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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_ 외전




세상에는 동물의 「혼현」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다. 

 「반류」

세상은 원인을 조상으로 진화한 70%의 인간과 다양한 동물이 진화를 이룬 30%의 반류들로 구성되어진다. 

시대가 바뀌고, 과거처럼 혼현의 종류나 힘의 세기, 즉 번식에 얽매이지 않는 요즘에는 반류란 딱히 특별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반류들에게 혼현은 그저 원인들이 따지는 집안이나 혈통 사주팔자,타고난 성향 같은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지만.) 쉽게 혼현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중종이나 중간종 경종의 차이를 어필하며 생존하려던 과거의 모습들이 흐릿해진 지 오래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린 반류들에게는 ‘원인과 반류’가 필수 과목이다. 적어도 제가 자라올 때는 그러했다. 

원인과 반류에서는 원인들이 눈과 귀, 입을 막고 자신들에게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만 믿으며 자신과 다른 동물들을 보지도 듣지도 상대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한다. 반류학 필수 과목 뿐만 아니라 원인들의 필수 과목까지 통틀어 전부 탑 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던 민석이 그런 원인들의 행동이 어쩌면 본능적인 자기 보호 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마 백현을 처음 만났을 때였을 것이다. 

 

 백현을 처음 본 것은 제 나이 열 여덟이었다. 

엄마의 뒤를 따라 의자 위로 착석하는 열 다섯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마르고 작은 몸을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했었더라. 아마.. 별 관심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나란히 앉아있는 형제들에게 인사를 건내는 얼굴과 별로 닮지 않은 얼굴 위로 머물렀던 시간도 아주 잠깐이었을 만큼, 그와 가족이 되는 것 또한 저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변백현입니다.”

 조용한 목소리와 시원하게 호를 그리며 올라가는 얇은 입술을 바라본 민석은 다시 제 앞에 놓인 찻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중에서야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건 그냥 제 바람이었을지 모른다. 

저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던 어린 소년을 못 본 채 하는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기때문에.

 

“니가 백현이구나. 반갑다. 꼭 만나보고 싶었단다.”

 아버지의 온화한 미소를 바라보던 종인은 대놓고 미간을 구겼다가 준면의 눈치를 살피고 고개를 돌렸다. 처음 아버지가 재혼 얘기를 꺼내셨을 때부터 반대를 하던 종인은 준면의 설득 아닌 설득에 아버지의 재혼을 허락하긴 했지만 아직 수긍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벌써 12년 전의 일이었다. 

그 지독하게 긴 시간 동안 아버지는 홀로 아들 셋을 키워내신 분이었다. 그의 사랑은 단 한번도 부족하게 느껴진 적이 없을 정도로 차고 넘쳤으며 아직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저보다 더 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준면과 민석은 아버지의 말에 순순히 따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려 끝에 재혼을 결정하셨는지 느끼고 있었기에, 또 어머니만큼 그를 사랑하고 그가 행복하기를 바랬음에.. 허나 저와 여섯 살 터울의 종인은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세 형제들 중 어머니와의 추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아이이면서 가장 많이 그녀를 닮은 아이.

 그 아이가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신 것은 종인에겐 역린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버지와 제 형제들이 그의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 보며 그녀를 그리워할 때에도, 그 시선을 도망치듯 피하던 종인이 재혼을 반대한 유일한 이유가 아마 거기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었다. 

  


 그녀는 약하지만 강한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장 작고 약하게 태어나 성인이 되는 것도 어렵다는 판단을 받았던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가.   

‘엄마. 이것 봐- 며니는 엉아가 좋은가봐.’

 꼬물꼬물- 제 품에서 움직이는 동생을 안고 해맑게 웃는 민석의 얼굴 위로 그녀의 따뜻한 손길이 스쳤다. 

‘준면이는 엄마보다 형아가 더 좋은가보네.’

‘아냐. 아가는 엄마 좋아해- 엄마 저기 갔을 때 계속 울었는데?’

