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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_ 12

 

 


 민석은 아침부터 쏟아진 회의를 마치고 제 오피스로 들어오자 마자 울리는 진동 소리에 화면을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가 반대편에서 고함처럼 쏟아지는 목소리에 귓가에서 멀리 휴대폰을 떨어트린 채 미간을 찌푸렸다. 

[형!!!!!! 그거 들었어?! 어? 백현이 형 선 본 거 들었냐고!!]  

“..형 귀 안먹었어.”

 고작 어제의 일이었다. 벌써 소문이 돌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민석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뱉어냈다. 

이럴걸 예상했기 때문에 준면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은 참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넌지시 물으니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소리부터 질러오는 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 이게 말이 되? 그 아저씨는 진짜 무슨 생각인거야? 어?]

그걸 제가 알면.. 이러고 있겠니. 민석은 소파 위로 몸을 묻으며 한숨을 삼키고 잔뜩 흥분한 종인의 목소리를 듣고 만 있었다. 

당장 이번주로 잡힌 공연 일정 때문에 전화를 했겠지 싶었던 제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간 통화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종인아.”

[백현이형이랑 선 본 거 누군지 알지? 알아봤지 형은?]

“김종인.”

[아- 형! 진짜, 이번에는 나한테 말해줘야 되. 어?]

“..”

 종인은 어려서, 저와 준면은 그, 집안 사람이 아니어서.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어야 했던 과거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제 눈앞을 스쳐지나 갔다. 준면이나 저 뿐만 아니라 종인마저도 그때의 일을 후회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뭐,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꺼낸 적은 없었으니까..

“알았어. ..공연 준비는?”

[지금 그게 문제야?!]

“..준비나 해. 끊는다.”

[아, 끊지마-여보세요? 형!]

어머니에게 들었던 것보다 계획이 앞당겨진 모양이었지만, 이미 파악은 끝난 뒤였다. 간단한 호구조사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십거리 까지 전부다. 

 백현아.. 이번엔 형도 지켜보고 있지 만은 않을 거야.   

 

 

“아 이 형, 진짜 끊었어!!”

 종인은 머리를 헝클며 까만 화면을 노려보다 바닥으로 엎어지듯 몸을 뉘었다. 연습이고 뭐고 당장 백현을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며칠 동안 촬영과 연습이 겹쳐 눈 붙일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민석이 어련히 알아서 백현을 케어하긴 하겠지만 제 눈으로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는 건 여전했던 종인은 때 아닌 금단 현상까지 겪고 있었다. 그런데, 오전 연습이 끝나고 받은 뜻밖의 전화는 불난 집에 기름을 콸콸 쏟아부은 격이었다. 

 


“어. 왜.”

[예의 ..무엇?]

“너나.”

[아 끊을래 기분 나빠졌어.]

“어.”

[..백현이 형 일로 전화한 건데. 개새꺄-]

“당장 불어. 뭔데. 개새꺄.”

오세훈 주제에 저에게 전화 예의를 운운할 일인가. 그가 하는 그대로 되받아치며 으르렁 거리자, 건너편의 세훈도 동시에 으르릉 소리를 내더니 미친놈처럼 웃어 재꼈다.  

[너 저번에 그거 진짜냐.]

“뭐가, 빨리 말해- 나 지금 숨 차. 뒤지겠다고.”

 농담이 아니라 진짜 아침부터 몇시간 동안 이어진 연습에 숨이 턱 끝이 아니라 아주 혀 끝까지 차올라 있는 상태였던 종인의 미간이 팍 찌푸러젔다.

[백현이형 선 본다는 거 진짜냐고.]

가뜩이나 숨 차 죽겠는데, 열 받는 소재를 끌어올리는 오세훈 덕분에 종인은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거칠게 닦아내며 이까지 뿌득-갈자 호러가 따로 없었다. 거울 너머로 마주치던 시선들이 하나 둘 자리를 피하는 걸 종인은 알지도 못했지만.

“내가 그럼, 없는 말 지껄이냐. 너한테.”

[씨발, 그럼 맞나.]

“아 뭐가,”

진짜 개답답하네. 제 뒷말을 집어삼킨 세훈의 목소리가 곧바로 이어졌다.

[형 선 봤어. 내가 그 현장을 목격했다고. 지금. 직접.]

뭐 이 씨발?

