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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_ 25(clean) [完]

 


 


종인은 택시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허망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형!!”

 

복도에서부터 뛰쳐나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소리쳤지만, 제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사라진 백현이었다. 당장 병실로 돌아온 그는 아직 소파에 앉아 차를 홀짝이는 여성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형한테 무슨 소리를 하신 거에요!?”

“..종인씨라고 했죠?”

“네. 아니.. 말 돌리지 마시고요-”

“걱정하지 말아요. 백현씨한테 나쁜 소리 하진 않았으니까..”

“아니 그럼 왜. 형이-”

“찬열이한테 갔을 거에요. 운이 좋으면 잡았을 테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조만간 ..또 보게 되겠네요. 그럼.”

 

 병실을 나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종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도대체 뭔 소린데-! 결국 준면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실에 있던 백현을 놓쳤다고 말해야하는데-민석에게 걸기엔 무서웠으니까-

 

 

 

 병원으로 다시 돌아온 두 사람은 민석의 앞에 나란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너 찾아다닐 사람들 생각은 안해?”

 

“..미안해 형.”

 

“죄송합니다. 제가..”

 

“박찬열. 당신은 출국 한다던 사람이 왜 여기있습니까?”

 민석은 제 앞에 나란히 서서 고개를 숙인 두사람을 바라보다 제 이마를 짚었다. 중국에 간다며 제게 연락을 했던 사람이 지금 제 눈앞에 있고, 그의 어머니가 백현의 병실을 다녀간 뒤, 그를 잡아온 사람이 백현이라는 것에 대충 상황 파악을 끝낸 뒤였다. 

사실 더 들을 것도 없지만, 걱정을 시킨 백현에게 화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됐고. 백현이 너는 옷이나 갈아 입어.”

“옷?”

“오늘 퇴원하려고 했으니까.”

 

 민석은 백현을 기다리면서 퇴원 수속을 밟아두었다. 어차피 오늘 데리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옷을 갈아입고 나온 백현의 뒤로 긴 실루엣이 따라붙었다. 민석은 슬쩍 그들을 바라보며 제 차 앞으로 다가섰다. 

 

“근데 형.. 호텔로 가?”

“아니. 집으로.” 

“집?”

“그럼 다른데 갈 데 있어?”

 그런 일이 있었는데 백현을 다시 호텔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동안 그가 호텔에서 지내던 것의 8할은 어머니여서 그를 억지로 집에 데려오지 못했지만, 이제는 호텔로 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가족들 모두가 반대한 일이었다. 물론 백현도 다시 호텔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설레 설레 고개를 흔드는 그를 바라보던 민석이 차 문을 열었다.

그 시선을 따라 움직이던 백현의 시선은 찬열을 따라 움직였다. 

그가 제 앞으로 다가와 서는 순간을 잠시 기다리듯 멈춰 섰다가 그의 손이 제 얼굴 위로 올라오는 순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어?”

이제 그의 모든 행동이 제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저를 보는 눈동자가 반짝였다. 귀여워.. 백현은 그의 눈을 마주하며 제 생각을 뱉어내지 않았다. 분명, 찬열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도착하면 연락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 끝으로 입술을 내리 눌렀다. 찬열이 다른 동작을 하기도 전에 백현은 차 안으로 미끄러지듯 몸을 움직였다. 

저를 내려다보는 눈을 애써 외면하며 차 문을 닫자 민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차를 출발시켰다. 

 

 찬열을 놀려줬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저였다. 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쏟아 붓기로 결정하고 나니 이젠 멈추는 것이 쉽지 않은 터였다. 힘겹게 오른 오르막길의 끝에 있던 것이 이렇게 가파른 내리막길 일 줄은 몰랐던 탓에 저는 브레이크를 밟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남기지 않았다. 

 

이제 다른 것을 걱정하기엔 제 감정이 너무 커져 버린 탓이다. 

 

 본가로 들어온 것은 한국으로 들어와서 입원과 통원을 반복하던 때의 일이 가장 최근이었지만 제 방은 제가 지금까지 쭉 그곳에서 지내왔던 것처럼 예전 모습 그대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긴 했으나 결국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익숙해지는 것에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진 않았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아침을 먹을 때면, 꼭 학창 시절 교복을 입고 있던 저와 마주하게 되었다. 민석과 준면, 종인의 얼굴을 볼 때 면 더더욱 그랬다. 