 시무룩한 표정을 하는 엄마의 손을 잡아 흔든 어린 민석은 엄마의 장난스런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가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도 엄마가 제일 좋아! 그녀는 제 손을 잡는 아이의 손을 맞잡고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두 번의 출산으로 몸이 약해져 한동안 병원에서 지내야 했고, 퇴원을 해서도 침대 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은 자신의 처지도 지금 같은 순간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값싼 대가라고 생각했다.

‘우리 둘째는 사랑이 넘치는 아인가보네. 형아도 엄마도 좋아하는 걸 보면-’

 시간이 지나 세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 의사는 산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선택은 당연히 아이였다. 저를 꼭 빼닮은 맑은 눈동자를 바라볼 때 면 가슴이 시렸다. 이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가장 제 마음을 아프게 짓눌렀다.

 

 

 

 축복 속에 이뤄진 새로운 가족. 제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재혼은 두 집 안을 하나로 잇는 수단이었으며 한 가정이 되는 과정이었다. 이제 막 고교생이 된 두 아들과 중학생인 백현, 아직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어린 종인까지 네 아이들과 성인 남녀가 하루아침에 가족이 되어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분은 어린 아들들을 위해 다분히 노력하셨다. 

 

 이제 내년이면 고3이라는 핑계로 공부에 전념하던 민석은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귀가하는 날이 많았고 집에 있는 시간에도 대부분을 자신의 공간에서 지냈다. 그의 무관심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그칠 마음이 없었던 가족들은 그를 내버려두었다. 반면에 어린 종인은 대놓고 백현을 싫어했다. 

 

 백현은 형제들에게 부러 친한 척 말을 걸지도 않았으며 제 문제를 불평하는 타입도 아니었고 그의 성격을 가장 먼저 눈치채고 마음에 담은 것은 준면이었다. 

아직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저보다 무려 두 살이나 어린 그가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지도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 준면은 못내 놀라울 따름이었고, 그래서 자꾸만 그에게 눈이 갔다. 

공부를 하고 있는 제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모습, 식사를 하면서 형제들의 물을 챙기고 종인의 일방적인 화를 고스란히 감내하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준면은 한 번씩 제가 먼저 손을 내밀곤했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면 눈을 반짝이며 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제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수줍게 웃는 얼굴, 종인의 춤 실력에 놀라 박수를 치는 진실된 얼굴, 그 진실된 감정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는 이미 저를 둘러싸고 있던 벽을 허물어버린 후였다.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가족들은 민석을 평소보다 더 주의 깊게 살폈다. 매년 이맘때 한번씩 크게 앓았기 때문에 전날부터 좋지 않은 그의 컨디션을 캐치한 준면이 특히 그랬다. 정작 민석은 자신의 몸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을 나섰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서있던 그가 거센 바람에 휘청이자 뒤에있던 준면이 놀란 마음에 그의 팔을 잡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온 민석은 누가 말을 붙일새 없이 식사도 건너뛰고 제 방 침대 위로 몸을 뉘였다. 

얼마나 잠이 들어있었을까 칼칼한 목을 느끼며 마른 침을 삼킨 그가 눈썹을 찌푸리며 이마를 문지르고 상체를 세웠을 때, 고요한 적막 속에 어두운 시야가 차츰 밝아질 때, 제 옆에 작은 몸이 눈에 들어온 민석은 제 몸이 평소보다 뜨겁다는 것을 인지했다.

 

“혀엉..일어났어?”

잠이 섞인 나른한 목소리가 민석의 팔 위로 내려앉았다. 백현은 눈을 꿈뻑이며 저를 올려다보더니 제 팔과 손을 잡아왔다. 

“좀 괜찮아?”

“니가 왜 여기있어?”

“아. 미안..”

 제 생각보다 차가운 목소리가 빠져나가자 백현의 어깨가 움찔 하는 것이 보였다. 그 작은 동작에 미안함이 몰려왔지만 지금은 그를 신경쓸만큼의 여유가 없던 그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는 백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잘자. 내일 봐.. 형.”