뚝, 그대로 이성이 끊어지고 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던거다. 당연히 그는 알고 있었을 거다. 지난번 백현을 일본으로 보내고 저에게 어머니 마크를 하라고 했던 건 다 그런 이유였으니까. 그런데, 

드디어 엄마도 행동 개시를 한 모양이다. 아니지, 엄마가 아니라. 백현이형 아버지 쪽인가? 뭐 어느 쪽이건 쉽게 넘어갈 생각은 없지만.

 

 

 

“백현씨!”

“…여기서 봽네요.”

“그러게요! 와. 진짜 우연이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네요. 진짜-”

 우연인 것도, 진짜 반가운 것도 잘 모르겠지만 백현은 저를 보며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만한 성격은 못되었다. 뭐 무시는 가능해도. 그런데 이 남자는 철판을 깐 모양인지 아니면 정말 저를 모르는 건지.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제 뒤로 따라붙었다.  

“지금 일하는 중이죠?”

“아니요.”

“백현씨 여기서 일하신다고..”

“그렇다고 내가 하루 종일 일을 하겠어요?”

“아아. 그렇죠… 그럼 백현씨, 저랑 저녁이라도.”

“선약이 있어서,. 연락이라도 하고 오시지.”

맘에 없는 말이라는 걸 대놓고 티를 내도 

“아. 그렇지. 제 생각이 짧았네요. 다음엔 꼭 연락 하고 올게요.”

가 돌아온 그의 답이었다. 백현은 애써 끌어올려 두었던 입꼬리를 내리며 생각했다. 제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 연락처는 이미 아는 모양이네. 같은 생각.

 

 

 

 본가에 도착했을 때, 저를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뭐 물론 저도 그들이 반가운 것은 아니니 서로 마음 상해 하는 일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봬요. 도련님. 연락도 없이 어쩐 일로..”

집주인 행세를 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백현은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며 만들어진 미소로 화답했다. 네. 오랜만에 뵙네요. 형수님.

“아버지 안에 계시죠.”

“아. 네,..뭐. 그런데,”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세요. 아버지만 뵙고 갈거니까요.”

“아..네. 그럼 말씀 나누세요.”

똑똑- 굳게 닫힌 나무 문 위로 손등을 두 어번 두드린 그가 더 기다릴 것 없이 문을 열었다.

“저 들어가요.”

“…왔냐.”

“그러게요. 제가 여기까지 오게 만드시네요. 아버지.”

“무슨 일로 네가 집까지.”

“집으로 오는 게 싫으신 분이 그런 짓을 하세요?”

“..”

“아버지가 회춘 이라도 하신 줄 알았어요 전, 닮진 않으셨지만,”

저에게 직접 오라고 해 놓고 버젓이 다른 사람을 내보낸 유치한 일을 도마 위로 올리자 그의 표정이 단박에 찌푸러졌다. 

“쓸데없는 소리,”

제 말에 혀를 차는 얼굴 위로 불쾌함이 가득한 것을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백현도 이 이상 시간을 끌며 그와 한 공간에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머니가 전달을 안 해주신 것 같아서 직접 왔어요. 저 가지고 장사하지 마시라구요.”   

“..시간은 충분히 줬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이요?”

시간을 줬다라.. 도대체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신지 알 길이 없었다. 딱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만 결혼 해라. 더 이상 니 반항 눈감아 줄 정도로 니가 어린애는 아니잖니.”

 반항 이라고, 고작 어린아이의 치기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지. 

그를 잃은 것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도 해보시지 않으셨겠지. 제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이 어떤 것이지.. 알고 싶지도 않으실테지.

“이번엔 그렇게 가만히 당하고 있지 만은 않을 거에요. 저도 이제 어린애는 아니니까요.”

그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기에 백현은 제 말을 끝으로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넓은 집안의 고요한 적막이 저를 짓누르는 듯 했다. 

현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졌다. 

현관 바로 앞 계단을 바라보던 백현은 눈이 핑그르- 도는 듯한 어지러움증과 명치에서부터 밀려오는 토기에 미간을 찌푸린 채 현관을 나섰다.  

“하아..하..하아.”

 거친 숨을 토해내며 상체를 숙인 그가 마른 입가를 손등으로 거칠게 문지르고  정원을 가로질렀다. 

 

 

 

-

 백현은 자라면서 늘 제 형과 비교를 당했다. 중종인 형은 모든 면에서 그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을 한 번도 거역한 적 없을 정도로 착한 아들이었다. 

어린 백현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닮은 저보다는 자신과 닮은 형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편리한 도구가 필요했던 거였지만.. 

