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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prologue

(呼偶)주의보 | 레인버스+느와르


* warning _ roman noir
* warning _ roman noir








“형님, 곧 쏟아지겠는데요.”


운전석에서 넘어오는 목소리에 뒷자석에 앉아있던 찬열이 고개를 돌려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뿌옇게 흐려지는 하늘, 어둑한 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바라보며 손등을 차가운 유리창 위로 느리게 문지르던 그가 백미러를 훑었다. 어느새 엔진 소리가 꺼지고 차가 정차 한 후였다.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형님.”

  

가게 옆 길가에 차를 세운 영호가 찬열을 돌아보며 안전벨트를 풀렀다. 그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운전석 문이 열렸다. 거리의 소음이 차 안으로 차고 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영호가 완전히 몸을 밖으로 빼내고 문을 닫자 소음은 웅웅 거리듯 차 안을 떠돌았다. 

  

차창너머로 번쩍이는 간판 불빛이 아스팔트 위로 뭉개지는 것을 바라보다 고개를 젖히고 눈을 깜빡인 찬열이 담뱃갑을 빼들었다. 입술 사이로 하얀 막대를 물고 창을 내리던 그가 어쩐 일인지 몸을 일으켜 완전히 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바람 한 점 없는 실내가 답답했던 탓이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 위로 구둣발이 닿았다. 오후 내내 차 안에 갇혀있다시피 했던 몸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질러 대는 듯 했다. 가볍게 어깨를 돌린 그가 금세 쏟아질 것처럼 몰려들던 비구름을 올려다보며 라이터를 켰다. 깊게 들이마시는 숨에 기다란 담배 꽁초의 선단으로 불빛이 옮겨 붙었다. 

  

“이, 씨발-”

  

유리병이 깨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듣기 거북한 욕지기가 제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찬열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바닥으로 뚝 떨어트리고 이마를 긁적였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물려있던 하얀 막대가 그의 손짓에 주체없이 흔들렸다. 

이런 소음을 듣고 싶어서 내린 것은 아니었는데.. 느릿하게 턱을 들어 올리며 숨을 뱉어냈다. 후- 찬열의 입술 사이로 뿌연 연기가 빠져나와 공기 중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비틀 거리는 걸음으로 제 앞에 선 남자의 멱살을 끌어 당겼다 밀어내며 소리를 지르는 남자는 이미 거나 하게 술이 취한 모양이었다. 이 주변은 전부 유흥업소다. 저런 소음을 만들어내는 취객이 익숙한 거리였다. 

  

“니가, 어, 지금- 어! 내 앞길을 막고, 서있을 일이야!? 어?!”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쏟아 내는 폭력의 이유가 단지 술 때문 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는 연이어 병신 새끼가 어쩌고, 말도 못하는 새끼가 어쩌고 신랄한 헛소리를 뻑뻑-뱉어냈다.

쏟아지는 폭언에도 저를 툭툭 밀치는 손길에도, 여전히 그 앞에 묵묵부답으로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마른 어깨를 밀치고는 남자는 제 손에 오물이라도 묻었다는 듯 인상을 팍 찡그리며 바지 위로 손을 비벼 닦아댔다. 그 일련의 동작을 말없이 바라보던 찬열의 시선이 그 남자의 손에서 그 남자의 앞에 서있는 작은 몸으로 옮겨 붙었다. 


잘못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고개를 푹 숙이고 그저 말없이 저에 대한 비난을 묵묵히 삼키는 중인 것 같았다.

 

그에 대한 감상을 늘어 놓던 찬열은 필터를 깊게 빨아들이며 오전부터 예보 되었던 비가 빨리 내려주길 바랐다. 

엊그제 새벽부터 지금까지 잠 한 숨 못 자고 강원도까지 다녀왔던 피로감이 제 어깨 위로 켜켜이 쌓여있던 터라 그냥 서있는 것도, 앉아있는 것도 지치는데 이런 의미 없는 소음까지 제 기분을 땅 밑으로 축축 끌어당기는 기분을 느끼고 싶진 않아서였다. 잇새로 짓이겨진 필터 끝이 뜯기는 느낌에 미간을 구기고 꽁초를 손으로 옮겨 잡았다. 

