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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은 제 머리를 쓰다듬는 감촉에 눈을 꿈벅였다. 

 

“아빠..?”

“일어났어 아들?”

햇살과도 같은 온도의 커다란 손을 올려다보며 푸스스 웃음을 흐트렸다. 

“언제 오셨어요.”

“방금.”

 그가 병원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지난 날을 떠올리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니었을 거다. 

그래서 그렇게 병실을 지키고 있었던 거겠지. 

 

 


 

-

 특별한 것은 없었다. 

원인보다 반류에게서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이혼과 재혼,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가 그랬다. 

특별할 것 없는 만남. 

 

 남은 생을 함께 할 반려를 만났고

그 사람의 아이라서 이어진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에게 차별을 받는 것을 딱하다고 생각했고

제 아이들과 공평하게 대하고자 노력했다. 

 

 지나치게 가벼운 마음이었고 가벼운 다짐이었다. 

 

 아이에게 진심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았을 때는 

있는 그대로 진심을 표현했다. 

그것이 화든, 사랑이든, 상관 없었다. 

 

 아이는 순수하게 제 마음을 받아들였고

순수하게 저의 것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데 걸린 시간은 짧지 않았다.

 

 그 아이가 무너져 내리던 순간의 기억은 

아직도 제 안에 큰 흉터가 되어 남아있었다. 

 

 그 아이에게는 가문에서 정해둔 정혼자가 있었다. 

대부분의 반류들처럼 흔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허나 백현은 제 정혼자를 친구이자 가족으로 의지했다. 

 사고로 부모님 두 분을 동시에 잃은 그에게 통보와도 같이 약혼을 파기했을 때, 백현을 그 가문에서 데려갔을 때도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그 정혼자라는 아이를 제 아이처럼 아끼는 듯 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친구의 아들로. 제 아들의 정혼자로. 


 아내는 그에게서 마지막 남은 백현까지 빼앗은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고, 백현이 얼마나 힘들어 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 

 

[사정은 딱하다만, 어쩔 수 없지.]

 백현의 친부는 감흥 없는 말투로 말했다. 아내는 주먹을 말아 쥐고 핸드폰을 고쳐 잡았다.

‘저에요.. 부탁드릴게 있어서..’

 긴 통화 끝에 아내는 그 아이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고 했다. 함께 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흔쾌히 그러겠다 답하였다. 

 

 한 순간에 부모를 잃고, 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잃은 아이의 얼굴에는 허망함 만이 남아있었다. 어린 아이의 얼굴 위로 겹친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을 관망하며 두 손을 놓고 있던 제 자신이. 그제서야 조금 한심스러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백현이는.’

‘백현이는 여기 오지 않을거야.’

 아이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입술을 꾹 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체념한 듯 시선을 테이블 위로 흐트렸다. 아마, 이 아이의 한계겠지. 마른 감상을 떠올렸다.

‘그 아이는.. 잘 있나요?’

 자신을 버린다는 사람들에게 백현의 안부를 묻는 얼굴은 제 마른 감상을 두드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오랫동안 지켜봐 와서 잘 알거야. 백현이가 너를 동정할 거라는 걸..’

 아내의 말에 아이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동정이라는 단어가 거슬리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혼은 하지.. 않겠다고 할 거라는 거.’

 그는 어렴풋이 미소를 지으며 한숨 같은 말을 뱉어냈다.

‘오랫동안, 지켜봐와서..잘. 압니다. 백현이가.. 저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거.’

‘.. 경수야.’

‘그러니까..’

‘그 아이가 포기하지 않아도, 그 아이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거 알잖니... 아직 성인도 아닌데다..’

 제 말을 끊어내며 그 아이에겐 쓰라린 사실을 덤덤하게 뱉어내던 아내의 표정이 상처 받은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저 혼자만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제가, 떠났다고 해주세요.’

 

 끝을 알리는 담담한 목소리와 끝을 받아들이는 담담한 목소리.

그리고 제 찌푸려진 얼굴이 한 자리에 엉켜있었다. 

‘..’

‘제가.. 그 말을 믿었다고 해주세요.’

‘...’

‘백현이가 저를 버렸다는 말을.. 믿었다고 해주세요.’

‘..경수야.’

‘그 아이가..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경수는 끝까지 울지 않으려는 듯 울음을 삼키며 말을 뱉어냈다. 그것을 느낀 아내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일어섰다. 

‘너도 꼭.. 잘 지내야 한다.’