 저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으신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아버지의 지시대로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꼭두각시처럼 살아갈 마음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형처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일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집안이 자신들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그와의 정혼을 기약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건, 그의 부모님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고 그의 아버지가 계시던 그룹이 휘청이면서 깨닫게 됐다. 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했는지.

‘엄마!! 문 열어줘! 제발!.. 흐, 제발, 문 ..좀, 열어줘.’

 눈물로 얼룩진 어린 얼굴 위가 잔뜩 일그러졌다. 문을 두드리다 발로 차고 그러다 덜덜 떨리는 몸을 주채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린 그의 손이 온통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지만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들어 주는 이가 없었다.

 방문 너머의 고요한 적막이 백현을 숨 막히게 했다.

‘제발. 나.. 가야되, 흑... 지금, ..’

 그 애가 혼자 있단 말야.. 

내가 곁에 있어줘야해. 엄마.. 그러니까. 그러니까..제발.., 나 좀, 내보내줘. 제발.. 

그의 간절함을 듣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백현은 몰랐었다. 

 

 


 굳게 잠긴 방문과 창문, 어두운 방 안에서 울다 지쳐 잠이 든 백현은 제 앞에 놓인 쟁반 위의 식은 죽 그릇을 바라보다 그것을 발로 차기 일수였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버틴 것이 나흘 째 되는 날에는 몸을 일으키고 소리를 지를 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눈을 뜨면 빨갛게 부어오른 손으로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런 백현의 동작이 뚝 멈춘 것은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컴컴한 어둠 속으로 빛이 밀려 들어왔을 때 였다.

‘..엄..마.’

‘이제 나와.. 백현아.’

 다 끝났어.

 백현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방을 빠져나와 복도를 뛰었다. 몇 번이나 휘청이며 무너지는 다리를 세우고 일어나 계단을 내려간 백현은 겨우 한 번을 넘어지고 나서야 1층 현관 앞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저녀석 잡아.’

 제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다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그런 제 자신이 한심스러움을 넘어 역겨울 정도로 싫었던 백현은 마지막 힘을 짜내듯 발악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어떻게, 제가.’

 정혼자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데도, 그가 혼자 남겨졌다는 데도, 그를 볼 수도 그의 부모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 배웅 할 수도 없는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으나. 백현의 발악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저를 보며 말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약혼 파기 했다. 그 집이랑 너는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

‘뭐,라구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는 데는 한참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 아이 걱정은 말아라. 약혼 파기 조건으로 후원 해주기로 했으니.. 똑똑한 녀석이더구나. 아깝게 됐지.’

 더 이상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점멸하는 불빛을 바라보던 시야가 온통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린 작은 몸은 다시 그의 방 침대 위로 옮겨졌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땐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 였다. 

드라마 같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제 스스로 원한 적은 없었지만.. 그를 잃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나를 잃게 되었다는 것을,

-

 

 

 

“형, 여기-”

 백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준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품 안에 하나 가득인 꽃다발의 무게가 제법 무겁게 느껴져 금세 손을 내리고 두 손으로 받쳐 안았지만, 그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일찍왔네, 백현아. ..형은, 늦는다더니?”

백현을 픽업해 오려던 제 계획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그를 가로챈 민석을 흘끔 바라본 준면의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그의 등장을 포함해 저에게 쏟아지는 시선도 가볍게 무시한 민석은 백현의 팔을 잡아 다시 앉히기만 할 뿐이었다. 

“응? 형 바로 왔는데.”

“그러니까 - 저 인간은, 아! 아파. 왜때려!”

 두 형제들의 투닥임을 웃으며 바라보던 백현은 손목 위로 시선을 떨어트렸다가 곧 시작하겠어. 하며 형들을 말렸다. 오늘은 종인의 공연을 보러 온 참이었다. 세 형제가 전부 참석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인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형. 이거 봤어?”

순서가 적힌 팜플렛을 준면에게 넘겨주며 로비에서 봤던 포스터를 떠올리고 재잘거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형제들은 귀를 기울여주었다. 

“형들- 일찍 왔네요.”

“어, 왔냐 막내야.”

“민석이형. 오랜만이에요.”

“야 내가 인사했거든?”

“백현이형 꽃다발 형 거 아냐? 완전 잘 어울려.”

“야..너 내 말 안 들리니?”

“준면이형.”

오냐, 어서 인사라는 걸 해봐라. 하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준면의 얼굴을 바라보던 세훈이 싱긋-웃어보였다.