 미련하게도 살가운 인사말에 답은 문이 닫히는 소리 뿐이었다. 다시 갈증이 일기 시작한 민석이 침대 시트를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주방으로 내려가 냉장고 문을 열고 찬 기운에 몸을 떠는 제 스스로를 느낀 그가 한숨을 뱉어내며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알고 있다. 제가 얼마나 유치한 짓을 하고있는지. 백현은 분명 체온이 떨어진 저를 위해 제 방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것도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그를 차갑게만 대한 것인지.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 민석은 마른 세수를 하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집에 들어오는 시간을 줄인 종인은 그즈음 제 형제들과 친하게 지내던 백현을 볼 때마다 헛웃음이 흘렀다. 이제는 새어머니에게 엄마라는 호칭도 스스럼없이 쓰던 그가 백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가 제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경계심이 높아졌다. 

그 경계심이 반항심으로 번졌을 때의 종인은 담배를 시작하고 학교를 빼먹고 나가 놀다가 선생님에게 귀가 잡혀 돌아오기 일수였다.

“너는 어떻게- 너네 형들, 반만 닮아봐라 이눔아.”

“아, 아파요! 쌤!”

 반류들이 다니는 학교는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이어져 있었고 대부분 한 제단에서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는 대학교를 빼면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가 나란히 붙어있었고 당연하게도 종인은 어릴적부터 제 형제들과 적지않게 비교를 당해왔다. 물론, 그는 딱히 그런걸 신경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전교1등을 놓치지 않던 민석과 학생회장을 도맡던 준면으로 이미 유명한 형제들의 명성을 고스란히 느끼던 종인에게 백현이 추가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류들 사이에서 재혼 가정은 아주 흔한 일이지만 형제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기에 이미 사교계 모임에서 여러 번 민석과 준면과 함께 있는 백현의 이야기는 수업시간 내내 엎어져 잠들어있는 제 귓가를 파고들 정도로 흔하게 들려오는 일들 중 하나 였다. 

도대체가 남의 집안일에 무슨 관심들이 그렇게 많은지, 미간을 팍 찌푸리고 누워있는 제 팔을 누군가 툭툭 치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얼굴 위로 불쾌함이 그득 묻어났다.


“야, 너네 형 경종이지?”

제 형제 중에 경종이 어디 있어. 다들, 그러다 그가 말한 ‘형’이 누구인지 깨달은 종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그는 제 앞에 앉아있는 놈의 얼굴을 바라보다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당탕 시끄러운 소음이 교실 안을 퍼지자 여러 시선들이 그들에게 향했다.

“아, 씹! 뭐야 갑자기!!”

욕지거리를 뱉어내며 종인을 올려다본 남자의 시선이 굳어진 얼굴 위로 닿았을 때, 남자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평소 잠이 가득 묻어난 나른한 얼굴로 앉아있던 그의 분위기가 날카롭게 변한 것을 느낀 것은 남자아이 뿐만이 아니었지만 종인은 그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제 앞에 서있는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경종이면, 뭘 어쩌려고.”

 평소 질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대충 듣긴 했지만 그가 어떤 의도로 백현에 대해 물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무척이나 제 심기에 거슬린다는 것만이 명확했다.

“나,나는 그냥-궁금해서.”

“궁금해하지마. 관심 꺼.”

“아,알았어. 알았다고.”

 서둘러 멀어지는 남자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가득한 것을 알았지만 그의 뒤를 쫓지는 않았다. 적당히 알아들었겠지. 사실 그가 알아듣던 말던 관심도 없었지만, 

 


 그러나 후에 종인은 그에게 조금 더 확실하게 못을 박아두었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 안녕하세요-”

“어.어..안녕.”

“한참 찾았는데, 여기 계셨네요.”

 백현은 저를 보며 웃고 있는 남자아이를 바라보며 슬쩍 뒷걸음질 쳤다. 본능적인 두려움, 그것은 처음 저를 종인의 친구라고 소개했던 현우를 볼 때 마다 느끼던 감정이었다. 