 두 사람은 멀어지면서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서로의 걱정을 가득 담아 담담하게 뱉어내고 난 뒤에, 남은 것은 차마 대신 토해낼 수 없던 슬픔.

 나는 그것을 못본 채 하려 갖은 애를 썼다. 

 혼자 남겨진 그 아이의 어깨가 떨려왔지만, 누구도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둘의 만남은 아주 짧았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었던 걸까. 

 저는 아직도 후회한다. 

진실을 모른 채 자신을 잃고 무너져버린 백현을 마주했을 때,

그 후회라는 것은 저를 휘어 감는 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빠?’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아이는 병원에 입원했다. 아이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환자복을 입은 아이를 마주했을 때도, 그 후회라는 놈은 점점 더 몸집을 불려가기만 했다. 

 

‘백현아.’

‘치료 받아야지..’

 

 환자복 아래로 마른 팔이 드러났다. 

붓고 멍든 자국들 위로 처절한 시선이 쏟아졌다. 조금만 더 빨리 제 후회를 행동으로 옮겼어야 했는데..

 

‘아빠.’

‘백현아.’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그 단조로움이,

아이의 마음에는 무엇이 남아있었을까.

 

‘왜 아빠가 울어요.’

 

울지 않는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대신 울어주는 것 밖에는 없어서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때의 나는 너에게 뭐라고 답을 했더라.

백현아.


 


그런 너를 다시 병원에서 마주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백현아.”

“아빠.. 설마 오늘도 우시려는 건 아니죠?”

 지난 번, 아내와 함께 병원에 왔을 때는 결국 제가 울다 지쳐 준면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가야 했다. 백현은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 제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럴 리가.”

“방금 코 먹는 소리 들렸는데-”

“아니야아.”

 아니기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저를 놀리는 백현의 얼굴이 지난날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후회 속에서 살아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백현아. 빨리 나아서 아빠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우리 식구 다같이 여행도 가고! 우리 놀러간지 엄-청 오래됐어.”

“그야. 아빠가 맨날 바쁘니까 그렇죠-”

“아들들이 아빠랑 안 놀아줘서 그런거거든-” 

“준면이형이랑 잘 노시면서.”

“아빠는 백현이가 제일 좋아.”

저를 보며 웃는 얼굴이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아이는 알까. 

“아빠.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마세요- 그리고 울다가 웃으면 안되는 거 몰라요?”

“아이 안 울었다니까. 참-”

“네네-”

“백현아.”

“네-”

“아들.”

 누구보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고하건데,

너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음을.

“네. 아빠-”

“사랑한다.”

너는 사랑 받고 있음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네. 알아요. 저두 사랑해요 아빠.”

“알면 됐어.”

“네?”

“아니야. 아무것도. 밥은 먹었어?”

 고개를 저으며 저를 올려다보는 맑은 눈을 마주하며 미소 지었다. 

그때의 너는 더이상 여기에 없구나.

이제 나는 너를 대신해 울지 않아도 되겠다. 아들. 

니가 이렇게 웃고 있으면 그걸로 되었다. 

 

 



“찬열아.”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너 잘 지내고 있나 와봤지. 내가 왜 왔겠니.”

 집에 돌아와 며칠, 회사는 휴가 처리를 해두고 집과 병원, 재판 때문에 몇 번 변호사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한 일정을 빼면 지극히 정적인 스케줄을 소화 중인 요즘이었다.

“걱정마세요. 제가 애도 아니고..”

“당분간 집에 들어와 지내라니까.. 정말 말도 안 듣는구나.”

“집이 편해요. 어머니.”

소파 위로 자리를 하며 저를 흘겨 보시는 눈빛에 웃어 보였다. 본가에는 통 들리지 않았더니 제 걱정이 앞서신 모양이다.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내가 여기서 지내고 싶구만.”

“저 집에 잘 있지도 않아요.”

“그래. 안다. 니가 맨날 변백현씨 병실에서 사는 거.”

“..어머니.”

“그래. 알아. 더 이상 너 반대할 생각 없다 나도.”

“어머니는 제 마음 아시잖아요.”

“알긴..몸 좀 괜찮아 진 것 같으니, 중국부터 다녀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가주님께서 직접 오라고 하신 거야.”

“가주회의 아직 시간 남아 있잖아요.”

“용건은 나야 모르지. 일단 너 퇴원 하면 오라고 하셨으니까.”

“알아 볼게요.”