  

“비켜! 이 새끼야, 병신 새끼가, 걸리 적 거리게!”

  

와장창- 날카로운 소리에 다시 고개를 드니 기어코 유리병 위로 넘어진 남자의 위로 구둣발을 들던 취객의 모습이 제 시선에 걸린 순간 후두둑- 제 어깨 위로 떨어지는 비에 찬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취객은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에 놀란 듯 비틀거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 씨발- 왜 갑자기 비는 쳐 오고 지랄이야!”

  

한방울, 두방울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들이 소나기처럼 쏟아붓기 시작하자 찬열은 손 끝에 걸려 있던 꽁초를 바닥으로 대충 던지고 습관처럼 발로 으깨듯 비비며 차 문을 열었다. 그새 어깨 위로 묻어난 물기를 툭툭 투박한 손으로 털어내던 그는 차 문을 닫는 것으로 제 귀를 파고드는 소음을 차단했다.  

  

“병신새끼야, 너 때문에 다 젖었잖아!”

  

취객이 제 머리 위를 감싸듯 팔을 들고 비틀거리는 걸음을 재촉해 걷기 시작하자 어둑한 골목길 가로등 밑의 실루엣은 주춤거리며 넘어졌던 몸을 일으켰다. 

그것마저도 방금 전까지 저를 휘두르던 남자가 저질러 놓은 뒤치다꺼리를 하기 위해서 였던 모양인지 그는 일어나자 마자 넘어진 상자를 다시 쌓고 깨진 유리병을 치우고 건물 입구로 다가섰다. 안으로 들어서던 남자의 손이 조명에 비춰지는 순간,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는 손이 빗줄기 사이로 희미하게 비췄다.   

쏟아지는 조명 빛에 그제서야 제 손에 난 상처를 발견한 듯 잠시 주춤하며 멈춰선 남자가 옷 위로 아무렇게나 제 손을 문질러 닦으며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찬열은 미간을 구기고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지금은 안돼, 지금은. 

씨-발!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야! 박찬열!!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빨간 물감을 풀어놓은 듯 바닥은 온통 붉은 물로 젖어있었다.

  





“형님. 다녀왔습니다.”


운전석에 올라탄 영호는 습관처럼 말을 뱉어냈다가 백미러를 슬쩍 확인했다. 눈을 감고 있는 찬열의 얼굴 위를 잠시 살피던 그가 벨트를 맸다. 피곤하신가 보네..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형님.”

  

비가 올 때의 찬열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다년 간의 경험으로 터득한 그는 시동을 걸고 부드럽게 차를 출발 시키며 말을 아꼈다.  

  

  







  


찬열은 흐릿한 시야를 깜빡이며 천장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파 등받이로 묻은 목 뒤가 가죽 위로 뭉개지듯 눌려있는 느낌이 그닥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으나 밤새 내린 비에 축축 쳐지는 기분을 달래는 중이었다.

  

“벌써 나오셨습니까 형님.”

저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이는 놈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던 그가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울리는 나오셨습니까! 형님!! 하는 우렁찬 목소리에 숨을 뱉어냈다. 

  

“건물 무너지겠네. 새끼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인 것은 저 뿐만이 아니었으나, 그는 제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너 오늘 쉬라고 안 했냐, 왜 나왔냐.”

“충분히 쉬었습니다.”

  

제 대답은 들리지도 않는 다는 듯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준면이 데스크 앞으로 다가서 서류 뭉치를 들어 올렸다. 

  

“집에 가서 잠은 자냐?”

“네.”

“그럼 더 쳐 잘 것이지, 왜 나와서 걸리적거려. 공간 차지 쩐다. 너.”

“..죄송합니다.”

“웃으라고 하는 소리잖아. 웃으라고. 어휴.. 야, 누가 이 새끼 좀 집에 버리고 와라.”