 

 준면과 출근을 함께하고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퇴근 길에는 꼭 찬열을 마주했다. 물론, 제가 먼저 제 형제들을 피해 빠져나올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 중 그를 마주하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조바심을 내는 것은 백현이었다. 

 

“집이야?”

[이제 도착했어.]

“박찬열.”

[응.]

“있지..”

[..듣고 있어.]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자꾸만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고,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제 손을 맞잡는 손, 저를 안아주는 품의 온기가 지나치게 그리운거다.

 

 백현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저를 걱정하는 듯한 짙은 목소리에 숨을 가다듬었다. 소파 위로 손끝을 뭉개던 제 감정을 토해내듯 나지막이 뱉어내며 눈을 감았다. 반쯤은 포기와도 같은 행동이었다. 지금까지의 저를 포기하면서 까지 뱉어내고 싶던 말이 무엇인지 찬열은 알지 못하겠지만. 

 

“보고싶어..”

[..다시 갈까 백현아?]

“..응.”

 할 수만 있으면, 지금 당장.  

결국 얌전히 저를 집 앞에 내려주고 돌아간 그를 다시 불러낸 것은 백현, 본인이었다. 

 

 그러니 억울한 거다. 

“다 저녁때 어디가?”

“..아빠.”

백현은 현관까지 나가지도 못하고 저를 붙잡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음.. 이게 아닌데. 곤란한 표정을 지어봐도 저를 보는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해 떨어진 지 오래다 백현아.”

 아니..제가 애도 아니고. 물론, 제 억울함을 토해내고 싶기도 했으나. 밤낮없이 제 걱정을 하느라 바쁜 가족들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백현은 한숨을 집어삼키며 돌아섰다.  

“들어갈게요..”

계단을 오르며 힐끔힐끔 현관을 바라보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해..]

 찬열은 창가에 달라붙어 저를 내려다보는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불만 가득한 목소리에 웃음이 흘렀다. 잔뜩 아래로 끌어내린 눈꼬리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런 말 하지마. 걱정되니까 그러시는 거 아는데.. 그리고, 헛걸음도 아니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괜찮아. 내일 보잖아.”

[그래도 ..보고싶어.]

 찬열은 제 손바닥 위로 이마를 묻었다. 어쩌면 좋을까.. 

“..백현아. 지금 그 말은 좀 반칙이지.”

[보고싶어 박찬열.]

 하루 종일 제 앞에서 뛰어다니는 것도 모자라 이젠 저를 쥐고 흔드는 백현이 미운데, 또 마음 놓고 미워할 수도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어른스러운 척을 하려던 제 다짐도 뭉개버린 투정 어린 목소리에 찬열은 어깨를 떨었다. 

 정말 어쩌면 좋을까. 너를, 백현아..

헛걸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으나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저도 그처럼, 매 순간 그가 그리운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차라리 납치하듯 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갈 걸 그랬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걸 알면 아마 백현은 까무러칠 테다.  

 

 

 

 아침 일찍부터 분주한 사람들 틈 사이에서 하품을 뱉어내던 백현은 축 쳐진 눈가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달고 제 입술 위를 두드렸다. 

 

“형. 이쪽-”

제 고개를 틀어 머리칼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백현이 눈을 꿈벅였다. 

“종인아..”

대충 하면 안돼? 한번 더 물으면 벌써 다섯 번은 물어보는 질문일 테다. 

“알았어. 자. 다 됐다.”

“백현아. 이거 입어봐.”

아니.. 그건 너무 튀잖아. 제 눈빛을 읽은 종인이 준면을 슥 훑었다. 다른 거- 분주한 발걸음들이 제 주변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을 케어하는 사람들이 그 바쁜 걸음을 쫓아 움직이기 시작하니 제 시야가 마구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백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머리 눌린다.”

민석의 손이 제 뒤통수와 소파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래서야.. 오늘 안에 결혼식에 도착은 할 수 있는 걸까?

 

“형들.. 시간 다 되가는데.”

“다했어. 다했어.”

 

 제 옆에 자리를 잡은 민석이 마지막까지 준면과 종인, 제 모습을 체크하고 차에 올랐다. 

 

 

 

“..형. 우리 따로 들어가자.”

“왜?”