“그래. 가기 전에 연락하고. 약이랑, 죽이랑, 보약이랑 챙겨둔 거 잊지 말고 꼭 챙겨 먹고. 응?”

“네. 걱정 마세요.”

“하여튼, ..간다. 그럼.”

“네.”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내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문을 닫고 한숨을 뱉어냈다. 회사 일은 그렇다 치고, 가주회의에 빠질 수는 없으니 중국으로 가긴 해야 하는데. 며칠을 떨어져서 어떻게 지내지. 퇴원이라도 했으면 데려갈 텐데. 저 하나 덜 불안 하자고 아픈 사람을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고.

서둘러 짐을 챙기면서도 찬열은 불안함 맘을 거둘 길이 없다. 

 

그의 어머니는 닫힌 문 너머를 바라보며 차에 올라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병원으로 가주세요.”

“네?”

“찬열이 입원해있던 병원이요.”

“아. 네. 알겠습니다.”

 이제 널 반대할 생각은 없다만, 아들. 

엄마가 이 정도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백현씨.”

“아.. 안녕하세요.”

“지금 잠깐 시간 괜찮아요?”

“네? 아. 네. 괜찮습니다. 들어오세요. 종인아..”

 자리 좀.. 제 말을 다 뱉어내기도 전에 종인의 시선이 두 사람을 오고갔다. 갑자기 나타난 방문객을 못마땅해 하는 감정이 얼굴에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싫어. 형한테 또 뭐라고 할 줄 알고.”

 백현이 깨어나자마자 찬열의 병실로 달려갔을 때, 그녀에게 모진 말을 들었던 것을 모르지 않는 종인이 얼굴을 씰룩거렸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 좋은 말을 하지는 않을 것만 같아서.. 

 

“종인아.”

“..복도에 있을게.”

“고마워.”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하는 수 없다는 듯 복도로 나선 종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백현이 서둘러 그녀를 안내했다. 

“여기 앉으세요.. 죄송해요. 제가 지금 이래서.”

“괜찮아요. 나도 병원에 있는 사람한테 실례인 거 아니까.. 마음 쓰지 않아도 되요.”

 백현은 저를 마주하고 계신 찬열의 어머니의 시선에 마른 침을 삼켰다. 찬열이 이런 기분이었나.. 뒤늦게 미안함이 차올랐지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제게 말을 건내기 전까지 정도의 잠깐.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그때는 말 못했는데.. 백현씨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 사람 덕분에.”

“..나한테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그 날은.. 내가 좀 심하게 했던 거 알아요.. 사과하고 싶었어요. 백현씨 잘못 아닌 거 아는데..”

“아니요. 저 때문이 맞으니까요.”

 제 앞에 놓인 잔 위를 매만지던 그의 손 위로 그녀의 시선이 떨어졌다.

“백현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에요. 내 아들의 짝으로 탐탁치 않은 거죠.”

“이해..합니다.”

“찬열이. 오늘 중국으로 갈 거에요.”

“중국이요?”

 그에게 들은 바가 없던 터라 잠시 의문이 떠올랐지만 곧 생각을 거두었다.

“그 애는 가문 회의라고 알고 있겠지만, 사실 그쪽에 부탁을 해뒀어요.”

“부탁 이라면..”

“아마 알 거에요. 그쪽에서 백호를 어떻게 대할지..”

“그게..”

“단지 결혼이나 반려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호랑이, 백호. 그 혼현을 단지 결혼이나 반려로 원하는 반류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저 뿐일까. 백현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모르죠. 더 좋은 짝을 찾게 될지도.”

 백현은 갑자기 숨이 가빠오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취하던 모든 행동을 멈추고 숨을 쉬는 데만 집중했다. 그가 저 아닌 다른 이와 있다는 상상만으로 이미 제 기분을 형용할 단어가 없어졌다. 

 

“지금은 그게, 내가 제일 바라는 거에요. 그 애가 백현씨 말고도 다른 선택 사항이 있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거든요.”

 

 

 


 찬열은 탑승 수속을 밟고 이동하던 중이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에 안 그래도 전화를 하려던 참에 텔레파시가 통했다 싶었다. 

통화 버튼을 누른 그는 제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다급하게 뱉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의아했다. 


[박찬열. 지금 어디야?]

“공항인데,”

[기다려.]

“어?”

[기다리라고. 박찬열.]

“뭐?.. 아니 나 조금 있으면 탑승..” 

[꼼짝 말고 기다려. 가기만 해.]