“형님.”

  

사무실 안에 있던 장정들은 이 상황이 제법 익숙하다는 듯 어느 쪽에도 반응하고 어느 쪽에도 반응하지 않는 적정선을 넘나들고 있는 중이었다. 

  

“큰형님. 작은 형님이 어디 저희 맘대로 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까.”

“저거 진짜, 쓸데없이 크지 않냐?”

  

그러니까요. 표정으로 준면에게 긍정을 표하던 종인이 슬쩍 찬열을 돌아보며 헤-하고 웃어 보였다가 뭘 쳐 웃어. 손을 들어 올리는 찬열의 행동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아니 그렇게 사무실에서 24시간 뭉개고 있을 거면 집은 왜 샀어 집은. 어?”

“..형님이 사 주셨잖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내가 왜 샀냐고. 내가-”

  

준면이 들고 있던 서류 뭉치로 찬열의 팔을 툭툭 치며 한숨을 뱉어냈다. 당장 제가 이렇게 구박을 쏟아내도 들은 척도 안 하는 걸 뻔히 알지만 매번 시도를 하는 것은 그를 사무실에서 보는 것이 달갑지 않은 탓이다. 

  

가뜩이나 장마 내내 축축 쳐져 있던 녀석이 저번 주 내내 강원도로 출장을 가 있었는데, 거기서 혼자 처리한 일이 족히 8건은 넘을 것이다. 가진 건 체력밖에 없는 새끼가 어쩌자고 저렇게 쏟아붓는지. 그의 컨디션이 바닥을 칠 때마다 준면의 기분도 덩달아 바닥을 쳤다. 

  

“아우, 꼴보기 싫어-”


제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준면의 등을 바라보던 찬열이 다시 소파 위로 몸을 묻었다. 

  

월급 정산을 하며 그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던 동수가 종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 아퍼, 왜. 저를 돌아보는 종인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야. 작은 형님 집, 진짜 큰 형님이 사주셨냐? 그럼 따라 붙는 것은 제 뒤통수를 얼얼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두꺼운 손.

  

“아 아퍼!!”

“느자구 없는 놈. 정산이나 잘해.”

“내가 뭐얼!”

  

저 새끼는 꼭 제가 뭐만 물어보면 저러더라. 궁시렁 거리며 멀어지는 종인의 등에 욕을 날리며 착착- 손을 다시 움직였다. 아, 씨. 까먹었어. 머리 맞아서 그래. 저 개새끼- 물론 다시 그의 등을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찬열이 제 손가락을 비틀 듯 털어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익숙하게 담배를 빼 무는 것을 바라보던 동수가 제 앞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제가 앉아있는 테이블 앞으로 놓인 봉투를 잠시 바라보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익숙한 골목을 따라 걸으며 찬열은 손등으로 툭툭 제 주머니 안의 봉투 위를 습관처럼 더듬었다. 종이의 질감이 피부 위로 부드럽게 스쳤다. 초록빛 페인트가 벗겨진 문 앞에 다달은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제가 가져온 봉투를 우체통 안으로 밀어 넣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물소리가 들렸다. 또, 비가 내렸다. 

이 지긋지긋한 장마는 언제쯤 끝이 나는 거냐 원망 섞인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선 영호가 머리 위를 툭툭 치며 자리에 앉았다. 

  

“밖에 비 온다.”

“아따, 징하네-참말로.”

  

어설픈 사투리를 뱉어내는 종인을 보며 동수가 눈을 희번뜩 움직였다. 따라하지마라. 이제 서울말 잘 쓰는데 자꾸 놀려. 개새끼.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호는 둘의 앞으로 놓인 잔을 채우고 곧바로 제 잔을 비워냈다. 

  

“이모 여기 깍두기 좀 더 줘요-”

“셀프라고 몇 번을 말하냐!”

“이모 셀프라는 거 아니었어?”