 .. 왜는 무슨 왜야. 단체로 입장하려니 주목을 받는 게 뻔히 보여서 하는 말인데, 준면은 제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제 손을 잡아 끌었다. 

하객들 사이를 비집고 오늘의 주인공을 발견한 준면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물론, 백현과 함께. 

 

“축하한다-”

“축하드려요-”

“와줘서 고맙다. 백현이도-”

“응. 손은 치워.”

“..야, 오세훈- 백현이 여깄다.”

“거기서 오세훈을 왜 불러!” 

펄쩍 뛰는 준면의 뒤로 다가선 세훈이 곧바로 백현의 어깨를 그러 잡았다. 안 그래도 오는 중이었거든- 준면을 향해 혀를 쏙 내보인 그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세훈아. 너도 좀.. 나랑 떨어져서 걸을래?”

“왜요? 완전 싫은데?”

“다들..”

 더럽게 반짝반짝 해서 짜증나.. 백현은 으득- 이를 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제 주변으로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 고생이었다. 쏟아지는 시선들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걷던 백현을 테이블 앞으로 이끌며 세훈이 웃었다. 

 

“형. 오늘 예쁘게 하고 왔네요.”

“멋있는 거거든.”

“네. 그러니까요.”

 .. 말을 말자. 백현은 민석의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으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척을 해보려 노력했다. 제가 지난날 사교계 파티에서 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날아드는 시선과 분주한 속삭임을 차단하면 될 일이었다. 

 

신부 대기실에 들렸던 준면과 종인이 돌아와 제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백현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오늘의 주인공보다 더 주목을 받는 테이블은 지금 제가 앉아있는 테이블 일 거다.

 

“형. 설마 울어?”

식이 진행되는 동안 준면은 결국 눈물을 비췄다. 종인과 세훈은 그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축가와 축사가 끝나고 오늘의 주인공인 두 사람이 버진 로드를 걸어가는 모습은 백현이 보기에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눈물이 날 만큼은 아니었어도.

 

예식장을 빠져나와 웨딩카 앞으로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백현의 모습이 보였다. 운전을 맡은 준면과 마지막까지 식장에 남아있던 세훈을 따라 움직이던 종인을 빼고 백현과 함께 돌아갈 생각이던 민석은 제 시선 끝에 걸리는 실루엣을 보며 잠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저를 마주 보던 백현에게 턱 끝을 들어 가리키니 그의 시선이 의아한 듯, 제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백현은 고개를 돌려 익숙한 실루엣을 시선 끝에 담았다. 

“박찬열..”

민석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갔다. 형 먼저 간다. 

대답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뒤늦게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 시선을 돌렸을 때 이미 민석은 저만치 멀어진 뒤였다. 

 

백현은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고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의 구두 끝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 찬열의 것과 맞닿았다. 

 

“어떻게 알았어? 나 여기있는지.”

 

“김종인이 자랑하던데, 사진까지 보내면서.”

그의 손을 따라 흔들리는 화면 위로 익숙한 사진이 스쳐 지나갔다.

아침에 종인과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의 용도를 이렇게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백현은 고개를 저으며 코를 찡그렸다. 

 

“아직 환한 대낮이니까 데이트 좀 하자.”

 그의 말에 백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만 좀 놀려.. 꿍얼거리는 제 옆으로 다가선 찬열의 발걸음을 따라 걸으며 백현이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놀린 거 아니야.”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찬열이 바지 주머니 안으로 찔러 넣었던 손을 빼냈다. 물처럼 흘러가는 순간을 바라보던 백현의 시선이 그의 얼굴 위로 닿았다. 

“뭐, 조금은.”

놀린 걸 지도. 뒷 말을 듣지 않았지만 그 속 뜻을 알 것 같아 되묻지 않았다. 

 백현은 제 손으로 뻗어지는 커다란 손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저를 스쳐지나가는 바람결에도 찬열의 향기가 묻어 나는 듯 했다. 


 저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마주한 백현이 제 손 끝에 힘을 주어 커다란 손을 끌어당겼다. 마주 닿은 눈빛만큼 상냥한 입맞춤이 오고 갔다. 


“박찬열.”

“응.”

 제가 허리 위로 팔을 두르자 찬열은 저를 더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마주 안아 주었다.

“당신 집으로 가자.”

저를 올려다보며 말하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높았던 탓에 그의 기분이 좋다는 것은 파악했지만, 그 단어의 뜻까지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찬열의 고개가 기울었다. 