제 동생과 동급생이라는 어린 반류의 휘어지는 눈꼬리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이 단지 제가 싫어하는 새 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 백현은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다. 저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에게 두려움이라니. 이 얼마나 예의 없는 짓인가 싶어서였다. 

“김종인이 아까부터 형 찾던데, 만나셨어요?”

“아, 그래? 아니. 아직..”

“지금 2층 테라스에 있던데.”

 종인이 저를 찾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전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던 백현의 앞을 막아선 현우가 마침 저도 그쪽으로 올라가려 던 참이었다는 말에 그와 동행했다.

 테라스에 도착해서 저를 기다리는 이가 종인이 아닌 다른 무리들이라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저를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서늘해졌다. 

“진짜 끌고 나오기 한 번 힘드네.”

“어?”

“형은, 뭐 이렇게 가드가 많아요. 번거롭게.”

 백현이 무슨 말이냐는 듯 얼굴 위로 의아함을 가득 띄었을 때, 현우의 손이 백현의 목을 그러 쥐었다. 

“김종인이 그러더라고, 궁금해 하지도 말고 관심도 끄라고. 너한테”

“그게 무슨, 이거 놔.”

“근데 어떻하냐? 우린 이미 관심이 생겼는데.”

양 쪽에서 제 손을 잡아 채는 힘에 놀라 몸을 떠는 백현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물들었다. 

저를 찍어내리 듯 바라보는 매서운 눈동자들이 동시에 기를 풀어내자 다리가 풀려 바닥 위로 고꾸라질 듯 휘청인 그를 다시 끌어올린 손들이 그의 목과 허리를 틀어 쥐고 단단히 고정했다. 

차가운 벽 뒤로 닿는 뒤통수가 아프게 짓눌렸다. 

저를 감싼 무리들의 등 뒤로 어둑한 하늘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그만! 흐으..”

 백현은 제 머리칼을 그러쥔 손과 귓가를 파고드는 혀에 소름이 끼쳤다. 옷 위로 선연히 느껴지는 뜨거운 손의 감촉에는 눈물이 차오를 정도였다. 저를 찍어누르는 기에 소리를 내지르지도 발버둥을 치는 것도 버거웠다. 저보다 어리다지만 중간 종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때 바로 테라스 문 앞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구든 저를 도와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나타난다면 하고 바라던 백현이 갈라진 목소리를 어렵사리 뱉어냈다.

“도,도와-흑.”

지루하던 연회장에서 나와 숨을 돌리려던 종인은 끊어질 듯 작은 목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렸다. 

흐느낌 가득한 목소리가 시끄러운 클래식 음악에 묻혀 잘못 들었다는 생각을 하려고 때, 조용히 해! 다그치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의 걸음이 순식간에 빨라졌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지나칠 마음은 없었으니까. 단순히, 

 

 아주 단순히 그런 이유로 테라스 안으로 들어선 종인은 제가 아는 얼굴들을 마주하고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다. 눈물에 젖은 얼굴, 힘없이 감긴 두 눈, 틀어 막힌 입술 새로 뱉어지는 고통스러운 신음에 그대로 숨을 멈추었다. 

 다음 순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처음으로 제 기를 꺼내 제 앞에 서있던 중간 종들을 찍어 누르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발악하듯 소리치던 놈의 어깨에 복부를 맞고 허리를 수그린 채 숨을 토해낸 제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백현의 몸이 테라스 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변백현!”

 제 이름을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에 백현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눈물에 뿌옇게 변한 시야에 자신을 부르는 것이 누구인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하얀 몸을 바라보며 손을 뻗은 종인의 심장이 그의 몸과 함께 추락한 듯 발 밑으로 뚝 떨어졌다. 

1층에 있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백현의 곁으로 모여드는 소리들이 이명처럼 귓가를 울렸다. 테라스 바닥을 기며 숨을 컥컥 대던 무리들의 숨소리가 점차 사그러들 때 즈음 민석이 테라스로 뛰어 들어왔다. 