“지랄한다. 너는 발모가지가 똑 분질러졌냐, 손모가지가 똑 분질러졌냐-”

“이모. 나 오늘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고 지금 다리가 후들후들해-”

  

제 무릎을 잡고 개다리 춤을 추듯 양 옆으로 흔들어보인 종인의 목소리에도 이모님은 욕지기를 뱉으며 고춧가루를 푹 퍼담았다. 바빠죽겠는데, 어린 놈의 새끼가-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 니가 먹을 건 니가 가져다 먹어!”

“단골한테 너무한다 진짜-”

  

결국 보다 못한 영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얀 그릇 위로 깍두기를 옮겨 담으며 이모님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 저 새끼 오면 밥 주지 마세요. 이모님- 농 섞인 말에 종인이 뒤에서 빽- 소리를 질렀지만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 앞으로는 너 혼자와.”

  

영호의 말을 맞받아치며 커다란 양동이 앞으로 앉은 그녀의 등 뒤로 어지러운 주방 안, 개수대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에 시선을 옮긴 그는 마른 실루엣을 잠시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다시 테이블로 안착하는 그에게 주먹을 날린 종인이 입술을 삐죽이며 깍두기 접시를 빼앗았다.


“이제 너랑 안 와- 나 혼자 올거야.”

“제발 그래라.”

  

팽- 코를 풀어 낸 종인이 고기를 낼름- 집어 먹었다. 

  

“근데 작은 형님은 어디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으시냐?”

“갑자기 뭔,”


개소리여- 먹던 고기가 콧구멍으로 나올 소리하고 앉아 있다며 켁켁 대던 종인이 물을 들이키는 동안 영호가 다시 술 잔을 채웠다.

  

“아니, 매달 봉투 들고 바로 사라지시잖아.”

“..관심 꺼.”

“뭐?”

“니가 상관할 일 아니라고.”


선을 긋는 영호를 바라보며 동수는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틀었다. 술잔을 들어 그대로 입술 위로 가져다 대며 목을 젖힌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나 먼저 간다. 적당히 들 마시고 가라.”

“그래. 들어가라잉.”

  

자리에서 일어선 영호가 이모님- 계산이요. 주방을 향해 말을 하는 동안 동수의 시선이 그의 등 뒤를 따라붙었다. 


제가 조직에 들어온 지 5년, 영호는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이 조직에 몸담고 있는 자다. 찬열보다 조금 작은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진 그는 싸움도 잘하고 무엇보다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듯 거리를 두고 있는 제 작은 형님, 찬열에게 가장 신뢰를 받고 있는 사내였다. 


같은 조직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으니 저와 지내고 있는 것이지 실상 그와는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그럼에도 사사건건 부딪히지 않았던 것은 적정 선을 넘지 않으며 저를 경계하듯 밀어내는 그의 태도 덕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현장에서 뛰는 영호와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제 행동 반경의 접점이 적었다는 것도 물론 또 다른 이유겠지만.

동수는 제 앞으로 놓인 소주잔을 들어 입술 위로 가져다대고 목을 젖혔다. 





  

  





느리게 계단을 오르던 찬열은 제 어깨 위에 맺힌 물방울을 털어내며 시선을 등 뒤로 움직였다. 늘어진 제 그림자 끝을 아슬하게 오가는 기척이 느껴진 탓이다. 하필 이면 이때, 찬열은 골목 귀퉁이를 돌아 벽에 몸을 기댔다. 

  

저를 뒤따르던 기척이 제가 들어온 골목 안으로 서둘러 쫓아 들어오다 제 앞으로 날아드는 팔에 턱 가로 막혀 뒤로 자빠졌다. 

  

“컥,”

  

제 목을 잡으며 바닥 위로 손바닥을 짚은 남자가 곧바로 저를 올려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것을 보며 찬열이 그의 가슴 위로 발을 눌렀다. 

  

“누구야.”