“어?”

“데려가.”

“..백.”

“얼른.”

조금 느릿하게 반응하는 저에 비해 백현은 제 이름을 부르려는 듯 떨어지는 제 입술 위로 짧게 입을 맞추며 재촉하듯 눈을 깜박였다. 얼른. 가자.

 찬열은 좀 무서워졌다. 백현이 제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두려웠다. 그에게 휘둘릴 제 미래가 걱정되는 탓이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라는 게 또. 좋더라. 미친놈처럼. 

그가 없는 고요함보단 그가 제 곁에 있는 두려움이 더 간절한지라.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서로의 체온을 찾느라 손이 바빴던 탓이다. 


“잠,깐. 하. 백현아.”

 자꾸만 제 입술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백현의 얼굴을 살살 쓸어냈다. 잠시만, 지금 위험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얇은 입술 사이로 향하는 시선을 억지로 떼어내며 고개를 돌리니 백현의 손이 다시 제 얼굴을 잡아 당겼다.

볼 위로 귓가로 입술을 누르는 느낌에 오금이 저리다. 그래도 환한 대낮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주차장에서 일을 치를 수는 없어서 미간 사이를 좁히며 후- 심호흡을 한 찬열이 제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백현을 조수석으로 앉혔다. 착실하게 안전벨트까지 채우고 곧바로 출발하는 제 얼굴 위로 백현의 시선이 닿아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애써 신호등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이러다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닐까, 다음부턴 그냥 기사님한테 운전을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차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백현은 머리 맡에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어야 했다. 난폭운전이라기 보단 미칠듯한 속도에 제가 튕겨져 나갈까봐 조금 겁이 날 정도였다. 

 

“찬열아.”

 안전벨트를 풀어내던 찬열의 시선이 제 옆에서 아직도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잡고있는 백현에게 옮겨졌다. 아.. 이 귀여운 생명체를 어쩜 좋지. 

 

“나 손이 안 떨어져.”

“흡.”

“..지금 비웃은 거야?”

“큼. 아냐. 기다려봐.”

 눈을 도르륵 굴려 저를 째려본 눈꼬리 위로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며 찬열은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조수석 문을 열고 그의 몸 위로 채워진 안전벨트까지 풀러 내고 손을 살살 풀어내니 손끝까지 하얗게 질린 손바닥 위가 뜨끈뜨끈했다.

제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떼어낸 손 위로 입술을 내리 누른 찬열이 그의 손을 제 쪽으로 향하게 한 뒤 그의 몸 아래로 손을 밀어 넣었다. 

 

“머리 조심.”

“어..”

 착하게 답을 하는 눈동자가 저를 들어 올리는 팔과 어깨를 지나 목과 얼굴로 따라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백현을 완전히 안아 들었다. 요즘 조금 볼살이 오르긴 했으나 여전히 마른 몸은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졌다. 밥 좀 팍팍 먹으라니까.


“나 걸을 수는 있어..”

“알아.”

 그럼 내려줘야지.. 뒷 말을 뱉어내지 못한 것은 찬열이 제 입술 위로 자잘한 입맞춤을 내렸기 때문이다. 

 

 차고를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 거실을 지날 때까지도 그는 저를 내려줄 생각은 없다는 듯 제가 내려 달라는 듯 말을 꺼낼 때면 촉촉-아기새 같은 입맞춤을 내렸다. 뭐. 사실 그래서 더 말을 걸기도 했지만. 

 

 폭풍같이 운전을 해서 도착한 것 치고는 아직 고요한 그의 행동에 백현은 슬슬 긴장을 풀었다. 솔직히 제가 먼저 자극을 한 건 맞지만 아까 마주한 눈빛은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저도 모르게 지금 제 허리가 괜찮았던가를 떠올렸을 만큼.

 

“백현아.”

“어?”

찬열은 저를 침대 위로 내려주며 제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추니 폭신한 이불 위로 제 몸이 뉘어지듯 내려졌다.

“칭찬 좀 해줘.”

“뭘?”

“잘 참고 온 거.” 

그러니까 뭘.. 되물으려던 백현은 제 엉덩이를 찌르듯 닿는 것에 흠칫 시선을 내렸다. 아니.. 그러니까. 이거 흉기인가요? 도르륵 소리가 날 듯 아래에서 다시 위로 올라온 시선이 찬열의 눈을 마주했을 때, 그의 입술이 다시 백현을 찾았다. 