“백현아? 여보세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제가 마지막으로 병실에 들른 것이 고작 세시간쯤 전이었는데.. 잠든 백현의 얼굴을 확인 하고 민석에게 제 일정을 알려주고 나올 때 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의아하긴 했으나 다시 전화를 걸어봐도 받지 않는 백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찬열은 서둘러 왔던 길을 돌아 나왔다. 

 

 


 백현은 곧바로 택시를 잡아 탔다. 그의 답을 들을 새도 없었다. 서둘러 공항이라고 말하는 제가 아직 환자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그 애가 백현씨 말고도 다른 선택 사항이 있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거든요.’

    ‘그럼,’

    ‘지금 저한테 왜.. 찾아 오신 거에요?’

초조함에 창 밖을 빠르게 지나가는 건물들 사이를 눈으로 훑으며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이대로 떠나버리면 어쩌지. 


     ‘.. 그 애가 그러지 않을 걸 아니까요.’

    ‘네?’

    ‘나는 그 애가 백현씨를 위해서 어떤 일까지 했는지 봤어요. 내가 궁금한 건,’


 공항에 도착한 그는 택시비를 던지듯 지불하고 죄송합니다. 사과를 뱉어내며 불안한 눈동자를 굴려 공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눈을 굴리며 그를 찾는 시선이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들과 정신없이 부딪혔다.

    ‘백현씨도. 그 애와 같은 마음인가.겠죠.’

“하아..”

 어느새 거칠어진 숨소리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어디 있는거야. 도대체, 

백현이 탑승 수속 게이트 앞을 누비며 뛰어다녔다. 

 

     ‘백현씨의 진심을 알고 싶은 거에요.’

     ‘…. 제 진심이요?’


핸드폰을 들어 그의 이름을 누르는 순간 누군가 제 팔을 낚아 챘다.

 

“백현아.”

박찬열..

 백현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 위로 떠오르는 의문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무턱대고 그의 목을 그러 안았다. 

 

“무슨 일 있어? 왜그래. 갑자기.”

     ‘백현씨는, 정말로. 찬열이를 사랑하나요?’


 놀란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뜬 찬열은 그의 등을 마주 안고 거칠게 뛰는 심장 소리를 느끼고 그를 떼어냈다. 

      ‘..죄송합니다.’


“가지마.”

“어?”

“가지말라고!”

“어..”

찬열은 다급한 그의 목소리에 눈을 꿈뻑이며 대답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백현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는 탓에 저도 모르게 알았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 만나지마, 결혼도 하지마.”

“결혼?”

 갑자기? 결혼이라니 무슨 소린가, 잠시 멍해졌던 찬열은 지난날에 그가 저를 밀어내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누구랑 결혼하던지.. 상관없다며. 백현아.” 

 그때,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도, 이번에도 상관없다는 말을 듣게 될까 조금 조마조마 했다. 

“상관..”

아니.. 차라리 그의 대답을 듣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마음을 고쳐먹은 찬열이 백현의 말을 끊으려 입술을 달싹였다.

“없을, 리가 없잖아...박찬열.”

저를 올려다보는 두 눈이 물기로 어른거리는 것을 마주하고는 찬열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상관 없을..하. 리가 없잖아. 박찬열.”

그의 말에 찬열은 목이 막혔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그의 볼 위로 눈물 길이 그려지는 것을 바라보던 찬열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의 말을 되뇌이고만 있었다. 

    ‘그 말은.’


“..변백현”

 

     ‘찬열이한테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요.’

 병실을 박차고 달리는 제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제게 필요한 것.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니 ..

  

 기다려. 박찬열.

    ‘박찬열. 지금 어디야?’

 

“내가 당신, 사랑하는 거 알잖아.”

 숨을 쉬는 것이 조금 벅차게 느껴졌다. 

“나 .. 당신 사랑해. 박찬열.”

“백현아..”

“나 두고 가지,마.”

 찬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에게 몇 번이고 거절을 당하던 고통과 비교할 바가못되는 통증이 제 가슴을 쥐고 흔드는 탓이었다. 두 손으로 백현의 어깨를 그러 안은 찬열이 무너지듯 그의 어깨 위로 이마를 대며 숨을 토해냈다. 그의 볼 위로 눈물 길이 패였다. 

“백현아.. 변백현.”

“응. 찬열아.”

“하..”

 찬열의 흐느낌이 점점 커졌다. 

백현은 제 손을 들어 너른 등을 감쌌다. 천천히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토닥이는 손길에 찬열은 목 놓아 울었다.