  

제 구둣발을 손으로 잡으며 밀어내는 손 끝이 젖은 구두 표면 위로 미끄러지는 것을 관망하던 찬열이 팔을 돌려 제 등 뒤로 휘둘렀다. 제 등 뒤로 다가선 또 다른 장정이 저를 피해 몸을 움직이며 뒤로 물러섰다. 제 발 아래 깔려있던 남자의 배를 짓누른 찬열이 빠르게 뒤를 돌아 등 뒤에서 저를 공격한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손 끝에 쥐어진 나이프를 바라보던 찬열이 방금 전 스친 제 팔 위로 시선을 내렸다.    

  

“누구 명령 받고,”

  

너덜거리는 옷 위를 잠시 바라보던 찬열은 제 옆으로 뻗어지는 팔을 피하고 낚아 채듯 잡아 비틀었다. 등 뒤로 비틀린 팔에 윽 소리를 뱉어낸 남자를 벽으로 밀어 붙이고 머리를 그러 쥐었다. 


“일 하냐고.”

  

저를 따라 붙은 것은 셋, 저 혼자 있는 시간을 노렸던 것이 분명했다. 제 등 뒤로 다가서는 남자를 피해 몸을 숙인 찬열이 발로 무릎 위를 가격하며 하, 숨을 토해냈다. 어느새 거세진 빗줄기가 입술 안으로 들이쳤다. 

  

“말을, 안 하네?”

  

명백한 살기에 제 시야를 가리는 머리칼을 털어내듯 위로 쓸어 올린 찬열이 제 손 아래서 발버둥 치는 남자의 복부를 걷어차고 바닥으로 던졌다. 휘청이며 주저앉은 남자의 앞으로 또 다른 남자가 끼어들었다. 한 놈 해치우면 한 놈이 다른 쪽에서 치고 들어오니 귀찮은데, 찬열은 제 등을 벽 쪽으로 돌렸다. 빗소리에 인기척이 묻히는 탓에 혼자 셋을 상대하기엔 귀찮아서였다. 

  

“하기 싫으면, 뭐. 안 해도 되고.”

  

일단 쓰러트리고 묻는 게 빠를 것 같으니까. 빗물이 찬열의 이마 위를 타고 흘러내렸다. 눈꺼풀 위를 덮는 물방울을 느끼며 어금니를 힘주어 물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남자가 제 복부를 감싸고 숨을 고르는 순간 그의 앞에 서있던 남자가 찬열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칼을 들고 있던 남자의 손이 찬열의 복부 쪽으로 가깝게 파고들었다. 

  

  

  

  

  

찬열은 소파 위로 무거운 몸을 뉘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현관부터 늘어선 물에 젖은 옷들이 그의 발자취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물을 잔뜩 머금은 옷이 피부 위로 쩍쩍 달라붙어 거의 튿어 내듯 옷을 벗어낸 그의 몸에선 아직도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소파 위로 묻어나는 물기와 바닥에 고인 웅덩이가 연한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피 냄새, 미간을 찌푸리며 거실 협탁 위에 놓여있던 상자를 끌어당겼다. 연고와 붕대, 간단한 응급처치에 필요한 도구들이 들어있는 상자 속을 파헤치며 그는 지혈제를 몸 위로 쏟듯이 대충 들이부었다. 여기저기 눈에 띄게 피가 베어 나오는 상처들 위로 지혈제가 내려 앉았다. 

  

눈을 감고 마른 침을 삼킨 그는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려는 듯 숨을 깊게 마시고 뱉어내길 반복하며 상자를 손으로 쳐냈다. 

  

“젠장!!”

  

엿 같은 비, 찬열은 소리를 내지르다 다시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깊은 한숨을 뱉어내며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만 좀 내려. 제발, 좀. 그만.. 눈을 감은 그가 목을 뒤로 젖혔다. 소파 등받이 위로 닿은 검은 머리칼이 이리저리 흐트러졌다. 소음 하나 없는 집안에 남는 것은 그의 숨소리 뿐이었다. 

  










-

열 아홉, 평범한 고3 수험생이라고 하기에 저는 책과는 연이 없었다.