아까와는 다른 부드러운 입맞춤 이었으나 금세 숨이 가빠진 것은 짙은 페로몬을 풀어내는 그 때문 이리라. 그러고보니.. 중종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의 페로몬을 느꼈던 적이 없었는데.. 

 

“백현아.”

“..어.”

제 아랫입술을 핥으며 저를 올려다보는 눈빛에 백현은 소름이 끼쳤다. 그의 시선을 한 두 번 마주하는 것도 아닌데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그 시선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의 눈썹 위로 코 끝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제 입술 위로 닿을 듯 말 듯 자리한 도톰한 입술 위를 문지르며 입을 벌렸다. 

그가 하듯 그의 입술 위를 핥으며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갔다. 



-



 찬열의 상체가 쏟아지듯 백현의 위로 무너져 내렸다. 뜨거운 귓가로 촉촉-입을 맞추던 찬열의 시선이 다시 그의 얼굴 위로 닿았을 때, 백현은 느릿하게 눈을 떴다. 짙은 시선에 오금이 저리는 기분이었다. 

 

“박.찬열..”

“응.”

“사랑해..”

 뜬금없는 고백은 아니었다. 요즘에는 눈만 마주치면 뱉고 보는 단어였으니까. 시선이 마주 닿을 때 마다, 손 끝을 마주 잡을 때 마다. 그 품 안에 파고 들어 숨을 고르눈 순간 까지도 사랑을 말하기에는 좋은 찰나였다. 

 

“후..백현아.”

“응.”

 백현은 제 이름을 부르는 찬열의 낮은 목소리에 느리게 눈을 꿈벅이며 답했다. 그와 같은 대답이었다. 제 대답에 따라올 말이 저와 같은 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숨을 고르며 찬열의 눈을 마주한 백현의 입술이 그와 동시에 열렸다.

 

“사랑해.”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한 단어를 만들어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부딪힌 뜨거운 입술 사이로 웃음 소리가 섞여 들었다.  

 

 

 

 찬열은 잠든 백현의 얼굴 위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에 취해 시트 위로 뭉개지는 말랑한 볼 위를 매만지던 손가락 끝이 그의 이마와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냈다.

어쩜, 당신은 이렇게도 나를 무자비하게 휘두르는지. 제 계획도 다짐도, 한순간에 날려버리게 만드는 건지.

원망 섞인 한숨을 뱉어낸 찬열이 그의 이마 위로 입을 맞췄다.

 

“잘자. 백현아..”

 

 당신에게 하려던 고백도, 

말들도 전부 무의미해 졌다. 


 제 품 안의 온도, 맞닿은 피부 위로 느껴지는 떨림

향기마저 익숙해진 숨결이 이렇게 제 곁에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깜박이던 백현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제 몸 위로 닿는 부드러운 시트를 손 끝으로 그러 쥐며 하품을 뱉어낸 그가 제 눈을 비비적 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제 옆에 누워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 탓이었다. 

 

“박찬열..?”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침실 밖을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작아 백현은 잠긴 목을 가다듬었다. 밤새 소리를 내지른 탓에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민망할 따름이었다. 


 시트를 걷어내던 백현은 문득 제 손가락 사이로 반짝이는 빛을 발견했다. 

눈을 깜빡이며 제 손등 위로 시선을 떨어트린 백현의 귓가로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파고들었다. 트레이를 들고 들어오던 찬열과 눈을 마주한 백현이 입술을 열기도 전에 그가 입술 끝을 올리며 웃어 보였다. 

 

“일어났어?”

“..어디.”

“당신 뭐라도 좀 먹여야 할 것 같아서.”

 제 말의 반도 듣지 않았으면서 제 의도를 파악한 듯 트레이를 협탁 위에 내려둔 찬열이 침대 위로 무릎을 굽히며 올라왔다. 그의 동작을 잠시 바라만 보던 백현이 그의 목 뒤로 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손가락 끝으로 감겨 들었다. 

 제 네 번째 손가락에서 반짝이던 얇은 반지가 그의 머리칼 사이로 파묻혔다 드러나길 반복하는 순간을 빤히 바라보던 백현이 홀린 듯 입술을 열었다. 

 

“박찬열..”

“응. 변백현.”

“이거..뭐야?”

