산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며칠을 기다렸다. 드디어 오늘 새벽 그들의 행적이 바뀌었다. 제 구역에서 장사를 하는 것을 떠나 지켜보기 보단 초기에 진압을 하는 것이 편했다.  

 

 

니가 형님 집에 있을 거냐 물으니 종인은 곧바로 영호 시키죠. 대꾸를 해왔다. 그래 그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찬열을 바라보며 영호는 종인을 노려봤다. 지금 준면의 상태가 어떤지 잘 알면서 저를 그 지옥 같은 곳에 보내려는 종인이 괘씸한 탓이다. 

 

“규모는,”


찬열은 손목 위로 시선을 떨어트리며 시간을 확인하며 물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어둑하게 내려앉은 밤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차 안으로 올라탄 찬열이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을 바라보며 종인이 답했다.


“솔직히. 형님이랑 저, 둘만 있어도 정리 끝일 거 같던 데요.”


 곧바로 이어지는 답은 없었으나 종인은 출발 하겠습니다.형님. 짧게 이야기하며 운전석에 앉은 녀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가자-

 

 

 



 정보에 따르면 진사장의 사업장은 5층 자리 건물 하나를 지하부터 통으로 쓰는 곳인데 지하는 밀실, 금고, 1층은 게임장, 2층-4층은 죄다 유흥업소와 도박장, 5층을 통으로 사무실로 쓰고 있다고 들었다. 3층까지 올라오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생각보다 멀쩡한 영업점인 척을 하려는 듯 조직원의 배치가 적었던 탓인지, 아니면..

 

 종인은 제 뒤로 따라붙는 덩치들의 앞에서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며 저들에게 달라붙는 시선을 향해 말했다. 

 

“진사장 좀 만나러 왔는데.”

 

“네? 아..저는 여기..그냥, 손님인데요..”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 남자를 바라보며 종인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아, 그래?”

 

제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를 바라보며 종인이 알았다는 듯 같이 고개를 끄덕이자 잔뜩 긴장해 얼어붙은 어깨가 슬쩍 펴졌다. 몸을 돌리고 다시 원래의 목적지대로 걸음을 옮기려 몸을 틀던 종인이 다시 손을 뻗어 남자의 뒷 목을 틀어 쥐고 그대로 제 앞에 웃고 있던 낯짝을 게임기 위로 뭉개듯 비볐다. 이새끼봐라.. 

 

“날 뭘로 본 거야..”

   

“크헉, 이-”

 

제 쪽으로 팔을 뻗는 남자의 손목을 꺾어 등 뒤로 젖히고 목을 쥐었던 손을 떼어냈다. 어깨를 게임기의 버튼 위로 꾹 비비듯 누르고 팔을 조금 더 힘주어 꺾자 남자는 꺽꺽대는 숨을 뱉어냈다. 진사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제가 조직원 하나 구분 못할까, 것보다. 생긴 게 넌 딱 양아치처럼 생겼어. 이쌔꺄- 종인이 낮은 목소리를 뱉어냈다.

 

“진사장, 어디 있냐고.”

 

그 뒤로는 쉬웠다. 종인이 계단으로 한층 한층 올라가며 처리를 하는 동안 찬열은 습관처럼 차에 기대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는 말이 없었는데.. 이마를 타고 내려오는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후- 짧은 한숨을 뱉어냈다. 곧바로 1층으로 걸음을 움직이는 저를 따라붙은 것은 2명. 이 이상은 걸리적거릴 뿐이라 찬열은 제 뒤쪽으로 서있는 녀석들을 잠시 돌아보며 1층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섰다.

 

띵-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안에 타고 있던 것은 종인과 함께 위로 올라갔던 녀석들 중 한명 이었다. 

   

“4층까지 모시겠습니다. 형님.”

“5층은 막혀있나 보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찬열이 중얼거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쇠 구멍을 가리켰다.

 

“네. 종인 형님은 계단으로 올라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찬열이 4층에 도착하기 직전, 엘리베이터가 잠시 멈췄다 다시 작동했다. 5층에서 누군가 작동을 시킨 것인가.. 긴장하는 셋을 바라보며 찬열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빛을 내며 번쩍이는 숫자가 5로 바뀌었을 때,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

호우주의보는 레인(rain)버스 + 느와르 물입니다.

등장인물, 지역,사건들은 전부 지어낸 것 입니다..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우주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15
|찬백| 호우주의보 prologue
#17
|찬백| 호우주의보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