 

책상 위에 엎어져있던 찬열의 팔을 누군가 툭툭 쳤다.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은 몇 안되었으니 그는 눈을 꿈뻑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밥먹고 자. 새끼야” 

 

팔을 허공으로 뻗으며 기지개를 켜는 얼굴이 잠으로 그득했다. 

 

“몇시냐..”

“몇시간이나 잤냐고 물어야 맞지.”

 

그것도 그렇네.. 몸을 일으키며 우두둑- 제 팔을 꺽는 찬열의 행동을 잠시 기다리던 하준이 몸을 틀었다. 아 배고파. 빨리 와- 굳이 그를 끌고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급식소 안으로 들어서 식판을 들고 서있던 인파를 뚫고 맨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들 저와 제 뒤로 따라붙은 기다란 실루엣을 한 번씩 확인하듯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역시, 박찬열은 프리패스다. 하준이 입술을 끌어올리며 식판을 들어 찬열에게 건냈다. 

 

작년부터 부쩍 키가 크고 몸 여기저기가 쭉쭉 늘어나기라도 하듯 성장통을 겪고 나니 어느새 저는 또래들 보다 한 뼘은 커졌다. 이상하게 그 뒤로는 싸움 같은 것에도 자주 휘말렸다. 몇 번의 무시 끝에 귀찮아져 한번 싸움을 시작하고 나니 소문이 어떻게 난 것인지, 작년까지 인사를 하고 친하게 지내던 이들도 저를 슬슬 피해 다니기 바빴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태양이 높고 뜨거웠다. 비도 자주 오지 않았다. 가뭄이라고 했나, 뭐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장마 같지도 않은 장마로 질척해진 운동장을 바라보며 교실에 앉아있던 찬열은 뒷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박찬열,”

 

누군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어느새 점점 세지더니, 세상의 모든 소리가 점멸하듯 저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찬열은 순간적으로 턱을 괴고 있던 팔을 천천히 내리고 상체를 일으켰다. 

 

교실에서 떠들고 있던 아이들의 목소리와 복도를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 하물며 제 어깨를 그러 쥐고 말을 거는 하준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야-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야 문학 책 좀 빌려 달라고,”

 

제 앞에서 입을 벙끗 거리고 있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까.

 

“김하준.”

“그래, 나 김하준이다. 문-”

“나, 니 목소리 안 들린다.”

“뭔, 문학책 내놓..”

 

으라니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하려던 하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러니까.. 지금. 소리가 안 들린다고? 찬열의 고개가 다시 창 밖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눈을 꿈뻑인 하준이 그의 시선을 따라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호우주의보에 대해서 시작 전 꼭 드릴말씀.


호우주의보는 레인(rain)버스 + 느와르 물입니다.

* 레인버스 : 평소에는 소리를 듣는 것에 이상이 없으나 비가 오는 날에는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제 목소리와 소울메이트의 목소리만 들린다. 비가 내리는 세기에 따라 소울메이트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수도 작게 들릴 수도 있다. 소울메이트는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져 있을 수도 있고 한순간에 정해질 수도 있다. 


이번 연재 시작하며 고민이 많았는데요.. 

야한 장면 1도 없는데, 느와르물이라 성인연재를 해야하나?에 대해 엄청엄청 고민하다가.. 연재하는 동안은 성인 달지 않으려고 생각 중입니다.. 일단, 범죄 미화, 술담배 분위기 조성 이런 건, 절대 저의 목적이 아닙니다. 

미성년자인 분들도 이정도의 사리분별은 정확히 하실거라 판단하고 성인 안 달고 올려봅니다. (심의 생각해서 도중에 바뀔지도 몰라요..) 

느와르 물이라기 보단 그냥 이야기이고, 누군가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찌통물이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일뿐이었으나.. 8ㅅ8  짝퉁느와르고구마물이 되었다..라는 결과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긴 주저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작전에 꼭 말씀드려야겠다 생각했거든요-


+ 일단 호우주의보 연재 속도는 느릴 예정입니다.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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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 호우주의보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