“뭐가?”

백현은 그의 턱과 목을 쓰다듬으며 시선을 내려 그의 입술 위를 훑었다. 찬열은 그 시선을 따라 백현의 입술 위로 입맞춤을 남기며 웃었다. 

 

“뭐가. 백현아.”

“이거.. 무슨 뜻이야?”

“..내가. 어제 말이야. 이걸 .. 받으면서,”

 어제. 라는 말에 백현은 찬열의 눈을 마주했다. 정신없던 결혼식 장, 하객들 사이에서 그를 마주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를 보며 바쁘게 뛰는 제 심장을 느끼며 고개를 비틀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계획도, 다짐도 했었는데..”

“계획? 무슨..”

“당신한테, 프로포즈 하려고.”

“프로포즈..?”


 반지를 주문한 것은 조금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걸 받아 들고 고민에 빠졌던 것은 겨우 이틀이 지나있었고, 그에게 저와 결혼을 해 달라고, 제 반려가 되어달라고.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눈 앞이 막막했었다. 

그러다 문득 제 계획이나 다짐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백현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제 계획이나 다짐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계획과 다짐에 대해 곱씹던 백현은 그의 손길이 제 얼굴 위로 닿자 잘게 몸을 떨며 눈썹을 꿈틀댔다. 

 

“그런데 그게. 당신이랑 입을 맞추는 순간에, 전부 날아가 버려서.”

“..”

“그래서 그냥 이렇게 말하기로 했어.”

“잠깐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백현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 더 못 기다려. 백현아.”

그의 말을 막을 셈이었으나 그에게 먼저 잡혀버린 손을 느끼며 백현이 어깨를 떨었다. 


“..”

“결혼하자.”

“뭐..?”

“내 반려가 되어줘.”


툭-

 

 순식간에 볼 위로 패이는 눈물 길에 찬열은 잠시 얼어 붙었다. 

정확하게는 숨을 쉬는 것도 멈추었다. 결혼하자는 제 말에 흘리는 눈물이라니. 심장이 바닥으로 나뒹구는 기분에 얼굴이 굳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흐…흐엉.”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는 그의 눈꼬리 끝으로 눈물 방울들이 줄을 지어 떨어져 내렸다. 


“..백. 백현아. 왜 그래. 결혼..하기 싫어?”

 찬열은 당황한 나머지 그의 손을 그러 잡으며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제가 울린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왜 우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런 저를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꾹 감고 울음을 토해내는 백현이 야속한 탓에 찬열은 저도 울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흐으..박, 찬열.”


“싫으면, 백현아. 싫으면..”

안해도 된다는 말이 죽어도 제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을 것 같은데. 찬열은 마른 침을 삼키며 몸을 들썩였다. 그래도 정말 그가 이렇게 울 정도로 싫은 거라면 억지로 결혼을 강행할 생각은 없어서, 

 

“싫으면. 안..”


“흐엉. 할래, 할래. 결혼 할래.”

 


 결혼이란 단어는 저에게 익숙했다. 막연히 언젠가는 원하지 않아도, 원하지 않는 사람과도 결혼은 하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저니까. 

그런데 반려라니.. 찬열이 한번씩 그런 뉘앙스를 풍길 때에도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벅차올랐던 감정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제 사랑을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 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제 사랑을 고스란히 받아주는 것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이 저에게 닿을 때마다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벅차올랐던 감정들을 애써 숨겨왔는데..

    


 자신의 말에 울음을 터트린 저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끝내 제가 싫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까지 하려는 찬열의 목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할래. 흐, 결혼. 당신, 반려. 할래. 박찬열.”

“백현아..”

 제 등을 마주 앉은 커다란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 백현이 눈을 감으며 그의 품으로 더 깊게 파고들었다.  


“당신 아니면, 싫어. 당신이랑 할래.”


끝내, 찬열은 울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백현의 어깨가 찬찬히 젖어 들었다.

그의 손이 너른 등을 어루만졌다.  







 


-

완결입니다. 자꾸만 길어지는 탓에 고민을 하던 끝에 25편으로 완결을 내게 되었네요. 아직 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으나, 아쉬움을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완결까지 함께 달려주신 분들이 이번 편을 어떻게 느껴주실지는 모르겠네요..8ㅅ8

구독,하트,덧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8ㅅ8 라뷰-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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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_ 외전 : Marry 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