 

 

 

 


“..언제까지 울거야.”

 입고 있던 환자복이 젖어 어깨 위로 달라붙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가 이렇게 울 거 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라 백현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를 가만히 달래주었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찬열은 결국 제 차에 올라타는 순간까지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참는 중이었다. 백현은 기운이 빠져 제대로 걷지 못하는 그를 운전석에 앉히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런 모습을 상상했던 적은 없었는데. 울고 있는 그가, 좀.. 심하게 귀엽게 보였다. 그리고 그를 조금 더 울리고 싶다는 가학심이 피어오르는 탓에 제 스스로도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백..흐.현아.”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서 조차 묻어 나오는 물기에 백현이 눈을 깜빡였다. 제 생각이 들키기라도 한 듯 몸을 움찔한 그가 어? 나지막이 되물었다.

“이리와.”

 제 어깨를 다시 끌어당긴 찬열이 제 목덜미 위로 얼굴을 묻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간지러운 느낌에 백현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그의 향기가 코 끝에서 폐부 안을 가득 채울 때 까지 멈추지 않을 듯 찬열은 숨을 몰아 쉬는 데만 집중했다.

 백현은 제 목 뒤로 팔을 감으며 저를 끌어당겼다. 작은 손이 제 어깨와 등을 토닥이는 느낌에 찬열이 상체를 떼어내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저를 올려다보는 눈 안에 비친 제 모습이 가관도 아니었다. 이제서 깨달은 것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낮은 한숨을 토해낸 찬열은 백현의 손이 제 얼굴 위를 매만지는 느낌에 다시 시선을 들었다.

“다 울었어?”

“..미안.”

“당신 우는 거 처음 봤어.”

그야..

그렇게 갑자기 사랑 고백을 듣게 될 줄 몰랐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직격탄을 맞은 격인데, 제가 어찌 감정을 컨트롤 한단 말인가..


“당신이..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한 거 처음이잖아.”

“..”

“나도.. 당신 애정이 절실했거든.”


 주는 거 없이 받기만 하던 그의 마음이 지쳐가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걸 깨닫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빨갛게 변한 그의 눈동자를 마주한 백현이 그의 입술 위로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랑해.”

“..좀.”

“사랑해. 박찬열.”

“..아.. 좀.”

“사랑해.”

 이거 진짜 위험해. 찬열은 눈을 감고 백현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으나 그를 밀어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었다. 


“나 좀 봐줘.”

 저를 조르듯 입술을 다시 맞추며 말하는 백현의 목소리에 찬열은 결국 다시 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제가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진득하게 저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찬열은 다시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결국 그는 눈을 감으며 백현의 입술 위로 입을 맞추는 것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사랑해. 변백현.”

짧은 입맞춤이 내려앉은 입술 위로 뜨거운 눈물이 스며들었으나 그것이 찬열의 것인지 백현의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두 사람은 조금 오랜 시간 따뜻한 입맞춤을 주고 받았다.  

 



“근데 백현아. 아까 그 말, 무슨 말이야?”

“무슨 말?”

“결혼하지 말라고 했던 거, 중국 가지 말라고 했던 것도 그렇고.”

“그게..”

 이걸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지 백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의 어머니가 제게 직접 말씀하신 거였다. 물론 그에게는 알리지 않으셨을 테다. 고자질을 하는 격이 될까 두렵기도 했고, 그렇다고 그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 반복될 것만 같아 두렵기도 했다. 


“백현아.”

 그런 저를 재촉하듯 다시 저와 눈을 맞추는 찬열의 시선에 백현은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뱉어냈다. 


“당신은 몰랐을 텐데.. 당신 가주 회의 가는 거 말고도 다른 일정이 있었어.”

“무슨 일정?”

“…. 그.. 음.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 말에 가만 가만 대답을 해주고는 있지만 제가 피하려고 하면, 그는 아마 진상을 파헤치려 하겠지. 그냥 제가 솔직히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교배라도 시킬 셈이었겠지. 당신이 말을 안 들으니깐.”

“뭐? 누가 그런 말을 해?”

교배? 누가 그렇게 말도 안되는 말을, 분명 저는 준면에게 가주 회의에 간다는 말 밖에는 하지 않았는데. 

“당신 어머니께서..”

“ … 백현아. 그걸 믿었어?”