“내가 그 자리 앉으면 안돼요?”

“안돼 임마!!”

 마지막으로 세훈이 도착하자 네 사람의 목소리가 다시 화기애애하게 울려퍼졌다. 공연이 시작되자 네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무대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마지막 무대를 마치고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도 종인의 모습을 찾느라 바쁘던 여덟 개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았다.

“진짜 멋있다.”

“짜식, 잘하네. 잘해.”


공연장 밖 좁은 복도에 꽉 들어찬 사람들 틈에서 허우적 대는 백현이 제 품 안에 꽃다발을 사수하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말없이 그의 뒤에 서서 팔을 벌리고 공간을 만들어준 민석 덕분에 백현은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형!”

 종인은 사람들 틈에 우뚝 솟은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며 제 형들을 찾느라 바빴다.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반겨도 제 앞에 끼어든 무리들이 길을 터주지 않아서 곤욕스러울 따름이었다. 사람 진짜 많네. 꿍얼거린 그가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뭐 이런.. 은혜롭게 생긴 녀석이. 가히 모세의 기적과도 같이 벌어진 틈을 여유롭게 지나친 종인의 행선지는 언제나 백현의 앞이었다. 

“형! 나 완전 잘하지!”

“종인아. 진짜 완전-대박. 너 진짜 완전 잘해.”

 백현은 제 품 안에 가득한 꽃다발을 그에게 건내며 웃어보였다. 

“형. 방금 아빠 같았다..”

“..히. 아냐 진짜야. 완전 멋졌어. 진짜.”

“잘하더라. 짜식- 가르친 보람이 있어요. 응?”

“형이 가르쳤냐. 아빠가 가르쳤거든.”

 네 사람이 종인을 둘러싸고 어깨를 투닥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 둘 씩 불어나던 사람들은 쉬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가 대충 정리를 하고 나올 동안 네 사람은 차로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세훈이 한국에 돌아온 후 처음으로 모인 구성원들은 정말 오랜만에 그동안의 회포를 풀려는 듯 즐겁게 식사를 끝마쳤다. 

준면은 화상회의 때문에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야 한다며 꿍얼거리고 일어섰고, 종인은 뒤풀이에 간다고 일어섰다. 민석도 당장 내일 출장이 잡혀있어 백현을 내려다 주고 가겠다고 했다가 세훈이 백현의 기사를 자청하고 나서서 곧바로 집으로 향했고, 세훈은 백현을 호텔 앞까지 정중히 모셨다. 


“데려다 줘서 고마워. 세훈아.”

“뭘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건데. 들어가요- 형.”

“응. 다음에 봐-”

 

 즐거움을 가장하고 있었으나, 형제들도 제 기분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보다 더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기분까지 제가 망치고 싶지는 않아서, 밝게 웃는 얼굴로 마주하면 조금이라도 제 자신을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더 밝은 척을 했지만. 

 그들과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된 백현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 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아쉬운 인사를 뒤로 하고 호텔 로비를 가로지르던 백현은 자켓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화면 위로 찍힌 어색한 이름을 발견한 순간 발걸음이 뚝 멈췄던 백현은 짧은 고민을 밀어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디야..]

“..”

[변백현.]

“호텔, 로빈데…”

[기다려.]

“…”

 백현은 그의 말에 답을 하지도, 그렇다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낼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거의 다 왔어.]

방금 전까지 바닥을 치려던 기분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조금씩 환기되던 것을 스스로 느꼈다는 것이 백현을 가장 놀라게 했다는 것을 아마 찬열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백현의 수화기 너머로 찬열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전화..끊지 말까]

“..”

저에게 묻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는 말투에 백현은 잠시 속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아니, 이걸 답답하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조금, 간지러운 기분이라고 할까. 멀미가 나는 것도 같고. 조금.. 어지럽기도 하고. 

백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제 아랫 입술을 잇새로 말아 물면서도 슬금 위로 올라가는 입술 끝을 느끼지 못했다. 

[변백현.]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조금 놀라 고개를 들고 입꼬리를 끌어내린 백현이 주위를 둘러 보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제 이런 표정을 보게 될까 조금 두려워졌던 그의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저를 보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왠지 익숙한 시선이었지만 낯선 기운이었다. 

[백현아.]

저와 마주친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본 상대는 백현을 보며 옅은 미소를 보냈다. 

 제 이름이 이명처럼 들렸다. 


“오랜만이다. 백현아.” 





꿈속에서 그댈 만날수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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