 


 연회장 2층 테라스 난간에서 떨어진 백현은 다리에 금이 가고 팔이 부러졌다.

2층이라기 보단 거의 3층 정도의 높이였던 테라스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치지 않았던 이유는 아래 있던 관목 덕분이라고 했다. 1층에 있던 준면이 서둘러 백현을 확인하고 구급차를 부르는 것을 난간 위에서 바라보던 종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백현의 의식이 돌아왔을 때, 종인은 그의 병실 앞에서 펑펑 울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 탓인 것만 같았다. 제가 막을 수 있는 사고였음에도 막지 못한 것이 분하고 서러웠으며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제 쓸데없는 자존심, 이기심과 반항이 만들어낸 결과로 그가 다친 것을 직접 눈앞에서 지켜본 어린 종인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백현은 저를 해하려던 세 명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했으며 가족들은 당연하게 그들의 처분을 요청했고 퇴학과 구속, 엄중한 처벌을 원하며 합의 따위 해주지 않으려는 가족들을 겨우 말린 것은 백현이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고 제가 다친 것은 사고였다는 그의 말에도 준면은 펄쩍 뛰었다. 만약 그 상황에 타인의 개입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뻔한 것이 아닌가. 이미 그런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 만으로도 처벌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중종이나 중간 종이 경종을 힘으로 누르고 강제로 해한다는 것은 엄중히 처벌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이 가족들의 의견이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선 종인은 거실에 앉아있던 백현과 눈이 마주치자 주춤 대며 물러났다가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그 일이 마무리 된 후에도 그는 백현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괴로웠다. 

미안한 감정 뿐만이 아니라 저 때문이라는 자책이 어린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그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커져갔기 때문이었다.

 

“종인아.”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그 자리에 멈춰선 종인의 등 뒤로 백현의 시선이 닿았다. 다리는 제법 나은 모양인지 걸음 거리가 전보다는 부드러워 진 듯 발자국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나 지금 저녁 먹을 건데. 같이 먹을래?”

“..아니.”

“밥. 안 먹었잖아..너 안 먹으면 나도 혼자 먹어야하는데.”

“..”

 종인은 그의 목소리에 화가 치밀었다. 어째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지. 어떻게 저에게 화 한번 내지 않을 수 있지. 다 들었을텐데, 그들이 저에게 앙갚음 하기 위해서 백현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도, 저 때문에 그런 짓을 당해 놓고도 왜.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지?

“너는-”

“종인아.”

“..”

“나한테 미안하면, 나랑 밥 먹어.”

그의 말에 제가 뱉어 내려던 말을 삼킨 종인의 입술 새로 짙은 한숨이 비집고 나왔다. 

 


 천천히 젓가락을 쥐고 움직이는 손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로 물만 들이키던 종인의 얼굴로 백현의 시선이 닿았다.

“나는 너 원망안 해. 니가 나 도와줬잖아.”

“애초에,”

“너를 이용한 것 뿐이야. 니 잘못 아니잖아.”

“..난.”

알고 있었다. 제가 원한 일도 아니었다.

“그때, 2층에서 추락하던 그때. …들었지?”

 


 떨어지는 백현에게 손을 뻗었다.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그의 눈이 저를 바라보던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소리 없이 벌어진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새도 마찬가지였다.

 

‘종인아’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와 마치 온 몸이 심장으로 이루어진 듯 거세게 뛰는 심장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던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의 입술이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내가 니 이름을 부르긴 했는데, 뒷 말을 못했더라고.”

“…”

 물 컵을 쥐고 있던 손이 떨리는 것을 바라보던 백현은 그가 제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있는지, 여전히 화가 나 있는지 아니면 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기로 했다.

“고마워.”

“..”

“도와줘서 고마웠어. 종인아.”

 이 말을 꼭 그에게 전해야 했으므로.

 

 


 물에 젖는 종이처럼 서서히 제 공간을 넓혀간 백현이 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데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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