 게다가 애초에 저에게 강제로 그런 짓을 할 반류는 없다. 누가 감히 겁도 없이 백호를 건드릴까. 백현은 정말.. 제 성격이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일각에서는 단순히 후사, 번식을 위해 강제로 교배를 하거나 정자, 즉 씨를 거래한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그야..”

“내가 당신을 두고 누구랑, 뭘 해. 결혼을? 교배를?”

“둘다 할 수..”

 도 있지. 백현의 말은 다시 찬열의 입 속으로 흩어졌다. 

“하게 둘 거야?”

 제 입술 위를 바라보던 찬열의 시선이 다시 제 눈을 바라봤을 때, 백현은 그의 입술 위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아니.”

찬열의 아랫입술을 제 입술 사이로 물었다. 

“절대.”

 



“눈 좀 붙여.”

 정작 잔뜩 부어 뜨고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것은 자신이면서, 운전대를 잡은 찬열을 슬쩍 돌아본 백현은 부끄러워 할 그를 알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찬열은 여전히 핸들 위로 손을 움직이며 정면을 응시한 채였다. 위험하다고 중얼거리며 저를 떼어낸 뒤로는 저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다. 


 자신의 말에 답이 없던 백현이 조용하자 제 말대로 눈을 감고 있거나 잠들었겠거니 생각하던 그는 신호에 맞춰 차를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가 제 예상과는 달리 저를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와 마주했다. 쿵쾅,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낀 찬열이 마른 침을 삼키는 동안 백현은 눈을 깜빡이더니 제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찬열의 시선이 그의 손 위로 뚝 떨어졌다.


“손.”

“?”

“..잡아줘.”

 찬열은 잠깐 숨을 멈추며 그의 말을 곱씹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는 통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 사람이, 지금 운전하는데 위험하게.. 사람 심장을 쥐면 어쩌겠다는 건가.

 점점 험악해지는 얼굴로 숨을 몰아쉬는데 백현은 그런 저를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더 기다려줄 생각이 없던 것인지 제 손을 먼저 잡아왔다. 

 그러더니 제 고개를 다시 원위치 시켜 정면을 바라봤다. 그 그린듯한 옆모습에 감탄할 새도 없이 제 손을 그러 쥐는 작은 손의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파란 불이야.”

“아,”

 그대로 엑셀을 밟아 갓길로 차를 세웠다. 조금 거칠게 정차 한 나머지 백현이 놀란 얼굴로 저를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제 안전벨트 버클을 거칠게 누르며 백현의 입술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박,”

제 이름은 입술 사이로 삼켜냈다.

“하아.. 운전, 하. 하다 말고..!”

 찬열은 잠시 눈을 굴리며 거친 숨만 뱉어내는 백현을 진득하게 째려봤다. 제 시선을 느끼고도 그는 제 입을 막고 있던 손을 풀어내지 않았다. 

 찬열이 입을 벌리며 혀를 내어 제 입을 막고 있는 손바닥 위를 느리게 핥았다. 

“흣..진,짜.. 박찬열.”

 저와 시선을 마주한 백현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손을 떼어내려는 듯 움직이는 것을 눈치챈 찬열이 그의 손가락을 잇새로 물었다. 

 저를 보는 시선에 백현이 눈을 감았다. 못이기는 척 몸에 힘을 빼자 찬열의 입술이 얼굴 위로 날아들었다. 백현이 고개를 돌려 그의 입술을 찾아 물었다. 두 사람의 입맞춤이 다시 짙어졌다.



 찬열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다 의자 밑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이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대충 정리를 하고 백현을 자리에 앉혀준 그가 제 핸드폰을 찾아 들었을 때, 화면 위로 떠오른 이름에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네.”

[너 백현이 빨리 안 데리고와?!]

 들킨 모양이다. 수화기를 제 귀에서 멀리 떼어낸 찬열이 속삭였다. 준면이형.. 백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전벨트를 맸다. 빨리 가자.

 

“지금 가요. 지금.”

 

 찬열은 대충 대답을 하며 핸드폰을 뒷자리로 던졌다.

 

“키스 한번만 더 하고.”

 저를 돌아보는 백현의 입꼬리가 느리게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던 찬열이 그대로 그의 얼굴을 그러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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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삑삑-)

포레스트에서 제일 불쌍한 건 사실 경수였습니다 여러분..8ㅅ8 도경숭미아내..

 여름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지독하게 머리가 안돌아갑니다 ..! 감기 조심하세요 8ㅂ8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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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_ 23
#17
forest _ 25(clean)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